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30화 (430/862)

5화. 가면을 벗다 (5)

“……막내?”

연우는 사자 갈기의 사내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인상을 살짝 찡그리다, 언뜻 일기장 속에서 스치듯이 언급되는 부분을 떠올렸다.

천마의 또 다른 얼굴, 제천대성은 여러모로 유명한 존재였다. 루시엘은 천계에서, 올포원은 하계에서 깽판을 쳤다지만, 천계와 하계 양쪽에서 동시에 깽판을 친 존재는 그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언뜻 위로 여섯 의형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제천대성과 다르게 외부 활동을 크게 하지 않아, 그들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이 소문만 무성한 편이었다.

제천대성이 미후왕이던 시절. 그와 함께 천계와 하계를 종횡무진하면서 크게 활약한 존재들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동주칠마왕. 칠대성 중 한 명이 나타난 것이라면?

그리고 저런 외양을 지닌 존재라면 언뜻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응? 날 모르나? 하긴 우리가 한동안 좀 얌전하게 살긴 했지. 하하하!”

쾅! 쾅!

사자 갈기의 사내는 양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울릴 때마다 대지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 이름은 휼(譎).”

그러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포악하게 으르렁거렸다.

“살아 있을 시절에는 사타왕이라 불렸으며, 천교의 나부랭이와 절교의 개새끼들을 상대한 뒤로는 신도들로부터 이산대성이라는 별칭을 받았던 존재다.”

“……!”

“……!”

“…….”

연우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멀찍이 떨어져서 연우와 사자 갈기의 사내 쪽을 유심히 번갈아 살피던 왈츠와 탐의 얼굴에도 경악이 번져 나갔다.

마군은 천마를 모시는 종교 집단. 가뜩이나 천마가 주는 특징 때문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곳이 아닌데, 다른 동주칠마왕까지 모시게 되었다면 경쟁자인 그들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주교의 몸에 내려앉은 사타왕은. 그런 하계의 이해관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연우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묻지. 너는 대체 무엇인데, 우리 막내를 품고 있는 것이냐? 뭐, 보아하니 자질 구레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쁜데?”

아무래도 고행의 산에서 흡수했던 미후왕의 허물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연우는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할까 싶었지만.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사타왕은 연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볍게 끊으면서 피식 웃었다. 확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훤히 드러났다.

“그딴 건 별로 안 궁금하거든. 어차피 뒈질 놈, 이유나 찾으려는 거라서. 으하하!”

연우는 사타왕이 맹렬하게 뿌리는 투기와 영압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저만한 존재를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투쟁의 날개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태산부군이 사타왕을 죽일 듯이 노려봅니다.]

[귀령성모가 사타왕을 보며 이를 갑니다.]

[네르갈이 이를 드러냅니다.]

[크시티가르바가 포악하게 웃습니다.]

[오시리스가 당신과 뜻을 함께합니다.]

[헬이 당신과 뜻을 함께합니다.]

……

[모든 죽음의 신이 당신의 의지를 응원합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가 강신을 준비합니다.]

“보아하니 재미난 것들도 꽤 많이 따라다니고. 으흐흐. 역시 내려오겠다고 큰형님을 조른 보람이 있구만그래?”

사타왕은 연우를 따라 이곳을 응시하고 있는 죽음의 신과 악마들을 보면서 더 크게 웃었다.

오히려 그는 연우가 죽음의 신과 악마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타왕은 동주칠마왕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포악하고, 싸움을 즐기기로 유명한 자. 간만에 하계에 내려왔으니 실컷 난동을 부릴 모양이었다.

파아아-

연우도 이를 악물면서 강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왕좌의 신성을 얻고 있으니만큼, 이전처럼 강신으로 인한 페널티도 적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응? 에이 씨. 알았수다. 알았소! 하면 되잖아요, 하면! 하여간 잔소리는!”

사타왕은 연우에게 달려들려다 말고 갑자기 뚝 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미간을 와락 일그러뜨리면서 투덜거리다, 연우를 노려봤다.

“너 이 애새끼. 운 좋은 줄 알아.”

연우는 순간 사타왕이 누군가와 교신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주교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도.

‘막아야 해!’

그랬다간 자칫 50층 스테이지를 에워싸고 있는 칼라투스의 권역이 깨질 수 있었다.

“이곳으로 오라.”

[사왕좌의 권한으로 모든 죽음의 신과 악마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태산부군이 당신의 부름에 응낙합니다.]

[네르갈이 당신의 부름에 응낙합니다.]

……

[모든 죽음의 신이 당신의 요청을 응낙하였습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가 당신의 요청을 응낙하였습니다.]

