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61화 (461/862)

11화. 중앙 관리국 (3)

연우는 왼손으로 마장대검을 꺼내 오른쪽 손목을 크게 했다. 동맥이 끊어지면서 핏물이 위로 크게 튀었다.

[잔독혈]

원래 베이럭의 시그니처 스킬이었던 〈독혈술〉과 비슷하지만 다른 특성을 자랑하던 스킬이 발동되었다.

혈액 내 섭취한 독의 농도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독성도 강해지는 특징을 지녔던 스킬.

처음 얻었을 당시에는 마왕독이나 망자의 독을 섭취하면서 강한 독성을 발휘했고, 이를 영괴들에게 쥐여 주면서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연우는 한동안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정체기를 맞아야만 했다.

사실 그건 명백한 연우의 실수였다.

혈액 내 독성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체질이 독에 완전히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미독(微毒)부터 맹독(猛毒)까지, 독성의 단계에 따라 점진적으로 섭취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잔독혈을 얻었을 때부터, 세간에서 극히 보기 힘든 독이었던 마왕독과 망자의 독을 섭취해 체질을 극독에 맞춰 버렸고.

이후에는 웬만한 독을 아무리 많이 들이켜도, 스킬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생성된 스킬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연우는 한동안 잔독혈을 포기해야만 했다. 영괴에 꾸준히 주입시키면서 녀석들의 속성을 단련시키는 외의 용도로는 크게 쓸 곳이 없었다.

그렇게 폐기 처분 직전까지 갔던 잔독혈이었지만, 베이럭을 만나면서 다시 가치가 급상승하고 말았다.

녀석이 독혈술을 강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독, 〈망량독〉을 만들어 낸 덕분이었다.

망량독은 기존의 독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는 특성을 자랑했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영적인 대상에게도 강한 타격을 입힐 수가 있었다.

이는 30층에서 얻을 수 있는 망자의 독이 가지는 특징이기도 했지만, 독성의 정도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망량독은 그 외에도 세가지 특징을 자랑했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 색이 없고, 맛이 없고, 향이 없었다. 대상자가 어떻게 눈치를 채기도 전에 비밀리에 중독시키고, 나아가 목숨까지 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베이럭이 동생 앞에서 말했던 독중독이라던 ‘무형지독’의 특성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녀석의 또 다른 숙원이기도 했던 무형지독의 베타 버전 같은 것이겠지.’

하지만 베타 버전이라고 해도, 망량독은 동생의 클론이 하늘 날개에 버금가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쾌거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그런 망량독이 연우의 손에 들어왔다. 베이럭의 영혼을 쥐어짜 제조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망량독을 조금씩 복용한 것이 지난 며칠간 그가 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잔독혈은 간만에 섭취한 극독 덕분에 폭발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었고.

나아가 기존에 연우가 습득한 맹독 데이터와 새로이 조합되면서 상위 스킬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연우는 사왕좌의 권능까지 결착시키면서 효과를 최대한으로 증폭시키고자 하였다.

독은 은밀하면서도 위험하다. 그리고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아주 잘 어울릴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기대는.

‘정답이었지.’

[무채독(無彩毒)]

넘버링 ???(측정 중)

숙련도: 1.7% 설명: 스킬 ‘잔독혈’이 체내에 분비 가능한 수십 종에 달하는 독의 성분들을 조합하고, 여기에 사왕좌의 권능이 접목된 결과 탄생한 극독.

무색, 무미, 무취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일반적인 육안과 감각으로는 감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신의 손길처럼 아주 은밀하며, 지정된 대상을 서서히 죽음의 수렁으로 빠뜨리다가 끝내 영혼을 취한다.

하지만 이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신의 손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여 지정된 대상 외에 제 주인에게도 편안한 안식을 주고자 할 수 있으니.

* 베놈 블러드

심장 한편에 설치된 베놈 팩토리에서 분비된 독성은 평상시 혈액 속에 잠재되어 육체를 돌아다닌다. 이때 독성은 약효(藥效)를 띠어 육체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외부로 나가 바깥 공기와 노출되는 순간, 철도 녹이는 강한 산성과 독효를 띠게 된다.

* 스피리츄얼 스파이트

무색, 무미, 무취의 독은 평상시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이때 가능한 제어 정도는 환경 및 시전자의 의념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다만, 시전자의 의지가 약할 시에는 영성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이 스킬은 ‘유니크’입니다. 탑에서도 오로지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타인에게 전수하는 데 성공할 시에 유니크 항목은 사라지고, 대신에 창조자에게 주어진 부가 혜택 옵션이 제공됩니다.

