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02화 (502/862)

2화. 시나리오 퀘스트 (2)

아주 잠깐이지만.

연우는 많은 고민을 했다.

전사장의 신물을 부여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작게는 동생과 헤노바 간의 추억이 담겨 있는 마장대검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개량했던 크라슈나의 단검도 있었다.

비그리드라는 성검이 있으니, 거기에 걸맞게 갑옷 대용으로 입고 있는 코트, 마장을 강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니면 칠흑왕의 형틀에 꽂아 아직 덜 해제된 권능을 깨워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고.

혹은 아예 비그리드와 결합시켜서 마성을 다시 제압해 볼까 하는 고민도 해 보았지만, 자칫 마성이 더 완벽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릇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 제외시키기로 했다.

아니면 죄악석이나 드래곤 하트도 있었고, 하데스의 식령검이나 하늘 날개 같은 스킬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이렇듯 영성을 부여하면 효과가 좋을 곳은 아주 많았으니. 차라리 신물을 잘게 쪼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기나긴 고민 끝에 연우가 선택한 곳은.

푹!

바로 자신의 그림자였다.

칠흑왕의 권능과 신격의 정수가 잠재된 곳. 권속과 망령들이 잠드는 곳이며, ‘권역’이기도 한 이곳에 영성을 부여한다면 앞으로 다 양한 것들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파아아-

마치 늪 속으로 빠지듯이, 전사장의 신물이 그림자 안쪽으로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그림자가 잘게 물결을 일으키면서 꾸역꾸역 외연을 확장하더니 곧 거칠게 요동쳤다.

[‘그림자의 영역’에 ‘거인족의 대신물’이 부가되어 강화되었습니다.]

[영성이 깃들었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그림자는 자체적인 영성을 띠며, 당신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움직일 것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가능성을 깨우세요.]

그림자가 반갑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더 부르르 떨렸다.

그 외에는 외양적으로 이렇다 할 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그림자 속에 깃들어 있는 권속들과의 연결 고리가 더 강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소울 컬렉션도 마찬가지. 더 긴밀해지면서 망령들이 내뿜는 사념들이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강한 마이너스 에너지가 풍겨, 만약 상격을 얻기 전에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자칫 정신이 거기에 휩쓸렸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긴밀한 연결이었다.

연우는 그렇게 흡족한 미소를 띠면서 보상으로 받은 히든 스테이지의 티켓을 찢었다.

우우웅-

발밑으로 푸른 포탈이 열렸다.

이제 거인왕의 계승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데비히의 흔적을 찾아야 할 때였다.

팟!

[히든 스테이지, ‘무너진 거인의 땅’에 입장했습니다.]

* * *

[시나리오 퀘스트 / 왕의 증명II]

설명: ‘기어 다니는 혼돈’이 만들어 낸 미몽으로부터 거인족의 마지막 전사들을 구해 낸 당신은 이제 ‘대전사’의 칭호를 받으며, 새로운 거인왕의 계승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거인왕의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인족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사멸을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기어 다니는 혼돈’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거인왕 ‘발데비히’가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기어 다니는 혼돈’으로부터 제재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당신은 탑 내에 거인족의 사멸과 관련된 어떤 모종의 장소가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60층의 히든 스테이지, ‘무너진 거인의 땅’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외부에 공개가 거의 되지 않은 미지의 장소입니다. 거인족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으며, ‘기어 다니는 혼돈’을 비롯한 타계의 신이 남긴 흔적들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부터 ‘무너진 거인의 땅’을 탐험하세요.

그리고 유적지들을 자세히 조사하여 이곳에서 지난 수천수만 년 전에 거인족에게 정확하게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건지, 사멸의 이유를 밝혀내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거인왕의 뒤를 잇고자 하는 후인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일 것입니다.

제한 조건: ‘왕의 증명 I’의 완수자. 칭호 ‘대전사’의 소지자.

제한 시간: -

보상:

1. 두 번째 왕의 증표

2. 해골왕의 갑옷

3. 연계 퀘스트 ‘왕의 증명 III’의 참여

연우는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창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멸의 이유를 확인하라?’

연우는 전사장의 영혼이 사라지기 직전에 남겼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부디 기어 다니는 혼돈을 조심하라던 말.

자세히 듣지 않았어도, 그 말 속에 아주 많은 사연이 담겨 있으리란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해골왕이란 존재는 전사장의 영혼이 기어 다니는 혼돈과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나게 된 존재, 즉, 언데드였지. 하지만…… 그는 칼라투스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어.’

고룡 칼라투스가 사라진 옛 종족들을 안타까워하며, ‘바깥’ 우주의 지식을 얻어서라도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어 다니는 혼돈과 접촉했던 것과 다르게.

마지막 거인왕 발데비히는 ‘어쩔 수 없이’ 기어 다니는 혼돈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혼돈의 거마라는 존재로 있으면서도 간간이 기어 다니는 혼돈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분명히 분노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연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원수에 대한 분노.’

마지막 거인왕이 기어 다니는 혼돈에게 어떤 약점이라도 잡혔던 걸까?

단순히 그들이 ‘정복’을 위해 탑을 오르려 했고, 그 와중에 올포원에 가로막히게 되자 자신들끼리 대전사를 뽑기 위해 내분이 일어났다는 식의 이유 속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이 있다는 뜻이었다.

‘계시록의 원전 속에는 타계의 신과 관련된 정보들도 많았다.’

