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15화 (515/862)

15화. 전사단 (1)

휘휘휘-

「간만에 맡아 보는 바깥세상의 공기군.」

「새로운 명계의 왕께서는 이번에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셨을까요?」

「그야 그분의 명을 들을 때까지는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이유가 있으니 부르신 것 아니겠나.」

키클롭스 3형제는 간만에 맡아 보는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이미 죽은 몸뚱이인지라 대기를 느낄 수 있는 폐부는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을 적의 습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원래 막내였던 아르게스는 두 형들과 다르게 산 자였지만, 타르타로스에서 탈출을 시도할 때 자결하여 연우의 권속이 되길 자처했던 디스 플루토와 뜻을 함께해 그동안 그림자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중이었다.

덕분에 키클롭스 3형제는 전부 죽은 몸이 되어서도, 연우의 권능 덕분에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연우에게 평대가 아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 형제들에게는 은인인 데다가, 그 전에 모셨던 주군인 명왕 하데스의 후인이기도 하니 저절로 자세를 숙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그들 형제는 연우와의 연결 고리를 통해 느끼고 있었다.

연우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저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못 본 사이에 부쩍 영혼이 많이 자라 있었던 것이다. 처음 소환되었을 때에는 칠흑왕의 후예가 바뀌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이미 사왕좌의 신위를 전부 소화한 것 같으니, 아마 머지않은 순간에 하데스와 비등한 위치까지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나긴 올림포스 역사에서도 이만큼이나 괄목할 성장을 보여 준 예는 거의 없었으니.

끽해야 제우스의 피를 이어받았던 영웅, 헤라클레스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마음 속 깊이 연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거신들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대들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있다.”

「……?」

「……?」

「……?」

위대한 명계의 왕께서 자신들에게 부탁이라니?

세 키클롭스는 큰 눈을 끔뻑거렸다.

* * *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빌어먹을.」

「……우리 새로운 명계의 왕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잠시 잊고 있었군.」

「샤논 공(公)의 말이 맞았어.」

구시렁구시렁.

키클롭스 3형제는 연신 불만 섞인 어투로 중얼대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우가 그들 형제에게 내린 명령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그만큼 험난한 것이었다.

진지 구축.

현재 자신이 머물고 있는 마을에 요새를 구축하고, 이곳 전체를 전사단이 머물 수 있는 진지로 바꿔 달라고 했던 것이다.

키클롭스 3형제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소문난 대장장이였던 만큼, 단순히 무구와 병기 제작에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토목, 가교, 측량 등 야전과 건설의 공병과(工兵科)에 있어 전체적으로 두루 능숙했다.

한창 타르타로스에서 티탄-기가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에 설치되었던 여러 성역들도 실은 그들이 오래전에 만들었던 것이었으니.

디스 플루토가 전투에 나설 때마다 세웠던 베이스캠프도 실은 키클롭스 3형제가 남긴 교본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연우는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 내력과 재주를 지녔는지를 알고, 곧장 반거인 마을을 요새로 변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앞으로 이곳 히든 스테이지를 자신의 성역으로 삼을 예정이며, 이곳은 그 중심지인 신전이 들어설 곳이니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사실 명령을 수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평생 그들이 하던 일이었으니.

오히려 새로운 명계의 왕이 이제 슬슬 자신만의 신화를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문제는 마을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점이었다.

어디 동네 시골 마을도 이것보단 낫지 않을까.

한평생 정제된 대리석 건물과 번듯한 도시만을 보고 자랐던 그들로서는 번잡하기 짝이 없는 마을을 보고 경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마을을 세운 이들이 누군지 알았을 때는 얼마나 대경했던지.

「아니. 그런데 정말 저들이 그 악명 높은 거인족의 후예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질 않는데…….」

맏이 브론테스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인족이 유명한 것은 비단 그들이 단순한 침략자이거나 전투광이어서만은 아니었다. 계속된 전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병참 능력과 공병 기술, 그리고 사회 체재가 정교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칼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능력만큼이나, 기가 막히게 만들 줄 아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키클롭스 3형제는 거인족의 야장 기술을 어떻게든 훔쳐 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었으니.

그랬던 이들의 후예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영락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숫제 영락이 아니라, 아예 퇴화 수준이 아닌가.

문제는 연우가 그들의 신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었으니. 거인족을 부활시킬 거란 말을 들었을 때에는 ‘제정신인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런 것을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명령대로 형제들은 각자가 하나씩 임무를 도맡아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브론테스는 요새 구축을, 스테로 페스는 진지 개설을, 아르게스는 무구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히 일손은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연우의 성장에 따라 그들도 생전의 신력을 거의 되찾은 데다가, 부가 언데드를 잔뜩 깨워 돕기 시작하니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거기다 어째서인지 연우에게 코를 꿰인 여러 신과 악마들이 최고의 ‘축복’과 ‘가호’를 요새에 걸어 주는 통에 완벽을 기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숨이 나오는 것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물론, 연우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으니, 그들 형제끼리 있을 때만 그러고 있었다.

