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60화 (560/862)

10화. 자격 시험 (1)

연우는 도저히 지금 자신 앞에 놓인, 이 엿 같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니.

어린 시절, 가족의 곁을 떠나 죽었다고 생각했고, 그냥 존재조차 잊어버렸던 사람이다.

애증?

미련?

그런 건 애당초 하나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일 자체가 있을 리 있겠는가.

동생이 자신도 모르게 이따금 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넘기곤 했었다.

그걸 두고 동생에게 화를 내어 봤자 자신의 입만 아플 뿐. 아니, 관여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러다 처음 찾게 되었을 때가 동생이 실종되었을 때였다. 혹시 어떤 단서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

당시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어떻게든 아버지를 찾고자 수소문해 봤지만…… 그는 마치 세상에서 증발이라도 한 듯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 사실이 연우를 더욱 분노케 했고, 이후 더 이상 그를 떠올리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가 저렇게 있는 걸까?

권태로운 모습을 하고서.

아니면 그냥 단순히 닮은 사람일 뿐인 걸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연우는 세상에 그런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저기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존재의 정체였다.

크로노스에 잡아먹혔던 이들이 분명히 입을 모아 말했다.

왕이라고.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한 자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옥좌에 앉아 아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가 크로노스라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분명히 크로노스가 정말 아버지가 맞다면. ‘정지’된 지 한참 되었을 그가 어떻게 지구로 와 자신들을 낳을 수 있었는가?

아니, 어떻게 ‘정지’를 일시 해제했다고 해도, 올포원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 탑을 빠져나왔는가? 그건 크로노스보다도 위계가 높은 태초신이나 개념신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절대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온통 수수께끼였지만.

녀석은 연우의 부름이나 의문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형체를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활자들이 저들끼리 부딪치면서 ‘철컥, 철컥’ 하고 내는 소리가, 마치 그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인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눈빛에서는 별다른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니.

연우에게 고정된 시선도, 정확하게는 그가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공간을 직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지’를 했으니, 그 의식도 같이 정지해 있는 걸까?

동생이 잠들어서 꿈을 꾸던 것처럼, 그도 ‘정지’된 자아 속에서 옛 신화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걸까?

이조차도.

역시 알 수 없었다.

키득 키득.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마성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연우는 비그리드를 꽉 쥐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면.

어떻게든 알아내면 되겠지.

[6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콰드득-

연우는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모든 권능과 신권을 일깨웠다. 격이 개방되면서 검붉은 열풍이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쳤다.

그를 감시하듯이 주변을 맴돌던 활자와 문장들이 일제히 휩쓸리면서 잘게 부서져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졌다.

왕의 앞을 더럽히려 드는가.

그리고 그 광경이 연우를 지켜보던 신하들을 자극했다.

불경하도다. 불경한 자로다.

그 죄를 죽음으로 갚아라. 그리하여 왕의 신하가 되어라.

신하들은 제각기 문장을 내뱉으면서 강한 적의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왕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연우도 자신들과 같은 비루한 꼴로 만들겠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특히 선두에 선 헬리오스가 그런 마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와 같이 있자. ###. 난 너무나 억울하다.

팟!

헬리오스는 살아생전에 태양을 신위로 삼던 존재. 한번 격을 일으키자,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면서 강렬한 빛이 토해졌다. 크로노스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칠흑마저도 뒤덮을 정도로 밝았다.

그 순간.

띠링!

[시나리오 퀘스트, ‘자격 시험’이 생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 자격 시험(資格試驗) I - 태엽 찾기]

설명: 아주 먼 옛날, 크로노스는 올림포스를 이끄는 신왕(神王)으로서 그들의 전성기를 열었고, 수많은 사회들로부터 두려움과 존경을 같이 사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칠흑이 주는 광기에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던 그는 끝내 자식이었던 제우스 형제들에 의해 몰락하였고, 타르타로스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크로노스는 ‘죽음’에 잠식당한 채, 그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시계태엽이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거기다 너무 긴 세월이 흐르면서 태엽은 전부 녹이 슬고 날이 무뎌져 어떻게 돌린다 하여도, 더 이상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하지만 태엽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며, 그 속에 든 기능은 여전히 깊은 동면에 잠긴 채 새롭게 깨어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태엽을 복구하여 크로노스를 다시 ‘죽음’에서 깨어나게 하십시오.

성취도에 따라, 크로노스가 왕으로서 자신의 잠을 깨운 당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입니다.