**아직 미완성인 스킬입니다. 하지만 잠재 가치가 높으니 ‘완성’을 이루어 높은 등급 혹은 넘버링을 획득하세요.

〈아트만 시스템〉과 〈하늘 날개〉에 이어서 연우가 세 번째로 얻은 넘버링 판정 유보의 유니크 스킬.

이것은 완성도에 따라서 넘버링을 넘어, 얼마든지 ‘권능’의 영역, 아니, 나아가 ‘신능’ 혹은 ‘신권(神權)’에도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었다는 뜻이었다. 이미 스킬이 가진 가능성만 따진다면, 연우는 베이럭의 경지를 단번에 뛰어넘은 셈이었다.

츠츠츠-

그렇게 외부에 최초로 공개된 무채독에 따라, 허공에 뿌려졌던 혈액들은 일제히 산화하여 새하얀 아지랑이의 형태를 띠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연기로 보일 테지만.

이것은 분명 닿는 것만으로도 강철을 두부처럼 녹이고, 신격까지 중독시킬 수 있는 흉흉한 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연우조차도 다루기 위해서는 크게 긴장해야 할 정도로 위험했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강한 힘을 불어 넣었다.

[제1천의 영]

[의념 통천]

[속성 부여 - 화(火)]

끼아아-

소울 컬렉션에 보유하고 있던 망령들이 일제히 귀곡성을 내뱉으면서 흑괘로 변환, 무채독에 원념과 저주를 덧씌워 강화시키고.

하얀 아지랑이 속으로 의념을 밀어 넣어 통제를 시도하는 한편, 속성까지 부여하면서 힘을 최대로 증폭시켰다.

제천류의 〈화염륜〉과 〈불의 파도〉, 〈성화〉, 〈지옥겁화〉 등이 접목되니 아지랑이는 금세 검은 빛깔을 띠면서 타오를 듯이 확 번지고 말았다.

저주가 뒤섞인 검은 독염(毒省). 이미 이 자체로도 무시무시한 흉기였다.

‘역시…… 힘들어.’

화력이 얼마나 거센지, 제어를 하고 있는 연우도 주춤거릴 정도였다.

아니, 이건 애당초 제어가 불가능했다.

가뜩이나 시전자를 잡아먹을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천만한 독이, 화염 속성까지 부여받으면서 날뛰기 시작한다면 그 폭발적인 화력은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초월자들 중에서도 불과 관련된 이들이 와야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마저도 장담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제어를 포기하고 풀어놓기만 해도, 연우가 있는 대지의 태반이 날아갈 테지. 어쩌면 중산의 밑동까지 휩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불길의 위험성은 거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폭발 이후에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간 여러 불씨가 연쇄 폭발을 낼 것이고. 거기에 담긴 저주 섞인 무채독도 빠르게 공기 중에 퍼져 나갈 테니, 스테이지는 단 몇 초 사이에 망가지다 못해 아예 생명이 절대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원래 평소에는 이것을 오러 속에 가두어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판국이라,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의념과 연결된 주먹을 꽉 쥐었다.

‘자전.’

위이이잉-

금세 사방팔방으로 번져 나갈 것 같던 불길이, 갑자기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중심 축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어가 불가능하다면 일단 한 곳에 단단히 응축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유용한 힘이 바로 회전력이었다. 그래서 제1천의 영과 의념 통천을 활용, 강제로 나선 형태로 비틀면서 구심력을 형성해 낸 것이다.

의념 통천을 이용한 형태 변환, 초고속을 이용한 나선 회전, 그리고 강제 응축을 통한 구체의 탄생.

검환(劍丸).

흔히 외뿔부족에서 검기와 검강 다음의 경지로 분류되는 기예가 형성된 것이다.

강기(罡氣)의 상위 응용 기술로, 강기를 구슬 형태로 둥글게 압축시켜 파괴력을 증대시키고, 원거리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연우가 만든 검환은 무왕이 시연용으로 보이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궤를 달리했다.

어마어마한 열기와 독성을 띠고 있어서 그런지, 지옥불을 다루는 연우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거 언젠가 주인이 말했던 무슨 그림책에 나오는 나선…… 뭐시기 아냐? 동생이 쓰던 건, 치도…… 뭐시기를 닮았더만! 형제들이 뭐 하는 짓이야, 이거!」

그림자 속에서 샤논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안정화가 되어 있질 못해 회전이 조금만 삐끗해도 금세 폭발할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어, 제어를 위한 연우의 정신력 소모는 물론, 가속도를 위해 소비되는 마력량도 엄청났다. 단지 형체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죄악석과 드래곤 하트가 뜨겁게 과열될 정도였으니.

어느새 검환은 연우의 머리통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지독한 열기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해선 안 돼. 이 정도로 끝낼 거면 화력을 올린 불의 파도나 검은 오러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연우는 이것 하나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정도의 검환만 부린다면 차라리 기존에 사용하던 검은 오러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가 바라는 궁극기는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더 크고, 더 화려하며, 더 폭발적인 것.

