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48화 (548/862)

23화. 탈환 (5)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 두 개의 사회로부터 동시에 축복을 받고 있는 토르는 그야말로 무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반면에 그와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외부와 채널링이 모두 끊어진 상태. 신력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없고, 신위도 제대로 작동하질 않으니 무력도 절반 아래로 떨어져 비교적 많이 약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자존심까지 약해진 건 아니었다.

『감히!』

특히 자존심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강한 아가레스의 분노가 가장 컸다.

아가레스는 저만치 높은 허공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재빨리 본체로 돌아와서는 균형을 잡으면서 마기 폭풍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쿠쿠쿠-

그러자 천지가 격동하는 듯한 엄청난 떨림과 함께, 마기 폭풍이 빠른 속도로 한데 응축되기 시작했다.

위치는 아가레스가 위치한 상공.

『내려라.』

아가레스가 손을 거세게 아래로 내리쳤다.

그러자 응축되었던 마기 폭풍이 폭발과 함께 다시 한번 더 크게 확장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던 검은 화살을 수백 개나 잇달아 토해 냈다.

퓨퓨퓨퓻!

하나하나가 전부 마기가 극한으로 압축되어 공간과 차원 표면(次元表面)을 꿰뚫을 정도의 위력을 자랑하는바.

자칫 ‘존재’의 붕괴도 강제로 끌 어낼 수 있는 흉기였다.

하지만.

차차차창!

토르는 이번에도 뇌력을 최대로 출력하면서 몰니르를 거세게 휘둘렀다.

궤적에서 파생된 황금색 뇌전이 사방팔방 거미줄 형태로 번져 나가면서 검은 화살들을 모조리 튕겨 내는 걸로도 모자라.

다시 한번 더 하늘에서부터 십여 개나 되는 굵직한 벼락을 불러냈다. 벼락은 아가레스의 머리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귀찮은!』

아가레스는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면서 검은 날개를 더 크게 활짝 펼쳤다. 마치 스테이지의 하늘을 전부 뒤덮을 듯 커진 날개가 크게 홰를 치면서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는 동안.

토르는 다시 한번 더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왼손에 잔뜩 응축시킨 뇌기를 터뜨리면서 땅거죽을 크게 일으킨 것이다.

이쪽으로 날아오던 나타태자와 이랑진군, 펜리르 등의 발이 그렇게 잠깐 묶인 동안.

팟!

토르는 잠깐 미뤘던 뇌신보를 밟았다. 신체를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뇌전으로 치환, 빛의 속도로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걸음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한 속도를 동반한다는 것은 가속력이 더해진 강한 일격을 적에게 먹일 수도 있다는 뜻.

토르가 그렇게 정한 타깃은 방금 전에 그가 잡으려던 이랑진군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연우.

『쥐새끼 같은 놈. 여기에 있었구나!』

황금색 뇌전을 한껏 두른 채, 토르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었던 모멸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려는 듯, 몰니르는 여태껏 보였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뇌기를 출력하고 있었고.

여태 용신안을 뜬 채 녀석의 전투 스타일을 측정하던 연우는 빠르게 격을 개방했다.

[6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연우는 용의 비늘이 잔뜩 돋은 팔로 마장대검을 빠르게 뽑으면서 휘둘렀다. 검신을 타고 뻗쳐나온 검뢰가 불길하게 반짝이는 검붉은 색으로 일어나 황금색 뇌기와 충돌했다.

쿠쿠쿠쿵!

첫 충돌은 연우의 패배였다.

황금색 빛살이 검붉은 물결을 단번에 지우면서 연우를 거세게 후려친 것이다.

그 때문에 연우는 바닥에 깊은 고랑을 내면서 아주 먼 곳까지 길게 밀려나야만 했고.

『죽여 주마!』

토르는 연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하다고 판단, 다시 한번 더 뇌신보를 밟으면서 간격을 단번에 좁혀 몰니르를 내리쳤다.

하지만 연우는 방금 전에 힘 싸움에서 크게 밀렸는데도 불구하고 별반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도리어 침착하게 한 발을 내디디면서 마장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역시 아가레스 등처럼 신력의 구속을 받고 있다지만, 사실 그에게는 이런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패가 있었다.

