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중앙 관리국 (9)
‘아냐. 비슷하지만 다르다.’
연우는 순간 메리가 흡혈군주인가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털었다.
분명 바토리의 흡혈검과 비슷한 효과와 특성을 가진 스킬인 건 분명했지만, 위력이 너무 천지 차이였다.
닿는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려 드는 바토리의 흡혈검과 다르게, 이건 단순한 척력만 발생할 뿐 ‘위험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특성은 비슷한바. 분명히 바토리의 흡혈검에서 비롯된 열화 버전일 게 분명했다.
‘흡혈군주와 가까운 뭔가라는 뜻이겠지.’
연우는 하늘 날개로 거세게 홰를 치면서 아공간에서 비그리드를 뽑아 쥐었다.
바토리의 흡혈검처럼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메리가 사용하는 스킬이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쿠드라크의 이빨〉. 뱀파이어, 담피르, 바르콜락, 스트리고이 따위를 통칭하는 ‘흡혈귀’의 종족 스킬.
상처 입힌 상대로부터 혈액을 흡수하여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에너지 드레인 계통의 특성을 자랑한다.
그러다 숙련도가 오르게 되면, 빨아들인 혈액 대신에 이쪽의 마력을 불어 넣어 상대를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때문에 예부터 흡혈귀는 많은 종족들로부터 멸시와 배척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다.
이들을 잘못 받아들였다가 마을이나 나라가 통째로 결딴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더구나 이들은 밤과 달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 대부분 낮과 태양을 숭상하는 인간 등으로서는 이들과 어울리려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흡혈귀는 발견되는 족족 사냥을 당하는 편이었고. 때로는 ‘크레스니크’라는 흡혈귀 사냥꾼들이 있어 전문적으로 그들의 뒤를 쫓는 경우도 있었다.
흡혈귀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며 살아야 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타인의 이목을 끄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고, 항상 본거지를 옮겨 다녀야 했다. 쫓기는 삶이 그들의 숙명이었다.
그러다 태어난 존재가 바로 흡혈군주였다.
그녀는 자신이 결정하지도 않은 운명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그래서 기른 힘을 바탕으로 흡혈귀의 군주가 되어 세상과 맞서 싸웠다. 탑 위에 달을 띄우고자 하였다. 올포원과 대립했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비록 그 꿈은 튜토리얼까지 내쫓기면서 흡혈검만 겨우 남긴 채로 꺾여야만 했지만.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흡혈귀들은 여전히 여왕을 그리워 하면서, 그녀가 다시 일어날 날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란 다짐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런 흡혈귀가 나타났다.
그것도 꽤나 강해 보이는 존재.
흡혈귀 사회 내에서도 상당한 고위직인 게 분명했다.
‘아홉 왕과 견줄 만할 열사의 사형인이 몇 수는 접어 줘야 할 강자니 당연한 거겠지만.’
녀석이 사용하는 쿠드라크의 이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토리의 흡혈검은 쿠드라크의 이빨이 개화되어 탄생한 유니크 스킬. 그런 걸 떠올리게 할 정도라면 숙련도가 완숙(完熟) 상태에 이르고 있단 뜻이었다.
쿠쿠쿠-
암굴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먼지와 돌가루들이 맹렬한 속도로 와류를 그리면서 녀석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대기가 녀석을 중심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연우를 노려보는 내내, 메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창백해진 얼굴을 따라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잔뜩 돋아나는 모습이 섬뜩했다. 흡혈귀의 귀족, 진조(眞組)만이 보인다는 모습.
이대로 있다가는 통째로 먹히고 말겠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주 흉포했다.
‘방향은 잘 찾은 것 같은데.’
저만한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건, 흡혈군주가 바로 이 근방에 있단 뜻이겠지.
‘다만…… 녀석에게서 풍기는 혈향(血香)은 보통 흡혈귀들의 것과 달라.’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 흡혈귀의 특성 때문에 동생도 그들과 그리 많은 접점을 가져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동생이 만난 녀석들에게서는 비슷한 ‘냄새’가 났다.
