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44화 (544/862)

19화. 탈환 (1)

기실 연우에게 있어 올림포스는 마음속 짐 덩이나 다름없었다.

아테나는 동생에 이어서 자신에게까지 항상 따스한 눈길을 보내 주었던 누이 같은 존재였고, 헤르메스는 초창기부터 자신을 돌봐 주었던 형 같은 사람이었다.

하데스는 동생의 영혼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준 안내자였고, 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스승 같은 존재였다.

포세이돈은 원수로 만났지만, 마지막에는 손을 내밀어 주었던 사내였고.

아레스는 푼수 같은 면이 강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멋있는 모습으로 남고자 했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는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자신의 길을 응원해 주었으며.

헤스티아와 데메테르 등은 자신의 길을 막고 방해는 했다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는 없는 사이였다.

즉, 연우가 탑에 들어오고 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올림포스와 깊게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대립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자신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었던 존재들.

하지만 그들은 타르타로스에서 패퇴하여 에레보스로 밀려났다가, 타천까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몇몇은 절차가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연우 자신도 힘을 최대한 끌어 올렸고 막강한 전력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타르타로스 탈환을 계속 미뤄 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물론, 맨몸으로 타르타로스에 입장할 수는 없었다.

아르티야는 시의 바다를 찾기 위해 여전히 층계에 남아 있어야 하니 제외.

거인 군단이 있다지만 무작정 밀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티탄과 기가스는 기어코 올림포스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어. 신격도 그만큼 회복했을 테니, 전력은 이전에 부딪쳤을 때보다 훨씬 막강해졌겠지.’

더구나 저들의 뒤에는 대지모신이 있었다.

모든 신화의 공통된 적인 그녀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다른 천계의 움직임도 각별히 주의해야 할 거고.’

천계의 여러 사회들은 티탄-기가스가 대지모신과 함께 버젓이 활동하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

그들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협약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암묵적인 거래가 있음이 분명했다.

더구나 연우는 60층의 히든 스테이지에서 천계의 여러 사회들에게 분란의 씨앗을 심어 둔 상황.

그에게 이를 갈고 있을 놈들이 분명히 훼방을 놓으려 들 테니, 최대한 차근차근히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번 일로 적아가 확실하게 갈라지겠지. 여러모로…… 힘들 수밖에 없는 싸움이야.’

하지만 연우는 어떻게든 타르타로스를 탈환해야만 했다.

타르타로스는 하데스의 성역. 사왕좌를 이은 몸으로서 그곳을 되찾지 않은 상태로 모든 신권을 회복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티탄-기가스도 상대하지 못하고서야 올포원을 꺾을 수는 없을 테니.’

연우에게 있어 이번 타르타로스 탈환은 ‘대전쟁’이나 다름없는 빅 이벤트였다.

‘올 때가 됐는데?’

연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타르타로스는 여러 신과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부딪칠 게 분명한 격전지.

당연히 연우만 그리로 걸어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지금 그에게는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 순간.

쿠쿠쿠-

하늘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의 사회, ‘천교’가 막대한 양의 인과율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강림이 이뤄집니다!]

[강림이 이뤄집니다!]

동시에 새하얀 서광이 대지를 라퓨타 위를 비추는가 싶더니, 강렬한 뇌전 두 개가 연우 앞으로 떨어졌다.

서광은 천천히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하나는 이미 연우에게도 익숙한 이랑진군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타오를 듯한 적발을 늘어뜨린 채, 전신에 갖가지 무기와 보패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낯선 사내로 변했다.

왼팔에는 굵은 채찍을 한껏 두르고, 허리춤에는 세 자루나 되는 검을 찬 채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등에도 두 자루의 기다란 창과 거대 방패가 걸려 있었다.

두꺼운 청동 갑주는 여기저기에 상처가 많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면서도 단단한 기백을 품고 있었으니.

깊게 눌러쓴 투구 아래로 비치는 눈빛 또한 강렬해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등골을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연우는 단순히 외형만으로도, 그가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타태자.’

천교는 옥황상제가 쓰러진 이후, 세 명의 신장(神將)들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치의 중심이 되어 주도적으로 천교를 이끄는 이랑진군.

