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37화 (437/862)

12화. 클랜 창설 (1)

“저, 저, 저게 대체 무, 뭐야?”

“어, 어어어?”

탑 외 지역이 패닉 상태에 빠진 건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어느 날이었다.

헤븐윙이 되돌아왔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한 상황이긴 했지만.

낙오자들이 살아가는 땅인 탑외 지역에서 그런 소식은 별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소식에 불과할 뿐이었다.

입방아에 올리기 좋은 화젯거리라는 면에서 즐겁기만 했지, 그들에게는 피부로 크게 와닿는 현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높은 상공에서 부유성 라퓨타가 공간을 찢으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탑 외 지역을 바쁘게 돌아다니던 플레이어들이며 네이티브들까지, 모두가 놀란 눈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탑 외 지역의 상당수를 뒤덮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으로 인해 상당수가 파괴되었다고 할지라도, 라퓨타는 마지막 용왕 칼라투스가 레어로 삼았던 곳.

당연히 그 어마어마한 규모는 탑 내에서도 보기 힘든 웅장한 것이었으니.

그것이 하늘에 떡 하니 하늘에 나타난 순간, 플레이어와 네이티브들이 압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이. 탑 외 지역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와 네이티브들 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라퓨타에서 전역으로 송출한 포고문.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아, 아르티야가 나타났다……!”

“헤븐윙이 선전 포고를 했다!”

모든 이들이 경악하고 말았다.

헤븐윙이 다시 등장한 것만큼이나 새로운 충격이 탑의 세계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 * *

-오늘 이 시간부로 아르티야가 되돌아왔음을 공표한다.

탑 외 지역의 모든 플레이어와 네이티브들에게 송출된 메시지는 딱 한 줄에 불과했다.

다른 말은 쓸데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듯.

이렇게만 말해도 충분히 모두가 알아들을 것이라는 듯한 오만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오만한 예상은 정확했다.

실제로 그 포고문을 본 모든 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던 것이다.

처음 헤븐윙이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셋이나 되는 ‘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앞날을 걱정하긴 했어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운이 감돌고 있으며, 앞으로 큰 전쟁이 발발하리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리고 거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쓸려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포고문을 접하고 나니, 두려움의 체감 정도가 너무 달라졌다.

그 속에 담긴 진의를 읽은 것이다.

그들이 지난날에 겪었던 고초와 원한을 절대 잊지 않았으며, 여기에 대한 응징과 반격을 가할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서야.

홀로 탑을 상대할 만한 능력을 갖췄고, 만반의 준비까지 해 뒀다는 게 아니고서야 절대 저런 포고문을 던질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듯. 새로운 소식이 때맞춰 탑의 세계를 강타했다.

-혈국이, 무너졌다.

8대 클랜 중 하나로서, 견고한 성채처럼 우뚝 서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점에 군림해 왔던 혈국이, 개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전부가 몰살되었다는 소식은.

‘탑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을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고.

이후, 각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다.

전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새로운 돌풍이 불어닥칠 거란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주 바싹 몸을 낮추면서 돌아가는 정황을 지켜보고자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호응하듯이, 다른 대형 사건들도 줄지어 터졌다.

-엘로힘, 반파(半破)!

-사자 연맹, 자발적 해체.

-환상연대, 고층 공략을 통해 그린 드래곤을 병탄.

-블랙 드래곤, 자중지란.

-화이트 드래곤, 층계 폐쇄를 통한 숨 고르기 돌입.

이미 용의 미궁에서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던 사자 연맹은 용병 연합의 붕괴와, 마탑의 해체, 기타 클랜들의 전멸이라는 뼈아픈 피해만 입은 채로 사실상 모든 수명이 끝났다.

더불어.

엘로힘이 아르티야의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아 혈국처럼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방어에 성공했다는 소식과 함께.

여태껏 신흥 클랜으로만 손꼽히던 환상연대가 곧장 칼날을 고층으로 돌리면서, 단번에 그린 드래곤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기존 영토를 내어 주었고.

수장을 잃은 블랙 드래곤은 다시 그들끼리 여러 파벌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시작했으며.

화이트 드래곤은 즉각 외부 활동을 전면 중지하고, 외우주로 철수해 무기한 휴식에 들어갔다.

