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거마신룡 (2)
[선악과를 섭취하였습니다!]
[선악과]
등급: 최고 신물
설명: 절대선과 절대악의 가능성을 동시에 겸비한 보물. 최초의 인간이 이것을 먹고 낙원에서 쫓겨났다는 유명한 전승이 있을 정도로, 지고(至高) 중의 지고로 손꼽히는 신물이다.
한 입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초월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며, 두 입을 삼키면 진리를 통찰할 수 있는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고, 세 입을 삼키면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막강한 권능이 주어진다.
다만, 전부를 삼키게 되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우주가 창조된 이래 그랬던 역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말라흐’의 수장과 ‘르 인페르날’의 주인이 선악과를 삼킨 적이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으나,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현재 이 선악과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대악마 가미긴의 영력을 압축시켜 탄생시킨 것. 그렇다 보니 여태껏 세상에 출몰하였던 기존의 선악과보다 얼마나 더 큰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자격이 없는 자가 함부로 탐하려 했다간, 단순한 죽음이나 타천(陀天)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단, 온전한 자격을 갖춘 자라면, 능히 ‘지고좌(至高座)’를 노릴 만도 하리라.
*하계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아티팩트입니다. 계속 소유할 시엔 시스템과 인과율에 저촉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효과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아티팩트입니다. 잘못된 섭취는 자칫 업(業)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효과의 완전한 파악 뒤에 섭취할 것을 권고합니다.
**현재 시스템의 가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외부 세계에서의 기록 변화는 차후 탑으로의 재로그인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악과의 영향으로 거인의 인자가 다량으로 증가하여 미묘하게 어긋났던 네 인자(용·마·신·거인)가 균형점을 이뤘습니다.]
[아직까지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선악과의 기운이 다량으로 체내에 남아 있습니다.]
[하데스의 식령검이 작용하여 남은 기운을 완전히 소화하기 시작합니다.]
[네 인자(용·마·신·거인)의 균형점에 선악과의 기운이 재영향을 미칩니다.]
[균형점이 상승 조정됩니다!]
[균형점이 상승 조정됩니다!]
……
[균형점의 과도한 상승 조정으로 인해 영혼에 새로운 변화가 가해졌습니다.]
[영격(靈格)이 상승하였습니다.]
[영격(靈格)이 상승하였습니다.]
……
순간, 폭풍이 휘몰아쳤다.
연우에게 달라붙으려던 수많은 어둠과 촉수들이 다가가지 못하고 떠밀려 났다.
『또 재미난 짓을 벌이려는 거냐. 이번에는 내게 무엇을 보여 주려고?』
계속 부딪쳤기 때문일까. 기어 다니는 혼돈이 파생하는 의사를 이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연우를 보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연우가 또 다른 재미난 광경을 보여 줄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그것은 이 넓디넓은 우주에서 흔하디흔한 미물이 기존과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광경이었으니.
기나긴 우주의 역사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거의 없다시피 한 최고의 광경이었다.
진리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을 가진 기어 다니는 혼돈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비록 ‘연우’라는 껍질은 고수하고 있지만, 내용은 근본부터가 바뀌고 있는 것이.
‘연우’라는 자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기존의 ‘연우’와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적인 존재!
[거마신룡체의 각성 작업이 재개됩니다.]
콰드득, 콰득!
우드드득-
연우는 유전자 속으로 파고든 거인의 인자를 생생하게 느꼈고, 네 인자의 균형점이 한껏 높아지면서 육체가 완전히 변화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죄악석이 변하는 육체에 따라 성장하고, 드래곤 하트도 새로운 종류의 마력을 받아들이면서 크게 울렸다.
신력, 마기, 마력, 거인력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기운이 죄다 체내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이 넓은 우주를 몸 안에 고스란히 담은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소우주(小宇宙).
혹은 소세계(小世界), 그 자체가 된 기분이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위대한 네 개 종족들의 특성을 한 몸에 담았다.
그것은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품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연우는 자신이 이제 지구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완전히 자각할 수 있었다. 당시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동일인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
그리고 모든 변화가 완성되었을 때.
연우는 눈을 한껏 떴다.
[거인의 인자가 신과 마와 용의 인자와 합쳐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성질 변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특성 ‘마신룡체’가 ‘거마신룡체(巨魔神龍體)’로 변경되었습니다.]
[최초로 탄생한 육체입니다. 육체가 가진 한계와 자질에 대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육체에 대한 정보는 스스로 터득하세요.]