그래서 신과 악마들마저 가를 수 있는 흉기를 원했다.

위력을 지금보다 더 몇십 배로 끌어 올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공전.’

하나로 안 된다면 두 개로, 그걸로도 안 된다면 세 개씩, 계속 그렇게 더 늘리면 그만.

휘이이이!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검환 옆에서 또 다른 검환이 만들어졌다. 이미 하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속도는 훨씬 빨랐다. 이전 것보단 훨씬 크기가 작지만, 역시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담긴 검환.

그런 것들이 옆으로 차례로 만들어졌다.

한 개, 두 개, 세 개……. 처음에는 느렸던 생성 속도도 가속도가 붙으면서 순식간에 크고 작은 백여 개의 검환이 만들어졌다.

검환들은 형체 유지를 위해 빠르게 자전하면서도, 연우를 중심으로 크게 타원형을 그리며 공전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태양계를 옮겨 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친.」

하지만 샤논은 그 아름다움 속에 담긴 흉포함을 읽고 몸을 떨어야만 했다.

자전과 공전, 인력과 척력 등 중력의 미묘한 균형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저런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원리를 안다고 해도, 자신은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어긋나면 모든 것이 초토화될 게 분명했으니까.

「…….」

「…….」

「…….」

한령과 레베카, 심지어 연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지닌 부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게 떨리는 심령만이 그들이 가진 두려움을 말해 줄 따름이었다.

우우우웅-

백여 개의 검환은 저들끼리 공명까지 해 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다는 듯, 연우에게 칭얼거리는 것 같았다.

각각의 자전 속도도 어느새 음속을 넘어 광속에 가까워질 만큼 빨라지고, 거기다 회전하는 불길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다른 각도로 돌리면서 마찰열까지 잔뜩 끌어 올렸다.

덕분에 연우를 따라 발산되는 빛과 열은 어느덧 태풍을 형성하면서 스테이지를 가득 메울 정도였으니.

「근데 주인…… 이거 계속 이대로 둘 거야? 이거 너무 무서운데?」

‘그럴 리가.’

마음 같아서는 성단이나 은하계의 규모만큼 검환을 생성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싶었다. 뭐, 부족한 숫자야 앞으로 차차 늘려가면 되겠지. 연우는 샤논이 들었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면서 칠흑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공허 발동]

그러자 갑자기 공간이 갈라지면서 시커먼 무저갱이 작은 태양계를 전부 집어삼켰다. 순간, 스테이지를 온통 화려하게 잠식하던 광채가 툭 하고 그쳤다.

하지만 샤논을 비롯한 권속들은 숨을 삼켰다.

폭풍전야가 가장 고요하듯, 지금은 단순한 적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검은 구비타라]

그리고 연우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받치면서, 저 허공에 떠 있는 중산을 가리키며 검결지(劍結指, 검지와 중지만 세운 손의 형태)를 튕겼다.

멀리서 보면 마치 총이라도 쏘는 듯한 자세였다.

“터져라.”

짧은 언령.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쏴아아!

순간, 하늘을 따라 공허가 잔뜩 피어나면서 백여 개의 유성우가 내려왔다.

보고 있던 모두가 시간이 느려졌다고 착각을 할 만큼.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가장 선두에 있던 유성이 중산에 충돌하는 순간, 느려졌던 시간도 제자리를 되찾았다.

『아, 안 돼애애앳!』

관리자들이 내뱉는 비명 소리는 엄청난 대폭발과 함께 이어진 굉음에 묻혀 사라졌다.

단 한 발.

중산의 허리가 그대로 날아가는 데는. 딱 한 개의 검환만 있으면 충분했다.

문제는 아직 백여 개에 달하는 검환이 더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 * *

쿠르릉, 쿠르-

엄청난 양의 분진이 고리를 형성하며 바깥으로 쏟아지고, 불길을 잔뜩 머금은 낙석이 스테이지 아래로 와르르 쏟아졌다.

하지만 그 낙석마저도 곧 불어 닥친 화염 폭풍에 휩쓸리며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그 속에는 망령의 원념과 저주가 잔뜩 응축되어 칼날처럼 잘 벼려진, 강기의 파편도 잔뜩 섞여 있었다.

콰쾅! 콰콰쾅!

콰콰콰콰!

콰르르르릉-

방금 전까지 51층의 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중산의 불길은. 시원의 불에서 비롯되었다던 불꽃은, 어떻게 저항할 새도 없이 압도적으로 퍼지는 검은 불길에 집어삼켜져 홀라당 사라지고 말았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의 등성이가 드러나다가, 곧 뒤이어 찾아온 균열을 따라 쩍쩍 갈라졌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중산의 완전한 붕괴.

