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65화 (465/862)

15화. 중앙 관리국 (7)

부유성, 라퓨타.

도일은 중앙 관제실에 앉아 각 층계에서 보내는 보고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11층의 장악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24층을 지배하던 3개의 클랜이 복속의 맹세를 하였습니다. 피해는 이쪽의 경상자가 2명, 저쪽은 241명의 사상자와…….』

『48층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탑 외 지역에 있던 다른 클랜들의 첩자들을 모두 색출하는 데 성공했어요. 클랜장께서 예전에 점찍어 두셨던 나이트 워치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마희성, 환영기사단, 철의 왕좌, 숲의 아이들.

아르티야의 산하 조직 중에서 가장 큰 전력을 자랑하고, 영왕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여 선봉 부대로서 적의 예기를 꺾는다고 알려진 네 개의 클랜. 통칭 ‘네 개의 검은 날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들이었다.

그들은 연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취를 감추기 전, ‘사라진 혈국과 엘로힘, 마군의 그늘을 모두 지우고, 50층 아래에 있는 다른 거대 클랜들의 지배권을 강탈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저층 구간을 비롯한 탑 외 지역 등은 이제 공고히 아르티야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의 지배를 거부하던 저항 세력들은 상위 층계로 도망치거나, 새로운 지배 질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덕분에 지금은 52층을 중심으로 저들의 대항 전선이 구축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르티야는 이마저도 마저 분쇄하기 위해 전열을 재정비하고, 단번에 상위 층계로 들이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반면에 아르티야의 정예 멤버들은 현재 여태 미뤄 뒀던 층계 공략에 집중하고 있었다. 언젠가 76층에 모여 있을 화이트 드래곤 등도 격파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연우를 대신해 중앙에서 이런 일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바로 도일이었다.

-형. 왜 그렇게까지 지배에 집착하시는 건지 여쭤도 될까요? 8 대 클랜보다 더 확고한 체제를 노리시는 것 같아서요.

연우가 51층으로 가기 전, 도일은 그런 연우의 강경한 태도가 너무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다.

현재 연우가 외부에 비친 이미지는 딱 한 가지였다.

폭군.

원래는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났으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복수를 하고, 나아가 보상 심리로 탑을 집어삼키고자 하는 탐욕 어린 괴물.

그리하여 지난날의 여름여왕마저 넘어서 올포원에 대항하고자 하는 지배자가 되려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도일이 아는 연우는 사실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관여했던 이들에게 복수하고, 이것을 방관했던 이들에게 응징하는 것. 그래서 헤븐윙과 아르티야의 전설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그였다.

하지만 지금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도일이 알고 있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도일.

-네?

-언젠가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요?

-이 탑이 있는 한, 결국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직접적인 모든 복수가 끝나도, 결국엔 가장 큰 적이 남아 있어.

-무슨……?

-탑.

-……?

-나는 언젠가 탑을 부술 생각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신앙이 필요해.

도일은 연우가 그리는 그림이 대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그가 보다 더 멀리 보고, 더 크게 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절대 자신들에게 해로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 설사 해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께서 정하신 뜻이라면. 당연히 그분을 모시는 나로서는 그 뜻을 관철해 나가야겠지.’

사도는 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 그분의 복음이 세상에 널리 전파 될 수 있도록 가장 선두에서 신도들을 이끄는 자였다.

아르티야는 이제 곧 연우만을 위한 교단이 될 것이고, 자신은 신과 교단 사이를 잘 잇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절대 신의 뜻에 의심을 가지거나, 의문을 던져서는 안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그가 선택해서 진심을 다해 모시게 된 존재였기에. 더더욱 지금 이 순간이 각별했다.

“닷새 뒤. 51층의 스테이지 복원이 끝나는 대로 그곳에다 베이스캠프를 구축할 생각입니다. 정벌을 위한 전초 기지이니, 검은 날개를 비롯한 각 클랜들은 랭커를 위시한 정예들을 선별해 주십시오. 숲의 아이들은 물자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되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면서. 도일은 의자에 반쯤 누워 눈을 감았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피곤했다. 하지만 정벌을 위한 준비를 하려면 지금보다 더 바빠지겠지. 그동안에 잠시 눈을 붙여 둘 참이었다.

뒤에서 여름여왕의 환영이 슬쩍 도일을 지켜보다, 몸을 돌려 스르르 사라졌다.

라퓨타에는 조용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 * *

“저, 대장…….”

케미칼이 갱도 깊숙한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 즈음.

그의 눈치를 보며 쪼르르 따라오던 수하 중 한 명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처음 연우에게 시비를 걸었던 행동 대장, 스도였다.

“뭐냐?”

스도는 순간 부리부리하게 뜬 케미칼의 눈동자를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쭈뼛 세웠다.

저 눈빛이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수백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을 단번에 도살했다던 학살자의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서늘케 만들었다.