……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이뤄 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만큼 획득했습니다.]
[비마질다라가 멀리서 당신의 존재감을 감지하고 크게 흥분합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날 날을 크게 고대합니다.]
[케르눈노스가 복잡한 생각에 잠겨 눈을 가만히 감습니다.]
……
[모든 죽음의 신이 당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가 당신의 영격을 보고 감탄합니다.]
[특성: 거마신룡체]
설명: 용종과 악마와 신과 거인족은 아득하게 먼 옛날부터 초월을 이루며 세상의 정점에 섰던 지고의 종족들이었다.
용종은 극도의 탐구욕을 발휘하여 세상의 이면에 있는 진리를 통찰하고자 하였고, 악마는 재미 난 유희를 위해 갖가지 욕망을 빚어내어 여러 미물들이 그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신은 온 우주가 제대로 흘러갈 수 있게 창조와 경영을 시도하였고, 거인족은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바탕으로 파괴를 통해 우주의 순리를 이끌었다.
그들은 우주와 차원이 온전히 흐를 수 있도록 돕는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들이었으나, 언제부턴가 톱니바퀴가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우주의 역사는 발전을 멈추고 정체기에 들어서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에 ‘최초’로 네 개의 특성을 한 몸에 품은 존재가 탄생하였으니.
그 위대한 업을 이룬 당신이 걸을 길은 곧 앞으로도 길게 펼쳐 질 우주의 역사에 큰 방향을 결정할 특이점이 될 것이다.
* 드래곤 로드
용종과 악마와 신과 거인족의 권능을 조금씩 개화할 수 있다.
* 용과 마와 신과 거인의 영역
자격 여부에 따라 일정한 범위에 걸쳐 가진 권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 ‘비나’를 선포할 수 있게 된다.
* 용과 마와 신과 거인의 지식
자격 여부에 따라 용종이 탐구한 ‘호크마’와 악마가 구성한 ‘네차흐’, 신이 성립한 ‘예소드’, 그리고 거인족이 완성한 ‘게부라’를 열람할 수 있다.
* 용과 마와 신과 거인의 권능
자격 여부에 따라 용종이 터득한 ‘케테르’와 악마가 통달한 ‘티페레트’, 신이 구축한 ‘헤세드’, 그리고 거인족이 깨달은 ‘말쿠트’를 발현할 수 있다.
콰콰콰콰-
콰릉, 콰르르릉!
연우를 따라 번져 나간 힘의 파동은 수많은 성운을 이리저리 어지럽히고 새로 조립하기를 반복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다시 연우가 눈을 떴을 때.
기어 다니는 혼돈은 다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그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그 이상이었다.
분명히 연우는 겉보기엔 큰 변화가 없었다. 용인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가 움직일 때마다 암흑 물질이 우르르 떨리고, 공간이 조금씩 뭉개지고 있었다. 단순히 3차원의 공간으로는 그의 존재를 도저히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무게의 영압(靈壓)을 품고 있단 뜻이었다.
연우를 관찰하고 있는 기어 다니는 혼돈의 촉수 끝이 찌르르하게 울릴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타계의 신들 중에서도 신중신(神中神)에 꼽히는 ‘외신(Outer Gods)’급에 다다랐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 탈각과 초월까지 이룬 것은 아니니, 단순히 그렇게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 테지만.
그것도 연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이룰 수 있을 테니.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그분’의 후예를 자처할 정도는 되겠지.』
기어 다니는 혼돈은 이제야 겨우 연우를 인정할 마음이 들었다.
타계의 신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쟁취하지 못했던 칠흑의 후예 위(位)를 거머쥐었다는 것. 그 사실은 여러모로 그에게 많은 흥미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다.
경계의 거주자에게 말했듯이 탑 내에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존재와 같이 세워 둔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재미있겠단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불완전하구나. 지금 여기에 있는 너는 하나이되, 원래는 둘이었던 존재이니. 하나가 지금처럼 완전해지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안 되겠어.』
기어 다니는 혼돈은 연우가 마성과 합일을 이룬 상태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런 훈수까지 던졌다.
물론, 연우로서는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둘렀다.
화아악-
마력이 한껏 응축되면서 깨어난 비그리드의 섬광이 단숨에 기어 다니는 혼돈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안개를 옆으로 치웠다.
