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60화 (460/862)

10화. 중앙 관리국 (2)

[이곳은 51층, ‘불타는 화염중 산’의 관입니다.]

[51층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시련: 예부터 ‘불’은 혼탁과 악업을 씻는 매개체로써 숭상되어 왔습니다. 또한, 어떤 신화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불꽃’을 품고 있어 항상 이것을 촛불처럼 조금씩 태우며 살아가며, 눈을 감으면 불꽃도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믿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어떤 곳에서는 무지와 공포를 물리치는 지혜와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불’은 정결(淨潔)과 순백(純白), 그리고 영혼을 상징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그런 불의 정수가 가득 모인 거대한 산이 있습니다.

당신을 비롯해 여태껏 탑을 오르고자 하였던 수많은 이들이 가졌던 구도(求道)에 대한 열렬한 신앙이 한데 모인 이 산은 언제나 사시사철 타오르면서, 수련자들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이 산을 오르세요.

50층까지 오르는 내내 당신은 구도에 대한 건실한 마음 외에 사특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산을 오르면서 그런 미련과 걱정을 홀가분하게 던져 다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정화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도록 하십시오. 그리한다면 여태껏 볼 수 없던 새로운 세계가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덥군.’

연우가 51층에 입장하자마자 느낀 감정은 ‘덥다’였다.

여태껏 불의 속성을 가장 주되게 다루고, 무공도 경지에 올라 한서불침(寒暑不侵, 내공이 극점極點에 다다랐을 때 육체가 더 이상 더위와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경지)을 이뤄 덥다는 느낌을 받아 본 지 오래된 그였지만.

51층이 주는 더위는 일반적인 뜨거움과 궤를 달리했다.

단순히 날씨나 온도 따위 때문에 육체가 더운 게 아니라, 그보다 더 깊숙하게 잠재된 무언가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영혼이 덥다고 해야 할까.

저 멀리, 하늘 위에 우뚝 서서 운무를 가로지르면서 상공을 꿰뚫듯이 서 있는 화염산 때문이었다.

화염산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산과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산은 푸른 수풀 대신에 붉은 불길을 마구잡이로 피우고 있었다. 심지어 산은 지면이 아닌 하늘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작되어 위용이 대단했다.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꼴을 하고 있었고, 뾰족한 꼭대기 부분부터 다시 새로운 산이 놓여 있는 형태였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산이 총 7개.

각각의 산자락이 자랑하는 불길의 색깔도 다 달랐다.

가장 아래에 깔린 산은 붉은색의 불길을, 두 번째 산은 주황색의 불길을, 그다음 산은 노란색을 두르며 차례대로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의 순으로 이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각의 불길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강한 열기를 띠고 있었다.

특히 가장 꼭대기에 있는 보라색 불길은 연우가 자랑하는 검은 불길의 화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듯했다.

층계가 내린 시련은 분명히 저곳에 오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중산(重山)이라 부르는 저 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누구도 쉽게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너무 높은 위치에 있으니 다가가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과 용기를 가져야 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산자락에 발을 디디고 등산을 하는 건 그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가장 밑에 위치한 붉은 산만 하더라도, 가까이 가면 육체가 그대로 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니.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불의 속성력이나 저항력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

중산의 불길은 일반적인 불과는 궤를 전혀 달리한다.

이곳의 불길이 태우는 것은 바로 영혼.

속세에 찌든 때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집과 망념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심한 열기를 느끼게 되는 구조였다.

『주인, 여기 되게 따뜻해!』

간만에 긴 잠에서 깨어난 니케가 즐거워하며 소리쳤다.

중산의 불길은 흔히 성화(聖火)나 신화(神火)라고 불리는 것의 시초라 할 수 있었다. 맨 처음 우주에 오로지 어둠과 혼돈만이 가득할 때, 처음으로 대폭발과 함께 쏟아졌다는 태초의 불길. 달리 ‘시원(始元)의 불’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천 년 전, ‘빛을 가져오는 자’ 등대지기 루시퍼가 망가지게 되었던 원흉이기도 한 것.

물론,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층계에 위치한 중산의 불길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지, 진짜 그 불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산의 불이 전혀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 불길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절대 꺼뜨릴 수 없다. 세상 만물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는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고, 영혼의 본질인 광자(光子)와 영자(靈子)도 시원의 불에서 비롯된바. 당연히 물리적인 법칙에서 한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중산의 불길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정화’하는 특성이 있었다. 영혼을 영락시키는 요소인 혼탁과 악업을 강제로 씻기고, 원초적인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니 야욕이 넘치는 야망가나, 강해지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한 구도자나, 남의 뒤통수를 때리길 좋아하는 악인들은, 이곳을 벗어나기를 아주 어려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비우며 살았던 수도승이라면 또 모를까.