[검뢰팔극]

미후왕의 허물이 그를 위해 만들어 낸 절기!

콰르르릉!

마장대검이 이대로 터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검뢰를 터뜨렸다.

이전보다 두 배로 출력된 검뢰는 토르의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 내는 데 성공했고.

세 번째에 이어진 공세는 토르도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콰르릉, 콰릉, 콰르르-

『이게 무슨……!』

단번에 수백 미터 바깥으로 튕겨 나고 만 몰니르는 이게 말이나 되느냐는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팔이 덜덜 떨렸다. 묠니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크게 요동쳤다. 만약 가호와 축복이 아니었더라면 팔이 그대로 박살 났을지도 모를 정도의 위력.

이미 그들이 있던 주변은 쉴 새 없이 튀어 오른 뇌전의 여파로 모든 게 다 망가져서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춘 게 없을 지경이었다.

토르는 자신의 상식으로 도저히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력 구속으로 인해 검뢰를 빚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던 녀석이 어떻게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는 거지?

체내에서 검뢰를 서로 맞부딪쳐 위력을 증가시키는 검뢰팔극의 구조를 잘 모르는 토르로서는 연우가 여태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비상식적이라고만 여겼다.

다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예를 펼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기억 공간 한쪽 구석에다 처박아 억지로 잊으려 했던 놈이 있었으니.

다짜고짜 아스가르드로 쳐들어와서 훼방을 놓던 작자.

그런데 지금 연우가 보인 모습에서 그 녀석이 언뜻 겹쳐지는 건 왜일까?

『설마? 제천대……!』

하지만 토르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방금 전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연우가 블링크를 밟으면서 바로 눈앞에 나타나 마장대검을 내려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극(四極).

현재 연우가 발휘할 수 있는 검뢰팔극의 최대 출력이었다.

토르는 여기서 뒤로 빠지기가 아주 어려우리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그 역시 정면에서 막아 내는 것!

토르는 지난날 자신과 동료들이 받았던 치욕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고, 그런 녀석을 떠올리게 하는 연우가 더더욱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토르는 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스가르드의 전신으로서 지금은 눈앞의 상대를 확실히 꺾어야 할 때라고 판단하며 묠니르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파직, 파지직-

그가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을 끌어 담듯이 담자, 황금색 뇌기는 이제 찬란한 물결이 되고 말았다.

파지지직!

〈천둥신의 망치〉

토르가 오래전, 연우가 마음에 들어 내렸던 것과 똑같은 권능이 발동되면서 세상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콰아아앙!

콰르르르르-

검붉은 폭우와 황금색 물결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강하게 충돌을 반복했다.

누구 하나 밀려나지 않는 팽팽한 접전.

아니, 연우 쪽이 더 우세했다.

만약 신력 구속이 없었더라면 승리까지 거머쥘 수 있었을 터.

그러다.

콰직!

마장대검의 검날 위로 균열이 생기더니.

퍼어엉-

그대로 박살 나 터지고 말았다.

사실 그건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헤노바가 대단한 실력을 지닌 대장장이라고 하지만, 대신격을 밀쳐 낼 정도의 거력(巨力)을 담은 채로 계속 충돌하고서야 내구도가 거의 바닥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

하물며 여태껏 아스가르드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신물인 묠니르와도 몇 번씩이나 충돌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 시점이 공교롭게도, 한창 힘겨루기가 벌어지던 때라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검뢰팔극의 사극은 연우가 마력은 물론, 심력까지 억지로 쥐어짜야만 전개가 가능하던 것. 갑작스러운 힘의 통제 이탈은 연우에게 아주 치명적이었다. 순식간에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귓가로 ‘삐이-’하고 이명(耳鳴)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토르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아앙!

다행히 연우는 마지막 순간에 어지러운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면서 크라슈나의 단검을 뽑아 묠니르를 비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

여파는 아주 대단했다.

마치 대지와 하늘을 잇는 듯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세워지는가 싶더니, 엄청난 빛과 열을 동반한 후폭풍이 끝도 없이 퍼져 나갔으니.

타르타로스의 전역을 뒤덮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맹렬한 속도였다.

