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49화 (549/862)

24화. 탈환 (6)

만약 지금 내린 추측이 맞는 것이라면 절대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일이었다.

티탄-기가스가 직접 본영을 이끌고 상대할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저항군의 중심이 되는 곳일 테니까!

그리고 그런 곳에 있을 인물 역시 절대 작은 인물이 아닐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연우가 그토록 찾던 올림포스의 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서 어떻게든 너희들을 죽이고 말겠다는 듯, 여러 대형 포탈을 따라 하강을 시도하는 아스가르드의 전력은 너무나 많았고.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가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화를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철컥!

촤륵, 촤르륵-

연우를 닮은 무언가는 여태 오른팔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을 해제하면서 그 끝에다 비그리드를 설치했다.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하르페’를 개방합니다.]

[전승: 불사 불인]

비그리드가 진명을 개방하면서 데스 사이드의 형태로 변화를 시도, 쇠사슬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아스가르드의 병력들이 쏟아지던 입구를 모조리 휩쓸기 시작했다.

콰콰콰-

검뢰가 담긴 하르페의 공세는 거셀 수밖에 없었고, 이제 막 진입을 시도하려던 병력들은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데스 사이드에 허리가 모조리 잘려 나갔다.

『크아악!』

『이, 이게 무슨…… 컥!』

삽시간에 3할에 가까운 전력들이 쓸려 나가자, 발할라의 전사들 뒤로 이어 진입하려던 신들이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 하르페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지만.

촤르륵, 촤륵!

하르페에 매달린 쇠사슬이 공허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투로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르페는 절대 신들이 쏟아 내는 공세에는 맞부딪치지 않았다. 마치 물살을 자유롭게 헤치고 다니는 범고래처럼 위험하다 싶으면 피하고,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사각지대에서 공허를 열고 나타나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검뢰가 번쩍이면서 하늘을 찢어발길 듯한 열풍을 계속 토해 냈다.

촤르르륵-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뒤였다.

하르페의 난도질을 겨우 헤치고 나서 전장에 들어섰다 싶으면.

츠츠츠-

그림자에서부터 일어난 새로운 병력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신께, 승리를!』

발데비히와 함께 일어난 일천 명의 망자 거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높이 든 채로 포효를 내지른 것이다.

고향에서 연우를 기리는 신전을 세우고,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전력을 한껏 끌어 올린 망자 거인들의 투기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고.

익히 그들의 용맹을 알고 있던 아스가르드로서는 두려워했던 일이 발생하게 되자 단단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빛이여! 우리와 함께하소서!』

아스가르드 병력의 수장, 발드르의 명령에 따라 하강이 가속화되면서.

망자 거인과 아스가르드 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래전에 사멸했다고 알려진 거인족의 후예들이, 머나먼 시간을 넘어 천계의 존재들과 대립을 시작한 것이다.

『감히!』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토르가 묠니르를 든 채, 뇌신보를 밟아 연우를 다시 한번 더 밀치려 했지만.

콰아앙!

토르는 연우에게 접근하기는커녕, 도중에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나타태자가 화첨창으로 묠니르를 막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웃음과 다르게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첫 충돌 때에 토르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저 친구가 많이 바빠서 말이지. 내가 대신에 놀아 줌세.”

『비켜라, 이 잡것이!』

“잡것이라.”

순간, 나타내자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나 역시 어딜 가면 꽤나 존귀한 신분이라고 대접을 받는데…… 그 말은 자존심이 상해서 묵과할 수가 없군. 도저히.”

화아악!

나타태자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강풍이 불었다.

그리고.

콰드득-

나타태자를 덮고 있던 청동 갑옷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몸체가 단숨에 수백 미터 이상으로 커지고 만 것이다.

얼굴이 세 개로 늘어나고, 팔이 여섯 개로 분리된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 모습.

나타태자가 여태 숨기고 있던 본체를 완전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섯 개의 손에는 저마다 다른 병장기를 들고 있어 흉흉함을 더했으니. 세 개의 얼굴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으면서 토르를 직시했다.

