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24화 (524/862)

24화. 전사단 (10)

[이곳은 탑 외 지역에서도 한참 벗어난 지역입니다.]

[위치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무단으로 탑을 이탈하였습니다!]

[탑을 이탈하였습니다!]

[경고! 현재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탑 외 지역에서도 한참 떨어진 영역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플레이어 ###의 리타이어 의사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임시 휴면’ 상태가 적용되었습니다.]

[이곳은 탑의 시스템에서 한참 벗어난 영역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경우, 리타이어 의사를 밝힌 것으로 간주되어 플레이어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조속히 스테이지로 되돌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임시 휴면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시스템의 가호를 받지 못합니다. 플레이어 ###와 관련된 모든 기능이 정지합니다.]

연우를 닮은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혼돈을 쫓아 도착한 곳은 오로지 어둠뿐이라 할 수 있는 세계였다.

하지만 저 멀리서 수많은 빛들이 다채로운 빛깔을 내면서 무리를 이루거나, 따로 떨어져서 여러 개의 아름다운 장관을 그려 내고 있었다.

저 빛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크기를 가진 별들이었다.

우주.

연우는 탑에서도 한참 떨어진 우주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공기도, 중력도, 시스템도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는 곳.

일반적인 생명체라면 절대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연우는 마력을 잔뜩 끌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의념 통천을 발휘했다.

그러자 기압 차로 조금씩 망가지려던 육체가 바로 지탱되면서 또렷한 의식을 갖출 수 있었으니. 게다가 막대한 마력으로 인해 따로 산소가 없어도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우주에서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도리어 의념을 외부로 크게 방출한 순간, 연우는 우주의 대다수를 메운 암흑 물질 속에 녹아 있는 거대한 생명체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이것을 두고 정말 ‘생명체’라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것은 이미 별의 크기를 아득하게 넘어선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항성, 태양의 크기가 지구의 109배이지만 우주에서는 아주 작은 크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이미 태양계를 넘어 성단 내지 은하에 범접하는 규모라 할 수 있었다.

한낱 인간 따위는 한 톨의 먼지만도 못한 아주 작은 크기에 불과했으니.

‘이것이 기어 다니는 혼돈인가.’

크기만 따진다면, 마해를 이루고 있던 극권의 군주보다도 훨씬 큰 것 같았다.

연우는 어째서 기어 다니는 혼돈을 비롯한 여러 타계의 신들이 인간과 같은 필멸자들을 한낱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겼는지를 알 것 같았다.

애당초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 크기 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감수성이 풍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낱 벌레나 박테리아를 앞에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

물론, 모든 타계의 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크기를 지닌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녀석들이 평소 여러 필멸자들이 우글대기만 하는 탑을 얼마나 가소롭게 여겼을지, 그러면서도 전혀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던 탑을 보며 얼마나 화가 났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탑 속에 잠들어 있는 존재 중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것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태초신이나 혹은 창조신 같은 최상급 위계를 지닌 이들. 대지모신도 기어 다니는 혼돈에 비해 끗발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그런 그들을 모두 ‘탑’ 속에 봉인시킨 천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그리고 탑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한 번 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기어 다니는 혼돈과 마주했다고 해서 주눅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마성과 융화된 시점부터, 그도 절대 여기에 못지않은 의념을 품고 있었으니.

무지막지하게 큰 기어 다니는 혼돈의 본체를 보았을 때에도 ‘두렵다’는 느낌보다는 ‘뭐가 이렇게 무식하게 커?’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덩치만 키워서야 오히려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만 있을 뿐, 전혀 효율적인 면이 없잖은가?

연우는 마력과 함께 의념을 외부로 있는 힘껏 방출했다.

화아악!

의념은 이 끝도 없을 우주를 전부 뒤덮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한하게 확장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툭 멈췄다. 그리고 기어 다니는 혼돈의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여태껏 그 크기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어 그냥 표면 의식 중 일부만 읽어야 했던 녀석과 동격(同格)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여기까…… ……나? 참으…… 재미…… 놈이…… ……군.』

녀석이 발산하는 사고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으니.

비록 완전한 해석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된 셈이었다.

『말했을 텐데? 목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아, 네놈에게는 목이란 게 없어서 그게 안 되나?』

연우는 차갑게 웃으면서 녀석을 쏘아붙였다. 제대로 의사가 전달 되어야 하니 진언을 가득 섞었다.

꾸어어!

기어 다니는 혼돈이 기괴한 울음을 토해 냈다. 진공 상태이니 진짜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암흑 물질이라는 매질이 크게 울릴 정도의 진동이었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수만 년…… 아니, 수십만 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주의 절대자로 살아왔던 그에게 이렇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자가 있었던 게.

‘안쪽’의 부왕, 경계의 거주자조차도 그에게 정면으로 부딪쳐 오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연우와의 충돌은 너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연우는 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낱 미물만도 못한 존재라 치부했던 이가 아니던가!

아무리 많은 신비와 이적을 동반했다고 해도, 벌레가 단번에 이만큼 진화한다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었으니.