그리고.

바로 그 뒤로 찾아온 유성 집단이 마구잡이로 스테이지를 유린했다.

쿠쿠쿠쿠!

[신의 사회, ‘데바’가 경악합니다.]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침묵합니다.]

……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아군인 당신을 보며 환호합니다.]

[악마의 사회, ‘절교’가 당신을 경계에 찬 눈빛으로 봅니다.]

……

[비마질다라가 당신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감탄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당신에게 소정의 선물을 보냅니다.]

[케르눈노스가 화려한 이벤트에 눈을 가만히 감습니다.]

[모든 신들이 51층을 주시합니다.]

[모든 악마들이 무언가를 의논합니다.]

[천계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된다.’

연우는 초토화되는 스테이지를 보면서,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면서 자신이 만든 궁극기가 초월자들에게도 충분히 통하리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중산을 붕괴시키는 데 사용된 검환은 딱 여섯 발.

사실 나머지는 불필요한 마력 낭비나 다름없었다. 이미 초토화 된 스테이지에 계속 폭격을 가한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전력을 다한 결과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부러 아낌없이 사용했다.

언젠가 적이 될지도, 아군이 될지도 모르는 신과 악마들에게 전력을 노출시킨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기술의 사용법은 여기서만 그치는 게 아니니까.’

연우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 사용한 방식은 진영 붕괴용의 광역기에 가까웠고, 응용법에 따라 얼마든지 순간 화력 투사기나 일대일 대인기(對人技)로도 쓸 수 있었다.

물론, 그 응용법은 여기서 보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하지만 비마질다라나 케르눈노스 같이 눈치가 빠른 이들은 이미 벌써부터 이 궁극기의 다양한 응용법을 알아챈 듯했으니.

그런 이들에게는 조심하라는 경고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탑의 사도이자 수호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올포원의 시선도 이쪽으로 잠깐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콰콰콰-

중산이 붕괴되고 나서도 폭발은 그치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불씨’의 옵션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번져 나간 불씨는 처음에 못지않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화염 폭풍을 마구잡이로 토해 내고, 격동하는 하늘에서는 불벼락이 쏟아지면서 대지를 연거푸 두들겨 댔다.

덕분에 땅거죽이 수십 미터나 뒤집히면서 곳곳에서 용암이 치솟아 붉은 강을 이루고, 유황 가스를 꿀렁꿀렁 토해 냈다.

잔뜩 달아오른 공기 때문에 수분은 모두 증발해 버렸고, 대기 중으로 퍼져 나간 저주와 독기는 겨우 땅에 붙어 남아 있던 것들까지 마저 지웠다.

모든 것이 날아가고 없는 스테이지만이 휑하니 남을 뿐이었다. 마치 예언 속에 나올 세기말이 이러할까.

포탈을 열고 나타나려던 관리자들도 깡그리 날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몇몇은 존재조차 지워졌을지도 몰랐다.

결국 51층에는 그림자를 겹겹이 쌓아 올린 연우만이 남아 있었다. 하늘은 이미 붉고, 대지는 검은 바람만이 삭막하게 휘도는 가운데.

「……주군. 앞으로 나한테 서운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전부 다 잘못했어.」

샤논의 농담 아닌 농담만이 작게 울렸다.

그때.

“오효효. 이젠 아예 대놓고 스테이지 붕괴라니…… ### 님은 정말 저희 관리국과 척이라도 지려는 속셈이신가요?”

익숙한 웃음소리와 함께, 연우의 뒤쪽으로 포탈이 열리면서 이블케가 나타났다. 외눈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동자에는 어이없다는 감정과 재미있어 죽겠다는 감정이 같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이블케를 따라온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하면서 손에 저마다 무기를 쥐고 있었다. 흉흉한 기세가 휘몰아쳤다.

관리국 산하 조직, 특경단.

의도적으로 관리 조항을 어기려 하는 플레이어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 부대였다.

그들이 나선다면 신격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관리국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특경단도 연우를 앞에 두고 바짝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화염중산을 통째로 날리고, 스테이지까지 붕괴시키는 광경을 보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잔여 폭발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공간에마저 균열이 가고 있는 지경이었다.

이런 광경은 과거 오래전에 있었던 ‘용살대전’이나, 올포원과 무왕의 충돌 때에나 볼 수 있었기에. 긴장의 끈은 더욱 팽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수하지.”

연우는 그런 흉포한 일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양팔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이블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관리자들도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뭐?”

“무슨……!”

“스테이지를 망가뜨렸으니 자수하겠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

“…….”

“…….”

“…….”

너무나 태연하고 뻔뻔한 대답.

관리자들은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저 두꺼운 낯짝을 후려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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