밤의 그윽함을 닮은 냄새.
빛 속성을 주로 다루던 동생과는 상성이 맞질 않아 자주 대립했던 까닭에, 연우도 일기장을 통해 그 냄새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그거야 확인해 보면 되겠지.’
[용신안]
[화안금정]
연우는 금색으로 반짝이는 용의 눈을 활짝 열면서, 격동하는 회오리의 중심으로 난 결을 따라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둘렀다.
무결참이었다.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듀렌달’을 개방합니다.]
[전승: 일도양단]
촤아악-
빛무리에 잠긴 비그리드가 내리쳐진 순간, 검은 오러가 폭사하면서 단번에 회오리를 가로질렀다. 인력의 폭풍이 박살 나 암굴의 벽면과 천장을 후려치면서 붕괴 속도를 더하고, 메리는 그대로 상반신이 잘린 채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얼굴에 핏대가 잔뜩 선 그대로의 모습. 핏물이 안개처럼 번지고, 잘린 부위를 따라 일어난 불길이 단숨에 상·하체를 동시에 집어삼켜 재로 만들었다.
남들이 본다면 너무 허무하게 적을 격살했다고 할지도 모르는 광경이었지만.
연우는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흡혈귀에게 있어 ‘형체’란 그저 필요에 의해 만드는 외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휘리릭-
허공에 뿌려졌던 핏물이 갑자기 먹물처럼 가득 번졌다. 촉수처럼 뾰족한 끄트머리를 따라 다양한 맹수들이 줄지어 나타나 연우에게로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다이어 울프가 천장과 벽을 타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고, 천장에서는 족히 1미터는 넘을 자이언트 뱃이 푸드덕거리면서 초음파를 쏘아 대었다.
더불어 지반이 꿀렁거린다 싶더니, 붉어진 바닥을 타고 크립티드가 하나둘씩 유령처럼 일어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야네크의 암굴에서 죽은 죄수들의 시체로 만든 언데드로 보였다.
망자의 군단이라.
그런 것들을 보면서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확실히 흡혈귀는 밤의 축복을 받은 종족답게 언데드와 망령들을 다루는 데 탁월한 편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왕좌에 앉은 사람을 두고, 망자의 군단이라니.’
이건 꼭 검을 하루 이틀 만져 본 초보 검사가 무왕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연우가 귀찮다는 듯 이번에는 왼발로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그러자 바닥에 앉은 그림자가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가시를 바짝 세워 다이어 울프 등을 그대로 꿰뚫었다.
하나가 안 되면 두 개, 두 개가 안 되면 서너 개씩 삐죽삐죽 솟아 메리의 권속들을 모조리 사냥했고, 곧 가시는 불길처럼 화르륵 타오르면서 꿰고 있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런 흉흉한 그림자 덤불 사이로, 어느새 메리가 나타나 손톱으로 연우의 정수리를 세게 내리쳤다.
쾅!
연우는 재빨리 비그리드를 위로 올려 메리의 공세를 막았다. 지면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과 함께 손목이 찌르르 울렸다. 왜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완력을 지니고 있단 뜻이었다.
역시나 웬만한 ‘왕’ 급은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힘. 녀석의 장기는 마법과 종족 능력에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팔극검 - 비기 파공]
연우는 비그리드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반격기를 시도했다. 역시나 무결참에 의거한 공격이니만큼 아주 날카롭고 매서웠지만.
팟!
메리는 어느새 다시 피 안개로 변해 비그리드의 공세에서 벗어난 뒤였다.
퍼퍼펑-
대신에 이번에는 연우의 발치에서 나타나 연격기를 시도했다. 양 손에 피 안개를 잔뜩 두르며 날뛸 때마다 공간이 줄줄이 부서져 나갔다. 벽면이 무너지면서 낙석이 우수수 쏟아졌다.
‘체술까지 사용한다 이거지?’
연우는 녀석의 공격을 이리저리 흘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무공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기예들을 선보이는 솜씨가 하루 이틀 해 본 게 아니었다.
