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자격 시험 (15)
아테나 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반란이 끝났다고?
이렇게나 빨리?
이 전쟁이 결국 기가스의 승리로 끝나리란 건, 그들도 이미 예측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티폰을 죽이면서 티탄이 기습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대지모신을 등에 업고 있는 기가스 쪽을 완전히 꺾기란 힘들 테니까.
물론, 티탄도 그런 전력 차를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다른 대비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가령 크로노스를 깨운다든지, 아니면 그만한 실력자들을 배치시키든지 하는 방식으로.
그러니 자연스레 티탄과 기가스의 전투는 거셀 수밖에 없었고.
아테나 등은 바로 그동안에 필요한 것들을 챙길 생각이었다.
크로노스의 사체에서 신력을 갈취하는 법을 알아낸다거나, 에레보스로 가는 길을 밝혀낸다거나 하는 것들.
하지만 충돌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반란이 종식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그냥 페르세포네만 왔다면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며 무시했겠지만.
이렇게 티탄의 수장인 테이아의 목을 뽑아다가 굴려 놓으면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군.”
굳은 표정을 한 다른 일행들과 다르게, 아테나만이 유일하게 피식 웃고 있었다. 아가레스 등의 시선이 그쪽으로 전부 쏠렸다.
페르세포네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뭐가 거짓말이란 말씀이시죠?”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것. 거짓말이라고.”
“무슨…….”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너는 테이아만 운 좋게 처치했을 뿐, 다른 티탄들까지는 아직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거야. 아니, 오히려 생각보다 반발이 거셌던 거지. 그런 중에 크로노스 쪽에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 같으니 조바심이 날 수밖에.”
페르세포네는 여전히 웃는 낯 그대로 아테나만 보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테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페르세포네는 정곡을 찔렸을 때, 오히려 흔들리는 기색을 감추기 위해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진압에 성공한 다음 이쪽으로 병력을 돌려야 할 것을, 네가 먼저 다급하게 부랴부랴 온 것이고. 안 그래?”
“뒷수습을 그들에게 맡기고, 제가 먼저 온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네가?”
그 말에 아테나는 대놓고 비웃음을 던졌다.
“너는 안전제일주의자야. 네가 원하는 판이 제대로 깔릴 때까지는 절대 움직이는 법이 없지. 뒤에서, 아주 음흉하게 포석을 천천히 놓을 뿐이야. 절대 전면에 나서는 일 없이.”
대지모신을 등에 업고서 타르타로스를 차지했을 때처럼 말이야. 올림포스도 그런 식으로 무너뜨렸고. 너는 옛날부터 그랬어. 아테나는 그런 뒷말을 덧붙였다.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성격이 이번이라고 다를까?”
“말이 온통 모순투성이네요. 제가 안전제일주의자면 혼자 올 이유가 없……!”
“대지모신이 시켰겠지. 크로노스에 대한 대지모신의 집착은 아주 옛날부터 광적이었으니까.”
“…….”
“주인이 시키면 개는 말을 들어야지, 안 그래?”
칼로 푹푹 쑤셔 대는 듯한 힐난.
두 여신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 같았다.
자고로 여자들의 기 싸움에 남자들은 끼어들지 않는 거라고 했던가.
여태껏 오만하게 굴던 아가레스와 펜리르도 지금만큼은 날뛰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나타태자와 이랑진군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아레스는 서로 말 없이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다가, 우연찮게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둘 사이로 메시지가 빠르게 오고 갔다.
『아테나 누이가 원래 저렇게 독설이 심했…… 었나? 아주 머리끄덩이를 잡아다가 메다꽂아 버리는데?』
『말싸움으로 아테나를 이기려고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지. 아주 꺼내는 말마다 난도질을 해 대는 데다가, 속을 박박 긁어 대는 데도 천재였으니까.』
아레스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어디 말만 잘할까? 세긴 또 얼마나 미친 듯이 센지. 말싸움에 져서 눈 뒤집힌 채로 달려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아주 약을 살살 올리다가 사람을 쥐 잡듯이 패 버리니. 으으으!』
아레스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헤라클레스가 피식 웃었다.
『많이 당했나 봐?』
『어디 나만 당했을까?』
『뭐, 하긴 포세이돈 숙부도 희생양이었지.』
『아마 올림포스 내에 당해 보지 않은 이들이 없을걸? 헤르메스도 참 대단해. 어떻게 그동안 잘 어울린 건지.』
올림포스에 있을 시절, 아테나와 가장 많이 부딪쳤던 아레스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는 자신의 누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변이면 언변, 무위면 무위. 지혜면 지혜. 똑똑한 데다가 말싸움도 잘하고 힘까지 좋으니 전혀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아레스가 아테나에게 항상 시비를 걸었던 것도 열등감에 가까웠다. 아테나는 그것을 내내 무시하다가, 쌓이고 쌓여 폭발했을 때 아레스를 개 패듯이 패 버렸던 것이고.