『차마 이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했으나.』

『그대가 나를 계속 충동질하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그대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묻겠다.』

세 개의 입이 연달아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막대한 기파가 퍼져 나갔다.

토르도 몰니르를 바닥에 내려치면서 기파를 흘리는 것과 동시에 인상을 딱딱하게 굳혀야만 했다. 본체를 드러낸 나타태자가 절대 자신보다 아래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사이 본체와 함께 거대화된 음양검이 토르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콰르르릉!

토르도 어쩔 수 없이 몰니르를 위로 올려치면서 황금색 뇌기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이.

촤르륵-

연우는 쇠사슬을 도로 잡아당기면서 하르페를 손에 쥐었다.

『발데비히, 람. 이곳을 맡기겠다.』

티탄-기가스가 양면전술을 구사하려 한다면 반드시 막아야 하는바.

연우는 두 사람에게 뒤를 맡긴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고, 재빨리 하르페를 내리쳐 공허를 열어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팟!

연우가 나타난 곳은 전장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

오래전에 하데스와 디스 플루토를 따라 종군(從軍)할 무렵에 탈환했던 성역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티탄의 권속들이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연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아 인지 영역을 스테이지 전체로 퍼뜨렸다.

만약 티탄-기가스의 본영이 직접 움직이는 곳이라면 마력장이 범상치 않게 일렁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우는 심상치 않게 마력 충돌이 벌어지는 장소를 금세 물색할 수 있었고.

팟!

다시 한번 더 공허를 열어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

그곳에서 지난날 타르타로스에서 수없이 목격해야만 했던 대전투를 목격할 수 있었다.

시커먼 매연으로 자욱한 하늘에서는 달만큼이나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티폰의 눈이 지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이 뿌려 대는 ‘신벌’이 쉴 새 없이 세상을 눈부시게 만드는 가운데.

지상에는 거대한 성채를 중심에 두고 돌파를 시도하는 여러 티탄-기가스들과 어떻게든 사수를 하려는 저항군이 있었다.

특히 저항군 중 리더로 보이는 자의 활약이 아주 눈부셨다.

판트보다도 더 큰 체구를 자랑하는 사내는 별다른 갑주도 입지 않고, 오로지 커다란 수사자의 가죽만 상체에 두른 이상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도 거대한 나무 몽둥이가 전부.

하지만 가진 힘이 아주 대단한지, 몽둥이를 휘둘러 댈 때마다 적의 권속들 수십이 피떡이 되어 날아가고.

티탄 중 누군가가 성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발을 높이 들라치면, 그것을 홀로 잡아 막아 내고서 그대로 다리를 찢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완력까지 선보였다.

그야말로 무쌍(無雙). 그 혼자서 적의 공세를 전부 물리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으니.

이상한 것은 그에게서 이렇다 할 신격이 크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저 그가 타고난 힘이 그 모든 것을 메워 줄 만큼 대단했다.

덕분에 연우는 그가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헤라클래스!’

신들의 왕, 제우스가 과거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기 위해 탄생시켰다는 대영웅.

하지만 이후에 완연히 종적을 감춰 올림포스의 몰락 이후로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던 존재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헤라클래스는 자신이 왜 올림포스가 낳은 최고의 영웅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티폰이 잇달아 쏟아 내는 신벌도 아무렇지 않게 물리치면서 하늘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티폰의 눈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으로 봐서는 절대 좋은 말이 아닐 것은 분명하니. 티폰의 분노가 커질수록 하늘을 따라 뭉치는 태풍의 위력도 점차 강해지는 게 보였다.

그때.

쿠쿠쿠-

성곽을 둘러싼 수십의 티탄 중 한 녀석이 성곽 쪽으로 손을 뻗치는 것이 보였다.

병사 중 한 명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 위태로웠다. 헤라클래스도 뒤늦게 그쪽의 상황을 깨닫고 움직이려 했지만, 티폰의 명령을 받은 기가스들이 잇달아 공세를 쏟아 내면서 그의 발목을 묶어 버리고 말았다.

“안……!”

‘안 돼!’라고 소리를 치려는 그 순간.

촤르륵-

티탄의 손이 성곽에 닿기 직전, 갑자기 아래쪽에서부터 쇠사슬이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감기더니.

