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58화 (458/862)

8화. 대전쟁 (8)

-대장, 당신 때문에 누이는……!

-장웨이. 그딴 식으로 날 부르지 마라. 너에겐 쎄이나를 애도할 자격 따위 없으니까.

-닥쳐!

-쎄이나가 그렇게 된 건, 순전히 너 때문이었다. 설마 아니라고 부정할 셈이냐?

그 날은 한창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모두가 축복에 젖었어야 할 2017년도의 크리스마스는 연우에게 있어 세상에 두 번 다시 없을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고.

기나긴 사지를 헤맨 끝에 겨우 도착한 본부에서는 그보다 더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장웨이. 그 이름은 연우로서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 증오스러운 이름이었으니까.

연우가 사랑했던 연인의 동생이었으며, 한때는 등을 나란히 했던 동료였던 자. 하지만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핑계로 전쟁터 한가운데에 그를 던져 둔 원흉이었기에, 연우가 받았던 배신감은 너무 켰다.

그래서 연우는 복귀를 하자마자 녀석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방아쇠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될 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회오리쳤다. 그만큼 그는 악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총구를 거둬들이긴 했지만, 그때부터 모든 게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원한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도리어 연우는 더 큰 복수를 하고자 했다. 자신이 겪었던 악몽을,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지옥을 저들이 겪게끔 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연우의 복수는 집요했다. 파국의 시작인 셈이었다. 그날의 일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결국 비명횡사하거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되고 말았으니.

‘그런데…… 살아 있다고? 그것도 탑 속에서?’

연우가 알기로 장웨이는 죽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실종되었다. 자신이 버려진 것처럼,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 오지에 홀로 떨어져야만 했으니까. 식수도 식량도 없는 곳에서 한창 배회를 하다가, 모래바람에 휩쓸려 아무도 찾지 않는 사구에 묻혀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다.

이 탄피는 그때 살려 달라며 손을 뻗치던 녀석에게, 자신이 던져 주었던 것이었다.

2017년의 크리스마스. 이 날을 절대 잊지 말자며, 반드시 되돌아가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갖고 있던 탄피에 새겼던 칼자국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판트의 손을 통해 되돌아온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웨이가 궁무신이라고 했지?’

판트는 녀석이 궁무신이라고 했다. 청화도의 무신이었으며, 일족을 해한 대가로 외뿔부족이 오랫동안 쫓았던 자. 그러다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뒤를 쫓을 수 없게 되었는데, 갑자기 엘로힘의 외우주에서 마주쳐서 놀랐다 했던가.

정체도 숨기고 있었지만, 그 기세를 잊을 수 없어 곧바로 충돌했단다. 그리고 여러 번의 접전 끝에 판트는 오른팔을, 장웨이는 왼 눈을 잃고 말았다.

다만, 판트는 공허 속에 잠기고 말았던 자신과 다르게, 장웨이는 무사히 탈출했을 거라고 말했다. 워낙에 발이 빨라 따라잡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보아하니 꽤 형님에 대한 원한이 강해 보이던데. 아마 그놈은 하이에나처럼 형님의 주변을 계속 맴돌 거요. 그리고 더 은밀하고, 집요해지겠지. 잘 때도 뒤통수 조심하셔야겠수…… 아악!”

판트는 부상을 입고도 뭐가 그리 재미난지 껄껄 웃어 댔다.

연우는 그런 녀석의 뒤통수를 빡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한 대 후려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탄피 목걸이를 바닥에 버리려다, 도중에 생각을 바꾸고 코트 안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장웨이가 궁무신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있는 게 내심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어차피 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슬아슬한 삶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위험 요소가 한 가지 더 추가된다 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하아.

입가를 따라 입김이 번졌다.

공기가, 차가웠다.

그날처럼.

* * *

칸과 도일이 되돌아온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이미 외뿔부족의 마을로 돌아와 있던 연우는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어째 맞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참…….”

판트도 크게 다치더니 두 사람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최정예라고 뽑은 멤버들이 전부 이런 꼬락서니이니 영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의 한숨 속에는 안도가 섞여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피곤해 보이기만 할 뿐,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 보였으니까.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우?”

판트는 병석에 누운 채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의 오른팔에는 부목과 함께 커다란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그동안 연우는 브라함과 함께 판트의 오른팔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떨어져 나간 팔을 갖고 왔다면, 접합 수술과 치료 마법을 병행해서 다시 재생시킬 방법을 찾았겠네만. 이건 통째로 떨어져 나간 데다가, 공허가 감염되어서 쉽지 않겠어.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새로 만들어서 붙여야지.

-할 수 있겠습니까?

-자네, 대체 날 뭘로 보고 있는 건가. 내 영혼이 앉아 있는 몸뚱이도 만들었고, 자네의 현자의 돌도 만들었었는데. 설마 의수(義手)라고 만들지 못할까?

브라함은 자신의 몸뚱이를 두들기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든 의수가 진짜 팔일 수는 없지. 모든 게 옛날 같지 않을 게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으응? 왜 그렇게 생각하나?