인성왕. 샤논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왕! 왕왕!

웬 강아지 한 마리가 헥헥거리면서 그들의 발치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

「이건 또 뭘 하는 개인고? 왜 이런 곳에 이런 놈이 있는 거지?」

히든 스테이지가 현재 기어 다니는 혼돈의 성역이란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바.

그래서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조차 여기서는 찾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웬 누렁이 한 마리가 뽈뽈 돌아다니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거.」

진실을 꿰뚫는 눈을 갖고 있는 스테로페스가 누렁이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펜…… 리르 같은데?」

「펜리르?」

「둘째 형님. 혹시 니플헤임의 그 개 같은 놈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르게스는 오래전 천계에서 만난 적이 있던 펜리르를 떠올리고,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펜리르가 내뿜던 위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남매인 ‘세계를 휘감는 뱀’ 요르문간드, ‘지옥의 여군주’ 헬과 함께 니플헤임을 상징하던 대악마.

녀석이 크게 포효를 터뜨릴 때마다 부서지는 세계가 몇이었고, 흉포한 이빨을 드러낼 때마다 찢겨 나가던 신이 몇이었던가.

특히 녀석의 이명은 아주 흉포했으니.

신을 먹는 자.

펜리르는 적으로 간주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먹어’ 치웠다.

말 그대로 잡아먹었다. 그리고 소화하여 자신의 마기를 증폭시키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엔 불멸이니 초월이니 하는 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펜리르가 전장에 등장할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병사들이 숱하게 많을 정도였다.

그랬던 놈이 이런 누렁이가 되어 꼬리를 흔들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테로페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다만.」

「정말 뭔 말도 안 되는 개 같은 농담을…….」

아르게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는데.

왕왕!

갑자기 누렁이가 아르게스를 보면서 크게 짖기 시작했다.

왕!

그 모습이 마치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듯한 모습.

아르게스는 자신도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등골을 쭈뼛 세웠고, 스테로페스는 누렁이가 짖는 소리를 얼추 해석하고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아, 아무래도 이른다는 것 같은데?」

「…….」

「…….」

와앙!

두다다-

「마, 막아!」

누렁이가 짧은 다리를 놀리며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키클롭스 3형제는 일제히 녀석을 잡기 위해 와락 달려들었다.

* * *

키클롭스 3형제가 소환된 이후.

반거인 전사단의 무장은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그동안에도 샤논의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그의 탐탁지 않은 기색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반거인들의 의욕이 계속 바닥을 치고, 불성실한 태도가 갈수록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노히테라는 꼬맹이 녀석이 의욕을 보인다지만, 여태 한 번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던 놈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는 전투에 강제로 내몬다고 해도, 죄다 타계의 신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으리라.

다만, 발데비히는 언제부턴가 진지하게 고민하기만 할 뿐, 연우를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과 악마의 사절들은 그저 연우가 시키는 대로 요새에 가호를 내리고, 무구가 제작될 때마다 축복을 걸어 주는 등, 계속 이래저래 밀려오는 일감에 치여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그사이 마을은 계속 증축을 거듭하다가, 어느새 요새라 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변모하고 말았으며.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는 휘황찬란한 무구로 무장한 전사단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절들은 그런 전사단을 보면서 억지로 욕지거리를 삼켜야만 했다.

“젠장…….”

“저렇게 아까운 것들을……!”

그들은 휘황찬란한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단을 보는 내내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처럼 오로지 신물 급의 아티팩트로만 무장한 군단을 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하나같이 최상위 신들이 걸어 준 최고급 축복과 권능이 깃든 것이라면?

거기다 저 신물들은 애당초 키클롭스 3형제가 한 달 내내 밤을 새워 가며 두들겨 대면서 만들어 낸 명작(名作)들. 키클롭스 3형제라면 익히 다른 사회에도 소문이 자자하게 퍼질 정도로 뛰어난 명장들이며, 그들이 제련한 무구는 천계 내에서도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될 정도였다. 전사단은 오로지 그런 것들로 무장을 한 것이다.

거기다 듣자 하니 재질도 아다만틴 노바의 주재료인 혈루석과 혈정이라 하지 않는가!

아마 여러 사회들을 뒤져도, 저만한 가치로 무장한 부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터.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도 유분수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러면서도 반거인들은 입고 있는 무구며 들고 있는 병장기가 갑갑하다는 듯,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

신과 악마들에게는 저 귀한 것들을 한데 모아다가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아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저것들을 자신들에게 주었더라면, 사회의 병력을 강화시켜서 다가올 올포원과의 전쟁에서 큰 이점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연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도, 단단히 결속된 동맹으로서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그런 걸 받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출발한다.』

연우의 진언과 함께, 전사단의 출정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그동안의 훈련이 헛된 건 아니었는지, 오와 열은 얼추 맞춰서 행군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사절들의 눈에는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데.

『뭣들 하는 거지? 따라오지 않고?』

“…….”

“…….”

“…….”

