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클랜 창설 (3)
콰아앙-
쾅, 콰앙-
들리는 것이라고는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폭발 소리밖에 없었다.
무왕은 정말이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발로 땅을 디딜 때마다 격진이 일어나고,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태풍이 휘몰아쳤다.
젊은 시절, 무왕이라는 별칭을 얻기 전에는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고 불렸다더니.
연우는 왜 그런 별칭이 따라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는 충격파가 이렇게 번번이 이어지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물며 당시보다 훨씬 강해졌을 지금은 더더욱.
하늘 날개를 최대한 크게 일으키면서 어떻게든 비그리드로 무 왕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막는 게 전부였다.
용신안으로는 무왕의 움직임을 쫓는 데만 급급할 뿐. 도저히 투로를 예측하거나 할 겨를이 없었다. 반격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버티는 게 전부인 싸움인 것이다.
문제는.
“좀 더 힘 내봐.”
무왕은 이마저도 너무 여유롭게 보인다는 점.
그는 아직 가진 힘의 일부밖에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네가 가진 건 거기서 그칠 게 아닌데 말이지.”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제 좀 쓸 만해진다 싶더니. 어째 이것밖에 되질 않는 건지. 아직도 모자라, 아주. 그릇을 갖추고도 왜 그것밖에 못 하는 거냐?
올포원과 마주쳤을 때. 위기에 빠졌을 당시 마성이 대가리를 치켜들면서 지껄였던 말이었다.
녀석은 항상 묻곤 했었다.
어째서 그것밖에 안 되냐고. 네가 가진 게 얼마인데 이 정도밖에 부리지 못하느냐고.
사실 따지고 보면, 마성이 했던 말이 옳았다.
연우는 탑이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발현됐을 마신룡체라는 특이한 특성을 갖고 있었고, 여기다 영혼석도 두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비에라 듄이 단 한 개의 영혼석만으로도 대지모신을 감염시켰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아직 연우가 딛고 있는 위치는 너무나 낮았다.
그래서 마성은 그와 하나로 섞이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었고.
당시에 마성이 움직였던 연우는 올포원과도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하물며 영혼석을 하나 더 흡수하며 죄악석을 만든 지금이라면.
단순히 ‘1+1=2’의 효과가 나지는 않더라도, 더 많은 가능성을 품게 된 것이다.
무왕은 바로 이 점을 꿰뚫어 보았고, 왜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효율이야말로.
무왕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너의 문제는 딱 하나다.”
무왕은 익살맞게 웃고 있지만, 두 눈은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정신적 경지가 육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
“내가 말했던 재능은 어떻게든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 낸 것 같다만. 그리고 갖가지 권능과 스킬로 효율을 최대한 뽑아 육체를 거기에 맞추려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이 멀어.”
어쩌면 무왕의 말마따나, 연우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여태껏 갖가지 스킬과 권능을 조합해 부족분을 메우려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깨달음이라는 것.
영혼을 키운다는 것.
20층, 고행의 산에서 개인적으로 수양을 해 본 것 외에는. 이와 관련해서 따로 뭔가를 추구해 보려 노력한 적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구만.”
“무엇입니까?”
순간, 무왕의 입꼬리가 씩 하고 말려 올라갔다.
아주 장난스럽게.
“어떻게든 강제로 끄집어 올려야지.”
“……!”
부족한 제자를 이끌어 주는 것. 그게 스승이 할 일이 아니냐.
무왕은 그렇게 말하려는 듯 보였지만, 연우는 어째 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게 너무 재미있어 죽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연우가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는 순간.
쾅!
무왕이 대지를 강하게 찍었다. 하늘과 땅이 크게 요동쳤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는 그만이 유일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뱀이 허물을 벗고 일어서듯. 제자리에 있던 무왕에게서 여덟 명의 무왕이 생겨나 사방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원영신. 용의 미궁에서 왈츠가 보인 적 있었던 분신의 상위 기예가 펼쳐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왈츠의 것보다 훨씬 완벽하고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츠츠츠-
〈연대구품〉. 아홉 개의 품세를 동시에 풀어낸다는 기예. 각각의 무왕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삽시간에 연우를 에워쌌다.
“하나만 해도.”
“번거로워 죽겠는데.”
“아홉이라니. 죽을 맛이지?”
“그러라고 한 거야.”
무왕의 원영신들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연우를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서로 다른 기예를 맘껏 풀어냈다.
무왕이 자랑하는 팔극권의 팔대비기가 잇달아 펼쳐진 것이다.
퍼버벙-
콰르르릉!
면전으로 날아오던 주먹은 가까스로 옆으로 돌면서 피하고, 허리를 갈라 오던 손날은 간신히 비그리드로 쳐 낼 수 있었다.
쩌엉!
비그리드가 부서질 것처럼 울렸다. 손목이 금세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연우는 싱긋 웃고 있는 무왕의 얼굴을 본 순간, 이것이 그가 노리고 있던 것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후방에서, 다른 두 무왕이 서로 다른 기예를 펼쳐온 것이다.
콰쾅, 쾅-
파밧!
하나는 〈파공〉에 〈나한십팔장〉를 섞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관악〉에 〈호왕지흔〉을 합친 공격이었다.
