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29화 (529/862)

4화. 거마신룡 (4)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놈의 무의식 세계지.』

미후왕의 허물이 대답했다.

『지금 너는 기어 다니는 혼돈과 동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의식과 의식이 연결되었다는 뜻이지. 녀석이 그런 것처럼, 너도 그러면 될 것이다.』

한마디로 기어 다니는 혼돈이 연우의 무의식 세계에 간섭하는 것처럼, 연우도 똑같이 녀석의 무의식 세계에 접촉하라는 의미였다.

연우는 단번에 눈을 빛냈다.

“타임 어택이로군요.”

미후왕의 허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그렇겠지? 녀석은 너에게서, 너는 녀석에게서, 누가 먼저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주가 되어 상대를 먹어 치울 수 있느냐는 것이니까.』

기어 다니는 혼돈은 분명히 ‘먹히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은 업이 워낙에 방대한 탓에 도리어 연우를 자신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당할 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먼저 승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어떻게 거기로 가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가르쳐 줄 필요는 없겠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연우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곳이 자신의 자아에 기반이 되는 무의식 세계라면, 분명히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이 초월신이니 절대신이니 하는 존재에 가깝다는 뜻일 터.

그래서 비그리드를 상상했다.

다른 상상할 거리들도 많을 테지만, 그래도 가장 친숙한 것이 이미지를 떠올리기 가장 편했기 때문이었다.

튜토리얼 때부터 쥐기 시작해 이제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성검의 재질과 감촉, 무게 따위를 상상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어느새 오른손에 비그리드와 똑같은 형체를 가진 검이 잡혔다. 아마 가진바 성질도 진짜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확실히 성장하긴 했군.』

미후왕의 허물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에서 연우의 성장을 간간이 챙겨 보았다지만, 그래도 바로 이렇게 눈앞에서 지켜보니 즐거웠던 것이다.

촤악!

비그리드를 위로 쭉 그어 올리자, 공간이 아가리를 쩍 벌리면서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세계를 드러냈다.

연우의 무의식 세계가 칠흑색의 어둠으로 가득하다면, 저곳은 온통 혼탁한 잿빛 안개로 뒤덮인 곳이었다.

다가가기만 하면 금세 형체가 녹아 사라질 것 같은 끔찍한 장소.

녀석의 무의식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반대로 녀석이 절대신으로 있을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 간다는 것과 똑같은 말.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연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혼탁한 사념이 잔뜩 뭉친 촉수 수십 개가 단번에 달려들었다. 그 끝에는 또 동생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들이 가득해 연우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연우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검뢰를 잔뜩 끌어 올리며 그대로 내리쳤다. 그러자 수십 갈래로 갈라진 검뢰가 촉수를 비롯한 것들을 모조리 가르고 태워 버렸다.

그때, 바로 뒤쪽에서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연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그사이 검뢰를 회피한 촉수와 동생을 닮은 개체가 바로 코앞까지 닥쳐 있었다. 학습 능력도 있는지, 검뢰와 비슷한 뭔가를 손끝에서 피워 내며 연우의 가슴팍을 후려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콰르릉-

갑자기 저쪽 밑에서부터 솟아오른 붉은 불기둥이 녀석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불길이 단숨에 번지면서 동생을 닮은 무언가를 태우려 했다. 녀석이 고통스러운 듯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중얼거렸다.

『형……!』

“……!”

촤악!

연우는 가차 없이 녀석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의 얼굴은 흉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동생의 얼굴을 함부로 모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저딴 소리까지 함부로 지껄여 대다니. 가슴 안쪽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격이 상승하고, 거마신룡 이라는 특성을 얻었어도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전히 그에게 깊게 남아 있었다.

『저건 아무래도 정신적 방어 기제로 나온 것 같은데. 이것도 일부러 노린 건가? 정말 악취미인 녀석이야. 본체 놈이 한창 날뛸 시절에도 이런 간악한 놈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말이야.』

어느새 미후왕의 허물이 연우 옆으로 다가와 투덜거렸다. 불기둥, 화염륜을 쏜 것은 바로 그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여의봉을 연상케 하는 금색 봉이 들려 있었다. 비그리드처럼 상상으로 구현한 모양이었다.

“짜증 나는 곳이군요.”

연우는 주변을 쓱 훑어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미후왕의 허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공감이야.』

“여기서 대체 어떻게 계시록을 찾아야 하는 건지.”