사절들은 그들의 귓가에 울리는 연우의 어기전성을 듣고, 서둘러 행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들도 이 결과가 빤히 보이는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할 듯싶었다.

* * *

「지난. 조사. 결. 과. 타계의 신들이. 머. 무는. 구역은. 크게. 일곱. 곳으로. 분류. 할 수. 있었. 습니다.」

행군을 하는 동안, 연우는 부에게서 지난 시간 동안 이뤄졌던 조사 결과에 대해 듣고 있었다.

부는 연우의 명령에 따라, 히든 스테이지 각지로 언데드들을 뿌리면서 상세하게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덕분에 연우는 이미 히든 스테이지의 지리 지형을 전부 소상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부의 보고에 따르면, 기어 다니는 혼돈의 성역은 크게 7개로 분류할 수 있었다.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중심지’를 중심으로, 나머지 여섯 개의 크고 작은 구획들이 주변에 포진해 ‘중심지’를 보호하고 있는 형태였다.

부는 이 ‘중심지’를 중심 성역이라고 칭했다.

「기어. 다. 니는 혼돈은. 중심 성역에서. 무언. 가를. 꾸미고. 있는. 듯. 했습니다.」

“뭔가를?”

「예. 의념체(意念體)가. 감지. 되.었습니다.」

확실히 기어 다니는 혼돈은 연우가 선전 포고를 직접 날렸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간간이 하위 계급의 타계 신들이 요새 근처로 다가온 적이 있긴 했지만, 그런 놈들은 나타나는 족족 쇠사슬로 묶어다 공허에다 처박으니 언제부턴가 접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연우로서는 전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괜찮았지만, 한편으로는 기어 다니는 혼돈이 무슨 꿍꿍이인지를 알 수가 없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은 필멸자에 불과한 자신이 칠흑의 후예를 자처하는 것에 대해 아주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상태.

거기다 칼라투스에 이어서 거인족까지 줄곧 방해만 해 대고 있으니 빨리 해치우고픈 마음이 클 터였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탑에 대한 개입을 서두르고픈 녀석으로서는 여태 가만히 있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니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연우로서는 상상도 못 할 뭔가를.

그도 아니면.

‘단순히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렇게 쉽게 여길 수도 없겠지.’

여하튼 연우로서는 타계의 신들이 머문다는 일곱 구역들을 하루라도 빨리 탈환하여 성역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전사단의 전력이 터무니없다는 점이었지만.

다른 이들의 우려와 다르게, 연우는 이미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둔 상태였다.

“발데비히.”

연우의 부름에 옆을 따르고 있던 발데비히가 영 찝찝하다는 표 정으로 중얼거렸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희 동족을 위한 길이다만.”

『하! 어쩔 수 없지.』

발데비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여태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뒤집어 바닥에다 탈탈 털었다.

그러자 온갖 잡동사니가 우수수 쏟아졌다.

[신의 사회, ‘말라흐’가 당신이 가져온 물건에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신의 사회, ‘데바’가 봇짐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

[악마의 사회, ‘절교’가 그 물건들이 무엇이냐며 묻습니다.]

……

여러 사회들은 물론, 모든 사절들도 발데비히가 가지고 온 물건이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에.

“히이익!”

“저, 저게 왜 저기에……!”

“그동안 어디에 갔나 싶어서 찾았는데! 왜 저기 있는 거야!”

갑자기 이쪽을 보던 반거인들이 소스라치게 기겁했다. 여태껏 의욕 없어 보이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

그들은 당장에 전열을 이탈해 발데비히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별안간 하늘 위에서 나타난 부가 대규모 마법을 걸어 그들의 발을 묶어 버렸다.

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공 지진이 일어난 반거인들을 보다가, 바닥에 쏟아진 물건 중 몇 개를 집었다.

일기장이었다.

“‘13월 11일. 오늘 옆집 이바에게 고백을 하다가 차였다. 어젯밤에 이불에다 지도를 그린 것을 엄마에게 들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가 밉다.’ 이런.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이불에다 그런 짓을 했던 건가? 불쌍하군.”

“……!”

“……!”

“이런 것도 있군. ‘15월 32일. 나는 아무래도 선택받은 존재인 것 같다. 어둠의 다크니스가 나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건 좀 중증인데?”

반거인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비명을 질러댔다. 안 돼! 그만 둬! 하지만 그들의 절규는 죄다 사일런스 마법에 지워졌다.

연우는 수많은 이들이 있는 앞에서 그들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옛날 일기며 사춘기 시절에 끄적였던 소설들, 몰래 집 한편에 숨겨 뒀던 춘화도(19금 잡지) 따위를 흔들어 재꼈다.

그럴 때마다 치부의 주인들은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부. 이것들 전부 다 놈들 중심지 한복판에다 던져 놔.”

「명을. 받듭니. 다.」

화악-

그 물건들이 모조리 포탈을 타고 사라진 뒤.

연우는 황망한 얼굴이 되어 자신을 쳐다보는 반거인들을 돌아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뭐 해, 다들 안 뛰고? 남들이 보기 전에 가지러 가야지, 안 그래?”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