그리고 저 눈빛을 거스르려고 했던 놈들은 모조리 갱에 목이 걸리거나, 혈루석의 색을 더해 주는 물감이 되고 말았다. 그 역시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대장보다 그놈이 더 무서워.’

스도는 강렬하게 타오르던 연우의 안광을 떠올리자, 케미칼의 눈빛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케미칼이 흉포한 맹수 같다면, 연우는 뭐랄까…… 귀신 같았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귀신. 그러다 자신들을 완전히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들의 본능을 긁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분명히 수십 년 전에 이곳에 똑같이 들어와 크게 깽판을 치고 갔던 무왕을 연상케 했다.

당시에도 암굴의 수장이었던 케미칼이 가장 호되게 당했으니. 케미칼은 결국 두 사제에게 대를 이어 농락을 당한 셈이었다.

화가 저렇게 단단히 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섣불리 말하려니 케미칼의 안광이 심상찮았다. 수하들끼리 나눈 의견을 전달해야 할 것 같은데. 스도는 슬쩍 하플링 메리 녀석을 곁눈질했지만, 녀석은 휘파람을 불면서 자신을 못 본 체 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심부름꾼 새끼가!’

스도는 나중에 저 얄미운 하플링 계집을 발로 꽉 걷어차야겠다고 다짐했다.

“뭐냐니까!”

그러다 케미칼이 버럭 소리를 지른 후에야, 스도는 제대로 대답 할 수 있었다.

“그, 그, 그것이 혀, 혀, 혈루석이라도 써야 하지 아, 않겠습니까?”

“혈루석?”

케미칼의 눈에 광기가 살짝 감돌았다.

스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녀석이 계속 제멋대로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둔다면 ‘형제’들 사이에 분열만 조성될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다들 보는 앞에서 녀석을 꽉 눌러야 하지 않을까요?”

케미칼의 스산한 광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그는 아주 잠깐 고심에 잠겼다. 그러다 물었다.

“혈루석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는 없겠지?”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너흰 모른다.”

케미칼이 얕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도는 이미 칼을 뺐다고 생각했는지 용기를 갖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혈루석.

아다만틴의 주재료가 되는 이 광석은 원래 마력 증폭에 아주 큰 효과가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탑 내에서도 바로 야네크의 암굴에서만 나는 특산물.

죄수들 중 상당수가 형벌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주어진 할당량만 채우면, 남은 광석은 오롯이 자기의 몫이었으니까.

여기서 크게 한몫을 벌어 탑으로 나간다면, 큰 밑천을 잡을 수 있었다. 혹은 최상위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다량으로 마련할 수도 있었다.

케미칼을 비롯한 스도와 메리 등이 윗선의 명령에 따라 야네크의 암굴에 ‘잠입’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이 지시받은 사항은 두 가지.

혈루석을 되도록 많이 모을 것.

그리고 이곳 암굴 어딘가에 깊이 잠들어 있을 혈정(血精)을 찾을 것.

다만, 관리국이 혈루석은 모른 척 내버려 두더라도, 혈정까지 허락지는 않을 게 분명한바. 그래서 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주 비밀리에 움직이면서 ‘형제’들을 하나둘씩 포섭하고, 혈정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혈정의 위치도 거의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심처.

미개척지로 분류되는 야네크의 암굴 내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관리국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곳. 혈정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이제 심처로의 탐색만 앞두고 있던 이때.

갑자기 무왕의 제자가 찾아왔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어디서 정보가 새었을 거란 생각은 않았지만, 뭔가 눈치는 챘을 수도 있었다.

물론,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녀석이 나타난 이상, 계획에 있어 커다란 변수가 될 건 분명했다. 타넥과 교도보들의 감시가 더 강화될 테니. 그래서는 꿈쩍도 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암굴 내에서 포섭된 ‘형제’들은 대개 자신들의 공통된 이상에 감화되어 합류한 것이 아니라, 혈루석과 혈정이 줄 이득을 보고 참여한 종자들이었다.

여기서 형제들의 중심이 되는 케미칼이 위엄을 잃는다면, 겨우 갖춰 놓은 체계에서 이탈할 우려가 컸다.

이미 벌써부터 동요하는 놈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러니 형제들을 다시 단단히 붙잡고, 탐색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이 빌어먹을 변수 놈을 미리 제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혈루석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행히 윗선에서는 혈루석을 이용해 시스템의 제약을 벗어나, 가호를 되찾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 상태.

그리고 여기엔, 과장해서 혈루석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가호를 완전히 개방하면 관리국의 의심을 살 수 있을 테지만, 조금만 사용한다면 눈치껏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이미 몇 번씩 해 보기도 했으니.

그래도 연우 정도 되는 작자를 상대할 만큼 사용하려면,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만 했다.

어쩌면.

‘……‘반란’까지 가야 할지도.’

스도도 그 정도는 이미 각오를 해 둔 상태였다.