그러던 차에 페르세포네가 딱 하고 아테나의 손에 잡히고 말았으니.
아테나로서는 이 모진 고생들이 전부 페르세포네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녀에게 화가 잔뜩 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연우도 돌아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차에 마침 눈앞에 나타나 성질을 박박 긁어 대니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되도록 원 성격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페르세포네의 얼굴에서도 겨우 남아 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싹 가시고 말았다.
“……너와 설전을 하려고 했던 내가 멍청이였지. 잠시 깜빡하고 있었어.”
페르세포네는 여태껏 여유롭게 보이고자 내뱉던 존대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싸늘하게 웃었다.
“맞아. 네 말이. 테이아는 잡았지만, 아직 그년의 딸들이 남아 있으니 전부 끝난 건 아니지. 헤카톤케이레스도 전부 도망쳐서는…… 으! 사실 전부 귀찮기만 해.”
츠츠츠-
페르세포네를 따라 막대한 격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녀를 둘러싼 대지가 시커멓게 물들면서 그림자 사이로 수십 수백 개의 눈이 점차 열렸다.
“하지만 똑똑하면 그것도 알고 있어야지. 이곳에 내가 혼자서 왔다는 건.”
페르세포네의 한쪽 입술 끝이 크게 비틀렸다.
“너희들을 전부 혼자서 처치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안 그래?”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콰콰콰-
페르세포네가 뿌린 그림자에서부터 거대한 무형의 뭔가가 크게 일어났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맹렬한 속도로 아테나를 비롯한 이들에게로 뿌려졌다.
쾅!
콰콰쾅!
아레스는 재빨리 검을 뽑아 거세게 옆으로 휘둘렀다. 그림자 가시가 옆으로 비껴 났다.
반면에 헤라클레스는 쌍장(雙掌)을 있는 힘껏 앞으로 후려치면서 완력만으로 그림자 가시를 부숴 버리는 모습을 보였고, 나타태자와 이랑진군은 각각 권능을 전면 개방하면서 가시들을 전부 잘라 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노한 쪽도 있었다.
『감히!』
아가레스는 악마들의 대공이라고도 불리는 자신을 앞에다 두고도, 홀로 잡을 수 있니 없니를 운운하는 페르세포네의 오만에 심기가 적잖게 비뚤어진 상태였다.
사실 그로서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서 함께 연우를 돕는 것만 해도 자존심이 적잖게 상했던 것인데, 이제는 아예 머저리 취급까지 받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가레스는 노호성과 함께 펜리르에게서 뛰어내리며 한순간 본체로 되돌아갔다. 수십 쌍에 달하는 날개가 단번에 하늘 끝까지 다다를 정도로 커졌다가, 마기로 이뤄진 회오리를 사방으로 뿌려 댔다.
마기는 단번에 그림자 가시들을 잘라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중에 하나로 엮이면서 페르세포네의 머리로 떨어졌다.
퍼버버벙!
페르세포네를 따라 대지모신의 기운이 휘돌면서 아홉 겹에나 되는 보호막을 형성했다. 마기는 그것들을 일곱 겹이나 부있지만, 끝내 전부 뚫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고.
그사이 페르세포네의 뒤편으로, 아가레스처럼 본체로 현신을 마친 펜리르가 나타나 흉악한 이빨을 들이댔다.
크왕!
아가레스가 페르세포네의 눈길을 끈 사이, 펜리르가 뒤를 덮친다. 두 악마가 단지 눈빛만으로 구성한 작전.
효과는 확실했다. 페르세포네가 펜리르를 감지했을 때는 확실히 늦은 뒤였으니.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아 있던 보호막이 모조리 부서졌다. 펜리르의 이빨이 페르세포네의 왼팔을 무참히 물어뜯고 지나갔다.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을 텐데도 불구하고.
“……흡!”
페르세포네는 신음은커녕 흔들리는 기색 하나 없이, 시선을 펜리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잘게 부서져 아래로 떨어지던 보호막의 파편들 위로 새하얀 눈들이 하나둘씩 열리더니.
휘휘휘!
파편들이 물감처럼 서로 연결되면서 엄청난 크기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칼들이 섞인 회오리바람.
펜리르는 바로 그 중심에 놓여 순식간에 홀로 회오리를 맞닥뜨려야만 했고.
콰콰콰-
회오리가 전부 지나갔을 때에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마치 칼로 수없이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 가죽이 죄다 벗겨져 상처로 가득했다.
크르, 르……!
펜리르도 한순간 피와 마기를 너무 많이 흘려 호흡이 거칠었다.
그리고.
휘리릭-
퍼억!
어느새 새롭게 나타난 그림자 가시가 펜리르의 미간을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똥개!』
믿을 수 없는 현실. 너무 일방적인 패배였다.
그래서 아가레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펜리르를 부르면서 다급히 달려가려 했지만.
그는 도중에 접근을 멈춰야만 했다.
