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마신룡 (9)
두 발데비히는 서로를 가만히 마주보았다.
작은 발데비히는 전사장의 영혼이 신기하기만 했다. 늘 소문과 전설로만 접했었던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옛날이야기가 그러하듯, ‘옛날 옛적에’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해 일족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녔으나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을 감아야만 했다는 결말로 마무리 지어진, 비운의 영웅.
비록 마지막은 그렇게 스러졌을지언정,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자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라며, 모든 이들의 빛이 되라면서 ‘발데비히’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했었다. 자신에게 갖가지 체술과 투기(鬪技)를 가르쳐 줬던 ‘집사’도 늘 그를 거론하곤 했었으니.
발데비히로서는 선망하던 어린 시절의 영웅을 직접 만나게 되자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잘 자랐구나.」
큰 발데비히, 전사장의 영혼은 그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조카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 듯한 따스한 눈빛.
발데비히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전사장의 영혼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게 어찌 보면 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그게 무슨……?』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에 발데비히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아주 오래전, 우리 일족에게는 전사장인 왕 이외에도 정신적 지주로서 예언자(豫言者)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그런 것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있던 예언자가, 언젠가 내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우주의 섭리를 따라 흐르는 명운(命運)은 우리 일족에게 더 이상 있지 않으니, 머지않아 다가올 파멸의 때를 대비해 방주(方舟)를 준비해야만 한다고. 그리고 ‘계시’가 시작될 즈음 해서 다시 명운이 우리에게로 다가올 것이니, 우리도 그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
발데비히는 전사장의 영혼이 하는 말을 전부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부는 무슨 의미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파멸의 때’는 거인족의 멸망을,
‘계시’는 연우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연우가 언젠가 찾아와 일족을 구원하리라고 내다본 이가 있었단 뜻이 아닌가?
‘그게 가능하다고?’
당시를 기준으로는 수만 년도 훨씬 넘는 미래의 일이었을 텐데 그것을 내다보았다는 건…… 도무지 믿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 건 예지를 신위로 둔 신이나 악마들도 해내지 못할 이적이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어느 사회든지 간에 이미 천계의 종주권을 확실하게 거머쥐어 버렸을 테니.
전사장의 영혼도 발데비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한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지.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뒤의 일을 내다본다고? 아무리 예언자라고 해도 미친 소리라고 여겼었지. 그딴 게 가능하면 아예 파멸의 때이니 뭐니 하는 게 오기 전에 차단해 버리면 될 일이 아닌가.」
전사장의 영혼은 과거를 그리듯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가 말했지. ‘위대한 존재가 꾸는 꿈은 일순(一瞬)에 불과할지니, 그 순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뭐, 이상한 헛소리였어. 나는 그럼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게 실제로 있는 것이냐고, 그딴 게 있다면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자유의사 따윈 없냐고 따지기도 했었고…… 하여간 소란스러웠어.」
『그렇습니까?』
발데비히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어쩐지 예언자가 말했다던 ‘위대한 존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하여간 당시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 날뛰기만 하던 나로서는 헛소리라고만 여겼었어. 사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고. 이리저리 다음에 병탄할 차원을 탐색하던 중에 ‘탑’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를 공략할 준비로 많이 바빴었거든.」
발데비히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거인족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자 바짝 긴장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대체 자신을 알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랜 관측 끝에 탑이 도전할 만한 곳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일족이 전부 이주하기로 결정이 났지. 하지만 모두가 갈 수는 없었어.」
발데비히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쭈뼛 세웠다. 모두가 갈 수 없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양반도 있었고, 부상자들도 있었고…… 하여간 그때, 예언자는 그런 이들이나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일원과 함께 고향에 남기로 하였다.」
『……!』
고향.
거인족이 잉태된 곳.
그곳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예언자가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으니 그동안 방주를 준비하고 있겠노라고. 비록 위대한 존재의 꿈은 일순이지만, 거기서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단편적으로나마 훔쳐보는 방법을 배웠다나? 하여간 그랬었지.」
두근.
두근.
발데비히는 전사장 영혼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나의 바보 같은 이름을 길이길이 남겨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보낼 것이라고도…… 하여간 그러하였어. 사실상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오기로 되어 있던 존재였던 셈이지.」
전사장의 영혼은 푸근하게 웃었다.
「너는 나의 후예이며,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약속된 신의 사도인 셈이다. 어린 발데비히여.」
발데비히는 주먹을 강하게 꽉 쥐었다.