뛰어난 일인군단(一人軍團)으로서 용맹을 자랑하는 벽력자.

그리고 나타태자……

……나타태자는 ‘태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교 내에서도 고귀한 신분에 속했다.

옥황상제의 통치 시절에 대장군이었던 탁탑천왕의 아들로서, 당시 절교와의 전쟁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위대한 옛 영웅의 영혼에다 천교 내에 있는 귀한 보패들, 즉, 신물들을 모두 모아 탄생시킨 인간 병기(人間兵器).

그게 바로 나타태자였다.

“그대가 ###이라는 아이인가? 흠! 과연.”

나타태자는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랑진군이 차분하고 조용하다면, 나타태자는 어딘지 모르게 맑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병기’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따스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 다르게.

연우는 피부가 찌릿찌릿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자…… 강하다.’

나타태자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조금씩 끓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전신에 두른 여러 병장기들이 내는 예기(銳氣)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가 품고 있는 투기(鬪氣) 때문인 걸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몰랐다.

손끝이.

너무 간지러웠다.

[비마질다라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간질거리는 손끝으로 병장기를 매만집니다.]

[케르눈노스가 고요한 눈으로 당신을 응시합니다.]

“비마질다라에 케르눈노스까지? 저 자존심 강한 꼰대 같은 치들이 관심을 보이다니. 호오!”

나타태자는 위쪽의 시선을 느끼고 가볍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혼돈이 천계의 두 신을 지켜봅니다.]

“절교도 관심이 많은 듯하고. 세상사에 무관심한 저이까지 보인다라?”

연우에게 호의를 보이다, 최근에는 좀처럼 모습을 비추지 않던 사흉의 혼돈까지 나섰으니.

나타태자는 연우를 다시 봤다는 듯 보면서 투구를 고쳐 썼다.

“이거, 아무래도 이번 출정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는 수밖에 없겠는데? 그나저나.”

나타태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는 연우를 보면서 엷은 미소를 뗬다.

“그런 눈으로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호승심이 끓잖나.”

그 말과 동시에 나타태자는 등에 매달고 있던 창 중 하나를 단숨에 뽑았다.

화첨창. 날에서부터 자루까지 온통 붉은 쇠로 되어 있는 그것은 나타태자의 손에 잡히자마자 온통 불길로 둘러졌다.

연우 역시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있던 마장대검을 역수로 뽑으면서 기수식을 갖췄다.

그렇게 순간 둘 사이로 날카로운 기류가 흐르고.

“무슨 짓인가! 아군이 되어서 힘을 합치지 못할망정 벌써부터 내분이라니!”

이랑진군이 잔뜩 노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타태자는 피식 웃으면서 화첨창을 바로 거둬들였다.

“내분이라니. 흥을 두고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는 걸 보니, 자네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멀었군. 그러니 교내 사람들이 자네를 여전히 어려워하는 거야.”

이랑진군은 그런 나타태자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나타태자의 다른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타태자를 다시 천계로 되돌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는 그나마 같은 삼신장 중에서 말이 통하기라도 하지, 벽력자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천둥벌거숭이였으니. 자신도 같이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벽력자를 억지로 떼어 놓느라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여하튼 이로써 강림은 완전히 이뤄진바.

이제는 같이 타르타로스로 넘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연우는 마장대검을 거두고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혹시 천교의 지원이 이게 끝은 아니겠지?”

이랑진군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걱정 않아도 된다. 지금은 인과율의 효율성을 위해 우리 둘만 강림한 거니까. 본격적으로 개전(開戰)되면 군이 투입될 것이다. 벽력자가 현재 그들을 인솔 중에 있고.”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천교’에 이것은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며 적극 항의합니다.]

[신의 사회, ‘천교’가 이것은 동맹을 위한 출전일 뿐이라며 항의 의사를 거부합니다.]

[두 사회 간에 미묘한 긴장이 흐릅니다.]

[천계의 여러 사회들이 ‘올림포스’와 ‘천교’를 예의주시합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가 적극적으로 가담한다면 티탄-기가스와의 충돌에도 그만큼 승산이 높아지는 셈이었으니.

