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75화 (475/862)

25화. 흡혈군주 (7)

연우가 검뢰를 발휘한 것은 순전히 스스로를 미끼로 내던져 네시의 방심을 이끌어 낸 것뿐만 아니라, 제격의 타이밍까지 노린 술수였다.

몇 번의 충돌 끝에 네시가 심상 개변을 일으키기 전에 숨을 크게 한 번 들이킨다는 것을 눈치챈 연우는 절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자 했고.

하늘에 백여 개의 검환을 한데 뭉친 광구를 비밀리에 형성해 잔뜩 응축시켜 놨으며.

공허를 열어 쇠사슬로 네시를 묶어 두고자 했다.

비록 이마저도 심상 개변으로 인해 ‘없던 일’이 될 수 있었지만.

애당초 연우는 딱 짧은 순간에만 녀석을 묶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미 광구의 회전력은 광속(光速)에 가까운바. 검뢰가 떨어진다면 그 속도 역시 광속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 빠르게 심상 개변을 일으킨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질이라는 빛보다 선행할 수는 없을 테니.

그렇게 해서 발휘된 검뢰는 무결참과 함께 그대로 마해에 작렬, 녀석의 목을 통째로 뜯어 버렸다.

꾸우우우웅!

‘……통했나?’

연우는 고통에 차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면서 살짝 헛웃음을 흘렸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의식이 꺼져 가고 있었다. 계속된 무한투와 무리한 광구 형성으로 체력과 마력이 아예 통째로 바닥나 버린 탓이었다.

자칫 네시가 다시 심상 개변으로 몸을 회복해 반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연우는 그래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무결참은 존재의 근간을 가르는 손길. 그것을 검뢰가 훑고 지나갔으니 녀석도 무사치는 못할 터였다.

문제는 이런 빈사 상태로 마해에 떨어져야 한다는 게 걱정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림자 속의 권속들이나, 옆에서 놀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라나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해 속에 있다는 네시 외의 다른 ‘왕’들도 걱정되긴 했지만. 흡혈군주도 사람이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나서 줄 거란 믿음도 있었다.

그렇게.

연우는 하늘 날개마저 잃으며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 * *

“……저런 빌어먹을 놈이.”

흡혈군주는 아래로 힘없이 추락하던 연우를 받아 채는 라나를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냥 굽히고 도와 달라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페렌츠 백작의 소재지만 말해 주면 얼마든지 도와줄 것을 왜 저리도 버틴 것인지.

물론, 연우가 어떤 우려를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괜히 패만 보여 줬다가 나가리 되는 것을 우려하는 거겠지.

하지만 흡혈군주로서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거래와 신의를 함부로 저버리는 건, 군주에게 있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더구나 딸의 부탁도 있었고, 차정우에 대한 호감도 있었으니 얼마든지 도와줄 참이었다.

그런데도 연우는 절대 굽힐 생각을 않았다.

도리어 자신이 죽으면 누가 손해인지 보라는 듯 터무니없는 싸움까지 걸어 대었으니.

그러다 결국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네시의 목에다 칼을 꽂아 넣는 결과까지 보이고 말았다.

흡혈군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네시가 누군가!

이 위장의 주인, 죽은 타계의 신이 남긴 잔재 중에서도 최고인 괴물왕이었다.

물론, 이에 준하거나 더한 놈들이 일곱 마리나 더 있다지만, 그래도 의지만으로도 섭리를 바꾸는 존재였다. 초월자들 중에서도 수위권에 꼽히는 존재란 뜻이었다. 절대 필멸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목덜미에다 저런 치명적인 일격을 박아 넣었으니.

쿠우웅!

네시는 여전히 괴로움이 거칠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해가 격랑을 치면서 어마어마한 쓰나미를 일으키고, 죽었던 괴물들이 이상하게 뒤엉킨 형태로 되살아나거나, 일대 공간이 부서졌다가 수복되기를 반복했다.

녀석의 심상 세계가 불안정하다는 증거였다.

‘보아하니 아직 탈각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은데.’

초월자의 목에다 칼을 꽂아 넣을 만한 녀석이 아직도 신격도 완성하지 못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미 해냈어도 진즉에 해냈어야 할 일이었다.

실제로 흡혈군주의 눈에도 연우는 이미 모든 자격을 갖춘 상태였다. 영혼의 크기, 격의 자질, 업적, 가장 획득하기 어렵다는 신성의 조각도 일부 보유하고 있는 게 보였다.

충분하다 못해 이미 넘친 상태. 실제로 탈각도 아주 일부나마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탈각이 끝나면 초월도 어렵지 않게 해낼 것 같았다.

그런데도 탈각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외부의 강제적인 간섭 때문이겠지.’

흡혈군주는 누가 술수를 부리고 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올포원. 그놈의 개수작이로군.’