제한 조건: 칠흑왕의 후예

제한 시간: -

달성 조건:

1. 곳곳에 흩어져 있는 크로노스의 ‘태엽’을 찾아 모으세요.

2. ‘태엽’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체를 알아내세요.

보상:

1. 크로노스의 신력

2. 시계태엽 조각

3. ???

연우는 퀘스트 창을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시나리오 퀘스트.

지난번 기어 다니는 혼돈을 몰아내고, 거인족들을 구원할 때와 비슷한 양식의 퀘스트가 또 나타난 것이다.

연우는 어쩐지 거기에 강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저 시스템의 간섭 여부에 따라 주어지는 다른 퀘스트들과 다르게…… 시나리오 퀘스트는 어쩐지 그가 해야 할 일을 ‘강제’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우가 하려던 일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퀘스트 창을 못 본 것처럼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괜히 저 내용에 매달려 행동에 제약을 두고 싶지는 않았으니.

쉬쉬쉭-

콰르릉!

빠르게 비그리드를 돌리자, 검신을 타고 흐르던 검뢰가 수십 줄기로 잘게 나뉘었다.

헬리오스가 발현하려던 권능, 〈태양을 달리는 마차〉는 신화 속에서 그가 타고 다니던 태양 마차를 인위적으로 구현해 내어 적에게 돌진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두두두-

태양 마차는 어마어마한 빛무리와 열기를 잔뜩 몰아오면서 연우를 덮치려 했지만.

수십 줄기의 검뢰는 다양한 각도에서 꺾이면서 새하얀 빛무리 사이를 통과, 곳곳에 구멍을 숭숭 뚫으면서 헬리오스에게로 다다랐다.

헬리오스는 재빨리 왼손을 거칠게 휘두르면서 또 다른 권능, 〈일광산(日光冊)〉을 일으켰다.

손날에 맺힌 하얀 신력이 칼날처럼 예리하게 일어나 검뢰를 모두 끊어 내려 했지만.

도리어 검뢰는 거기서 다시 수십 갈래로 잘게 쪼개지면서 바닥에 내리꽂혔다.

신력의 칼날이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가르며 수포로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헬리오스는 금세 수백 줄기로 이뤄진 검뢰라는 창살에 갇힌 형태가 되고 말았으니.

콰르릉, 콰릉-

거기서 일어난 폭발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헬리오스의 존재를 날려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태양 마차도 깡그리 밀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곳곳으로 튄 불똥들이 검뢰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마치 이 세상을 전부 찢어발기겠다는 듯이, 크로노스의 안쪽 세상을 무너뜨리겠다는 듯이. 검뢰는 무수히 많은 활자들을 잘게 부술 뿐만 아니라, 끝끝내 옥좌에 앉아 있는 크로노스에게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강한 뭔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 음소 단위로 쪼개졌던 활자들이 몇 겹이나 되는 보호막을 형성하면서 검뢰를 옆으로 비껴 냈다.

팟-

연우는 바로 그 사이를 달렸다. 그를 가로막아야 할 다른 신하들도 헬리오스의 소멸과 마찬가지로 이미 존재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 장애물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콰아앙!

비그리드가 보호막과 부딪치면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일대 공간도 이리저리 휘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연우가 부서진 보호막 안쪽으로 왼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력을 이용, 크로노스를 확 하고 휘감아 그대로 손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외뿔부족에서 흔히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고 부르는 묘리였다.

그때, 여태껏 얼어붙은 것처럼 권태로운 낯을 지우지 않고 있던 크로노스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마치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이, 손을 가볍게 허공에다 휘저은 것이다.

쾅!

들리는 것은 단순한 폭발 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허공섭물이 도중에 파훼되면서 그 반발력으로 연우의 몸뚱이가 한참이나 뒤로 쭉 밀려났다.

연우의 인상이 더 크게 일그러졌다. 자신을 밀어내는 힘. 티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어쩌면 기어 다니는 혼돈보다도 훨씬 우위. 역시 칠흑왕의 사도이며, 여러 신과 악마의 사회들을 오시하던 실력자다운 힘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로노스는 분명히 ‘정지’ 중이라고 했는데, 이건 대체 뭘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빌어먹을 낯짝을 한 작자는 정말 아버지와 동일인인가? 그렇다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형처럼 굴기만 하는가? 그리고 동생과 관련된 일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의문들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크로노스가 공간을 접으면서 나타나 그의 면전에 치달은 것이다. 여전히 권태로운 모습을 한 채로.