“너희들도 다 같은 생각인가?”

케미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도가 하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고심해 보도록 하지. 오늘 안으로 답을 주겠다.”

“의견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 메리만 남고 전부 자리를 비워라.”

스도는 슬쩍 하플링 소녀를 훔쳐봤다. 케미칼은 언제나 형제들을 움직이는 데 있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면 언제나 하플링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하플링 특유의 재간(才幹)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약소 종족은 그만큼 생존을 위해 여러 방향으로 특성을 개발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수하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케미칼과 하플링 메리만이 남았을 때.

쿵!

케미칼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바닥에다 머리를 세게 찧었다. 이마가 찢어지면서 피가 튀었다. 열사의 사형인이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는 갑작스러운 모습. 흉흉하던 안광도 어느새 순한 양처럼 착 가라앉아 있었다.

케미칼을 알고 있거나, 다른 ‘형제’들이 보았다면 기겁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메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근처에 있는 바위 위에 짧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여태껏 주변 형제들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좌중을 휘어잡는 위엄이 물씬 풍겼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일이 마냥 전부 순조롭게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지. 네가 그렇게 되도록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빌어먹을 무왕 놈의 제자가 나타날 줄 나라고, 윗선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야네크의 암굴 내 형제단의 움직임을 총지휘하는 것은 케미칼이라 알려져 있지만. 암중에서 그런 그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건, 하플링 메리였다.

한때 쌍성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떨쳤던 그조차도 몇 수 접어줘야 하는 고인(古人).

그녀의 정확한 정체는 케미칼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있는 죄수들은 물론, 관리자 들도 여럿 죽어 나갈 거란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너도 기억하겠지만, 무왕 놈은 오래전에도 우리의 거사를 그르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메리는 아직도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나 이가 바득 갈렸다. 무왕이 심심하다며 난리를 친 덕분에 그들이 준비했던 모든 계획들이 일그러지고, 거사는 족히 이십 년은 뒤로 밀려 버리고 말았다. 당시 겨우 찾았던 혈정이 전부 부서져 나갔으니 엄청난 피해였던 셈이었다.

“그리고 스도의 말마따나, 무왕의 제자 놈이 나타난 이상, 그놈이 우리의 일을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바득!

이를 가는 내내, 메리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녀석도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들어온 건 확실할 터. 분명한 건 놈이 나타난 이상 사고는 반드시 터질 테고, 지난번처럼 우리의 일도 다시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면 역시나 혈루석으로 녀석을 잡아야……!”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메리는 케미칼의 말허리를 끊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은 필시 제 스승 놈처럼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났을 게 분명하다. 혈루석으로 마력을 돌리는 정도로는 안 돼. 아예 시스템의 가호를 되찾아야 한다.”

제약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케미칼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어떻게……!”

“믿어라. 확실할 것이니. 외뿔부족에는 시스템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그들만의, 빌어먹고도 저주받을 수단이 있지 않더냐?”

아.

케미칼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그게 무엇인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이 랭커라면, 외뿔부족이라는 큰 벽에 부딪치면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단어.

무공.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케미칼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순간, 메리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거사를 앞당긴다.”

“그건……!”

“비록 아직 혈정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았으니 바로 그 쪽으로 진입한다. 스도를 비롯한 형제들에게는 즉시 반란을 일으키라고 전하고.”

포섭한 형제들이 혈루석을 이용해 시스템의 가호를 되찾아 반란을 일으키며 관리자들을 밀어내는 동안.

케미칼과 메리를 위시한 수뇌부는 심처로 들어가 혈정을 회수한다.

성동격서를 이용한 양동 작전.

반란이 성공하면 야네크의 암굴이 형제단의 손에 들어오니 좋은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원래 목표였던 혈정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계획으로 잡았던 것보다 1년 정도 빠른 거사이긴 했지만.

이미 준비는 거의 다 된 상태였기에, 케미칼은 별다른 반발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가를 따라 여태 메리에 억눌렸던 광기가 다시 솟아오르면서 전의로 활활 불타올랐다.

메리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맡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쿠쿠쿠!

갑자기 암굴이 통째로 위아래로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등골을 타고 오한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든 순간, 메리와 케미칼의 얼굴이 잔뜩 굳고 말았다.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지진이 격해지면서 천장을 따라 균열이 잔뜩 퍼지고 있었다.

‘설마, 이 새끼가 벌써?’

아무리 무왕 놈의 제자라고 해도, 허구한 날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놈이라고 해도, 들어온 지 단 몇 시간 만에 이렇게 사고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타넥 등 교도보들의 감시가 철저할 테니.

그래서 그사이에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건데……!

설마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무왕의 제자 놈은 제 스승보다도 더 막나가는 놈이었다!

콰아아앙!

와르르-

암굴이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으으으을!”

메리의 비명 소리는 폭음에 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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