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80화 (480/862)

5화. 토끼와 거북이 (5)

98층 천계는 크게 신과 악마의 진영으로 나뉘고, 신의 진영은 그 안에서 다시 여러 사회로 갈린다.

‘천교’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옥황상제를 비롯한 여러 대라신선들이 거대한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이예와 서왕모, 태산노군, 영보천존과 같은 위대한 존재들이 머무는 곳.

또한,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태고신을 배후로 두어 악마들조차도 그들과 대적하기를 꺼려 하는 편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천교와 대척점에 놓인 ‘절교’ 정도가 있을 뿐.

하지만 절교마저도 통천교주라는 걸출한 인물 아래에 통합되지 않았다면, 절대 천교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을 터였다.

이렇듯, 천교는 최고신인 옥황상제를 비롯해 그보다 더한 존재들을 수두룩하게 둔, 진정한 만신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최고 실력자를 한 명 꼽으라 한다면, 오제 중 맏이에 해당하는 황제 헌원을 둘 수 있었다.

끽구(契訽)는 바로 그런 황제 헌원이 가장 아끼던 장수였다.

천교를 가리키는 여러 전승 중 이런 것이 있다.

황제 헌원이 어느 날 곤륜산의 적수라는 곳에 유람을 갔다가 아끼던 보패, ‘현주’를 잃은 적이 있었다. 현주는 세상 만물을 통찰하고 우주의 미래를 엿보는 보물로, 그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때, 그의 신하들 중에 가장 지식이 뛰어난 ‘지’라는 신하를 시켜 현주를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다음에는 수만 리를 내다 보는 권능을 지닌 신하 ‘이주’를 시켰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

그러자 황제 헌원은 그가 가장 아끼던 장수인 끽구를 보내어 현주를 찾게 했다.

끽구도 결국 현주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다른 신하들과 다르게 수일을 쉬지 않고 탐색만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끽구는 미련하면서도 충실해서 황제 헌원이 어디를 갈 때면 절대 곁에서 떠나보내려 하지 않으려 했을 정도로 깊은 신의를 받았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어째서 황제 헌원의 곁을 비우고 삼신산의 수문장으로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탑이 탄생한 이래, 지난 수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삼신산은 현재 그가 모시는 주군, 옥황상제가 잠들어 있는 궁궐인 금궐운궁이 위치한 곳.

당연히 불청객의 접근은 절대 허락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이런 신성한 곳에서 무기를 뽑거나 살의를 드러내는 건, 옥황상제의 용안에 먹칠을 하는 일.

끽구의 눈이 돌아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블라드 체페슈와 질 드레는 그렇기에 튕겨 나갔다. 그들도 이곳이 누가 지키고 있는 장소인지를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쾅!

파스스-

끽구는 반고월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여전히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러다 그의 살벌한 시선이 연우에게로 향했다.

‘무슨 기세가……!’

말투는 어눌할지 몰라도, 천교와 천계의 최고 투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격만 따진다면 하데스나 티폰에 비해 뒤질지 모르지만, 투기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그들을 압도했다.

마치 오로지 ‘싸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연우는 자신의 오른쪽 날개가 가진 키워드, ‘투쟁’이 가야 할 길이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

끽구가 자신도 불청객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노릇이라, 연우는 바짝 긴장하면서 라플라스의 서찰을 꺼내려 했다. 부디 라플라스가 이곳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길 바라면서.

그런데.

“맘에 안 든다. 너!”

끽구는 연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삼신산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목청이 큰지 메아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연우가 있는 곳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인간, 칠흑 찌꺼기 갖고 있다. 후예다. 하지만 너 칠흑 아니다. 친한 친구 냄새도 난다. 그러니 보내 준다!”

‘뭐?’

끽구는 대체 칠흑왕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는 그동안 칠흑왕을 추종하던 죽음의 신, 악마들이나 타계의 신과 다르게, 명백한 적의를 띠고 있었다. 혐오의 감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연우가 짐작하기도 힘든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칠흑의 후예라 싫다고 말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냄새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거지? 연우는 끽구의 말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끽구는 연우의 생각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표홀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화아아-

끽구가 사라진 자리로, 운무가 흩어지면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어서 이곳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는 듯하다.

연우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뭔가에 홀린 것처럼 불의 날개를 움직이며 조용히 그쪽으로 활강했다.

* * *

전승에 이르기를, 삼신산은 본래 대여, 원교, 방허, 영주, 봉래의 다섯 산이었으니. 높이는 각각 3만 리요, 금과 옥으로 빚은 누각이며 구슬을 꿰어 만든 나무가 우거져 있어 아주 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랜 세월 동안 큰 거북의 등에 업혀 시공의 바다 위를 떠다니다 보니, 결국 두 산은 흘러가 버리고, 두 개는 풍파에 모습이 달라지고, 하나만이 그나마 온전한 모습으로 남았으니.