용의 미궁에서부터 시작된 파문이 멀리 퍼지고 또 퍼져, 플레이어와 네이티브들이 예상했던 범주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영원히 견고할 것만 같았던 8대 클랜의 아성이 흔들리고, 기존 질서 체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반향도 클 수밖에 없었다.

각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아홉 왕을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

“혈국이 무너진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8대 클랜으로만 이뤄지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이제 아르티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후 탑의 역사는 되돌아온 헤븐윙과 아르티야에 의해 새롭게 쓰일 것이다.”

가장 먼저 바뀐 건, 아홉 왕과 8대 클랜의 명단이었다.

기존의 아홉 왕은 다음과 같았다.

올포원.

무왕.

대주교.

봄의 여왕, 왈츠.

가을군주, 탐.

독재관, 마그누스.

식탐황제.

흑태자.

달의 아이.

원래는 여름여왕과 검무신이 있던 자리를 각각 왈츠와 탐이 파고 들어간 형세였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완전히 무너지면서 도중에 세 개의 자리가 텅 비고 말았다.

그리고 서열 매기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빈자리를 바로 다른 인물들로 대체했다.

헤븐윙과 환상연대장, 그리고 새롭게 거론되기 시작한 인물, 안티 베놈으로.

헤븐윙은 식탐황제와 마그누스를 처치하면서 이제 왈츠와 견주거나, 대주교와 비길 만한 실력자로 꼽히기 시작했고.

환상연대장은 탐을 쓰러뜨리고 환상연대를 블랙 드래곤에 버금가는 거대 클랜으로 급부상시키면서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더불어 안티 베놈, 베이럭은 일찍이 소속이 없어도 ‘왕’의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뛰어났던 인물. 그러다 이번에 새롭게 엘로 힘을 등에 업으면서 말석(末席)에나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8대 클랜의 명단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혈국과 블랙 드래곤이 빠지고, 그 자리를 다른 두 단체가 차지한 것이다.

올포원.

화이트 드래곤.

마군.

엘로힘.

다우드 형제단.

시의 바다.

환상연대.

그리고 아르티야.

단 하룻밤 사이에 크게 개편된 질서를 보면서.

네이티브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태풍을 우려했고, 플레이어들은 그 태풍에 어떻게 올라타야만 떠오르는 저 하늘의 별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만큼이나, 다른 방향으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 * *

“……드디어 움직이시는구나.”

하이디는 수하들과 함께 상위 층계로 오르다 말고, 아르티야의 소식을 접하며 뭔가를 다짐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신혈(神血)을 타고난 그녀는 어느 정도 예지력도 지니고 있는바.

29층에서 독식자와 헤어질 당시. 하이디는 언젠가 그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비상하리라고 예상했었다.

그가 품고 있는 가능성이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달’이었기에 언뜻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일 뿐.

달은 평소엔 어둠에 묻혀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만월에 가까워질수록 밤하늘을 가장 눈부시게 장식하는 법.

그녀가 봤을 때, 독식자는 아직까지 반달이 된 것에 불과했다.

그 달이 꽉 차고 나면. 어느 태양보다도 화려하게 타올라 밤을 모두 불사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달과 함께 밤하늘을 장식할 ‘별’들이 필요했다.

하이디는 바로 그런 별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델란, 쥰과 함께 고생해 가며 어떻게든 세력을 크게 일구려 노력했고.

드디어 그 결실을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하이디!”

델란이 허겁지겁 다급하게 뛰어왔다. 하이디가 얼마나 이 시간만을 고대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하이디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탑 외 지역으로. 저기야말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야.”

그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클랜원들 전부 소집해 줘.”

* * *

“크하하!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어! 헤븐윙! 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한령, 그 친구를 어떻게 데리고 있을 수 있는지, 이제야 납득이 가.”

페이스리스는 무릎을 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중년인과 같이 굵었던 목소리는 앙칼진 여인의 것으로 확 돌변했다.

“그래. 나도 죽다 살아났는데, 너라고 해서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러니, 나의 아이들아?”

그가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아래쪽을 돌아보는 순간.

츠츠츠-

다양한 원귀들이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지면서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수천을 넘어 수만 개에 다다르는 원귀들이 입을 모아 기괴한 소리를 냈다.

우-

우우- 우 -

“자, 나의 아이들아. 우리 다 함께 춤을 추자꾸나!”

