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73화 (573/862)

23화. 자격 시험 (14)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5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보상으로…….]

망막 위로 수없이 많은 메시지들이 떠올랐지만.

연우의 시선은 전혀 그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웅, 우웅-

비그리드는 어서 자신을 잡아달라는 듯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냉혈’ 특성이 불발됩니다!]

[주의! 정신적 동요가 심합니다. 안정을 되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주의! 정신적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입니다. 알 수 없는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고, 특성을 되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

연우는 섣불리 비그리드를 잡지 못했다. 왠지 저것을 붙잡으면 모래성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 근거 없는 느낌에 불과했지만 연우는 다른 어느 때보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저를 지켜 주고 계셨군요.”

비그리드는 사라진 크로노스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태엽’의 반쪽.

죽음의 권능을 담고 있으며, 크로노스가 지구에서 쌓았던 모든 신화가 응축된 성검.

그것은 만들어지고도, 누차 여러 사람들의 손길을 지나면서 마검이라는 오명을 쓴 상태가 되어서야 마침내 연우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으니.

그 뒤로 비그리드는 연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항상 그를 지켜 주었다.

마치 이루지 못한 살아생전의 소망을 이루려는 듯. 그는 몰랐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우는 비그리드를 쉽게 쥐지 못했다. 너무나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그리드는 여전히 계속 그에게 뭐라고 웅얼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냉혈’ 특성이 불발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냉혈’ 특성이 불발됩니다!]

‘아버지를 되살려야만 해.’

그래서 연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냉혈’ 특성이 다시 기능을 회복하였습니다!]

떨리던 심정을 억지로 눌렀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가라앉고, 떨리던 눈동자가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감성에 젖은 채로 가만히 아버지의 이름만 부른다고 한들, 사라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아직도 그 행방이 오리무중인 동생과 다르게, 크로노스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게 아니었다.

비그리드와 회중시계에 잠재된 ‘태엽’을 제대로 꺼내어 복구시킬 수만 있다면.

‘아버지도 다시 눈을 뜨실 수 있을 게 분명해.’

무엇보다 이곳에는 그의 본체도 있지 않은가. 여태껏 보았던 신화들까지 끌어올 수 있다면, 어쩌면 완전한 부활까지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연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칠흑왕의 후예’라는 명칭이 가지는 힘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떨리는 손길로, 비그리드에 손을 갖다 댄 그때.

아주 좋구나.

좋아……!

별안간 연우의 손길 위로 활자 들이 피어나 뱅글뱅글 돌았다. 그 순간, 연우는 어쩐지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마성이 회심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본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빼려는데.

팟!

비그리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우에게로 다가와 그의 손에 강제로 잡혔다.

띠링!

[연계 퀘스트(자격시험 III - 태엽 수리)가 생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 자격시험(資格試驗) II - 태엽 수리]

설명: 당신은 ‘죽음’에 잠식당한 채, 도저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크로노스의 ‘태엽’을 모두 찾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찾은 ‘태엽’은 반으로 쪼개져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며, ‘태엽’의 오랜 부재로 인해 그것을 보조해 줄 다른 장치들도 이미 망가진 상태라 재사용이 가능할지 여부조차 불투명합니다.

더구나 현재 ‘태엽’에 묻은 이물질은 크로노스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망가진 ‘태엽’을 수리하고, 보조 장치들을 복원하십시오.

성취도에 따라, 크로노스가 왕으로서 자신의 잠을 깨운 당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입니다.

제한 조건: 칠흑왕의 후예

제한 시간: -

달성 조건:

1. ‘태엽’의 기능을 막고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여 수리를 완료하세요.

2. 보조 장치들을 복원하세요.

보상:

1. 크로노스의 신력

2. 시계태엽 조각

3. ???

퀘스트창에서 언급된 이물질.

그것은 마성이 분명했다.