기어 다니는 혼돈은 이 유희극을 절대 쉽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그런 녀석의 생각은 고스란히 연우에게 전달되었고.

『계속 웃을 수 있는지 한번 보지.』

연우도 차갑게 웃으면서 비그리드를 아래로 내리쳤다.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엑스칼리버’를 개방합니다.]

[전승: 신왕 해방]

마성은 비그리드에 잠재되어 있으면서 그 속에 있던 수많은 전승들을 차례대로 깨우는 데 성공할 수 있었고.

그 마성과 융화된 순간, 연우는 비그리드가 품고 있던 대다수의 전승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으니.

검뢰가 한껏 더해진 비그리드가 화려한 빛을 토하면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정중앙을 갈랐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그 안에 최대한 빨리 녀석을 처치한다.’

시스템으로부터 리타이어 인장을 받게 된다면 탑으로 되돌아갈 길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 그 전에 녀석을 처치해야만 했다.

퍼퍼퍼펑-

그렇게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우주 한 공간에서, 두 절대적인 존재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빛과 폭발이 우주를 뒤흔들어 놓았다.

* * *

한편, 그 시각.

『……!』

『……우리의 신께서는 대체 어떤 존재이신 건가?』

반거인들은 한창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해 그들 모두가 강한 충격을 받고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채널링을 통해 전달된 강렬한 의념이 그들의 허리를 쭈뼛 서게 만들었다.

비록 그들이 모시는 신이 어디에 계시는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으나, 신께서 어떤 존재를 맞닥뜨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는 절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아득하게 별을 넘어서서 녀석과 겨루는 모습이라니!

그것은 마치 전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태초 신화의 한 장면을 따온 것처럼, 강렬한 영감을 그들에게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발데비히였으니.

사도로서 이곳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아 동료들을 추스르려던 그로서는 더 강한 떨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께서 저토록 강대한 존재와 싸우고 계시는데, 자신들이 이렇게 쓰러져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히든 스테이지에는 많은 타계의 신들이 남아 있었다.

비록 녀석들도 대다수가 중상을 입은 몸이라지만, 그래도 개념적인 존재인 만큼 자체적인 치유 속도는 반거인보다 훨씬 위였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내린 명령이 있으니, 아니,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다시 자신들을 집어삼키려 들 터였다. 놈들은 가축으로만 여겼던 존재들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단단히 뿔이 난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발데비히는 대검을 지팡이 삼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몸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우선 전열을 먼저 재정비해야만 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결국 이딴 꼴을 겪게 되다니! 애당초 기어 다니는 혼돈과 척을 지는 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차라리 잘되지 않았나. 이로써 귀찮은 존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니.』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들린 대화에, 발데비히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크게 틀면서 대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대검이 이대로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폭발. 발데비히는 검신을 타고 흐르는 신력 때문에 내장이 뒤틀려 다시 피를 게워 내야만 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어느새 전사단을 삥 에워싼 사절들을 노려보았다.

놈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이쪽으로 겨누며 살벌한 기세를 흘려 대고 있었다. 거기서 풍기는 의념은 딱 한 가지였다.

살의.

『네놈들…… 설마 배신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배신? 웃기는군.』

녀석들 중 대표로 선 놈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애당초 한낱 가축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 우리를 사냥개로 부리려던 건 너희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사냥개에게 물릴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자, 기다렸다는 듯이 등을 돌린 것이다.

으드득!

발데비히는 이가 잔뜩 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른 반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분노를 표하는 것과 다르게 머릿속은 어떻게든 냉정을 유지하고자 했다. 지금은 어지러워진 전황을 조속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사상자는 몇이나 되는지, 배반자의 면면이 어떤지, 적들의 전력과 타계의 신들은 어떻게 나오는지, 아군으로 남아 있는 수는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만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현재 사절들 중 배반자 측에 가담한 숫자는 대략 6할.

다친 상태로도 이렇게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는 건, 이미 저들끼리 아주 오래전부터 논의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나마 4할 정도가 남았지만.

그중 3할은 슬쩍 뒤로 빠져서는 어디에 설지 눈치를 보고 있었고, 남은 1할도 엉거주춤 전사단의 편에 서 있긴 하지만 의욕적이진 않았다. 그마저도 다친 정도가 커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문제는 사절들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연우를 돕던 아가레스와 펜리르, 이랑진군 등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사태를 관망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라, 배반자들은 거기서 더 용기를 얻고 있었다.

이미 승세는 자신들에게로 기울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시록은 이제 필요 없다, 이거냐?』

발데비히는 시간을 끌면서 점차 다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타계의 신들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동시에, 동족들의 상태도 빠르게 점검했다.