「우리를 영도하기로 한 신은 이제 막 탄생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우리를 돌보셨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너는 그분의 자식이 되어, 우리를 드디어 오랜 고난과 역경에서부터 약속된 땅으로 이동(Exodus)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 이제부터는 일족을 다시 부흥시켜야만 하는 책무가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퍼석!
순간, 전사장의 영혼이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몸이……!』
발데비히가 화들짝 놀라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전사장의 영혼은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뻗어 그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고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발데비히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부디 흔들리지 말고, 지금처럼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쭉 너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거라.」
『당신이 하시오! 그러면 될 것 아니오!』
「죽음은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이 잉태할 수 있도록 거름이 되기도 하는바. 죽음과 삶은 모두 돌고 도는 일순(一巡), 한번 꾸면 덧없이 사라지지만 몇 번이고 다시 꿀 수 있는 꿈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시대는 죽음으로 이미 끝이 났고, 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니, 나는 죽어서도 너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전사장의 영혼은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 그는 아주 지쳐 있었다. 초월적인 존재들도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할 아주 기나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지내며,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희망을 기다리기만 해야 했으니.
하지만 이제 예언자가 말했던 대로 다시 일족이 일어난 것을 본 이상,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새로운 발데비히가 일족을 잘 이끌어 가리란 확신을 얻은 이상, 그에게는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는…… 쉬고 싶을 뿐.
「그래도 한 가지 부탁만 하자꾸나.」
『말씀…… 하십시오.』
발데비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전사장의 영혼이 어떤 생각인지 알게 되었으니, 그를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 우리의 신을 따라 이 감옥 같은 탑을 벗어난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를 그 사람의 곁에 묻어 주기를…….」
그 사람.
예언자는 어쩌면 그의 연인 혹은 아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말을 끝으로.
파아아-
전사장의 영혼이 잘게 부서져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 모든 입자는 고스란히 발데비히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일족을 최고 전성기로 이끌었고, 몰락으로도 몰아넣었던 마지막 왕이 남긴 미련과 업은.
작은 후계자와 함께 섞여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 * *
“‘보그’, 너희들은 이 정도면 되겠지.”
『이게 무슨 짓이냐! 고작 이따위를 가지려고 여태 그 고생을 한 줄 아나?』
[신의 사회, ‘보그’가 당신의 결정에 적극 항의합니다!]
연우는 약속한 대로 사절들에게 계시록을 나눠 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잡아떼고 싶었지만, 그들 간에 맺어진 계약은 탑의 시스템에 기초한 언령이며 퀘스트.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상의 정도는 정해진 바가 없어 어디까지나 연우의 자의적인 판단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사절들은 그때마다 항의를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끽해야 몇 개의 구절을 주었으니, 하계까지 내려와 개고생한 대가로는 너무 짜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일이 벌어졌을 때, 너희들은 중립을 표방했다고 들었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
“분명히 처음부터 말했을 텐데? 보상은 기여도에 따라서 책정될 거라고.”
『하지만!』
“유적지들을 탐방할 때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었고, 배반자들이 일을 벌일 때 그쪽 편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군 쪽에 선 것도 아니었으니 기여도도 줄어들 수밖에.”
보그의 사절, 레스가 뭐라고 더 항의를 하려 했지만.
[신의 사회, ‘데바’가 틀린 말이 없지 않느냐며 그냥 떠날 것을 종용합니다.]
[신의 사회,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데바’의 의견에 찬동합니다.]
……
[악마의 사회, ‘절교’가 조소를 날립니다.]
……
『이……!』
레스는 다른 거대 사회들의 시선이 강렬하게 쏟아지자, 더 이상 따지지 못하고 분을 삼켜야만 했다. 사실 연우의 말도 틀린 건 없었으니. 결국 홱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연우는 크게 개의치 않고 뒤쪽에 있던 사절을 보며 말했다.
“다음.”
불만 섞인 반발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보상 절차는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었다. 의외로 연우의 보상이 ‘기여도’에 근거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그들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정도였다.
[신의 사회, ‘말라흐’가 당신의 보상에 만족해합니다. 에녹서를 완성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합니다.]
[‘말라흐’가 당신과의 연대를 발표하였습니다.]
[에덴으로의 초대장이 도착하였습니다.]
[메타트론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거래를 계속하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부디 재고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메타트론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또한, 기회가 된다면 한번 에덴을 방문해 주시길. 만약 원하신다면 가브리엘의 자리도 당신을 위해 비워 놓고 있겠습니다.]