기어 다니는 혼돈의 무의식 세계는 정말이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평범한 존재라면 이미 감염되어 존재가 바스러졌을 게 분명한 혼돈의 기운이 넘실대고, 시야에 잡히는 것은 온통 마치 기포처럼 이리저리 끊어 댔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는 회색 세포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암세포처럼 마구잡이로 증식과 파괴를 반복하면서 열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세포들의 표면에는 갖가지 종류의 망령들이 맺혀 있었다. 녀석들은 마치 감옥 안에 갇혀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었다.

「구…… 해 줘…….」

「아니, 죽여…… 줘……!」

「제발…… 제발 꺼…… 내……!」

척 보기에도 망령들은 죽어서도 제대로 안식을 취하지 못한 채 온통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점이었다.

수백만? 수천만? 아니, 억이나 조 단위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당장 연우의 눈에 띄는 것 말고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든 세포에 망령들이 들끓어 대고 있었으니.

『녀석이 그동안 먹어 치운 희생자들인가? 정말이지 미친놈이야. 대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행성이며 문명들을 먹어 치워 왔던 거지?』

미후왕의 허물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가능하다면 녀석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한 살의가 가득 풍겼다.

그는 한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았고, 그 탓에 천계며 하계 등 많은 곳들이 그의 존재로 몸살을 앓았다지만, 결단코 일정한 ‘선’은 넘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은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보였다.

녀석에게 아무리 필멸자들이 한낱 미물 따위에 불과하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 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렇게나 많은 망령들을 ‘박제’해 둔 게, 순전히 ‘재미’를 위함이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수집품을 모으듯이. 자신이 재미로 멸망시키고 죽였던 존재 들을 가두기만 했으니. 아마 이렇게 모은 뒤에는 금세 싫증이 나서 그냥 방치했을 게 분명했다.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연우는 이 광경에서 튜토리얼에서의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다.

‘현자의 돌.’

그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던가. 튜토리얼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한데 모아 탄생시키려 했던 마력 기관.

물론, 이곳은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지만, 연우는 어쩐지 현자의 돌을 만들고자 했던 아랑단의 시도가 기어 다니는 혼돈의 내부와 많이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어쩌면 현자의 돌이라는 것은 기어 다니는 혼돈 같은 타계의 신들과 구조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연우는 확신하고 있었다. 현자의 돌을 탄생시키기 위한 지식은 본래 따지자면 기어 다니는 혼돈에게 서 비롯된 것일 테니.

‘대체 이것들의 정체가 뭐지?’

연우는 위화감을 느끼는 한편, 인지 영역을 끊임없이 계속 확장시키고 있었다.

한번 들어가게 되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위험이 들었던 자신의 무의식 세계와 다르게, 기어 다니는 혼돈의 무의식 영역은 방대했지만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서 이곳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건?”

『뭐 찾았어?』

연우가 뭔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미후왕의 허물도 다른 방향으로 인지 영역을 넓히다 말고 연우를 돌아봤다.

연우가 대답 없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디론가 이동했고, 미후왕의 허물은 대체 뭔가 싶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하. 하하.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곳에는 비명을 질러 대는 다른 망령들과 다르게, 무덤덤하게 있는 망령이 있었다.

물론,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닌지, 이마라 짐작되는 부분에는 쉴 새 없이 핏줄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분명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는지.

연우는 죽어서도 명예와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당신도 여기에 있었습니까?”

연우는 엄숙한 얼굴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연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전사장의 영혼.

거인족의 마지막 왕, 발데비히였다.

「죽어서도 망자가 되지 못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겠는가? 끽해야 이런 망할 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밖에는. 그래도.」

전사장의 영혼은 연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살짝 엷은 미소를 뗬다.

「그대가 무사히 일을 잘 마무리해 준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로군. 다행이야.」

전사장의 영혼은 연우에게서 그가 보상으로 건네주었던 신물 외에 다른 신물들의 냄새도 강하게 풍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뜻은 단 하나.

자신의 유언을 들어주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완전한 왕…… 이 된 건가?」

“아닙니다.”

전사장의 영혼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음? 그럼?」

“신이 되었습니다.”

전사장의 영혼은 완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말뜻을 알아채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신이라…… 하하! 원래는 우리들 모두 어딘가에 기대는 것을 약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아주 싫어했었지만…… 자네 같은 배경이라면. 괜찮아. 아주 든든하겠어. 나의 후손들은 두 번 다시 패배 따윈 겪지 않겠지.」

“이미 승리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면 된 것이야. 너무나도 속이 후련하군. 하하!」

전사장의 영혼은 정말이지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서, 연우는 그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외감도 들었다.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수만 년도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에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오로지 동료들과 후손을 염려하는 그 모습이, 정말이지 진짜 ‘왕’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비록 실패를 겪었다 할지라도 마음만은 굴복하지 않는 불굴(不屈)의 기상. 그것만큼은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때, 뒤따라 온 미후왕의 허물이 전사장의 영혼을 보더니 가볍게 혀를 찼다.