『그럴 리가. 이딴 꼬락서니가 되어 빈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선택해라.』

『뭘 선택하란 거지?』

『우리까지 여기서 등을 돌린다면 너희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제야 겨우 세운 일족인데 그리 둘 수는 없잖나? 그러니 너희들이 가진 계시록이라도 내놓아라.』

『뭐?』

『너희 선조들이 유적으로 남겼다는 계시록, 그것을 내놓으란 말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유적지에 대한 정보를 내어 주고, 그것을 탐사하여 발굴하기까지 한 것은 우리들이니, 우리는 우리의 몫을 챙기겠다는 의미다.』

녀석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그래도 여태껏 같이 싸운 정리가 있으니, 일족이 연명할 수는 있게 해 주마. 아니면 원하는 놈들에 한해 우리의 종마(種馬)가 되는 것도 괜찮을 듯하고. 어떠냐? 네놈들로서도 나쁜 선택지는 아닐 텐데?』

『이것들이……!』

발데비히는 그제야 배반자들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살려 주는 대가로 선조들이 남긴 계시록을 날름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녀석들은 전사단을 부려먹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비록 과거의 은원으로 따진다면 신과 거인족은 절대 양립할 수 없으나, 전사단이 싸우는 것을 보고 도중에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없애기보다는 노예로 써먹기로.

기어 다니는 혼돈으로부터 이제야 겨우 빠져나오는 줄 알았는데, 다시 다른 마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라니. 그게 어디 신적인 존재들이란 것들이 할 말인가!

하지만 녀석들은 발데비히가 화를 내면 뭘 어쩌겠냐는 투로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여기엔 연우도 없으니 제멋대로 해도 상관없다고 여긴 것이다.

어차피 기어 다니는 혼돈을 쫓아간 이상, 되돌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다 죽어도 상관없나?』

『죽긴 누가 죽는단 말이냐. 우리는 이대로 강림을 해제하고 천계로 되돌아가면 그만. 하지만 이곳에 묶여 있는 너희들은 다르지.』

녀석이 차갑게 웃으며 선택을 강요했다.

『어쩔 것이냐? 네놈들의 멍청한 선조들을 따라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것이냐, 아니면 계시록을 바치고 구차하게 목숨이라도 연명할 것이냐?』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채채챙!

『이런 잡놈의 새끼들이……!』

『역시 저것들은 믿을 수가 없는 종자였어. 신이고 악마고, 결국 기어 다니는 혼돈과 다를 바가 없는 거야.』

전사단이 일제히 분노를 드러내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비록 그들 중 절반 가까이가 전사하고, 나머지 절반은 중상을 크게 입은 상태였지만.

그래서 온전히 싸울 수 있는 숫자는 이제 이십여 명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놈들에게는 꿀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결국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 드는군.』

녀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사단을 해치우자고 외치려는데.

『하하! 하하하하!』

별안간 여태 그들을 노려보기만 하던 발데비히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뭐가 그리 웃긴 것이냐?』

배반자들은 발데비히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미쳤나 싶어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하지만.

발데비히는 웃는 낯 그대로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웃기다마다. 어떻게 그리도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지. 초월적인 존재로 그리 오래 살다 보면 생각도 같이 아둔해지는 것인가 싶어서 말이야.』

『뭐?』

『아니군. 벗어나긴 했어. 언젠가 뒤통수를 때릴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한창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이건 오히려 너무 빨라서, 놀랐다고 해야 하나?』

배반자들이 주춤거렸다. 뭔가 발데비히의 모습에서 불안한 낌새를 느낀 것이다.

『여차하면 천계로 도망치면 그만이라고 했겠다?』

콰직!

발데비히는 대검을 바닥에다 꽂으면서 크게 소리쳤다.

『해 봐! 어디 할 수 있으면!』

『……!』

『……!』

『뭐야? 왜 안 돼!』

『천계와의 채널링이 단절되었어! 이게 무슨……!』

[‘기어 다니는 혼돈’의 마지막 성역, ‘대혼성역’이 탈환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신과 왕의 증명 V)를 전부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5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보상으로…….]

……

[지금부터 업적에 따라, 60층의 히든 스테이지, ‘무너진 거인의 땅’이 ‘기어 다니는 혼돈’으로부터 플레이어 ###에게로 귀속됩니다.]

[경고! 현재 스테이지의 환경이 너무나 극악한 상태입니다. 어떤 생명체도 기거할 수가 없습니다.]

[더 많은 신전을 건설하세요.]

[중심지에 대신전을 건설하여 성역의 기능을 보강하세요.]

[현재 다수의 존재들이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성역에 무단침투 중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성역 주인과의 연결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부재중인 성역 주인을 대신해 대리자가 성역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현 대리자: 플레이어 발데비히]

『……!』

『……!』

사절들은 몸이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성역은 단순히 초월자에게 있어 ‘영역’으로서의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신앙이 태동하고, 신위가 작동하는 곳. 초월자라는 ‘존재’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었다. 그것은 즉, 초월자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니.

성역 내에서만큼은 주인이 곧 창조신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법칙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곳에 무단으로 침투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으니. 히든 스테이지가 연우에게로 완전히 귀속된 이상, 배반자들은 손발이 꽁꽁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화신체가 아닌 본체라는 점이었고, 천계와의 연결도 모두 단절되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적지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뭐긴 뭐겠어.』

발데비히는 뻣뻣하게 굳은 그들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너네들 다 좆 된 거지.』

그의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연우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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