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31화 (531/862)

6화. 거마신룡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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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르릉, 콰릉, 콰르르-

고룡 칼라투스가 아가리를 젖힐 때마다 강렬한 열기를 담은 숨결이 잔뜩 토해졌다.

미후왕의 허물을 노리던 화신체들은 그에게 닿지도 못하고 불덩이에 휩쓸려 사라져야만 했으니.

덕분에 미후왕의 허물은 아무런 방해 없이 발광체(發光體)를 향해 빠르게 미끄러질 수 있었다.

발광체는 기어 다니는 혼돈이 무의식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만들어 낸, 의식을 대변하는 핵. 저것을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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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지를 전개하려 해도 공간 굴절이 시시각각 이뤄져 도저히 간격을 좁히기가 힘든 데다가, 발광체가 내뿜는 열풍이 너무 강렬해서 까딱 잘못하면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72선술을 잔뜩 끌어 올려 영체를 보호하는 한편, 제천류를 이용해 길을 강제로 열려고 했으나 도저히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무의식 세계를 잔뜩 뒤덮은 균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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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도 문제였다.

억지로 길을 열려고 하면 열 수 있을 것 같지만, 30초도 안 남은 시간 안에 발광체에 다다르고, 부수고, 그 파장을 모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칼라투스가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생각도 스쳤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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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께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다!」

한편, 그동안에 전사장의 영혼은 연우를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둘러 댔다. 아니, 처음에 휘두르던 무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손에 피떡이 되어 형체도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 화신체가 붙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잡아다 휘둘러 대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많은 화신체의 숫자 때문에 영체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 입가에서는 단내가 쉴 새 없이 풀풀 날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다른 어느 때보다 크게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영력을 모두 소비해 오늘 이곳에서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우를 지켜 내고 말겠다는 투지가 보였다.

그것은 일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굳건한 신뢰와 희망을 가진 자의 눈빛이었다.

덕분에 저렇게나 많은 화신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우의 곁으로 접근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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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투스도 마찬가지.

여태껏 동면을 취했던 것은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었던지, 쉬지 않고 브레스를 뿜어 댔다.

이 역시 얼마 안 되는 영력을 잔뜩 소비한 결과일 테지만, 전혀 그런 걸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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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미후왕의 허물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나도 각오를 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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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왕이며 용왕까지 저렇게 사활을 걸고 싸워 대는 와중에 자신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면 어디 부끄러워서 얼굴이나 제대로 들고 다니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아무리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분신이라고 해도, 정체성은 미후왕이었다. 쪽팔리는 짓은 절대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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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후왕은 방법을 생각하다, 문득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자신의 손에 들린 여의봉을 바라봤다.

이것이라면.

이놈이라면 어떻게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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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봉은 한평생 그와 함께했던 신물.

비록 이제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이 빌어먹을 탑이 세워지기 전에는 애송이 천마 녀석도 잘 사용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만한 것이니 어떤 방법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후왕의 허물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본인에게.

여태 잘 써먹어 놓고서 ‘이것은 가짜 여의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곳은 무의식 세계이고, 심상 구현만 제대로 된다면 탄생하는 물건이 무엇이든 그 성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증폭도 가능하겠지.’

미후왕의 허물은 여의봉이 가진 최고의 성능이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신진철(神珍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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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미후왕은 즉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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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달리던 그대로 투창 자세를 갖췄다.

영력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리자, 제천류를 상징하는 오행(五行)의 극기(剋氣)가 회오리치면서 여의의 끄트머리에 잔뜩 압축되기 시작했다.

[00:00:00_64]

그리고.

우우우웅-

여의봉이 더 이상 영력을 받을 수 없다며 칭얼거릴 때.

냅다 앞으로 크게 던졌다.

“커져라, 여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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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콰르르릉!

여의봉이 거대한 빛살이 되어 허공을 질주했다.