파스스-

그리고 그 여파로 크라슈나의 단검도 마장대검처럼 조각 나 부서지더니, 결국 가루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이로써 연우는 모든 무기를 잃어버린 상태.

원래대로라면 비그리드를 사용해야 했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 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가 마성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자아를 가져간 것…… 그게 걸려.’

당시에는 도저히 꿍꿍이를 알 수 없고, 신력을 주겠다는 말 때문에 그냥 넘어갔었다지만.

그래도 찝찝함은 남아 있는 탓에, 안전장치가 없는 지금은 비그리드를 사용하기가 많이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크크…… 쓸데없는 생각으로만 가득하구나. 하지만 이대로 뒈져 버린다면 그딴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이지? 이럴 때가 아니라고. 그리고 여기서는 마력 회복도 잘 되지 않을 텐데?』

그때, 마성이 연우의 생각을 읽은 듯, 귓가로 작게 속삭여 왔다.

연우의 한쪽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사실 녀석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는 신력 구속으로 인해 다른 층계와 다르게 마력 회복도 더뎠다. 이대로 계속 토르와 접전을 벌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는 전쟁을 절대 장기전으로 끌고 나가서는 안 되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승부를 단기에 끝내야만 했다.

실제로 토르는 저만치 밀려난 상태로도, 이미 어느 정도 회복을 마쳤는지 다시 강렬한 뇌기를 발출하기 시작했으니. 미친 듯한 재생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독이 든 사과라는 것을 알고도 먹을 수밖에.

『옳은 판단이야. 키키킥!』

마성의 웃음소리가 영 거슬렸다. 어쩐지 녀석이 의도하는 대로 판이 깔리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연우는 어쩔 수 없이 공허를 열어 비그리드를 묶고 있던 구속을 풀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티탄과 기가스 놈들의 노림수도 파악해야 하고.’

이쪽 전선은 조무래기와 아스가르드에게만 맡겨 놓고, 녀석들의 본 전력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걸까?

차륜전?

그도 아니면.

‘양면 전술?’

그런 생각이 미치는 동안.

쐐애액-

그의 손에 비그리드가 빨려 들어와 잡혔다.

그리고 합일이 이뤄지면서 의식이 무한하게 확장했다.

텅 비어 있던 현자의 돌과 드래곤 하트가 다시 충만해지고, 피로에 절었던 육체가 다시 새것으로 탈바꿈한 듯 단단해졌다.

화아악-

기어 다니는 혼돈과 겨루어도 맞먹을 만큼 강했던 힘은, 단순히 격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타르타로스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다행히 의식도 ‘연우’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만큼 강렬하고 압도적인 힘은, 성역이 주는 여러 가지 구속도 강제로 떨쳐 내는 법.

『말도 안 돼……!』

토르는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드는, 연우를 닮은 무언가가 뿌려 대는 격의 향연에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라면…… 아버지이자 아스가르드의 주신, 오딘과도 거의 맞먹을 만한 힘이 아닌가.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도구의 힘을 빌렸다지만…… 이런 녀석이 정말 플레이어라고?

그렇다면 탈각을, 나아가 초월까지 이룬다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도저히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생각은 잠시.

‘이것들이……!’

토르는 다시 호시탐탐 이쪽을 보면서 합공할 기회를 노리는 아가레스 등의 기척을 느끼고, 이를 바득 갈아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여기는 자신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결국 지원군을 부르는 수밖엔 없었다.

[토르의 요청에 따라, 대기 중이던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의 병력이 출전을 선언합니다!]

[‘올림포스’와의 동맹 관계에 따라, 지원군을 위한 대규모 포탈이 열립니다.]

하늘을 따라 수많은 대형 포탈이 열리면서, 그 너머에 대기하고 있던 아스가르드의 군단이 일제히 하강을 시도했다. 선두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최고 전사들, 발키리와 발할라의 전사들이 달리고 있었다.

디스 플루토는 티탄을 물리치다 말고,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무래도…… 싸움이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람은 아스가르드의 전사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면서도,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푸르게 빛나는 안광이 흉흉하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런 전장을 보면서.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그제야 타고난 직관력을 바탕으로 녀석들의 노림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티탄-기가스의 본단은 타르타로스의 저항군 본영을 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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