그 날.

46층에 위치한 다섯 개의 성이 불에 타고, 네이티브들이 모두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까악! 까아악!

까마귀들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날아다닐 뿐이었다.

* * *

“역시 우리 대장. 재미난 장난을 치시는군. 기만하는 솜씨 하며, 인성질할 준비까지. 아주 완벽해.”

장웨이는 벽에 붙은 포고문을 쭉 찢으면서 활을 어깨에 메었다.

저렇게 기세등등할 때일수록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주 많아지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장웨이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사라졌다.

* * *

“꽤 떠들썩하네요.”

에도라는 로브를 깊게 눌러쓰면서. 라퓨타가 있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을 슬쩍 엿보았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거대 성채가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났으니 난리가 나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반향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컸다.

탑 외 지역의 대부분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

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전쟁의 위협에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아 버린 네이티브들과 다르게 플레이어들은 한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다.

라퓨타가 아르티야의 클랜 하우스라는 사실은 이미 입소문을 타고 탑의 세계 전역으로 퍼졌을 게 분명한바.

당연히 여러 클랜으로서는 머리가 아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상식으로, 클랜 하우스는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곳이고, 외우주는 철저히 숨겨 적으로부터 멀리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연우는 도리어 라퓨타를 모두가 볼 수 있는 탑 외 지역의 상공에다 떡하니 가져다 놓았으니.

용의 미궁 때처럼 저기에 무슨 함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머릿속이 여러 계산으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르티야와 원한으로 얽힌 거대 클랜으로서는 함부로 건드릴 수도,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태.

때문에 탑 외 지역은 아침부터 계속 들썩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몇몇은 일단 라퓨타를 공략해 보자는 의견을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도라는 연우가 그런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라퓨타를 그냥 내버려 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너무 높은 상공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가,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아홉 왕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공략이 불발에 그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설마 여름여왕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어.’

에도라는 지금쯤 라퓨타의 상황 통제실에 앉아 부유성을 다루고 있을 여름여왕을 떠올리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좁혔다.

-마지막 용왕의 거처라. 오냐. 좋다. 이런 곳이라면, 숨겨져 있는 마법들이며 저장된 장치들 중에 쓸 만한 것들이 아주 많겠지.

여름여왕이 아직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 오만한 성정에 라퓨타를 지켜 달라는 연우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여름여왕은 라퓨타가 칼라투스의 레어이니 자신도 배울 것이 많지 않겠냐는 의미로 대답했다지만.

에도라의 〈혜안〉은 사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아르티야의 클랜 하우스…… 오라버니의 동생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어. 분명.’

여하튼.

여름여왕이 라퓨타에 상주하고 있는 한, 외부 공격으로부터 라퓨타가 공략당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라퓨타가 저렇게 탑 외 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만으로도, 아르티야는 여러 가지 이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첫째는 과거와 다르게, 이제 어느 적대 세력이 오더라도 건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하게 내비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르티야와 함께할, 혹은 산하에 들어올 여러 세력들을 결집시킬 이정표가 된다는 것.’

비록 이미 과거에 무너진 헤븐윙이지만, 그가 탑에 끼친 영향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숨기고만 있을 뿐이지, 여전히 헤븐윙을 그리는 추종자들은 적지 않은 편이었고. 아르티야와 좋은 관계를 맺었던 세력들도 많았다.

그들이 모두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부만 끌어들인다 하더라도 아르티야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이다.

또한, 새롭게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곳들도 있을 수 있었으니.

‘오라버니는 동생분과 달리, 아르티야를 그저 그런 클랜으로만 끝내실 생각이 절대 없는 거야. 아주 크게 만드실 테지. 제국이라도 만드시려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비대해진 세력은 언젠가 탑을 완전히 집어삼킬 테고, 마지막에는 직접 제 손으로 부숴 버릴 테지.

에도라가 아는 한. 연우는 탑을 깨뜨리는 게 목적이었지, 단순히 권력 놀이나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생이 남긴 소중한 유산인 ‘아르티야’도 도구처럼 마구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에도라는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역시나 정체를 숨기고 인파 사이로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연우의 뒤를 따랐다.

목적지는 외뿔부족의 마을.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으려나.’

못난 오빠, 판트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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