한마디로, 51층의 중산은 플레이어들이 처음 탑에 입성했을 때 가졌던, 순수한 구도자로서의 마음을 되찾게 하는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플레이어들은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길을 새롭게 다잡고, 그에 집중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그 마음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

구도(求道).

신앙(信仰).

지배(支配).

구도는 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간의 틀을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초인(超人)을 이루게 하고.

신앙은 종교에 대한 신실한 마음을 바탕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 모시는 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使徒)의 길을 걷게 하며.

지배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강제로 누르고, 스스로를 위로 올려 군주(君主)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한다.

초인, 사도, 군주. 그들 모두 추구하는 방향은 달라도, 전부 ‘평범’에서 벗어나 ‘비범’으로 향하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그건 종국에는 탈각과 초월을 이루기 위한 장치였다. 아직 그 정도에는 올포원 외에는 아무도 이루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여하튼, 이런 이유로 50층을 지나 랭커의 자질을 획득한 플레이어들은 51층에서의 시련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확고히 하는 편이었다.

구도를 통해 초인이 될 것인가, 신앙을 통해 신과 악마를 따르는 사도가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여러 무리를 따르게 하는 군주가 될 것인가. 미래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51층에 다다르기도 전에 자신의 업을 바탕으로 결정을 이뤄 큰 혼선을 겪진 않지만.

연우는 그들과는 조금 방향이 달랐다.

그는 이미 세 가지의 방향에 전부 한두 발씩을 걸치고 있는 탓이었다.

무공을 수련한다는 것은 ‘나’를 단련한다는 의미이므로, 구도를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으니 초인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고.

하데스로부터 사왕좌를 물려받으면서 신성을 깨우쳤으니, 신앙을 바탕으로 사도의 자질도 갖춘 셈이었다.

그리고 칠흑의 권능을 바탕으로 여러 권속들을 거느리기도 하고 있으니 군주라 할 수도 있는바.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통과할 수 없어. 할 수 있다고 해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겠지.’

연우는 아주 냉정하게 51층이 자신에게 고비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통과를 한다고 해도, 압도적으로 신기록을 갱신하며 올랐던 다른 층계들과 다르게 업적도 크게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워낙에 걷는 길이 다양하고, 언제나 머릿속에 여러 망념들을 담고 있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는 첫 번째 산도 전부 다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방금 전부터 내심 꺼림칙한 것도 있었다.

우우웅-

51층에 입장한 뒤부터, 칠흑왕의 형틀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저곳에 다가가기를 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꽤나 격렬한 거부 현상이었다.

아마도 혼돈과 공허를 상징하는 칠흑의 속성과 시원의 불에서 비롯된 중산은 맞지 않는 것일 테니.

결국 이 형틀을 착용한 상태에서 중산을 오르는 건 불가능한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공법이 안 된다면 편법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하물며 그 편법이 압도적인 것이라면?

‘중산을 무너뜨린다.’

저만한 산자락이 한두 개도 아니고 7개나 붕괴되어 아래로 떨어진다면? 절대 스테이지는 무사하지 못할 테지.

‘그리고 관리국도 난리가 날 테고.’

연우는 중산을 보면서, 눈을 차갑게 치떴다.

그가 바라는 건, 51층의 통과와 함께 관리국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튜토리얼로의 이동권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접촉이 필수였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관리국은 몇 번씩이나 연우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만한 인물이 튜토리얼로 입장했을 경우, 노비스들에 대한 평가에 막대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더구나 튜토리얼의 새로운 회차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관리국은 이미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 찍은 연우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연우도 관리국이 호의적으로 나올 것이라 전혀 기대치 않았기 때문에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이것을 명분으로 51층에다 편법을 쓸 수 있으니 더 좋을 따름이었다.

아마 지금도 상당수가 자신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테지. 일말의 불안감을 품으면서.

연우는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위해 송곳니가 훤히 드러나도록 차갑게 웃어 보이고는.

콰드득-

격을 해방하기 시작했다.

