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26화 (18권) (426/862)

18권

1화. 가면을 벗다 (1)

콰아앙!

연우가 급강하한 자리로, 식탐황제의 손날과 비그리드가 강하게 충돌했다.

검은 오러가 폭발하고 불의 파도가 거친 소용돌이를 그리며 식탐황제를 찢어발기고자 했지만.

“가르쳐? 네놈 따위가 무엇을 가르친단 말이냐!”

식탐황제는 도리어 그런 소용돌이를 강제로 찢으면서 연우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마치 성문을 통과하려는 공성추처럼. 가뜩이나 뚱뚱한 몸뚱이가 몇 배나 부푼 채로 탄환처럼 쏘아졌다.

쾅!

연우는 날개를 안쪽으로 접으면서 식탐황제의 몸통 박치기를 막아 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불길이 다시 충격파와 함께 허공으로 높게 치솟았다.

그 순간.

“독식자! 드디어 맨 얼굴을 드러냈구나!”

“본국의 소중한 백성들을 이딴 식으로 학살해? 용서치 않겠다!”

식탐황제의 좌우로 뚜언띠엔 공작과 티르빙 공작이 나타나 양쪽에서 연우의 허리를 갈라 왔다. 식탐의 돌로 연결된 상태에서, 식탐황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둘의 기습은 이뤄지지 못했다.

연우의 그림자가 위로 불쑥 올라오면서 샤논과 한령이 나타나 각각 그들의 칼날을 막아 낸 것이다.

「어이. 어이. 자꾸 우리를 잊어 먹으면 섭섭하다고?」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혈국 공작들의 칼 솜씨를 한번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지. 잘 됐군.」

「응? 해 본 적 없어? 너 싸움 귀신이었다며?」

「이미 이들은 내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지라!」

채채챙!

쿠르르-

샤논은 〈볼케이노〉를 연거푸 터뜨리면서 티르빙 공작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일어나는 화염 폭풍이 티르빙 공작을 계속 물러나게 만들었다.

한령은 아홉 자루의 칼을 모두 허공으로 던지면서 차례대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생전의 무력을 되찾은 데에 더해 추가로 랭커의 영혼을 삼키면서 강화된 그의 칼질은 가벼우면서도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다.

“설마…… 도무신?”

「날 알아보는가?」

“죽었다고 알려진 청화도의 무신이 어째서 저딴 낭인 따위에게……!”

「이 몸도 낭인 출신이었던지라.」

한령은 경악에 빠진 뚜언띠엔 공작을 베어 나갔다. 뚜언띠엔 공작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뼈의 칼을 마구잡이로 뽑아내면서 충돌을 시작했다.

콰르릉, 콰르르-

그렇게 권속들 간의 본격적인 다툼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주인의 격투는 더더욱 거칠어졌다.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듀렌달’을 개방합니다.]

[전승: 일도양단]

촤촤촤-

진명을 전환하자, 여태껏 용을 참살하기 위해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던 비그리드가 가벼워지면서 빠르게 허공을 여러 갈래로 쪼갰다.

검은 오러는 불의 파도를 극한으로 압축시켜 오러에 가둬 둔 형태. 당연하지만 압축이 부서지면 그만큼 큰 폭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바로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불의 파도가 터져 나가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팔극검은 식탐황제의 몸을 몇 번씩이나 베고, 찌르고, 자르기까지 했다.

촤아악-

“이노오오옴!”

식탐황제는 그럴수록 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칼라투스의 혈청과 고기를 잔뜩 삼킨 뒤, 그동안 다루기가 너무 어려웠던 식탐의 돌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기는커녕 계속 밀려나고만 있으니.

특히 그를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대주교가 뿌리던 불길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 냈던 살갗이 검은 오러에는 계속 베여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처가 생기면 금세 보라색 기운이 올라와 회복을 시킨다지만.

도무지 연우의 공세로부터 탈출할 만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미칠 것 같은 모양이지?”

식탐황제는 가면 너머로 번뜩이는 금색 눈동자에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속이 훤히 들여 다보이는 기분이었다.

“돌을 그따위로 쓰고 있으니 그렇겠지. 용의 인자를 이용해서 돌을 제어한다? 좋은 발상이야.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

“……너?”