콰르릉-

비그리드의 칼날과 녀석의 손날이 맞부딪치면서, 충격파가 사방 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잘게 부서진 활자들은 이제 바닥을 뒹구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연우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작자를 아무리 추궁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이건 크로노스이되, 크로노스가 아니었다. 그저 크로노스를 쌓은 신화를 메커니즘으로 해서 움직이고 반응하지만, 제대로 된 자아를 갖고 있지 않아 아무 감정이나 사고도 도출해 내지 못하는 찌꺼기에 불과했다.

“삼켜라.”

[권능, ‘하데스의 식령검’이 크로노스에 대한 식령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연우는 아예 녀석을 완전히 집어삼킬 요량으로, 하데스의 식령검을 전개하면서 왼손으로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젖까지 치밀어 오른 화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콰콰콰!

그 순간, 세계가 크게 격동하면서 크로노스를 구성하고 있던 활자들이 음소 단위로 낱낱이 해체되어 조금씩 하데스의 식령검으로 빨려 들어왔다.

힘을 잃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압도적인 힘으로 연우를 물리칠 생각만 할 뿐, 하데스의 식령검을 뿌리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태엽’을 발견하였습니다!]

망막 한쪽 구석에서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연우는 체내에서 무언가 ‘찰칵’하고 맞물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초점이 흐리멍덩한 크로노스를 노려보던 그대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태엽’을 복구하기 위한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시험?

이게 뭔가 싶은 생각과 함께.

연우의 정신이 한순간 아래로 훅 하고 꺼졌다.

하데스의 식령검을 따라 쏟아진 수많은 활자들이, 지금은 세상에서도 잊히고 없는 먼 과거의 옛 신화들이, 연우가 쌓은 업(業) 사이사이로 끼어 들어가면서 형체를 흩트리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연우를 이루고 있던 형체가 활자로 조금씩 분해되면서 부서질 듯 말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 * *

“왕자님, 왕자님! 어서 일어나셔요.”

연우는 갑자기 자신을 크게 흔드는 손길에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왕자님이라고? 여기는 어디지? 분명히 방금 전까지 크로노스와 겨루고 있었을 텐데?

도저히 상황 분간이 되질 않아 억지로 눈을 떴다.

그러자 맞은편에는 한 장의 큰 천을 한쪽 어깨에 걸쳐 몸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는 독특한 복장을 한 중년 여성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우미한 주름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연우가 그녀가 누군지 물으려는 순간.

[현재 플레이어 ###의 업과 크로노스의 신화가 크게 뒤섞이며 혼선을 이루고 있는 중입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업과 신화 간의 분리를 별도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플레이어 ###의 업이 재생됩니다.]

[성공하였습니다.]

[크로노스의 신화가 재생됩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

[플레이어 ###의 자아가 확립된 반면, 크로노스의 자아 구성이 계속 실패하여 분리에 큰 애로 사항이 발생하였습니다.]

[완전한 분리를 위해 직접적인 개입을 통한 수동 분리를 권고드립니다.]

[플레이어 ###을 중심으로 크로노스의 신화를 재생합니다.]

[원활한 신화 진행을 위해, 크로노스의 기억이 일부 계승됩니다.]

그 순간, 연우에게 새로운 두통이 찾아왔다.

다만, 방금 전에 겪었던 것과는 종류가 달랐다. 지금은 막대한 정보의 홍수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로 인해 연우는 알 수 있었다.

현재 자신이 크로노스의 꿈으로 흘러들어와, 어린 시절의 크로노스에게 빙의를 했다는 사실을.

크로노스가 왕좌를 차지하기도 훨씬 이전의 시대.

올림포스가 탑에 갇히기도 전이었으며, 본격적으로 우주 창생이 막 활발하게 진행되던, 천부신(天父神) 우라노스의 시대였다.

“우라노스 님께서 지금 왕자님을 급히 찾고 계시다니까요! 어서 서두르셔요! 대체 또 무슨 경을 치시려고……!”

유모 아난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띠링!

[변화된 환경에 맞춰 시나리오 퀘스트(자격 시험 I - 태엽 찾기)가 갱신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 자격 시험(資格試驗) I - 태엽 찾기]

설명: 시간과 농경의 신, 크로노스를 이루는 신화의 전반 곳곳에 그를 구성하고 있던 ‘시계태엽’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태엽’을 찾아 신화를 플레이하십시오.

연우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무래도 ‘태엽’을 찾기 위해서는, 이 아버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존재의 과거사를 낱낱이 뒤져 봐야 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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