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44화 (444/862)

19화. 클랜 창설 (8)

[아가레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하계를 내려다봅니다.]

[아가레스가 거친 분노를 토해 냅니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이런 미친 놈들이…… 감히, 감히 내 것에 손을 대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딴 짓을 저질러?]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나는 여태 전혀 몰랐던 일이다. 나라고 해서 모든 하계를 매번 관찰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것은 용서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 절대, 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아가레스의 격노가 천계에 공표됩니다.]

[아가레스의 강한 요청에 따라, ‘르 인페르날’이 이번 안건에 대한 표결에 들어갑니다.]

[대다수의 악마들이 하계에 개입하는 안건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힙니다.]

[아가레스의 분노 섞인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합니다.]

[동부의 대공이 의지를 드러냅니다.]

[하위 악마들이 깊은 공포에 질립니다.]

[대다수의 악마들이 생각을 바꿨습니다.]

[표결이 재진행됩니다.]

[1표를 제외한 모든 표가 찬성표로 변하였습니다.]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클랜 ‘엘로힘’에 적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아가레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이번 사안이 끝나지 않는 한, 나와 우리들의 축복은 그대를 따라다닐 것이다.]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로부터 축복과 가호가 더해졌습니다!]

[‘아르티야’가 ‘엘로힘’을 적대하는 동안, 이 축복과 가호는 사라지지 않고 당신을 계속 따라다닐 것입니다.]

동생의 호문클루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아가레스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상당한 힘을 소실하면서, 한동안 르 인페르날 내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동부의 대공이라는 위계를 잃지 않을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그가 진심으로 분노를 드러내자, 르 인페르날이 통째로 의견을 바꾸어 그의 의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부했던 악마들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참여했을 정도였다.

물론, ‘인과율’이라 명명된 시스템의 제제 때문에 르 인페르날이 간섭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 자그마한 차이가 아귀다툼에서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법이었다.

엘로힘으로서는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

연우는 그렇게 쏟아지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뒤로한 채, 주먹을 꽉 쥐었다.

‘회중시계를 들고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옆에는 불에 타 버린 호문클루스들의 잔해가 가득했다.

녀석들은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듯, 기능의 거의 정지한 상태에서도 꿈틀대는 중이었다. 명령어에만 충실한 전투 인형이란 뜻이었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더 세게 이를 악물고, 발에 힘을 주어 호문클루스를 발로 밟았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은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동생의 모습을 한 호문클루스와 전투를 치르는 것은 처음에나 흠칫거렸을 뿐이지, 그 뒤는 별반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동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놈들은 단순히 동생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클론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진짜’ 동생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베이럭을 탈출시키기 위해 남은 호문클루스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기는 직접 생포해서 브라함에게 분석을 맡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한편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분노는 도저히 그치질 않았다.

‘베이럭, 엘로힘…… 너희들은 결국 끝까지 변함이 없구나.’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안광이 분노로 강렬하게 빛났다.

‘오냐. 그렇게 나선다면 나도 똑같이 나설 수밖에.’

* * *

연우는 크로이츠나 하이디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곧장 라퓨타로 올랐다.

멤버들은 물론, 환영기사단과 숲의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라퓨타에서부터 지상으로 이어지는 환영 계단이 내려온 덕분이었다.

그렇게 되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건, 철의 왕좌와 끝없는 종말을 비롯한 클랜들이었다.

헤븐윙과 ‘대등한’ 자리에서 협상을 벌이며 자신들의 지분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초장부터 엘로힘과 마군이 나타나면서 계획이 단단히 어그러지고 말았으니.

더구나 방금 전에 그들이 보았던 연우의 무위는 실로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과거의 모습을 똑같이 한 클론을 여러 기 상대하면서도 몰아붙이던 모습은.

그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던 헤븐윙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반증이기도 했으니.

거기다 탑 외 지역을 거의 불사르다시피 하면서 폭발하던 불길은 여전히 그들의 눈가에 아른거리는 중이었다.

이미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 중에 여전히 그와 대등한 협상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마당에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그들에게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 발을 묶고 있었다. 이대로 환영기사단과 숲의 아이들을 따라서는 무조건적인 굴종을 하겠다는 의사 표시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는 이리저리 부림만 당할 뿐, 끝내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오를 것이오.”

여태 베이럭이 남긴 독을 치료하느라 고생하던 하나탄이 이를 악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식사하기 직전까지 갔던 그는 연우가 건넨 해독제-정확하게는 브라함이 정제해서 만든-를 마시고 겨우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기력은 상당수 소실해서 지쳐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렇기에 그의 두 눈은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났다.