촤악!

그 끝에 달린 하르페가 단숨에 녀석의 팔뚝을 잘라 버리고 말았다.

쿠오오오!

티탄은 성곽 전체를 뒤흔들 듯이 크게 구슬픈 비명을 지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검은 신력이 피처럼 잔뜩 뿌려져 지상에선 그 모습이 마치 소낙비처럼 보였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던 병사는 갑작스레 구명을 받게 되자 뭔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그 티탄의 머리통이 잘리면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고 입까지 쩍 벌리고 말았다.

티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괴물로만 보였던 그의 눈에는 도무지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촤르르륵, 촤르륵!

콰콰콰콰-

연우가 쇠사슬을 빠르게 움직일수록 세상을 유린하는 하르페의 난도질도 더 거세졌으니.

그 위에 노출된 것들은 무엇이든 모조리 잘려 나가고 말았다. 티탄들의 사지가 수수깡처럼 줄줄이 무너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성곽 위는 온통 검은 신력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네놈이로구나……!』

티폰은 갑작스러운 전황의 변화를 깨닫고, 눈동자를 빠르게 그쪽으로 돌렸다. 헤라클래스를 볼 때보다도 훨씬 짙은 분노가 풍겨 났다.

응당 자신이 가져야 할 사왕좌를 날름하고 가져가 버린 놈.

그리고 층계에 영향력을 뻗치기 위해 연결을 시도했던 엘로힘까지 전부 가로챘던 작자가 아니던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스가르드가 연우를 상대하고 있어야 했지

『쥐새끼 같은 네놈을…… 멍청한 아스가르드가 잡을 수 없었겠지…… 차라리 잘되었다…… 저 놈과 같이 묻어 주마……!』

티폰과 대적하고 있던 헤라클래스도 연우 쪽을 보면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철컥!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게이 볼그’를 개방합니다.]

[전승: 일발 필중]

연우는 성곽에 다가서던 티탄과 기가스를 어느 정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싶자 이번에는 공격법을 바꾸었다. 쇠사슬에서 비그리드를 분리시키고, 여의봉의 조각들을 창대로 결합해 그 끝에 조립했다.

그리고 투창 자세를 갖추며 그대로 티폰을 향해 냅다 던졌다.

그에 순식간에 커다란 빛의 궤적이 형성되어 허공을 관통, 그대로 티폰의 눈이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쿠우우웅!

녀석의 눈을 보호하던 여러 겹의 결계들이 줄줄이 박살 났다. 거기서 뿌려진 불똥들이 벼락이 되어 줄줄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옛 태초 신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

콰직!

비그리드는 끝내 마지막 남은 결계마저 관통하면서 그대로 티폰의 눈을 꿰뚫고 지나갔다.

『크아아…… 크아아악……!』

티폰은 권능의 중심인 자신의 눈이 관통되자 고통에 차 몸부림을 쳤다. 반쯤 부서진 눈가를 따라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헤라클래스!”

헤라클래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거세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이 통째로 뜯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성곽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던 티폰의 ‘법칙’이 통째로 부서지고 말았다.

와장창창! 마치 유리창이라도 깨진 것 같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줄줄이 터져 나갔다.

그때, 연우가 비그리드를 회수하면서 재차 움직였다.

성역의 법칙이 잠깐이나마 무효화되면서 여태껏 녀석의 본체가 숨어 있었던 좌표가 찍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공허를 활짝 여니.

그 너머에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촛불을 피워 둔 채, 이상한 마방진 위에서 참선을 하고 있던 깡마른 사내와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티폰.

바로 그 녀석이었다.

손으로 덮고 있는 한쪽 눈에서는 부서진 눈알 조각이 핏물에 뒤섞여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줄은 생각도 못 했던지, 녀석은 크게 놀란 눈이 되고 말았고.

“여기 있었군.”

“……!”

그런 녀석을 보면서 연우는 비그리드를 거세게 휘둘렀다.

녀석을 봐줄 필요는 없었기에 곧장 검뢰팔극을 터뜨렸다. 건뢰(乾雷)와 함께 티폰의 참선방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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