-이렇게 운을 띄우신 걸 보면 압니다. 무슨 수가 있으니 말을 하셨겠죠.

-에잉. 재미없게시리. 이런 건 최대한 질질 끌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데. 그걸 그새 못 참고 먼저 선수를 치나?

-베이럭이군요.

-이제 완전히 앞뒤를 다 잘라 버리는구만!

연우는 금세 브라함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베이럭은 기어 다니는 혼돈이 전수해 준 에메랄드 타블렛을 바탕으로, 엘로힘의 고대종은 물론, 동생의 클론까지 양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최소한 호문클루스와 관련된 지식에 있어서는 그가 브라함을 능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팔이라고 만들지 못할까.

그래서 연우는 즉각 사왕좌의 권능인 연옥로를 발동, 베이럭의 영혼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처음 베이럭은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만만해했지만.

-제발! 제에바알! 살려 줘! 아아악! 아아아악!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

영혼을 비트는 고통, 불길 속에 갇혀 계속 타올라야만 하는 고통 등이 녀석을 미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연우가 녀석에 대해 가진 원한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죽어서도 죽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때문에 베이럭은 계속된 고통 속에 반쯤 미쳐 가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정보는 물론, 오래전에 잊었던 기억도 샅샅이 긁어 토해 내야만 했고.

연우는 그것을 바탕으로 에메랄드 타블렛을 새롭게 조립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사실은, 놈에게서 얻어 낸 것이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얻었던 에메랄드 타블렛과는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는 전혀 다른 파트라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연우는 브라함과 머리를 맞대었다. 판트의 DNA를 비롯한 유전 및 형질 정보를 채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팔을 만들어 신경망과 혈관 등을 잇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어제까지의 일.

오른팔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해 새롭게 무공을 체득할 방법을 강구하던 판트로서는 놀라울 일이었다.

다행히 항체 조직 검사도 통과되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차였는데.

괜히 연우가 옆에서 면박을 주니, 조금 심통이 들 수밖에.

그리고.

칸은 그런 판트를 보면서 묘한 기분에 잠겼다.

‘청람가의 아들이 저런 모습이라.’

맨 처음 자신이 도일과 함께 튜토리얼에 참여했을 시절. 두 사람은 저만치 앞에서 독주하는 판트와 에도라 남매에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아 맨바닥을 굴러다니면서 검을 수련해야만 했던 자신들과 다르게.

저들 남매는 탑 내 최강 일족의, 그것도 최고 기대주로서 온갖 영약을 밥 먹듯이 먹고 상급 무공을 익히면서 강해졌으니까.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 남매를 이겨 보고 싶었다. 다른 이들의 지원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만큼 강해졌노라고 세상에, 아니,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들에게 당당히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그런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끝내 넘지 못했던 벽. 그리고 낙오해야만 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연우가 튜토리얼 랭킹을 역전하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 남매를 뛰어 넘고 싶다는 열망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라면.

“뭘 봐?”

판트는 그들을 전혀 기억도 못 한다는 점이었다.

연우가 일행이라고 데려왔으니 그냥 마지못해 받아 준다는 느낌. 칸이 빤히 바라보니, 판트는 영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어디에도 두 사람을 낯익어하는 투는 없었다. 그만큼 저들 남매에게, 자신들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단 뜻이겠지.

“음. 야, 너 좀 강해 보이는데.”

그래도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제법 눈에 차는 걸까. 판트는 뚱한 표정을 풀고, 칸을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만난 맹수처럼 흉포한 눈빛이었다.

“한판 붙어 볼래?”

“…….”

칸이 투기를 줄줄 흘려 대는 판트를 보면서 무슨 대꾸를 해 줘야 할까 싶던 그때.

빠악!

별안간 호박 깨지는 듯한 찰진 소리와 함께 판트의 머리통이 앞쪽으로 크게 꺾였다. 연우가 판트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친 것이다.

“아아악!”

판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뒤통수를 왼손으로 감싸면서 연우를 홱 노려봤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한쪽 눈망울에 눈물까지 고일 정도였다.

“이게 무슨 짓이우!”

연우는 말없이 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흠칫!

판트는 반사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상체를 움찔 뒤로 물리고 말았다.

“시빗거리 좀 그만 만들어.”

“……누가 들으면 내가 매번 사고나 치고 다니는 줄 알겠…….”

“그럼 아닌가?”

“흐흐! 뭐, 딱히 부정은 못 하겠지만.”

판트가 생글생글 웃었다.

연우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 칸을 돌아봤다.

“마군은?”

칸은 판트 쪽을 슬쩍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통풍대성 때문에 접근도 할 수 없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더군. 축지라도 쓰는 줄 알았어.”

통풍대성. 동주칠마왕 중 다섯째로, 달리 미후왕(彌侯王, 손오공의 미후왕과는 다름)이라 불리는 신격.

바람을 다스리는 그는 칠마왕 중에서 가장 날래고 빠른 발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녀석이 강신해서 칸과 도일의 발목을 묶었다면 따라잡기 힘들었을 테지. 아니, 오히려 그런 존재를 마주치고도 이렇게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두고, 칸은 마군이 자신들과 대립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확하게는 살생(殺生)을 피하려 한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인상이었어.”