올포원이 시스템을 통제하고, 업적을 누르고 있는 한. 하계에서 탈각과 초월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 역시 한때 올포원 때문에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였다. 때문에 그토록 바라던 칠흑의 후계가 되지 못했고, 몰락을 겪어야 했으며, 남편과 이별해야만 했다.

시스템은 플레이어들을 각성시키는 아주 좋은 도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다.

그래서 흡혈군주는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했다. 그동안 쌓은 모든 것들을 버리게 되더라도, 제약에서 탈피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디딘 곳이 바로 여기, 야네크의 암굴이었다.

덕분에 흡혈군주는 시스템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올포원의 마수로부터도 자유로워져 그토록 바라던 탈각과 초월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섣불리 탑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올포원이 즉각 이변(異變)의 탄생을 눈치채고 개입하려 들 게 빤히 보였으니.

그런데.

여기에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녀석이 보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탈각과 초월을 차례로 이루어 98층의 천계로 올라갈 길을 모색해야 하는 녀석이,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연우 말고도 또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하계에 발목이 묶여 성장도 하지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을 것인가?

용종이 멸종했던 이유가 그것이었고, 거인족과 흡혈귀가 결국 몰락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올포원. 그가 수천 년 동안 저지른 해괴한 짓거리로.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녀석이 탈각과 초월을 이룰 수 있다면…… 아니, 탈각으로 가는 길만 제대로 찾을 수만 있다면.’

사실 따지자면, 연우는 의도치 않게 자신이 만들어 낸 후인이기도 했다.

‘짐이 남긴 흡혈검을 가진 것이 저놈인 것도 같으니…… 따지자면 그렇게도 되지 않는가.’

원래 튜토리얼에 흡혈검을 남긴 이유는 그것을 노리고 찾아온 놈들을 모조리 잡아먹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수혈팩으로 쓰기 위해서였지만.

흡혈검을 온전히 취한 것으로도 모자라, 몇 단계 이상으로 개발시켜 놓은 걸 보니 제법 마음에 들기도 했다.

‘후인이 쓰러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선자(先者)로서 할 일이 아니기도 하지.’

더군다나 저기에 딸도 있었다. 비록 죽은 영체라고 하나, 소중한 딸이 다시 크게 다치는 건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소재지가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개 같은 것.”

흡혈군주는 결국 자신이 이번 내기에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질질 끌려다닐 운명밖에 안 되는 듯했다.

하지만 내뱉은 욕지거리와 다르게, 그리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때.

화아악!

여태 고통에 몸부림치던 네시가 기다란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검뢰가 휩쓸고 지나갔던 상처 부위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연우의 예상과 다르게 분명 검뢰는 네시의 명줄을 뜯기에 충분했지만, ‘완전히’라고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초월자를 뜻하는 다른 단어, 불멸자의 불멸(不滅)은 죽지 않는다는 뜻.

그 말인즉, 존재의 근간을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일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소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육체가 없는, 순수하게 개념적인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이곳은 녀석의 영역. 성역이었다.

부활이 재차 이뤄진다고 해도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검뢰가 완전히 무용한 건 아니었다.

네시의 기세는 이미 처음과는 전혀 달랐다. 무결참으로 존재의 근간이 베여 나간 까닭에, 격에도 큰 치명타가 가해져 존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마해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왕’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동안 다른 왕들의 위협이나, 새로운 도전자들로부터 방어전을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당장 몸을 숨겨 회복에 집중해도 모자랄 정도였지만.

그래도 네시는 한낱 필멸자에게 이렇게까지 다쳤단 사실이 크게 자존심 상했던지, 어떻게든 연우를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를 풀풀 풍겨 대고 있었다.

라나는 그런 연우를 보호하면서 당당히 네시에 맞섰다.

「넌…… 어떻게든 내가 지키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반드시. 그녀는 창을 꽉 쥐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힘없이 제자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고, 거기에 이성을 잃은 나머지 스스로도 몰락하고 말았던 그녀는.

지난 못난 일들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연우는 하나밖에 없던 제자의 친형. 그를 돕는 것이 제자를 돕는 길이기도 했다.

비록 온전히 힘을 낼 수 없는 영체이고, 설사 본신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해도 연우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실력이라지만.

그래도 의지만큼은 생전보다 더 또렷했다. 강렬한 눈빛이 이곳을 노려보는 네시를 꿰뚫어 보았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샤논과 한령, 레베카 등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당신, 제법 맘에 드는데?」

「옛 수정궁의 주인, 모든 바다의 지배자, 바다 위에서 사는 이들의 어머니…… 푸른 장미왕이 용맹하기로는 제일이라 들은 적이 있소. 한데,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방해가 된다면, 카인의 권속들이라고 해도 치워 버리겠다.」

라나는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전부 채운 죽음의 군단, 디스 플루토를 보면서 한 차례 으르렁거리고 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꾸우우-

이윽고 네시가 그들을 보면서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재차 심상 개변을 일으키려는데.