또한, 세 개의 영산은 영원(永遠)을 산 까닭에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시간이 정지한 것과도 같으니.

각각의 산은 수많은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삼신산은 각각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영주산은 과거를.

방장산은 현재를.

봉래산은 미래를.

세 개의 영산은 서로 산맥처럼 이어져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그리고 다시 미래에서 과거로 환원되는 원의 순환을 형성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16층의 구조와 비슷해.’

연우는 얼핏 앉은뱅이 세 여신의 신전들이 있던 곳을 떠올렸다.

비록 그가 우르드와 부딪치면서 여러 플레이어들로부터 신앙을 잃고 말았다지만, 그래도 그녀들이 가졌던 신성은 진짜였으니. 최근에는 영향력도 다시 살아나고 있는 추세라고 들었었다.

삼신산은 바로 그런 16층과 비슷했다. 그곳에도 세 개의 갈림길이 있어 각각 여신들의 신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던가. 이곳도 세 개의 산이 각각의 시간을 띠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16층은 한 번 선택한 갈림길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신탁이 다르고, 그 신탁에 따라 플레이어의 업적에 큰 굴곡이 남는다면.

이곳은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그대로 밟으며 차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단절과 연결.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였던 것이다.

‘따지자면 16층이 이곳을 모방한 것이겠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제아무리 위대한 존재들이라 할지라도 절대 쉽게 거스를 수 없는 것. 초월을 이뤘다느니, 우주적 존재라느니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흐름을 조정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역류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어느 누구도 98층이라는 감옥에 갇히지도, 이렇게 무의미한 전쟁만 반복하지도 않을 테지.

시공(時空)을 신위로 둔 신들이 각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각 사회에서 어떻게든 시공을 신위로 둔 신과 악마를 만들기 위해 생각지도 못할 수많은 참상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앉은뱅이 세 여신은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의 소속원들. 그녀들이 앉은뱅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 뒤로 우르드나 다른 세 여신 중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신과 악마들은 플레이어나 네이티브 같은 필멸자들을 개미처럼 취급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면서도,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대개 자신들이 받은 모욕을 잊지 않고 복수하려는 편이었다.

도리어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의 신성이 더럽혀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르드는 사도를 강제로 잃으면서 신력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신앙이 실추되면서 신성도 훼손되고 말았으니 연우에 대해 노심을 가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와 자매인 다른 두 여신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은 여태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스가르드 자체가 크게 그에게 이렇다 할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들 소속원 중 토르 같은 투신이나 군신만 관심을 가졌으니.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건 질색이었으므로, 연우는 나중에 따로 확인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오솔길을 계속 지나쳤다.

오솔길은 운무로만 가득 차 주변 풍광을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천통안을 획득했다지만, 시공의 흐름이 마구 흐르던 외부와 다르게 이곳은 아예 ‘보는’ 게 불가능한 느낌이었다.

인지 영역을 확대해도 마찬가지.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력을 뭉친 마력탄을 길 바깥으로 쏘아 봤지만, 운무는 그것을 그대로 집어삼키기만 할 뿐 아무 변화도 없었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기에 계속 오솔길을 헤쳐 나가기만 했다.

하늘을 날아 금궐운궁으로 가려 해도, 상공도 운무로 가득 차 있어 시도가 어려웠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오솔길에 경사가 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삼신산의 첫 번째 산, 영주산에 발길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주산’에 입장하였습니다.]

아주 짤막하지만 메시지도 망막에 떠올랐다.

동시에.

화아아-

주변 풍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겪었던 거지만…… 기분 더럽군.’

우르드가 그를 자극하려 이용했던 트라우마가 다시 눈앞에 비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죽을 위기에서 겨우겨우 자력으로 헤쳐 나와 본부로 되돌아가 기까지의 과정.

다만, 영주산은 우르드 때와는 다르게 그 뒤를 계속 비쳤다.

죽은 줄 알았던 ‘카인’의 복귀에 발칵 뒤집힌 공동 지휘부. 사건을 덮으려던 일부 상층부와의 충돌. 항명. 복수. 그들의 면전에다 던져 주었던 탄피. 항명죄로 감옥에 갇히고, 여기저기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쏟아지던 제안들. 그를 어떻게든 구원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아버지 같던 부대장.

어느 삼류 영화에서나 그려질 법한 상황을, 자신은 그대로 감수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젠장.’