『뭐야? 어딜 그렇게 가나 싶었더니. 거인족의 마지막 왕을 보러 왔던 것이었어? 여기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것참!』

「당신은…… 미후왕? 미후왕께서 어찌 이런 곳에?」

전사장의 영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두 분이서 아는 사이십니까?”

미후왕의 허물은 팔짱을 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알다마다. 본체 놈이 한창 날뛰던 시절에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지. 둘 다 싸우는 걸 아주 좋아해서…… 어휴! 그보다.』

미후왕의 허물은 가볍게 혀를 찼다.

『거인족의 멸망이 기어 다니는 혼돈과 관련이 있었던 건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용종도 그랬었지만, 참…… 이 새끼, 정말 사사건건 손을 안 댄 것이 없구만? 어쩐지 언제부턴가 갑자기 사라져서 안 보인다 싶더니. 하!』

미후왕의 허물은 또 한번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껏 탑 내에서 있던 큰 사건들의 흑막이란 흑막에는 모조리 기어 다니는 혼돈이 숟가락을 얹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대체 어떻게 된 놈일까?

「그래도 이렇게라도, 새로운 왕…… 아니, 신을 보게 되고, 미후왕도 다시 뵙게 되어 아주 즐거웠습니다.」

순간, 미후왕의 허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냐, 그 태도는? 금방 작별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전사장의 영혼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위로 높이 들었다.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회색 벽에는 그와 같은 신세를 한 무수히 많은 망령들이 걸려 있었다.

「저도 여러분들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만…… 이런 몰골로 어딜 갈 수 있겠습니까? 억지로 죽으려 해도, 데이터가 이놈에게 남아 있어 금세 복구되고 마는 판국이니. 하하!」

그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려 연우와 미후왕의 허물을 바라봤다. 쓴웃음은 다시 짙은 웃음으로 변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응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응어리져 있던 원이 풀린 것만으로도, 저는 영원히 웃으면서 이곳에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한이 없다는 듯한 태도.

하지만.

『개소리.』

미후왕의 허물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전사장 영혼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본체 놈한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을 정도로 개기던 놈 어디로 갔어? 못 들었냐? 너네 종족 부활했다고. 그럼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해야지, 뭔 개소리를 왈왈 잘도 짖어 대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간에, 이 새끼가 너네 신 한다며? 그럼 신한테 빌어 봐. 혹시 아냐? 뭐라도 방법이 생길지?』

미후왕의 허물은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말했고, 전사장의 영혼은 이내 흔들리는 눈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연우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가능…… 한가?」

“그런 건 당신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대답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가시겠습니까?”

전사장의 영혼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눈도 꼭 감은 채 뭔가를 계속 되뇌다가, 곧 눈을 번쩍 떴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던 눈은 어느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돌아온 것이다. 오래전, 미후왕과 결투를 치르던 전사의 눈으로.

「같이 가고 싶소, 신이시여. 당신의 곁에 서기를 바라오.」

전사장의 영혼은 어느새 존대까지 표했고.

연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바대로 이뤄지리라.”

손을 활짝 펼치며 그대로 하데스의 식령검을 개방했다. 전사장의 영혼이 그대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수만 년에 걸친 세월 동안 갇혀 있던 세포가 통째로 오린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자 소환’이 발동되었습니다.]

[누구를 소환하시겠습니까?]

“발데비히.”

전사장 영혼의 이름을 되뇌자, 연우의 곁으로 그림자가 피어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전사장의 영혼은 영체를 갖추자마자 자신의 손발을 어루만지며 오열을 터뜨렸다. 까마득한 지난날부터 이루고 싶었어도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존재를 여태 옭아매던 기어 다니는 혼돈과의 연결이 모두 끊어져 있었다. 이적(異蹟)이었다.

「이 발데비히는, 신의 은총에 따라, 신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어디든 따라 걷겠습니다.」

전사장의 영혼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서는 감격에 찬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우로서도 자신이 원하는 스쿼드의 전력이 증강된 것이기에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지 영역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거인족의 마지막 왕이 이곳에 있다는 건, 그와 비슷한 다른 존재도 이곳에 있단 뜻이 아닌가.

‘칼라투스.’

용종의 마지막 왕도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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