[00:00:00_33]

제아무리 강렬한 강풍이라고 해도, 큰 에너지가 한데 압축되어 적은 표면적을 찌르는 데야 뚫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덕분에 빛살은 단번에 발광체에 작렬, 그대로 정중앙을 관통하여 뒤쪽을 뚫고 나오고 말았다.

[00:00:00_20]

가뜩이나 부서질 듯이 위태롭게 굴던 발광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박살 나면서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여태껏 무의식 세계가 자폭하면서 일으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고열과 강풍이 휘몰아쳤다. 모든 물질을 원자 단위로 쪼개 버리는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미후왕의 허물이 노리려던 건 바로 그 후였다.

[00:00:00_11]

여의봉은 단순히 발광체를 뚫고 지나간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단단히 꿰어 고정시켰다는 표현이 옳았다.

실제로 빛살은 발광체를 관통한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하게 커지며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장벽의 위편에 다다르고 있었으니.

그때 미후왕의 허물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쿵!

[00:00:00_05]

미후왕의 허물은 부서지는 발광체 앞으로 팔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손을 안쪽으로 오므렸다. 그것은 주문을 강화시키는 수인(手印)이기도 했으니. 영력을 한껏 담은 진언이 외쳐졌다.

『봉(封)!』

그 순간.

이리저리 휘청이며 부서질 기미가 보이던 무의식 세계가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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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도리어.

[00:00:00_4]

[00:00:00_5]

[00:00:00_6]

……

여태껏 줄어들던 타이머의 숫자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감기 한 것처럼, 폭발하려던 빛과 열이 거짓말처럼 안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콰콰콰!

거대한 기둥처럼 꼿꼿하게 선 여의봉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봉신(封神)!

여의봉이 원래 갖고 있던 성질이 작동함에 따라, 신살(神殺) 작업이 이뤄지며 기어 다니는 혼돈을 이루고 있던 무의식 세계를, 아니, 업(業)과 신화를 통째로 봉인하려는 것이다!

쿠쿠쿠쿠-

방출되었던 빛과 열이 수거되고, 장벽을 가득 채웠던 균열이 메워졌다. 그리고 공간이 통째로 뜯겨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여의봉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끼아아!

끼끼기, 끼기기기!

발광체와 연결되어 있던 수만 마리의 화신체들도 마찬가지. 그동안 녀석들의 등에 연결되어 있던 줄이 잇달아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니, 그들도 거꾸로 여의봉에 휘말렸다.

「허, 참!」

「이런 것도…… 가능하군. 과연 천마의 스승이며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상식을 초월하는구나.」

위태위태하게 화신체들을 밀어내던 전사장의 영혼은 갑자기 녀석들이 버둥거리면서 딸려 올라가자 허탈한 표정이 되고 말았고.

칼라투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술에 눈을 크게 뜨면서, 그 메커니즘을 빠르게 분석해 나갔다. 그는 죽어서도 호기심과 지식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왕은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의 방해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처치하려는 미후왕의 허물이 대단하다고.

선조들은 물론, 신이며 악마들까지 그를 두려워했던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꾸우우웅!

안. 된. 다.

이. 래. 서. 는.

기어 다니는 혼돈은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 했지만, 그게 쉽사리 될 리 만무했다.

신진철은 본디 칠흑왕마저도 구속시킨 물질. 여의봉은 그런 물질을 통짜로 빚어낸 신물이었다. 칠흑왕의 추종자인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이것을 거스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속성 차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끝. 이. 보. 일.

결국 여의봉의 봉인은 무의식 세계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던 의식과 자아, 심지어 녀석의 육체까지 몽땅 빨아들이기 시작했으니.

그사이.

연우는 활자를 담아내던 작업을 모두 끝내고 있었다.

[활자 조립이 모두 끝났습니다.]

[활자량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칠흑왕의 경전서’의 제본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현재 작업량은 19.2%입니다.]