식탐황제는 여태껏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던 영혼석을 들켰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건 그딴 식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거든.”

“……!”

연우는 충격에 빠진 식탐황제에게 비릿한 비웃음을 던지면서 비그리드를 아래로 내리쳤다. 현자의 돌과 드래곤 하트가 공명하면서 불벼락이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혔다.

양팔을 교차하며 이것을 막으려던 식탐황제의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촤아악!

“크아아악!”

“그래도 유일하게 딱 하나는 좋았어. 괴력난신? 꽤 쓸 만하더군. 그것도 사용법이 잘못되었지만.”

연우는 녀석이 듣고 있거나 말거나 여태 현자의 돌에 가두고 있던 ‘난’, 패란을 부에게로 보냈다.

패란은 법칙을 비틀고 진리를 어지럽히는 힘.

더할 나위 없이 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능력이기도 했다.

드높은 하늘을 따라, 두 개의 실선이 그어지면서 엘더 리치의 인페르노 사이트가 도깨비불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죽음. 이여. 오. 라.」

전장을 지휘하던 부의 명령에 따라, 지면을 새카맣게 물들이던 그림자가 더더욱 늪처럼 질퍽질퍽해졌다.

전장을 강타하던 불길이 검게 물들면서 음산하게 더 높이 타오르고.

영괴들의 눈빛도 이제는 하나같이 보라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흉측한 이빨을 훤히 드러내어, 먹잇감들의 명줄을 뜯어 나갔다.

하늘에서는 거대한 구멍이 열리면서 여태껏 던전 속에 비축하고 있던 온갖 언데드들을 잔뜩 토해 냈으니.

식탐황제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불이 도사리는 구천 세계인지, 아니면 용의 신전이었던 50층의 스테이지인지를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아홉 왕들의 도움을 빌리기에도 요원했다.

쿵, 쿵, 쿠우웅-

크롸롸롸!

결이 갈라지면서 어느덧 3차 페이즈로 돌입하기 시작한 칼라투스가 어떻게든 화풀이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통에, 다른 아홉 왕들의 발도 거기에 단단히 묶인 탓이었다.

가뜩이나 그들도 크게 다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제기랄!”

식탐황제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날아갔던 팔은 다시 복구되었지만 어느새 다시 잘려 나가고 있었고, 보라색 기운은 쏟아지는 핏물만큼이나 끊임없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중이었다.

거기다 바로 눈앞에서 자신이 수하에게 주었던 권능을 강탈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자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용의 저주 때문에 갖가지 권능에도 제약이 생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니, 한 가지가 있긴 했다.

어린 시절에 딱 한 번 사용해 본 이후로, 후유증이 너무 심각해 여태 단단히 봉인해 둬야만 했던 그 방법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그 많던 형제와 혈육들을 전부 잡아먹고 옥좌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

“제기라아아알!”

식탐황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배 속에 든 식탐의 돌을 그대로 ‘해방’시켰다.

쿠우우-

마치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식탐황제의 비대한 몸뚱이가 순식간에 수십 배로 부풀어 올랐다.

“크아아!”

마치 신화 속에 잊힌 종족, 거인이라도 된 것처럼. 식탐황제는 수십 미터나 커진 채로 길게 포효했다.

이제 식탐의 돌은 보라색 기운을 마구 쏟아내면서 식탐황제의 본능과 욕구를 극대화시켜 나갔다.

먹어라.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이곳에 있는 놈들을 전부 먹어서 너를 깔보는 놈들이 없게 만들어라.

식탐황제는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고, 만인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굴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판국에 지금과 같은 일들은 불경한 것들이 반역을 도모하려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황제로서의 위엄을 보여, 저들과 자신의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을 시켜 줘야만 했다.

쾅, 쾅, 쾅-

“죽…… 인…… 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식탐황제가 가장 먼저 무릎을 꿇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연우였다.

쿠쿠쿠쿵-

거대한 발로 지면을 내려찍을 때마다 지축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보라색 기운과 함께 새어 나오는 광기에는 오로지 연우를 죽이겠다는 생각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빨갰다.

[시차 괴리]

연우는 그렇게 자신에게 달려오는 식탐황제를 맞이하면서. 사고 속도를 빠르게 돌려 한껏 느려진 시간대 속에서 녀석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혹시나 괴력난신처럼 자신이 참고할 만한 영혼석의 사용법이 있나 싶었지만.