거기다 적재적소에 혈인(血因) 마법까지 섞어 사용한다. 쌓인 경험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이만한 존재라면 절대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을 텐데. 어째서 누군지 짐작 가는 이가 없는 걸까. 메리라는 이름은 가명일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만큼 나이를 오래 먹어 기억하는 이가 없어진 것일지도.’
수천 년에 달하는 탑의 역사 속에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스러지길 반복했다.
개중에는 강한 ‘신화’를 남겨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이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 시대에만 반짝 빛났다가 흐르는 세월에 묻혀 색이 바랜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존재들이 후자에 해당했고, 그 세월이 길면 길수록 잊히는 정도가 더 심했다. 어쩌면 이 하플링 흡혈귀도 그런 존재일지 몰랐다.
최소 팔백 년.
연우는 대략 메리의 나이를 그렇게 짐작했다.
올포원이나 여름여왕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살아 있는 ‘괴물’인 셈이었다.
콰콰콰, 콰앙-
하지만 그런 괴물을 상대로도, 연우는 절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진인 급에 다다른 검술 실력은 메리의 체술을 받아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간간이 반격까지 가할 정도로 뛰어났고, 혈인 마법을 사용해 부리는 갖가지 권속들은 그림자의 방벽을 뚫지 못했다.
거기다 충돌 때마다 번지는 검은 불길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니.
촤촤촤-
콰콰쾅!
둘의 대결은 일체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이뤄졌다.
충돌 때문에 퍼져 나간 충격파는 암굴의 붕괴 속도를 더해 갔다. 메리를 따라왔던 다른 수하들은 이미 낙석 더미에 파묻혀 비명횡사한 지 오래였다.
그러다.
스걱!
메리의 왼팔이 말끔하게 잘리면서 허공으로 튀었다. 메리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피 안개가 어깨 아래를 덮으면서 재생을 시도했다. 상처를 입어도 회복이 시시각각 이뤄지니 재차 싸움에 임할 수 있었지만, 이것도 무한한 건 아니었다.
보유하고 있던 혈액량 중 얼마나 썼더라? 벌써 3분의 2는 사용한 것 같았다. 회복은 물론, 혈인 마법을 비롯한 온갖 종족 스킬이 대개 마력 대신에 피를 소모로 하는 것들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이 시건방진 녀석을 잡아 피를 빨아들여 부족분을 벌써 채워야 했었는데. 그게 너무 쉽지 않았다. 그녀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안개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이곳 암굴에 있으면서 보충할 수 있었던 피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게 패착이었다.
강하다.
메리는 연우를 두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탑을 비운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무왕이나 여름여왕, 대주교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을 당해 낼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이런 녀석이 등장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메리는 언제부턴가 비그리드와 충돌할 때마다 작은 체구에 상처를 여기저기 입으면서 계속 튕겨 나야만 했다.
연우도 그 사실을 알고 차근차근히 메리의 출혈량을 늘려 나갔고.
쉭-
그러다 한순간 연우의 왼쪽 손바닥이 공간을 찢으며 메리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폭발한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메리는 스스로 손날을 바짝 세워 자신의 목을 잘랐다. 아이처럼 생긴 하플링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모습은 섬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작은 머리통이 허공으로 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예상대로 거친 폭발이 일어나면서 머리를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휘이이-
그러다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서 피 안개가 뭉치면서 다시 메리가 나타났다.
조금 파리해진 안색. 입가를 따라 단내가 풀풀 날렸다.
“하아…… 하아…… 인간 같지 않은 놈. 감히, 나를.”
하지만 연우는 더 길게 말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듯, 날개를 크게 펄럭이면서 블링크를 발동했다.
나타난 위치는 바로 뒤. 메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바짝 뒤로 띄우면서 이를 악물었다. 연우가 금세 자신을 바짝 뒤쫓아 왔다. 금색으로 빛나는 세로 동공은 싸늘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메리는 그제야 아까 전부터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을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피식자를 잡아먹을 기회만을 노리는 포식자. 순간, 짜증이 확 하고 치밀었다.