이미 한 차례 사경을 헤맨 탓에 속에서는 원한과 분노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뒤를 따르는 철의 왕좌 소속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들이 용병 출신이고 이익을 좇는 집단이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명예와 자긍심 하나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게 베이럭과 엘로힘에 의해 짓밟혔으니.

“은인에 대한 보은을 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이 수모를 전부 갚지 않는 이상 나와 철의 왕좌는 절대 엘로힘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소. 가자.”

하나탄은 씹어 삼키듯이 그렇게 외치면서 클랜원들과 함께 환영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래…… 까짓것 해 봅시다.”

“애당초 지난날에 대한 속죄를 위해 온 것이니. 이번만큼은 돌아 서선 안 되겠지. 응당 사람이라면.”

과거, 헤븐윙과 아르티야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곳들은.

하나탄이 던진 ‘보은’이라는 단어에 이를 악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헤븐윙이 이제 지난번처럼 무너지지 않겠다는 희망을 보기도 한 까닭에, 그들의 발걸음은 비교적 가벼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환영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다른 클랜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 뒤를 따랐다. 상당수는 두 눈에 열의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연우를 쫓아 탑을 오르면 커다란 무언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추종자들도 더러 섞였다.

그리고.

“……많이도 오는군.”

연우는 관제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라퓨타를 탑 외 지역에 띄우고, 찾아오는 이들을 적아로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 그리고 아군으로 들어온 이들을 강제로 포섭하는 것이 계획의 주요 골자였으니, 이 의도에는 정확하게 들어맞은 셈이었지만.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만들어진 클론은 아니야. 짐작했다시피 클론을 기본 바탕으로 한 호문클루스지.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진 전투 인형이라고 해야 할까.』

예기치 못한 변수 때문에 속은 여전히 단단히 끓고 있는 중이었다.

브라함의 보고가 올라온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주인으로 지정된 대상자의 명령어에 충실하도록 프로세스가 짜여 있어. 알고리즘을 구성하는 암호 체계가 너무 복잡해서 더 자세히 분석을 하려면 상당한 시일을 필요로 할 것 같네. 대체 이런 구성 요식은 어디서 갖고 온 건지.』

“해킹은 가능할 것 같습니까?”

『일단은 시도해 보겠네.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수식이 너무 복잡해서 말일세. 이건 기존에 탑 내에서 쓰이던 체계가 절대 아니야. 근본부터가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별개의 양식이라. 엘로힘도 아마 이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걸세. 수준도 아주 높은 편이고. 마법, 술법, 사법, 전부를 능가하는 바가 있어. 완전히 해독하려면…… 그만한 신능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이네만.』

브라함은 뒷말을 생략했다. 하지만 연우는 쉽게 그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격이 모자라다.

이미 도무신으로서의 힘을 되찾은 것은 물론, 그것을 넘은 경지를 개척 중인 한령과 다르게.

브라함은 여전히 원래 그가 부릴 수 있었던 힘의 일 할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때 전지(全知)와 전능(全能)을 지녔다고 평가될 정도로, 신의 사회 ‘데바’에서 최고신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그의 온전한 능력이라면 호문클루스의 정신 방어 체계를 쉽게 뚫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지식을 유실하고, 권능을 상실해 버린 상태이기에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우로서는 브라함도 질문을 던질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대체 베이럭이 어떻게 소지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지만. 그래도 당장 그것을 알아낼 겨를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한번 해 봄…….』

「주인님. 드릴. 말. 씀이. 있습니. 다.」

그때, 브라함과의 통신에 부가 불쑥 끼어들었다.

언제나 말없이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던 부가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연우와 브라함의 의식도 그쪽으로 향했다.

「지금. 이 체계. 는. ‘은가이의 숲’. 에서. 사용되는. 체계. 와. 흡사. 한 것. 같습니. 다.」

“은가이의 숲?”

『뭣이? 그게 사실인가?』

연우는 처음 듣는 지명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브라함은 무엇 때문인지 크게 놀라고 있었다.

“브라함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어찌 모르겠나. 그곳은…….』

브라함은 허탈한 듯 잠시간 말을 잇지 못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몇 개 관측되지 않은, 차원 밖의 차원에 존재하는…… 타계(他界)의 한 곳인 것을.』

순간, 연우도 정신이 번뜩 뜨이는 기분이었다.

브라함을 비롯한 98층의 신과 악마들이 ‘타계’라고 지칭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외신.

타계의 신들이 관장하는 영역.

『그중에서도 은가이의 숲은 기어 다니는 혼돈이 관장하는 곳이기도 하지. 안 그런가?』

「그렇. 습니다.」

‘또 기어 다니는 혼돈인가?’