[사왕좌의 모든 신성이 임시 개방됩니다.]

화아아-

연우는 신성만 일부 갖췄을 뿐, 아직 격이 모자라기에 하데스로부터 물려받은 사왕좌의 모든 권능을 개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칠흑왕을 따라 자신과 함께하고자 하는 666개체에 달하는 신과 악마들을 강신이라는 형태로 불러들여 개연성을 같이 부담케 해 잠시나마 신성을 전부 개방하려는 것이다.

[사왕좌에 예속된 권능, ‘지옥겁화’가 발현되었습니다.]

연우는 지옥겁화를 브레스의 형태로 뿌리면서 사타왕을 막아서고자 했고.

“귀찮게 하지 말라고, 인간.”

가뜩이나 우마왕의 부름 때문에 제대로 날뛰지 못하게 되어 단단히 심통이 나 있던 사타왕은 영압을 해방하면서 주문을 외쳤다.

“불어라, 파초!”

파초선의 원형은 바람. 그것도 불꽃을 가볍게 꺼뜨린다는 태풍이었다.

영압에 실려 회오리 모양을 그리면서 퍼져 나간 파초선의 바람은 지옥겁화가 사타왕에 다다르기도 전에 커다란 장벽을 형성했고.

그사이, 사타왕은 양손을 크게 마주쳤다.

두우웅!

순간, 범종이 울리는 소리가 스테이지를 가득 메우면서.

혼탁한 색깔로 어지러워졌던 하늘이 갈라지고, 빛의 기둥이 내려와 사타왕을 감싸 안았다.

빛의 파장은 사타왕의 근처에 있던 마군의 신도들에게 고루 퍼지면서 그들을 투명한 반구 형태의 보호막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개입된 원인을 알 수 없는 효과로 용의 저주가 해제되기 시작합니다.]

[스테이지를 장악하고 있던 칼라투스의 권역 ‘비나’가 해체됩니다.]

[외부와의 통로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폐쇄된 포탈이 열립니다.]

연우는 하늘에서부터 쏟아지는 빛이 사타왕을 비롯한 동주칠마왕의 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외부에서 동주칠마왕들이, 내부에서 사타왕이 힘을 쓴다면 칼라투스의 권역은 그대로 으깨져 버릴 수밖에 없을 테니.

애당초 대주교가 노렸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지.

때문에 어떻게든 잡아 보려 지옥겁화를 뿌려 댔지만, 파초선이 만들어 내는 태풍의 벽에 가로막혀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이렇게 되자, 곧장 움직인 것은 왈츠와 탐이었다.

스테이지에 갇혀 있다면 또 모를까, 대주교가 약속대로 기회를 만들어 줬으니 우선 이 갑갑한 감옥 같은 곳부터 빠져나가야만 했다.

연우는 지옥겁화의 범위를 사방으로 흩뜨렸다.

애당초 그도 여기서 다섯이나 되는 ‘왕’들을 전부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거나, 제한 시간이었던 72시간을 버틸 거라 여겼던 것이다. 비록 이런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줄은 예상 못 했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잡는다!’

화아악-

연우가 설치한 명토를 따라 지옥겁화가 퍼져 가는 가운데.

“잡아. 어떻게든!”

「맡겨 두라고.」

「명을 받듭니다!」

샤논과 한령이 빛살이 되어 각자 왈츠와 탐을 뒤쫓았다. 그림자가 그 뒤를 따랐다. 디스 플루토도 진형을 바꾸면서 창을 다른 어느 때보다 높게 세웠다.

마희성과 환상연대가 재차 움직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아무리 동주칠마왕으로 인해 칼라투스의 권역이 해제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해체가 진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현재 해체된 정도: 16, 17 %…… 21%]

그사이에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제거해야만 했다.

『오라버니는 대주교를 잡는 데 집중하세요!』

그리고 연우는 에도라의 어기전성을 들으면서. 어느새 빛무리에 잠겨 사라지는 사타왕을 보고는 방식을 바꾸고자 했다.

정면에서 부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원하던 타이밍이 찾아오고 있었다.

[죄악석(오만·식탐)이 완성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해 상위 스킬을 오픈합니다.]

[스킬 ‘바토리의 혈루(血淚)’가 생성되었습니다.]

[‘바토리의 혈루’가 영혼석(식탐의 돌)과 반응을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왕좌의 신성이 적용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추가되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합니다.]

[스킬 ‘하데스의 식령검(食靈劍)’이 생성되었습니다.]

[하데스의 식령검]

등급: 권능

설명: 스킬, ‘바토리의 흡혈검’이 식탐의 돌과 사왕좌의 신성에 각각 적용을 받아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스킬.