열여덟 개나 되는 손그림자가 머리를 덮어 오고, 허리춤에서는 공간을 찢는 호랑이의 발톱이 날아들었다.
연우는 불의 파도를 이용, 자신을 붙들고 있는 무왕을 강제로 떨쳐 내는 것과 동시에 몸을 반대로 빠르게 돌리면서 불벼락을 뿌렸다.
[제천류-화염륜]
[불의 파도]
콰르릉!
하늘을 찢으면서 나타난 불벼락은 단숨에 손그림자를 찢어 놓았다.
그사이, 연우는 날개를 접고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바람길-광풍]
[제천류-신목령]
[팔괘검-비기 사일(射日)]
〈바람길〉을 이용해 광풍을 한꺼 번에 터뜨리면서 공격력을 최대한으로 증폭, 〈제천류〉를 통해 강화된 힘을 검으로 집약시키면서 비그리드를 앞으로 찔러 넣었다.
서로 다른 스킬과 기예, 그리고 무공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무왕의 손끝에 걸렸다.
챙-
무기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쇠를 거세게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호왕지흔을 펼치던 무왕은 제법이라는 듯,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법을 밟아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세 번에 걸쳐 주먹을 내뻗었다.
〈궤월〉을 이용한 〈삼한나락〉. 역시나 팔대 비기를 다른 무공과 접목시켜 효과를 증대한 무왕 특유의 기예였고, 주먹 하나하나가 연우쯤은 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압력을 싣고 있었다.
일격을 내뻗을 때마다 공간이 휘어지면서 소닉붐과 함께 제트 기류까지 남을 정도였다.
쾅-
연우는 가까스로 비그리드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면서 첫 공격을 무사히 막아 냈지만.
우드득-
순간 방금 전의 충격으로 손목 뼈가 부러져 뼛조각이 근육을 찢고 나오고, 어깨가 위쪽으로 탈골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 한 번 부딪쳤는데도 이 정도라고? 마신룡체가 가지는 신체적 내구도를 생각해 본다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비그리드도 금세 부러질 것처럼 휘어졌었다.
몇 번만 더 부딪쳐도 육체가 그대로 박살이 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왕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쾅, 콰앙-
아직도 두 번의 연격(連擊)이 남아 있었다.
한 차례는 가슴팍, 다른 한 차례는 우측 어깨였다.
연우는 재빨리 날개로 홰를 치면서 몸을 뒤로 내빼려 했지만. 가슴팍으로 날아든 일격은 비그리드를 단번에 위로 튕겨 올렸다.
그동안 발동된 666개의 죽음의 권능들은 무왕의 발목조차 잡아 내지 못했다.
[네르갈이 자신의 권능이 너무 쉽게 파훼된 것에 크게 경악합니다.]
[아이쉬마-다르바가 신중한 눈길로 상황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헬이 노심초사한 얼굴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습니다.]
……
[모든 죽음의 신들이 고개를 내젓습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들이 짜증과 분노가 섞인 시선으로 당신의 상대를 노려봅니다.]
[비마질다라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당신의 싸움을 지켜봅니다.]
[케르눈노스가 눈을 가늘게 좁힙니다.]
주인을 잃은 비그리드가 허공에서 아무렇게나 뱅그르르 도는 동안, 마지막 일격은 그대로 벼락처럼 연우의 어깨에 꽂혔다. 그리고 그대로 팔뚝을 뒤로 꺾어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푸우우-
연우의 오른쪽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대련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살벌한 공격. 연우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지만.
“흔히 검을 두고 신외지물이라고 하지. 몸이 아닌 그냥 물건이라고. 헛소리야. 네 손에 들렸으면 네 손이지, 뭐야? 하지만 버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어진 무왕의 말에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팔이 잘려도, 목까지 내줄래? 아니잖아. 잘 싸워야지. 눈으로 좇아라. 어떻게든.”
사나운 무왕의 눈빛이 연우의 심장에 단단히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도구를 몸처럼 쓸 생각 말고, 몸을 도구처럼 써라.”
도구처럼.
그 말이 연우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뭔가 알 듯 말 듯한, 간질간질한 느낌이 일었다.
평상시 자신이 했던 생각과 비슷했다. 스킬과 권능, 무공. 전부 무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여태껏 그렇게 사용해 왔고, 그것을 조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무위에 자부심이 대단한 이들로부터 경멸을 받기도 했지만.
연우는 그럴 때마다 눈썹 한 번 꿈틀대지 않았다. 그것이 옳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왕은 그조차도 넘어, 육체도 도구처럼 사용하라고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목적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었다.
목적이 뭘까.
단순하지 않은가.
싸움에서의 목적이라면 단지 하나.
‘적의 명줄.’
휘리릭-
연우는 곧장 몸을 돌려 무왕의 뒤를 밟았다.
도구처럼. 그 말을 다시 되뇌면서 왼팔을 앞으로 내뻗어 제천류의 〈뇌벽세〉를 터뜨렸다.
드래곤 하트와 현자의 돌이 미친 듯이 마력을 쥐어짰다.
우우웅-
화아아악!
육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실핏줄 사이사이로 검고 붉은 비늘이 돋아났다.
잔뜩 성이 난 것처럼.
[5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