피격(被擊)이 있었다.

연인은 자신을 지키려다 총탄에 맞았다. 범인은 그 자리에서 도주했다. 연우는 녀석을 잡지 못했다. 자신의 소맷자락을 붙잡으며 말하던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은 단 한 마디만 되뇌고 있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 말은 연우를 미치게 만들었다. 동생과 연인의 충돌에서, 그녀는 언제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동생을 용서해 달라, 여기서 그쳐 달라, 그런 말을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우가 매몰차게 굴 때에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떠날 때에도 그 말만 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래서 연우는 장웨이의 면전에다 탄피만 던져두고 나왔다.

피격 날에 방아쇠를 당겼던 건, 녀석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연인을 죽인 게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버렸다. 녀석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고, 주변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알아서 죽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나타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로 이곳, 탑에서.

17년도 크리스마스, 소말리아 심비리스 산에서 새겼던 탄피는 자신의 손에 있었다. 공허 어딘가로 휩쓸렸다던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연우는 그런 과거들을 무미건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치 재미없는 영화라도 관람하는 사람처럼.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 생각, 사고 등이 모두 떠올랐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했다. 이런 것에 휘말리기에는 그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온 상태였다.

도구. 샤논이 그를 보며 말했던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연우에게는 옛 과거조차도 이제는 쓸모없어져 버려야 할 도구에 불과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옛 연인과 나눴던 감정도 정말 사랑이 맞았는가 싶을 정도로 이미 마음은 너무 많이 닳을 대로 닳아 버린 상태였다. 이것을 두고 정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번씩 자신도 의문이 들었다.

[‘방장산’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우는 첫 번째 산을 전부 지나 두 번째 산에 다다르고 있었다.

현재를 보여 준다는 산. 이곳에서는 그가 겪고 있는 탑에서의 일들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었다.

동생과 있었던 추억들을 시작으로, 다시는 올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된 계기인 부고장을 받았던 순간, 탑에 입장하고, 튜토리얼을 겪고, 많은 인연들을 거치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던 순간순간들을 비쳤다. 그리고 현재에 다다랐다.

이 역시도 그에게는 영주산을 건넜을 때와 별다를 게 없는 장면투성이었다.

[‘봉래산’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산에 이르렀을 때.

거침없이 앞으로 걷던 연우는 처음으로 멈칫거리고 말았다. 분명히 세 번째 산에 들어왔다는 메시지를 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새카맣기만 한 어둠뿐. 이것이 어딜 봐서 미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과거도 현재도, 그에게는 별다른 자극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 두고 달리는 그에게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였다.

목표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 탑을 정복하여 최후에 부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래서 연우는 봉래산에 다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부디 자신이 바라던 순간이 보이기를, 볼 수 없어도 그와 관련된 무언가라도, 단서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만약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나온다면, 걷고 있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므로 기존의 계획을 송두리째 바꿀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지?

연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깐 고민하고 있던 그때.

촤아악-

갑자기 어둠이 무언가에 찢겨 강제로 흩어져 사라졌다.

연우는 어느새 봉래산의 가장 끄트머리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에는 전승에서처럼 자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동양식 궁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다섯 살가량 되었을까. 양 볼에 복숭아라도 달고 있는 것처럼 붉은 뺨이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입고 있는 비단옷이며, 주변에 흐르는 기품이 고고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연우는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저 아이가 라플라스를 마해에서 끄집어내었던 별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삼신산을 짊어지고 있는 큰 거북, 영귀의 화신체. 또한, 잠든 옥황상제을 대신해 그의 업무를 대신 관장하는 비서 격인 존재.

그런데 별주부는 아무 말도 없이 빤히 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매가 너무 깊어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마치 눈 속에다 공허라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 인간 맞아?”

그러다 연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별주부가 물었다. 연우가 뭐라고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아무리 칠흑의 후예라고 해도, 이미 윤회전생의 순환 고리 속에 있는 한, 미래가 없을 수가 없을 텐데. 아니,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설사 신과 악마라고 해도, 저 ‘바깥’의 존재들이라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야. 운명이라는 건. 그런데도…… 너에게서는 미래가 보이질 않아. 아니, 애당초 미래가 없어.”

뭐?

연우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별주부는 의심이 아니라, 아예 확신을 하고 있었다. 운명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거론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태연한 존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별주부는 여전히 제멋대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모든 지식을 관장하고 통달한 현자처럼. 그윽한 눈을 하고서.

“이런 경우는 단둘뿐이야.”

그가 힘을 주어 말했다.

“죽거나. 혹은.”

순간, 검은 눈이 빛났다.

“이미 죽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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