“살생을 피한다?”

연우의 눈이 빛났다.

마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천계에서도 골칫거리로 통했던 작자들이 살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동주칠마왕은 천하의 제천대성이 막내로 있을 정도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니던 이들. 칸의 말은 분명 그냥 쉽게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뭔가 이유가 있다.

연우는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고 보니 대주교가 사타왕을 강림시켰을 때에도 이렇다 할 살생을 저지르지 않았었어. 그게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과 연관이 있나……?’

혈국에 이어 엘로힘이 무너졌다는 대사건이 탑을 격동시키고 있는 이때. 연우는 그동안 마군도 같이 정리하기 위해 녀석들의 영역과 근거지로 권속들을 보냈었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이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때문에 탑은 현재 충격에 빠져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연우는 조금 더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하여간. 그런 이유 덕분에 녀석들의 뒤를 쫓아서, 엘로힘에서 뭘 얻으려 했는지를 알 수 있었어.”

“뭐지?”

순간, 칸의 눈동자가 빛났다.

“보도(寶圖).”

“보도? 그건 왜?”

연우가 눈을 크게 떴다.

엘로힘이 소지한 보도라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태극도.

엘로힘은 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들의 호언처럼, 여러 신물들을 다양하게 소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만한 건, 그들의 보관소 중심에 있다는 보도, 바로 태극도(太極圖)였다.

신의 사회, ‘천교’를 다스린다는 세 명의 수장, 삼청(三淸) 중 태상노군이 썼다는 대신 보패.

확실치는 않지만, 그것이 외우주 ‘위대하신 분들의 종소리’의 중심 기둥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천교는 여러 신의 사회에서도 ‘올림포스’나 ‘아스가르드’, ‘데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의 수장인 태상노군이 다뤘다는 대신물, 태극도는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그림 속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전승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소문처럼 그게 실제로도 그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대신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엘로힘은 여태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연우와 아르티야의 침략 속에서도 결국 저들은 끝까지 태극도를 쓰지 않았다. 결국 거짓이거나, 소문이 과장되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마군이 들고 갔다고?

엘로힘과의 동맹 체제를 깨고서 벌인 짓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쉽게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이유는?”

도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알 수 없었어요. 다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엘로힘이 애지중지했던 만큼…….”

“저들의 노림수에도 어떤 큰 효과가 있었을 테지. 알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해 봐야겠다. 수고했어.”

연우는 두 사람을 다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태극도와 관련된 건 당분간 차후로 미뤄 둬야만 할 것 같았다.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이제 탑 내에는 아르티야와 대적할 만한 세력이 몇 남지 않게 되었다. 기껏해야 시의 바다나 다우드 형제단, 그리고 전력을 추스르고 있는 화이트 드래곤이 전부일까?

시의 바다는 한때 올포원의 하강(下降)을 가로막았을 정도로 뛰어난 전력을 지니고 있으나 속세에 모습을 잘 비추지 않는 편이었고, 다우드 형제단은 아르티야와 견줄 만한 크기가 되지 못했다. 화이트 드래곤은 76층에 틀어박혀 내려올 생각을 못 했다.

마군도 마찬가지. 그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으니 더 이상 나서기가 어려울 터. 대주교가 나서지 않고서야 이제 아르티야와 견줄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연우는 당분간 그들과 부딪치지 않고 휴식기를 가질 참이었다.

기존에 혈국과 엘로힘, 마군이 차지하던 영역에 세를 퍼뜨려 아르티야의 입지를 단단히 구축하고, 산하로 편입된 조직들을 재정비하면서 다음 전쟁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연우는 아르티야를 단순히 거대 클랜으로 키우고 그칠 생각이 절대 없었으니까. 더 날카로운 ‘칼’로 벼릴 생각이었다. 언젠가 탑을 부술 수 있을 칼로.

그리고.

칼이 벼려지는 동안, 기어 다니는 혼돈을 상대하면서 얻었던 단서를 추적할 참이었다.

칠흑으로 넘어가는 길.

아카샤의 뱀.

‘튜토리얼로 넘어가야 해.’

하지만 튜토리얼은 어디까지나 탑으로 입장하기를 희망하는 도전자들을 시험하기 위한 관문.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는 접근이 제재되는 편이었다. 특히 랭킹이 높은 랭커일수록 제재의 정도가 더 까다로웠다.

그렇기에. 튜토리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관리국.’

연우는 플레이어와 네이티브 가릴 것 없이, 탑에 거주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치를 떨며 멀리하고자 하는 곳을 떠올리면서.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만약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한 대처 방안도 생각해 둔 참이었다.

「쯧쯧! 여태 그렇게 관리자 놈들 고생시켰으면서, 또? 죄다 갈려 나가게 생겼구만. 관밀레, 관밀레…….」

연우의 생각을 읽은 샤논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어딘지 모르게 웃음을 참는 기가 다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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