[더 많은 활자를 찾아 페이지를 추가, 제본을 완성하세요.]

탁!

연우는 작업이 마무리된 칠흑왕의 경전서를 도로 접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드래곤 하트며 죄악석에서도 마력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비다시피 한 상태. 심력도 고갈되어 피로 때문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계시록을 일부 완성하면서 영적인 성장을 다시 크게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역전극을 펼쳐 낸 미후왕의 허물을 대단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여의봉의 사용법에 대해서 한층 더 속속들이 알게 된 기분이었다. 역시 원주인이 사용하면 영 다른 걸까. 아니면 ‘진짜’ 여의봉을 갖게 된다면 저만한 위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그만 쪼개고, 끝났으면 문이나 열어! 지금 위험한 거 안 보이냐?』

미후왕의 허물은 평상시 같았으면 우쭐해 했을 테지만, 이번 일은 그에게도 좀처럼 쉽지 않았던 탓에 상당히 피로해 보였다.

연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비그리드를 사용해 공간을 길게 찢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로 되돌아오고 나자, 기어 다니는 혼돈의 무의식 세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자아를 비롯한 영체 전부가 여의봉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는 연우의 심연으로 들어갔던 녀석의 본체도 섞여 있었으니. 뒷덜미를 잡혀 끌려 나오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부터 강제로 튕겨 나 그대로 찢겨 봉신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쿠르르-

기어 다니는 혼돈을 모조리 빨아들인 여의봉은 그대로 크기가 작아지면서 둥근 구체가 되었다. 그것은 시커멓게 물든 채로, 미후왕 허물의 손바닥 위에서 뱅그르르 회전했다.

그 순간, 곳곳에서 공허가 활짝 열리면서 쇠사슬이 다량으로 튀어나와 검은 구체를 칭칭 구속하기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을 봉신시켰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후왕의 허물이 그려 낸 심상을 바탕으로 이뤄 낸 것. ‘진짜’ 여의봉은 아니었기에 심상이 끊어지면 봉신도 다시 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진짜 쇠사슬에다 단단히 구속해 버린다면 녀석도 답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심상이 해제되어도 어떻게 풀 수 있는 게 아니니.

부르르!

검은 구체는 쇠사슬에 칭칭 감기게 되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든 구속을 풀어 보려 해도 좀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으니 답답했던 것이다.

안. 된.

조. 금. 만.

조. 금.

기어 다니는 혼돈은 정제되지 않은 사념을 마구 풍기면서 발버둥 쳐 대고 있었다. 무언가 조급해하는 모습. 여태껏 죽어도, 죽지 않아도 괜찮다며 여유를 부리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대체 심연 속에서 무엇을 봤던 걸까?

하지만 연우는 물론, 미후왕의 허물을 비롯해 전사장의 영혼과 칼라투스 모두 그런 녀석의 염원 따윈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전사장의 영혼과 칼라투스는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완료했어도, 여전히 증오심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만큼 기어 다니는 혼돈에 대한 원한은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의식과 신력은 어떻게든 분리시켜야겠어.’

연우는 기어 다니는 혼돈을 흡수하는 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녀석과 다시 누가 먹고 먹히느냐의 싸움을 벌일 수는 없으니.

최대한 녀석의 신력만 빨아들이고, 남은 자아는 공허에다 박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자아는 나중에 따로 심문도 할 수 있을 테니. 전사장의 영혼과 칼라투스도 이렇게 녀석을 그냥 쉽게 보내는 걸 원하지 않겠지.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여기부터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우는 봉신을 마무리 짓기 위해 검은 구체를 공허 속에 처박으려 했다.

촤르르륵-

안. 돼.

제. 발.

기어 다니는 혼돈이 다시 한번 더 애처롭게 빌었지만, 쇠사슬은 차가운 금속음을 내면서 안쪽으로 딸려 들어갔다.

그 너머에는.

공허가 아가리를 잔뜩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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