말라흐는 아예 연우와의 연대를 선포할 정도로 만족에 찬 반응을 보이며 천천히 자취를 감췄고.
『흥! 저 뒤가 구리기만 한 천사 놈들의 제안 따윈 들을 가치 따위도 없다. 너는 누구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니, 언제든 찾아와라. 무엇이든 내어 줄 테니.』
[바알이 아가레스의 의견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입니다.]
르 인페르날도 아가레스를 통해 영입 제안을 하면서 다시 천계로 돌아갔다.
그렇게 모든 정산이 끝난 뒤, 사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계로 속속 되돌아갔다.
하계에 강림을 하고 있는 동안 소모된 인과율이 너무 막대한 데다가, 연우에 대해 조금이라도 빠르게 사회에 보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미 연우의 성역이 되어 버린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게,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위험천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게 언제나 소란스럽고 우울하기만 할 것 같던 60층의 히든 스테이지가 한순간 한적해지고.
「말도 안 돼……!」
여태 사절들이 딴짓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던 샤논이 충격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우는 저놈이 또 왜 저러나 싶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왜 안 하는 거야?」
“뭘?”
「뒤통수.」
“…….”
「주인이 이렇게 순순히 보상을 내어 준다고?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사실대로 말해. 너 인성왕 아니지?」
“…….”
「딴 놈이 우리 인성왕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분명해!」
순간, 연우는 샤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귀찮음이 더 컸기에 그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면서 대답했다.
“어차피 저렇게 나눠 줘도 상관없어.”
「뭐?」
“나눠 준 것들, 전부 두서없이 군데군데 잘라서 준 것들이라 해석부터 한참 시간이 걸릴 테니까.”
「…….」
“게다가 어디 계시록이 그냥 보기만 한다고 해서 쉽게 해석이 가능하고, 바로 강해지는 줄 아나? 기반 지식부터 다져야 할 텐데,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도 적지 않을 테지.”
애당초 연우는 천계에서도 가장 방대한 학식을 지녔던 브라함을 비롯해 여러 지식인으로부터 지식을 전수했고, 에메랄드 타블렛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현자의 돌을 완성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충분한 기반 지식을 갖고도, 창공 도서관에서 계시록의 몇 페이지를 보는 데에만 20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런데 고작 몇 구절 혹은 몇 페이지를 갖는다고 해서, 사회가 격변할 정도의 큰 성과를 볼 수 있을까?
연우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신과 악마는 오랜 삶을 영위하며 방대한 지식을 가졌으니, 연우보다 훨씬 빠른 습득과 해석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질서’의 축에서 태어난 존재인 저들이, ‘혼돈’에서 빚어진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천계의 존재들은 초월을 이룬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법칙에 강하게 얽매여 있다. 특히 그들의 기반이 되는 신위와 신화는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더더욱 질서의 축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바.
그런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법칙에 해당하는 외우주의 지식은…… 오히려 독이었다.
연우는 그것을 고스란히 꿰뚫어 보았고, 내어 주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설사 어찌어찌 온전히 해석을 해 낸다고 해도, 그것을 체득하려면 신위와 신화를 다시 알맞게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최소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할 터. 올포원과의 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에서는 큰 도움이 되기 힘들었다.
연우가 원하는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자신은 그사이에 더 많은 발전을 이뤄 낼 테니, 전혀 걱정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샤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샤논의 혼잣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연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런 타계의 법칙을 읽어 내고, 신위와 신화를 해체하는 미친 짓을 저질러서 체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때는 정말 위험한 녀석이 나타날지도.’
* * *
고룡 칼라투스가 되돌아온 건,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후두둑!
「그새 모두 되돌아갔나 보군.」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여왕은 돌아갔나 보군요.”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지. 아직 못 다 끝냈어.」
연우는 여름여왕과 칼라투스 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개입할 만한 문제가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칼라투스에게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궁금한 게 많겠지?」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물어보게.」
칼라투스는 얼마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절망의 늪으로부터 구해 준 은인에게 무엇인들 못 해 줄까.
“당신이 혼돈의 마룡인지 뭔지가 되기 전에 제게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칠흑. 그곳으로 가라고 이야기했었지.」
“예. 정우가 있다는 곳, 어딥니까?”
「자네도 이미 보지 않았나.」
순간, 연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칼라투스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자네의 무의식 속에 있던 심연. 그게 바로 칠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