“……그런 일은 이제 내가 없게끔 해 주마, 딸아.”

결국 흡혈군주는 의지를 불태우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 발을 앞으로 성큼 내디뎠다.

자식 이기는 부모도 없다 하지 않은가. 라나가 저리 나서니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동생을 되찾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이, 오랫동안 남편과 딸을 찾고자 애썼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 공감 가는 면이 많기도 했다.

결국 흡혈군주는 스스로를 설득하듯이 자기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여태 숨겼던 ‘격’을 개방하였다.

화아아악!

그 순간, 사방을 휘몰아치는 거센 기운의 소용돌이에.

네시를 비롯해, 대치하고 있던 라나와 모든 권속들의 시선이 흡혈군주 쪽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저, 저, 저건 또 뭐야!」

「하데스……?」

「어머니!」

샤논이 가장 호들갑을 떨었고, 한령은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흡혈군주의 격이 하데스와 사뭇 비슷해 순간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라나는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놀란 눈이 되고 말았으니.

「어, 어머니? 흡혈군주가 저 정도였어? 미친!」

이미 흡혈군주가 올포원의 눈을 피해 초월마저 이뤘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그리하여 웬만한 대신격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더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신격을 터득하면 반드시 신성과 신화를 바탕으로 생성해 내야 하는 신위.

흡혈군주가 앉은 신좌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터득한 신성과 써 내려갔던 신화는 전부 ‘군주’라는 호칭에서 비롯된 것.

비록 이끌던 세력과 종족이 몰락하고 말았다지만, 와신상담의 마음가짐으로 재기를 이뤄 다시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바로 이곳, 마해에서!

콰르르릉-

흡혈군주에게서 비롯된 기세가 단번에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네시의 심상 세계를 모조리 부숴 버렸다.

네시의 의지로 부활했던 괴물들은 모조리 존재가 부정당하여 잘게 부서져 우수수 쏟아졌고, 무너지던 하늘은 다시 수복되면서 그녀를 상징하는 선홍색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뇌우가 잇달아 휘몰아쳤다.

증발했던 마해도 어느새 다시 채워져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리며 네시를 위협했으니.

세상이 우르르 떨렸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세상 전부가 네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흡령마!

단순한 에너지 드레인 계통의 스킬이었던 흡혈검에서 몇 번의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흡혈군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스킬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해의 왕.

흡혈군주, 그녀도 이곳 마해를 통치하는 지배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격은 네시보다도 월등하게 큰 것이었으니.

네시가 마해의 가장 깊은 곳, ‘심해’에서도 가장 외곽에서 머물고 있다면. 흡혈군주가 머무는 곳은 그보다도 훨씬 깊은 해저였다.

결국 네시도 거기에 짓눌려 몸이 빳빳하게 굳고 말았다.

흡혈군주의 저 자그마한 체구 너머로,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이 서서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굴고 있었다.

평상시에 부딪쳐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를, 지금 상태로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 이래 처음으로 존재의 위협을 받고 말았다.

그런 네시를 보면서.

꺼. 져. 라.

흡혈군주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끊어서 사념을 내뱉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네시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마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념 속에 담긴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자신이 죽을 날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라지기 직전, 네시는 여전히 라나의 품에 안겨 있는 연우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에는. 기필코. 이 수모를 갚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존재를 감췄다.

휘이이-

네시가 사라진 뒤, 흡령마의 존재도 거짓말처럼 훅 하고 꺼졌다.

「…….」

「…….」

「…….」

라나를 비롯한 권속들은 단순히 말 한 마디로 네시를 내쫓은 흡혈군주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 어떻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흡혈군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갑자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만하면 구경은 충분히 하지 않았나. 쥐새끼처럼 있지 말고 어서 나와라.”

“흐음! 쥐라니. 토끼인 저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인데용?”

여전히 요동치는 마해 한가운데에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 토끼굴처럼 보이는 그 속에서 누군가가 폴짝 뛰어나왔다.

그를 본 순간, 라나와 권속들은 흡혈군주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90센티미터는 넘을 덩치.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근육질 피부. 굵직한 목소리와 선 굵은 이목구비. 빡빡 밀어 댄 스킨헤드.

전체적으로 강렬한 인상이지만, 머리에는 새하얀 토끼 귀를 귀엽게 달고 애교 섞인 말투를 쓰는…… 이상한 몰골을 하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또 그딴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앉아 있었나?”

흡혈군주는 역겹다는 듯이 그런 토끼 귀의 중년인을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마해의 또 다른 왕이자, 전직 최고 관리자, 라플라스. 그가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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