‘없어.’

녀석은 그저 식탐의 돌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식탐(Gluttony)’이라는 개념에 단편적으로 취한 중독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지만.

저것밖에 안 된다면 더 이상 놔 둘 필요가 없을 듯했다.

애당초.

‘녀석은 아홉 왕의 그릇이 아니었어.’

식탐의 돌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

그런 놈에게 영혼석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 뿐이지.

팟-

연우는 다시 시간대를 원상태로 돌리면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아앙!

그가 있던 자리로 아슬아슬하게 식탐황제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노면을 따라 수십 미터나 되는 크기의 균열이 퍼지면서 부서진 돌조각이 위로 튀고.

연우는 어느새 블링크를 발동, 식탐황제의 다리 뒤편에 나타나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두르고 있었다.

촤아악-

“크악!”

쿵!

아킬레스건이 그대로 잘려 나가면서 녀석의 오른쪽 무릎이 지면을 찍었다.

보라색 기운이 녀석의 신체를 강화시키거나 하는 건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용신안으로 훔쳐본 결을 그대로 갈라, 식탐의 돌에서부터 이어지는 마력 유동을 끊어 버리고, 그 자리를 검은 불길로 지져서 상처를 악화시키면 그만이었으니.

녀석의 잘린 발목에는 짙은 피의 꽃이 멍울져 있었다.

[흉신악살]

[검은 구비타라]

연우는 녀석이 자세를 낮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촤촤촤-

비그리드가 팔극검의 비기들을 순서대로 빠르게 풀어냈다.

단천에서부터 철토까지. 비그리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식탐황제의 팔다리가 뭉텅뭉텅 썰려 나가면서 삽시간에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었고.

“아아아악!”

식탐황제의 거체를 가득 뒤덮은 피의 꽃은 게걸스럽게 그의 체력과 마력을 빨아들이면서, 연우에게 막대한 에너지를 그대로 전달했다.

그 속에는 식탐의 돌이 자랑하던 보라색 기운도 있었다. 현자의 돌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전부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면서 영혼석의 성질을 더해 나갔다.

[권능, ‘검은 구비타라’의 효과로 적의 마력을 일부 흡수합니다.]

[영혼석(오만의 돌)이 영혼석(식탐의 돌)의 기운을 발견, 흡수를 시도합니다.]

[영혼석(오만의 돌)이 영혼석(식탐의 돌)의 기운을 발견, 흡수를 시도합니다.]

[영혼석(식탐의 돌)이 영혼석(오만의 돌)을 거부합니다. 영혼석(오만의 돌)이 강제 병합을 시도합니다.]

[영혼석(오만의 돌)이 마력을 흡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

[영혼석(오만의 돌)이 ‘죄악석’으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더 많은 마력을 흡수하세요.]

“너, 너……!”

식탐황제는 비장의 한 수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식탐의 돌이 갖고 있던 기운까지 빼앗기자 이제 충격에 잠기고 말았다.

그제야 연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도 자신과 똑같은 영혼석의 소유자였다. 그것도 훨씬 능통하게 사용할 줄 아는!

“으아아아!”

식탐황제는 식탐의 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마구잡이로 마력을 잇달아 뿌리고, 주먹질을 해 댔지만, 연우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덩치가 비대해지면서 속도도 같이 느려져 더 큰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비켜! 비키란 말이야아!”

결국 식탐황제는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등골이 쭈뼛 서고 말았다.

여태껏 자신이 휘두르기만 했지, 당할 줄 몰랐던 감정과 개념이 그를 점점 늪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으, 으아아……!”

공포.

두려움.

그리고…… 죽음.

[네르갈이 웃습니다.]

[이자나미가 웃습니다.]

[태산부군이 웃습니다.]

[아이쉬마-다이바가 웃습니다.]

[할파스가 웃습니다.]

[헬이 웃습니다.]

……

그리고 식탐황제는 연우의 뒤편으로, 수많은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자신을 보며 조롱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죽음의 늪이, 그를 익사시키기 위해서 바로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퍽!

비그리드가 식탐황제의 마지막 남은 팔을 잘라 내고, 단번에 왼쪽 가슴을 비집고 들어갔다.