생기뿐만 아니라, 영혼의 근원까지 비틀어 쥐어짜 상대의 존재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 식탐의 표장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표장(標章)을 새겨 출혈 및 중독 상태로 만든다. 표장이 새겨져 있는 동안 지속적인 에너지 드레인을 실시하며, 상대는 공격력의 일정 비율만큼 초당 추가 피해를 입는다. 또한,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며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된다.

* 하데스의 권능

정기를 뿌리까지 뽑아 상대의 일부 능력치 및 스킬을 강탈한다. 또한, 영혼에게서 뽑아낸 에너지를 명토(冥土)에 부여하여 저주의 위력을 강화시킨다.

**이 스킬은 ‘유니크’입니다. 탑에서도 오로지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타인에게 전수하는 데 성공할 시에 유니크 항목은 사라지고, 대신에 창조자에게 주어진 부가 혜택 옵션이 제공됩니다.

**이 스킬은 사왕좌에 예속된 권능입니다. 신성이 강화될수록 권능의 위력도 비례해서 증가하며, 다른 권능들과의 연계도 가능해집니다.

연우의 왼손에 맺힌 멍울은 생김새만 따진다면 바토리의 흡혈검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연우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멍울 속에 자리 잡은 톱니 이빨이 이제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닥치는 대로 모든 걸 집어 삼키려는 포악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죄악석에서 흘러나온 식탐의 성질이 오만에 굴복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하데스의 식령검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찰칵, 찰칵-

“삼켜라.”

대상에게 직접 닿아야 흡수가 가능했던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그냥 허공에다 대고 권능을 전개했다.

그러자 흉악한 톱니 이빨이 훤히 드러나면서,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무저갱이 모든 걸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과콰-

거기엔 연우와 지옥겁화를 가로 막고 있던 파초선의 바람도 같이 섞여 있었다.

아예 하데스의 식령검을 사용해서 ‘통째로’ 바람을 잡아 뜯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참에 파초선까지 강탈해 버릴 생각이었다.

지옥겁화를 막아 내는 보구라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될 테니.

때문에 사타왕과 마군을 보호하고 있던 태풍의 벽이 일부 뜯겨 나가면서 빈틈이 생겼고.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듀렌달’을 개방합니다.]

[전승: 일도양단]

비그리드를 사선으로 긋자, 벽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그 안쪽으로 지옥겁화가 물밀 듯이 들이닥치면서 빛의 결계를 그대로 덮쳤다.

콰콰콰-

우르르릉!

남아 있던 마군의 인원 중 삼할가량이 그대로 휩쓸렸다. 이미 빛의 기둥 너머로 반쯤 사라져가던 사타왕이 앞으로 나서서 영압으로 지옥겁화를 튕겨 냈다.

『파초선을 뜯어 가? 이 빌어먹을 새끼가……!』

사타왕과 죽음의 신, 악마들 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동안.

마군의 신도 중 상당수가 겨우 빛의 장막 너머로 사라질 수 있었고.

사타왕은 마지막 차례가 되어서야 겨우 다시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너는.』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지옥겁화를 막아 내느라 상당한 피해를 입어, 왼팔이 잘려 나가 있는 상태였다.

『내 손에 뒈진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화아악!

빛의 기둥이 사라지면서 사타왕과 마군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현재 해체된 정도: 105%]

[칼라투스의 모든 권역이 해제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따라.

화이트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 사자 연맹을 비롯한 모든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속속들이 탈출을 시도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죽었다고 알려진 헤븐윙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그가 지난 복수를 위해 칼을 갖고 돌아왔노라고.

그 칼날이 이제 자신들의 턱밑에까지 다다랐노라고, 한시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서.

* * *

쿵!

권역을 잃으면서 모든 힘을 잃은 칼라투스가 힘겹게 머리를 지면에다 처박았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 ‘혼돈의 마룡’ 칼라투스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든 퀘스트(킬 더 드래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3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5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위대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등록을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아도 당신의 업적은 탑에 깊게 새겨져 원할 시에 언제든 등록 여부를 전환하실 수 있습니다.]

[51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연우는 망막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와 벌써부터 썩어 가기 시작한 칼라투스의 사체를 뒤로한 채.

자신의 앞에 툭 하고 떨어진 탐의 머리통을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쳤던 것인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것으로 여름여왕이 남겼던 아홉 자식 중 왈츠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죽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샤논과 함께 탐을 끝까지 추격해서 사살을 완료하고 돌아온 사내가 서 있었다.

연우에게도 익숙한 얼굴.

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피로 범벅이 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정우.”

“……레온하르트. 네가 환상연대의 대장이었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