무엇보다. 천교와의 동맹은 연우와 망자 군단이 ‘새로운’ 사회로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럼 출발하지.”

연우는 타르타로스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신의 사회, ‘말라흐’가 당신의 앞길에 축복을 내립니다!]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당신의 투지를 응원합니다!]

* * *

[히든 스테이지, ‘타르타로스’에 입장했습니다.]

확실히 타르타로스 내에 흐르는 공기는 일반 스테이지와 많이 달랐다.

그리고 하데스가 있을 때와도 많이 달랐다.

마치 그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곳은 ‘올림포스’의 신, 티폰의 성역입니다.]

[스테이지 내에 흐르는 신력이 당신의 입장을 거부합니다!]

[강제 진입을 시도합니다.]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신력의 방해로 인해 당신에게 주어진 여러 축복들이 무효화되거나 약화됩니다.]

[허락받지 않은 침입이기에 당신이 이룬 신위가 약화됩니다.]

[허락받지 않은 침입이기에 당신이 쌓은 신력이 약화됩니다.]

……

[외부의 시선이 일절 차단되었습니다.]

‘역시나.’

연우는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에 가볍게 혀를 찼다.

사실 다른 신과 악마의 성역에 침입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 역시도 기어 다니는 혼돈의 성역을 자신의 것으로 빼앗으면서 여러 신과 악마들을 골로 보냈던 전적이 있는 만큼, 그 위험성을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 이상, 타르타로스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천계로 올라가 티탄-기가스와 전쟁을 치러 강탈하는 수밖에는 없는데…… 그러기엔 시기가 너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올포원도 제치기가 쉽지 않을 테고. 좀 벅차더라도 이 수밖에는 없어.’

재미를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을 방관하기만 하던 기어 다니는 혼돈 때와는 전투 양상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흠.”

“역시 좋지는 않군. 적의가 아주 곳곳에 넘쳐 나.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이랑진군과 나타태자는 연우에 대한 티탄-기가스의 적의가 이 정도였나 싶어 놀라면서도, 앞으로의 싸움에 많은 피해가 따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

우르르, 쿠쿠쿵-

잿빛으로 가득하던 하늘이 크게 요동쳤다.

“벌써 왔나?”

나타태자는 놈들의 공세가 벌써 시작되었나 싶어 화첨창을 다시 움켜쥐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여차하면 곧장 양쪽 발에 달린 풍화륜을 돌려 하늘로 튀어 오를 심산이었다.

그런데.

“잠깐. 기다려.”

연우가 그런 나타태자를 만류했다.

나타태자가 왜 그러나 싶어 연우를 돌아보는데.

연우는 타르타로스에 입장하는 동안 쌓여 있던 지난 메시지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자신도 강림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사회에다 요청합니다!]

[‘르 인페르날’의 수장, 바알이 이미 지난번에 사용한 인과율의 양이 너무 크다며,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아가레스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적극 항의합니다.]

[바알이 무시합니다.]

[아가레스가 강짜를 부립니다.]

[바알이 무시합니다.]

[다른 악마들이 고개를 돌려 그런 아가레스를 못 본 척합니다.]

[아가레스가 이를 갑니다.]

……

[아가레스가 ‘르 인페르날’로부터 임시 탈퇴를 하였습니다!]

[동마왕군이 아가레스의 결정을 좋아 집단 이탈을 선언합니다!]

[강림이 이뤄집니다!]

‘이런 미친놈이……?’

연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려야만 했다. 이전에도 임시 탈퇴를 한 적이 있다지만, 그때는 바알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텐데. 이번은 순 억지가 아닌가!

콰콰쾅!

하지만 아가레스는 뭐 어쩔 거냐는 식으로 나서면서 강림을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검은 벼락이 지상으로 떨었다.

그런데.

‘두 개?’

하나가 더 있었다.

츠츠츠-

검은 서광이 사라진 자리로, 이전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크기를 줄인 아가레스와 함께, 다른 존재도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니플헤임’의 악마, 펜리르가 당신을 보면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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