부-파우스트와 칼라투스에서부터 베이럭까지. 기어 다니는 혼돈의 손길은 여기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 습니다. 이. 체계는. 에메랄드 타블렛. 속의. 내용과. 구조. 가. 흡사. 합니다.」

『자네는 전생에 메피스토펠레스를 중개자 삼아 기어 다니는 혼돈과 거래를 한 적이 있으니…….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허허! 타계의 신은 거의 탑 내로 손길을 뻗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셈인가?』

브라함은 허탈하게 중얼거리다,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연우에게 말했다.

『우선 부가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있으니 시도는 해 봄세. 어떻게든 해킹을 성공해 낸다면, 정우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는 자네가 하는 것을. 그런 말은 내가 해야겠지.』

브라함은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연우는 검지와 엄지로 피로해진 두 눈두덩이를 가볍게 문질렀다. 하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베이럭이 전생의 부가 그랬던 것처럼 기어 다니는 혼돈과 모종의 거래를 맺었고, 여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호문클루스를 만든 것이라면 모든 게 납득이 갔다.

28층에 연구소를 만든 것도. 망량독이라는 신기한 독이 만들어진 것도. 브라함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마법 체계를 사용하는 것도.

‘역시 이 일이 끝나는 대로 뒤를 밟아 봐야 하나?’

부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기어 다니는 혼돈의 행적을 쫓을 생각이긴 했었다지만.

이렇게까지 가깝게 밀접해 있다면, 도저히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그런 예감이 들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탑 내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뭔가가, 자신이 하려는 일과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그러다. 연우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몸을 누이던 그때.

『오라버니.』

또 다른 윈도우 스크린이 열리면서 에도라가 나타났다.

이제 나서야 할 때라는 뜻.

홀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방치를 해 뒀다지만, 계속 그대로 두면 반발만 심해질 수 있었다.

연우는 팔걸이를 밀치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이럭이 기어 다니는 혼돈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그런 건 별반 중요하지 않았다.

녀석이 어떤 힘을 지녔다 한들,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족속이었으니.

차라리 엘로힘, 마군과 손을 잡은 지금이라면 같이 일망타진할 수 있으니 한결 편했다.

그리고 서로가 한 번씩 일 합을 주고받았으니.

‘이번엔 다시 내가 줄 차례겠지.’

그 생각과 함께.

“포탈 오픈.”

연우는 발밑에 깔린 포탈을 따라, 모두가 모여 있을 홀로 이동했다.

* * *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홀에는 여러 클랜과 파티가 모여 있었다.

아르티야의 멤버들과 환영기사단, 숲의 아이들은 비교적 평온한 데 비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 이곳 홀로 넘어오기까지, 여러 성채를 지나면서 압도적인 규모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용왕이 남긴 터전이니만큼, 아무리 뛰어난 랭커라고 해도 경악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라퓨타였다.

게다가 이곳은 연우의 영향권.

그들은 라퓨타에 입성했을 때부터 이미 알게 모르게 연우에 대한 굴종심도 새겨지고 있는 상태였다. 라퓨타에서 느낀 경악과 긴장이 조금씩 연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홀의 중앙, 일흔일곱 개의 계단 위에 마련된 단상에서 포탈이 열리고 연우가 나타났을 때.

웅성대던 소리가 일제히 멈추고,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적막이 내려앉은 순간.

연우가 사나운 목소리로 그 적막을 깼다.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홀을 따라 메아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두말 않겠다. 나는 오늘, 당장 지금부터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

“……!”

방금 전에 전투를 벌이긴 했다지만, 지금 바로라고?

모두가 충격에 젖은 얼굴이 되었다. 아르티야의 멤버들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지 놀란 눈으로 연우를 보았지만.

연우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 그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활을 건 전쟁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다. 그러니 지금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두려운 자는 당장 떠나라. 이후에는 절대복종 외에는 죽음으로 다스릴 것이니.”

“…….”

“…….”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당신이 어느 길을 걷든지, 그 뒤를 따라 걷겠습니다. 그림자의 왕이시여.”

하나탄이 먼저 앞으로 나서서 검을 뽑아 바닥에다 꽂으며 부복했다. 철의 왕좌 소속 클랜원들도 그들의 수장을 따라 일제히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림자의 왕을 따르겠나이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지난날처럼, 과거처럼 다시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군주시여.”

헤븐윙과 인연이 있던 이들이 차례로 머리를 조아리고, 뒤따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일제히 부복하면서 소리를 높였다.

“그림자의 왕!”

“그림자의 왕……!”

“그림자의 왕! 그림자의 왕!”

하나탄이 내뱉었던 ‘그림자의 왕’은 어느새 구호가 되어 라퓨타를 따라 울려 퍼졌다.

그림자의 왕. 혹은 그림자 군주.

통칭 ‘영왕(影王)’이라 불리게 되는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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