감히. 네깟 놈이 무엇일진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밤의 귀족으로서 살아왔던 그녀는 언제나 승자였고, 포식자였다. 동족들이 크레스니크들에게 쫓기던 와중에도, 그녀는 언제나 고고하게 그들을 굽어다보던 존재였다. 그런데 이딴 수모라니!
결국 메리는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서 혈루석을 꺼냈다. 이것만큼은 여기서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삼켜라.”
그래서 종족 스킬, 쿠드라크의 이빨을 개방했다. 손바닥을 따라 생성된 네 개의 큰 송곳니가 단단한 혈루석의 표면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든 정기를 맹렬한 속도로 빨아들였다.
“아.”
순간, 메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희열이 등골을 따라 파르르 퍼져 나갔다. 희미해지던 피 안개가 또렷해지면서 체내에서 무한한 힘이 퍼지고 있었다.
비록 타계의 신이 흘린 것이라고 하나, 혈루석은 엄연히 신적인 존재가 흘린 신혈(神血)이 응고되어 탄생된 것.
그 속에 담긴 에너지를 드레인 했으니 활력이 돌 수밖에.
“크아아!”
그래서. 메리는 포악하게 웃었다. 어느새 엄지만큼 커진 송곳니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와 흉흉하게 번뜩였다. 당장이라도 저 건방진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리고 싶어 간질거렸다.
혈정이 있다면 신혈을 넘어 신성까지도 획득할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없으니.’
그래도 곧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이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쿠드라크의 이빨로 혈정을 삼켜 탈각을 이루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흡혈검을 탄생시키고, 나아가 초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그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곳 암굴에 있었던 목적이고, 이유였다.
그러니 지금은 쓸데없이 자신의 발목을 묶은 저놈을 빨리 처치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쓰는 거였군.”
갑자기 연우가 메리가 하는 바를 보더니 가볍게 피식 웃었다.
메리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인상을 찡그리다가, 곧 그가 꺼내는 물건을 보고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서, 서, 설마…… 그건……?”
여태껏 말로만 듣던 혈정이 왜 저기에? 메리가 한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창백해지는데.
[‘하데스의 식령검’이 〈혈정〉을 부수어 그 속에 담긴 신력을 흡수합니다!]
[타계의 신이 남긴 신혈이 해체되어 〈신의 인자〉와 〈신성〉이 조금씩 흡수됩니다.]
[주의하십시오! 탑 내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입니다. ‘감염’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
쿠드라크의 이빨보다, 아니, 분명히 죽었던 군주의 시그니처 스킬보다 더 상위로 보이는 에너지 드레인이 발동되고 있었다. 그것도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꿈에서나 그리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만족에 찬 얼굴로.
툭.
순간, 메리의 뇌리 한쪽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연우가 왜 자신을 제압하지 않고, 여태 계속 시간을 끌었는지 깨달은 것이다.
혈루석과 혈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기 위해, 여태껏 그녀를 갖고 놀았던 것이다.
여태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메리는 마력을 폭주시키면서 연우에게로 와락 달려들었지만.
“부.”
연우는 귀찮다는 투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 순간, 그녀 앞으로 공간이 기이하게 흔들리더니 두 개의 실선이 대각선 방향으로 그어졌다. 활짝 열린 공간 너머로, 인페르노 사이트가 활활 타올랐다.
부의 눈을 마주친 순간, 메리의 몸이 빳빳하게 굳고 말았다.
천 년을 넘게 귀족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 높은 상위의 존재에게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그녀의 심령을 옭아매었다. 두려움이 차올랐다.
머리 한편에서부터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흡혈귀는 밤의 축복을 받은 종족. 당연히 그 기원은 마(魔)에 둘 수밖에 없는바. 악마는, 특히, 그들을 창조했던 ‘마계왕’은 그들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존재였다.
존경하는 군주 외에 유일하게 자신을 눌렀던 존재. 아니, 종족 전체를 벌레 보듯이 보았던, 마계왕 메피스토펠레스의 눈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설, 마 파우스트……?”
「버러지. 같은. 것. 감히. 어디. 서. 주인께. 눈을. 부라. 리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