연우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허리띠 뒤쪽에 있던 크라슈나의 단검과 마장대검을 동시에 뽑아 녀석의 복부에다 쑤셔 넣으며 그대로 좌우로 찢었다.

촤아아악-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핏물 사이로,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내장과 이미 거기까지 침범한 피의 꽃이 보였고.

그 사이로 식탐의 돌이 보라색 광채를 뿌려 대면서 울고 있었다.

식탐의 돌은 오만의 돌에 흡수될 거라 생각했는지, 최후의 발악을 위해 더 많은 마력을 뿌려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피의 꽃은 더더욱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현자의 돌을 배부르게 만들었다.

연우는 지체 없이 그 안쪽으로 왼손을 밀어 넣었다. 손바닥 사이로 검은 멍울이 활짝 열리면서 톱니 이빨이 드러나 단번에 식탐의 돌을 와그작 씹었다.

[‘바토리의 흡혈검’이 영혼석(식탐의 돌)을 갈취합니다.]

[해당 스킬이 전개 가능한 범위를 훨씬 벗어난 아티팩트입니다. 스킬 발동이 실패하였습니다.]

[스킬이 재시전되었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스킬이 재시전되었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용근(龍根)의 보조 효과로 영혼석(오만의 돌)이 해당 스킬과 자동 연결되었습니다.]

[스킬이 재시전되었습니다.]

[성공하였습니다.]

[에너지 드레인을 시작합니다.]

콰드드득-

어떻게든 톱니 이빨을 밀어 내려던 식탐의 돌은 결국 탐욕스러운 오만의 돌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씹히면서 흡수되기 시작했다.

돌과 영혼을 잠식당하면서 식탐황제의 육체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몸뚱이가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리면서 피의 꽃이 서서히 얼굴까지 덮어 나갔다.

“살……려 줘……!”

식탐황제는 정말 이대로 식탐의 돌을 빼앗기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공포에 잔뜩 질린 채 그렇게 외쳤다.

연우는 녀석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면서 차갑게 웃었다.

“네가 말했었지? 미궁 탐색이 끝나면 원하는 것을 하나 준다고. 난 네 목숨이면 충분해.”

“대체…… 왜! 왜 나에게 이러는 것이야……! 난! 난 너를……!”

“걱정 마라. 곧 알게 될 테니.”

연우는 이제 얼굴마저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져 가는 식탐황제를 보면서. 바토리의 흡혈검을 더 깊게 쑤셔 넣었다. 에너지 드레인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아, 안……!”

식탐황제는 입술을 벙긋거리다, 끝내 미이라처럼 바짝 메마르며 잘게 부서져 사라졌다.

[‘바토리의 흡혈검’이 영혼석(식탐의 돌)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종 결과: 89.2%]

[축하합니다! ‘바토리의 흡혈검’의 스킬 숙련도를 Max치까지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과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체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마력이 35만큼 상승합니다.]

……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합니다.]

연우는 포악하게 구는 오만의 돌과 그것을 피하려는 식탐의 돌이 서로 현자의 돌 속에서 충돌하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미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온통 충격에 젖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영괴와 언데드들의 소환으로 가뜩이나 힘든 판국이었지만. 그래도 설마 ‘왕’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탓이었다.

여름여왕이 죽은 적이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왕인 무왕이 해냈던 일.

하지만 지금은 여태 루키로만 알려졌던 존재가, 왕을 거꾸러뜨린 초유의 대사건이었으니. 그건 마그누스나 탐을 비롯한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넌…… 대체 누구지?”

마그누스가 떨리는 눈동자로 던지는 질문에.

연우는 대답 대신에 가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찰칵-

그리고 훤히 드러난 얼굴에. 마그누스를 비롯한 모든 플레이어들이며 랭커들의 얼굴은 더 큰 경악에 젖고 말았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분명히 죽었다고 알려진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죽었던 그는 분명히 은빛 갑주에 새하얀 날개를 지녔고, 여기에 있는 독식자는 반대로 검은 코트에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상반된 모습과 기질을 보이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연우를 감싸고 도는 검은 불길은 더더욱 불길하고 음산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연우는 동생이 되어 한쪽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훤히 드러났다.

“너희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지금부터 똑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 주지.”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동생과 아르티야의 이름으로 처음 선포된 전쟁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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