콰콰콰-

비그리드 위로 칠흑의 기운이 피어올랐다가, 꽈배기처럼 엮이면서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동시에 연우는 합일이 저절로 해제되어 마성이 비그리드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식의 일부가 강제로 뜯기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순간만을, 이 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키키키킥!』

마성은 어느덧 의식 세계를 전부 뒤덮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쪽을 보며 사악하게 웃는 녀석의 눈과 마주친 순간, 연우는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동기화.

‘동기화를 이룬 건 나와 아버지만이 아니라, 녀석도 마찬가지였어!’

연우가 과거의 아버지와 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마성이란 공통된 루트를 통해 동기화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과거의 마성과 현재의 마성도 똑같이 동기화를 이뤘다는 뜻이기도 하니.

크로노스에게서 떨어져 나와 영락을 거듭했던 녀석이 원래의 형체를 되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크로노스의 의식 세계. 녀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이지 않은가!

‘이거였나. 녀석이 노렸던 것이……!’

그동안 왜 녀석이 비그리드를 고집했는지, 신격들의 자아를 요구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흐트러지려는 정체성을 어떻게든 확립하기 위해서였겠지. 특히 비그리드에 담긴 영웅 신화는 크로노스의 것이기도 하니, 녀석에게 알맞기도 했을 테고.

『네 아버지는 결국 제멋대로 굴다 결국 그렇게 멍청하게 가고 말았지만, 이제는 내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으니.』

마성은 찢어진 눈가 사이로 광기를 번들거리면서 차갑게 웃었다.

『그 뒤를 잇는 자식 역시 이제 다시 내 것이 되리라.』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콰르르릉!

하늘에서부터 강렬한 벼락으로 보이는 뭔가가 잇달아 쏟아졌다.

[6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하늘 날개]

연우는 재빨리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콰아앙!

아슬아슬하게 그가 있던 자리로 떨어진 벼락들이 저 밑바닥에 작렬했다.

그것은 벼락이 아니었다.

녀석의 손. 거체화를 이룬 마성이 연우를 잡기 위해 손을 내려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의식 세계가 장막처럼 찢어지면서, 그 뒤에 숨어 있던 마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 냈다.

쿠쿠쿠쿠……!

그것은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녀석에게서 풍기는 격의 위압감이 연우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연우는 확신했다.

완전체를 이룬 마성은 기어 다니는 혼돈도 발아래로 볼 정도로 아주 강하다는 것을.

어쩌면 아버지의 신화를 품은 만큼, 과거 전성기 시절의 아버지 와 견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어디 지난번에 이어서 2라운드를 시작해 볼까?』

그렇게 마성이 움직였다.

크로노스에 이어 연우까지 집어 삼켜, 스스로가 완전한 주체(主體)가 되기 위해서.

* *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테나는 크게 요동치는 크로노스의 사체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칠 노릇이로군.”

“들어간 지 한참 되었는데…… 어째서?”

헤라클레스와 아레스도 주먹을 꽉 쥐었다.

연우가 크로노스의 사체 안쪽으로 들어간 지 벌써 몇 시간째. 연우는 여전히 밖으로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고, 그들의 속도 그만큼 크게 타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이건 격진(激震)에 가까웠다.

크로노스의 사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크게 들썩거렸으니까.

오랜 세월 동안 묻혀 있으면서 크로노스의 사체를 뒤덮었던 모래와 암석들이 쩍쩍 갈라진 채 아래로 우수수 쏟아지고, 잔뜩 일어난 균열 사이로 검은 광채가 치솟는 것과 동시에 아지랑이가 풀풀 날리면서 진물 같은 것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물론, 그렇게 사체가 흔들린다고 해도, 그들이야 허공으로 떠올라 결계를 둘러치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지만.

아테나 등으로서도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라,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크로노스의 사체는 올림포스에서도 매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장소였다.

올림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결국 광기 어린 폭군이 되어 유폐되었던 자였으니. 그의 사체에 대한 처분 여부를 두고 여러 의논이 있었던 것이다.