[5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휘휘휘-

용체 각성과 함께 사왕좌의 신성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기파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피부가 뒤집어지면서 용의 비늘이 빳빳하게 일어나고, 날개가 솟아나 공간을 가르고, 꼬리가 돋으면서 지면을 두들겼다.

칠흑의 권능도 조금씩 깨어나면서 오른팔을 따라 쇠사슬이 풀려 나왔다. 검은 아지랑이가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하늘 날개]

여기다 대고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모든 채널링을 개통한 순간. 가뜩이나 강렬하던 기파가 이제는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면서 스테이지를 뒤흔들었다.

쿠쿠쿠쿠!

“무, 뭐야?”

“저, 저, 저거 독식자…… 헤븐윙, 아, 아니 영왕 아냐?”

“저놈이 왜 여기에 있어! 아직도 51층이었어? 미친!”

플레이어들은 뒤늦게 연우를 알아보고 이쪽을 돌아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제는 아홉 왕 중에서도 수위권에 손꼽힌다는 작자가 아직도 51층에서 알짱대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더구나 연우가 쏟아내는 기파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아니,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연우의 오른쪽 날개가 가진 키워드는 ‘투쟁’.

더 많은 사선을 건너면 건널수록, 그리고 거기서 얻는 업이 크면 클수록 키워드가 가지는 힘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하계를 지배하던 혈국과 엘로힘을 무너뜨리고, 올림포스와도 대적하면서 대단한 업을 이루지 않았던가.

여기에 잠깐이나마 기어 다니는 혼돈과도 대치했으니 키워드의 힘이 한껏 증폭된 상태였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진다. 연우는 자신에게 설정된 특성을 절대 잊지 않고, 아주 잘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힘으로 스테이지를 한가득 장악하면서.

“스테이지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들어라.”

연우는 목소리에 한껏 마력을 담아 내뱉었다. 메아리가 스테이지 곳곳으로 퍼졌다.

특히 중산을 오르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거기에 반응했다. 애써 연우의 기운을 무시하던 이들도 허리를 쭈뼛 세우면서 메아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연우의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경고한다. 약 5초 뒤, 난 중산을 부술 것이다. 그 안에 전부 스테이지를 떠나라. 만약 그러지 않을 시에는 피해를 장담하지 못한다.”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

특히 눈치가 빠른 이들은 연우가 말한 ‘스테이지를 벗어나라’는 말뜻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곧 스테이지가 망가진다!

가만히 있다가 거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순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비상 탈출 마법을 발동하거나, 포탈 스크롤을 찢으면서 탈출을 시도했다.

어떻게 항의를 할 새도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한없이 베풀던 헤븐윙 때와 다르게, 영왕은 절대 그런 것 없이 앞뒤를 보지 않고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했으니.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몇이나 휘말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많은 이들이 빠르게 탈출하면서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스테이지 속에서.

『관리국의 이름으로 경고합니다. 영왕, 하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시련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스테이지를 망가뜨리는 것은 관리 조항 41조 12항에 의거하여……!』

하늘을 따라, 포탈이 여러 개 잇달아 열리면서 관리자들이 나타나 연우에게 경고 방송을 날렸지만.

[시차 괴리]

[초감각]

연우는 의도적으로 의식 세계를 최대한 빠르게 가속화하면서, 중산을 비롯한 모든 스테이지를 자신의 인지하에 두기 시작했다.

7개의 중산을 태우는 불길은 물리적인 법칙으로 꺼뜨릴 수 없다. 그것은 메시지창에서도, 플레이어들에게도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에 ‘절대’라는 건 없지.’

시원의 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뿐이지, 진짜 시원의 불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꺼뜨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보다 더 ‘압도적인’ 화력을 선사한다면.

‘이참에 내 한계도 시험해 보고 싶고.’

그는 혈국이나 엘로힘을 상대할 때에도, 올림포스와 겨룰 때에도 전력을 다 사용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한계가 어디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이란, 결국 스스로를 다치게 할지도 모르는 손잡이 없는 칼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손잡이 없는 칼을 마구 다뤄도 괜찮을 장소가 있었다. 여차하면 빠져나갈 자신도 있었다.

과연 ‘전력을 다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상했던 것보다 강할까? 아니면 평소와 큰 차이가 없을까?

그리고 그 힘은. 과연 대신격으로 분류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통할까?

‘지금 시험해 보면 알겠지.’

연우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태껏 써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막연하게 상상으로만 생각해 뒀던 새로운 기술을 써 볼 참이었다.

그만의, 궁극기(窮極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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