연우는 단숨에 그사이에 놓인 거대한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니 웬만한 행성보다도 더 큰 크기를 자랑했지만, 연우가 있는 위치에서 까마득한 거리에 놓여 있어 자그마한 점체럼 보이는 것이었다.
팟!
연우는 비그리드로 옆쪽 공간을 비스듬히 그어 공허를 열고, 그곳을 통해 단숨에 핵이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런 연우를 제지하기 위해 수많은 촉수와 어둠이 물밀 듯이 달려들었지만.
촤르륵-
곳곳에서 활짝 열린 공허를 따라 나타난 검은 쇠사슬이 일제히 그것들을 모조리 튕겨 내거나 부수면서 연우에게로의 접근을 일절 차단했다.
그때, 핵이 한껏 응축되면서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기어 다니는 혼돈도 이대로 본체를 유지한 채로 연우와 싸우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판단해 사람의 형상을 갖춘 것이다. 물론 연우의 심기를 계속 건드릴 목적이었으므로, 녀석의 모습은 동생 차정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콰르르릉-
〈하늘 날개〉
〈빛의 파도〉
……
기어 다니는 혼돈은 자신의 권능을, 차정우를 상징하던 시그니처 스킬을 이용해 표출함으로써 연우의 속에 남아 있는 분노의 불씨를 더욱 활활 불태웠다.
차아앙!
비그리드와 드래곤 슬레이어가 충돌했다. 강렬한 마력 파장이 형성되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 우주가 흔들리고.
퍼퍼펑-
서로가 뿌려 댄 갖가지 마법과 권능들이 허공에서 이래저래 충돌하면서 갖가지 모습으로 잘게 부서져 내렸다.
초월적인 존재들의 다툼은 그들 자체가 정확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관념들 간의 충돌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에너지 낭비가 심하기 때문에 화신체를 형성해 물리적인 다툼으로 빚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가가각-
비그리드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검신을 타고 위로 쭉 미끄러져 올라가면서 기어 다니는 혼돈의 목을 치고자 했다.
너무나 빠르고 강렬한 일격.
하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은 등에 매달려 있던 날개로 한껏 홰를 치면서 연우와의 간격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어둠을 열어서 기괴한 모양을 한 여러 형태의 촉수를 잔뜩 꺼내어 연우를 노렸다.
하지만 이것도 연우를 따라 공허가 아가리를 벌리면서 튀어나 온 검은 쇠사슬이 접근을 차단했으니.
오히려 쇠사슬은 촉수를 칭칭 휘감으면서 녀석의 본체를 노리고자 하였다.
아무리 싸움이 팽팽해지거나 호각을 이룬다고 해도, 본체를 쇠사슬로 묶어 버리기만 한다면 연우의 승리이기 때문이었다.
촤르륵!
『그분을 공허에 박히게 했다던 쇠사슬…… 그게 바로 이것이겠지? 역시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해. 이것을 만든 장인이 누구인지 실제로 보고 싶을 정도이니.』
기어 다니는 혼돈은 탐욕스럽게 본체를 노려 오는 쇠사슬을 보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묶인 촉수들을 모두 말끔하게 잘라 내고 재차 이동을 개시했다. 날개를 한번 크게 펄럭일 때마다, 녀석은 빛살이 되어 빠른 속도로 우주를 유영했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쇠사슬이 맹렬하게 바짝 뒤쫓았다.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 몇 겹이나 나타나 녀석이 움직이는 족족 퇴로를 차단했다.
덕분에 움직이는 반경이 서서히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연우는 바로 그때를 노려, 공허를 활짝 열면서 기어 다니는 혼돈의 후미에서 바짝 나타나 녀석의 본체에다 비그리드를 강하게 박아 넣었다.
퍼억!
동생과 똑같은 모습을 한 육체가 상처 입는 모습이, 연우의 눈에 아로새겨졌지만 그는 꿈쩍도 않았고.
콰르르릉-
비그리드에서 피어난 검뢰가 그대로 녀석의 화신체를 비롯해, 그 너머의 공간 속에 있던 본체에까지 작렬했다.
초신성이라도 폭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섬광이 우주 한복판을 수놓는 그사이.
“삼켜라.”
연우는 왼손을 활짝 열어 그대로 녀석의 몸뚱이에다 쑤셔 넣었다. 검은 멍울을 따라 피어난 톱니 이빨이 그대로 기어 다니는 혼돈을 와그작, 하고 씹었다.
[‘하데스의 식령검’이 ‘기어 다니는 혼돈’에 대한 식령(食靈)을 시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