죽은 것은 확실하나, 여전히 강대한 신력을 품고 있는 그를 완전히 소거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죄인으로 취급해 타르타로스에다 처박아 두고 무시를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논란도, 결국 당시 타르타로스의 주인이었던 하데스의 일갈에 전부 접어 둬야만 했다.

-불쾌하군.

딱 그 한 마디였다.

어딜 자신의 성역에 함부로 침범하려 드느냐는 뜻의 한 마디.

당시 하데스는 제우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결국 그를 존중하는 뜻에서 크로노스의 사체를 그냥 타르타로스에 두어야만 했다.

단, 크로노스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던 제우스의 고집도 있었기 때문에, 하데스도 한발 물러서서 한 가지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크로노스의 사체에 만약 어떤 기현상이 관찰된다면, 즉시 올림포스에다 보고하라는 것.

하지만 합의를 이루고도, 그동안 크로노스의 사체에 대한 보고는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로 조용했는데.

처음으로 기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연우가 안쪽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건드린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체 안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안 되겠군. 내가 들어가겠다.』

왕!

『방해만 될 것 같지만…… 좋아. 이놈도 같이 데리고 들어가지.』

아가레스와 펜리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크로노스의 사체를 바라보는 아가레스의 눈가에는 기이한 광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타태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큼 나섰다.

“위험할 텐데? 저 안쪽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지 않나. 거기다 우리의 법칙도 통하지 않을 테고.”

『흥! 그런 건 겁 많고 약해 빠진 네놈들에게나 해당하는 일. 저 안에 무엇이 있다 한들, 어떤 함정이 있다 한들, 이 몸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왕왕!

콧대를 높이 들면서 말하는 아가레스와 맞다는 듯이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짖어 대는 펜리르.

나타태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던 그때.

“아니. 내가 가겠어.”

아테나가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아가레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년이 뭘 할 수 있……!』

“비록 자격이 박탈당했다고 해도, 크로노스는 올림포스의 신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신이 아닌, 신왕이었던 자. 그런데 같은 사회 출신도 아니고, 심지어 신도 아닌 악마들이 들어가겠다고? 그냥 공허에 먹혀들고 싶은 건가?”

아가레스와 펜리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아테나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저 안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미지의 장소도 장소지만 신력이 넘쳐 흐르는 곳으로 걸어가는 악마만큼 멍청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가레스와 펜리르는 평범한 악마가 아니었다.

『먹힐지 안 먹힐지, 한번 시험해 보겠나?』

아가레스가 귀여운 아이의 얼굴에 맞지 않게 차갑게 웃으면서 송곳니를 훤히 드러내는데.

갑자기 아테나와 아가레스의 시선이 동시에 위쪽으로 향했다. 펜리르의 털도 빳빳하게 일어났다. 마치 생사대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올림포스’의 신, 페르세포네가 강림합니다!]

콰르르릉, 콰콰쾅!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잿빛 벼락이 그들 사이로 떨어졌다. 너무 강렬한 열기를 품고 있어 아테나 등은 재빨리 간격을 벌려야만 했다.

그렇게 잿빛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페르세포네가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페르세포네……!”

“세상에나. 익숙한 얼굴들이 너무 많네요. 처음 뵙는 분들도 아주 많고요.”

페르세포네는 자신을 노려보는 아레스나 헤라클레스 등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테나의 굳은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연우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때, 페르세포네가 방해를 한다면 그들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쯤 티탄과 기가스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 거지?

설마 기가스도 양동 작전을 펼치려는 건가?

“어떻게……?”

그런 아테나의 의문을 읽은 듯, 페르세포네가 화사하게 웃었다.

“아, 여기 올 수 있었던 거요? 그야 간단하죠.”

페르세포네가 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땅바닥에다 던졌다.

데구르르-

“이미 반란은 끝났으니까요.”

그곳에 있는 건, 잘린 테이아의 머리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