연우는 창공 도서관에서 봤던 정보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훑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은 오랜 삶에 지친 나머지 유희와 열락(悅樂)을 갈망하는 존재였지. 어쩌면 거인족들이 놈에게 약점이 잡히고, 그로 인해 꼭두각시 인형처럼 놀림을 당했던 건 아닐까?’

아직은 억지에 가까울,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연우는 그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인족처럼 자긍심이 넘치다 못해 파괴적인 종족이, 그렇게 허무하리만치 무너질 리 없었을 테니.

아무리 기어 다니는 혼돈이 일반적인 초월자들도 섣불리 대립하기를 꺼려 할 정도로 거대한 우주적 존재라고는 하지만.

종족 전체를 그렇게 마음대로 갖고 놀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약점은 아마 이 스테이지와 관련이 있을 테고.’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발데비히도 그래서 여기까지 닿았던 건가? 그동안 정우를 찾지 못하면서 진행했던 퀘스트가 바로 이것이었고?’

[용신안]

[초감각]

연우는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인지 영역을 사방으로 확장시켰다. ‘무너진 거인의 땅’을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있는 곳은 밀림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밀림과는 궤를 달리했다.

숲을 이루는 나무 하나하나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다. 티탄이나, 혼돈의 거마에 버금갈 만큼 큰 크기였다.

생김새도 끔찍했다.

그것은 시체였다. 죽은 지 얼마나 흘렀는지 도무지 짐작하기도 힘든 거인의 사체가, 나무줄기나 가지 따위와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런 것이 수만 그루…… 아니, 밀림의 규모를 본다면 수십만 그루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사체들의 표정도 대부분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고문이라도 당했는지, 평온한 표정인 것이 없었다. 그밖에도 대부분 두려움에 젖거나, 무언가에 쫓기듯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연우는 단번에 이곳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생전에는 뛰어난 전사였을 게 분명한 그들을, 이렇게까지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넣은 존재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생체 실험을 당한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부패가 여전히 진행되어 썩은 내가 진동했고, 바닥도 너무 질퍽질퍽했다. 일반적인 늪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시독(屍毒)도 간간이 올라왔다. 미처 나무가 되지 못한 거인족의 사체들이 썩어 만들어진 지형이란 뜻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거인족이 그렇게 되었을 테지.

[스테이지 내에 시독과 악취가 진동합니다.]

[경고! 이곳은 중앙 관리국에서도 관리를 포기한 지역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접근을 삼가고, 즉시 되돌아가시기를 권고합니다.]

[강한 독기가 체내로 스며듭니다.]

[상태 이상이 발생합니다.]

[상태 이상이 발생합니다.]

……

[극심한 고통이 육체를 지배합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극심한 독기가 육체를 지배합니다. 중독 상태에 빠집니다.]

……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

[스킬 ‘무채독’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16.7%]

[스킬 ‘무채독’이 상시 작동합니다. 새로운 독의 성분을 분석합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와 흡사한 데이터를 검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 자세한 분석에 들어갑니다.]

[옵션 ‘베놈 블러드’와 ‘스피리츄얼 스파이트’를 강화시킵니다.]

연우를 따라온 천계의 시선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케르눈노스가 끔찍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비마질다라가 새로운 형태의 전장에 호기심을 내비칩니다.]

[다수의 신들이 고개를 돌립니다.]

[다수의 악마들이 이런 곳이 가능하구나 감탄합니다.]

……

[모든 죽음의 신들이 스테이지 곳곳에 만연하는 죽음의 향기에 미소를 띱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들이 스테이지에 남아 있는 ‘죽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적의를 띱니다.]

중앙 관리국에서도 관리를 포기한 곳.

그 메시지만으로도 이곳에 대한 설명은 충분할 것 같았다.

거인족의 사체들이 내뿜는 시독과 악취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만약 상격을 이루지 못했으면 연우도 단번에 혼절하거나, 심지어 비명횡사를 했을지도 모를 만큼 위험천만했다.

‘이런 곳을 발데비히가 돌아다녔다고? 대체 어떻게?’

무엇보다 이곳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기어 다니는 혼돈만 아니라, 다른 타계 신들의 마력도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

퀘스트 창에서 언급한 여러 타계의 신들이 남긴 흔적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걸까. 탑에서 사용하는 마력과는 근원부터가 달랐다.

마해와 비슷한 환경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의미로 마해보다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곳은 거인족들이 죽으며 남긴 망념도 짙게 배어 있으니.

우선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발데비히부터 찾아야 무엇이라도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연우는 마장대검을 뽑아 검뢰를 크게 일으켰다.

파직, 파지직-

밀림 곳곳으로 확장하던 그림자도 아까 전부터 도중에 막힌 상태. 아무래도 이 괴상한 밀림을 밀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파지지직!

드래곤 하트의 출력을 거세게 끌어 올리자, 검뢰가 검붉게 타오르면서 하늘 위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밀림을 깡그리 밀어 버리기 위해 마장대검을 수평으로 휘두르려던 그때.

꾸어어!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거친 울음소리가 울리면서 히든 스테이지를 격동시켰다. 빽빽하게 선 나무들이 마치 태풍에 휩쓸리는 대나무처럼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격의 크기에 연우는 등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여태 초감각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튀어나온 것이라 등골이 쩌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들었을 때.

연우는 밀림이 만들어 내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사람보다도 훨씬 큰 수십 개의 눈을 끔뻑이면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형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탑 내에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타계의 신이 정확히 이쪽을 보며 의념을 전달하고 있었다.

너. 는.

누. 구.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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