그 순간.
츠츠츠-
힘을 잃은 펜리르가 잘게 부서지면서 페르세포네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의봉의 조각을 가진 자가 아니면 절대 해낼 수 없다고 알려진 기술.
천마와 그의 얼굴들이 개발해 내어 수많은 신과 악마들의 치가 떨리게 만들었던 기술이 선보여 지고 있었다.
봉신(封神)이었다.
* * *
콰콰쾅-
연우는 마력을 한꺼번에 방출해 한입에 자신을 먹어 치우려 드는 마성의 아가리를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검뢰팔극을 이용해 검뢰를 잇달아 녀석의 머리통 위로 퍼부었다.
콰릉, 콰릉, 콰르릉!
콰콰콰콰-
비록 합일을 이뤘을 때만큼의 위력을 뽑아내지는 못해도, 연우는 이미 현자의 돌에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담은 상태.
아니, 얼마 전에 삼킨 기어 다니는 혼돈이나, 티폰을 생각해 본다면 이미 보유한 마력량에 있어서는 천계 내에서도 연우와 견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행히 검뢰팔극은 깨달음보다도 그 전에 마력량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로 갈라지는 기술이었으니.
기존 검뢰의 32배에 달하는 오극(五極)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흉악한 무기나 다름없었다.
콰르르릉!
『크으으! 이런 빌어먹을 놈이! 기어코……!』
마성은 검뢰를 오극까지만 풀어내기를 반복하는 연우의 맹공(猛攻)에 재빨리 얼굴을 뒤로 빼야만 했다.
그리고 비대한 몸집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판단, 단숨에 인간 크기로 줄였다.
동시에 등 뒤로 날개를 쭉 뽑아 올리면서 와락 연우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느새 녀석의 손에도 연우의 손에 들린 것과 똑같은 검이 들려 있었다.
하늘 날개와 비그리드.
연우는 자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과 똑같이 맞부딪쳐야 했다.
콰아앙!
“빌어먹을 이 짝퉁 새끼가……!”
『결국 가장 필요한 건, 승리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건 네놈일 텐데?』
녀석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칠흑이 좌우로 활짝 열리면서, 연우와 똑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동안 녀석은 합일을 통해서 연우의 공격 패턴을 모두 숙지하고 있던바. 심지어 그의 사고 패턴까지 모방하면서 부족분은 식령한 신격들의 자아로 채워 넣고 있었다.
마성은 연우가 되려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연우와 크로노스를 전부 삼킨, ‘진짜’ 칠흑왕의 후예가.
콰르르르-
연우는 잘게 떨리는 비그리드에다 마력을 잔뜩 불어 넣어 녀석을 크게 뒤로 튕겨 냈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검뢰가 사방팔방 퍼져 나가 의식 세계를 찢어발기는 가운데.
[시차 괴리]
연우는 느릿해진 시간 세계에서 어떻게든 녀석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퀘스트는 분명히 이물질을 제거하라고 했다. 그것은 여태껏 미루고 미뤘던 마성과 결착을 내야 한다는 뜻.
‘하지만 아버지의 의식 세계가 녀석에게 잠식된 데에야, 완전히 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해지는 건 나야.’
마성이 다시 송곳니를 드러냈다는 건, 이번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
그리고 실제로 마성은 여태껏 상대했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 세계에 남은 아버지의 신화를 소화해 나가면서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약점까지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
팟!
분명히 느릿해진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시간이 맞춰진다 싶더니 마성이 다시 공간을 가르며 나타났다.
『지난 꼼수들이, 설마 나에게 통할 것 같으냐?』
마성은 똑같이 시차 괴리로 연우의 사고 속도를 맞춘 채 나타나 공세를 퍼부었다.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 따윈 전혀 주지 않겠다는 듯.
쿠르르릉-
결국 삽시간에 둘 사이에 팽팽한 공방이 오고 갔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공세에 의식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녀석이 내게서 모방할 수 없는 게 뭐가 있지?’
연우는 마성의 공세를 옆으로 흘려 내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고 있었다. 극도로 고조된 시선이 녀석과 자신을 빠르게 훑었고, 비교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칠흑왕의 형틀.’
촤르륵-
검은 쇠사슬이 빠른 속도로 풀려나오면서 마성의 하체를 휩쓸어 갔다. 하지만 마성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높이 날아 가볍게 회피했다.
하지만 그건 연우도 예상했긴 마찬가지.
녀석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칠흑왕의 형틀에 대한 대비책도 생각지 못했을까. 그동안 녀석이 갇혀 있던 곳이 칠흑왕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형틀에 대해서 연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녀석도 모르는 형틀의 사용법이 있었다.
아니,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다.
“진명 개방.”
지이이잉!
비그리드가 희뿌연 광채를 뿌려 대면서 모양이 변화, 그대로 쇠사슬 끄트머리와 단단히 결합되었다.
철컥!
마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허공 위에서 비웃음을 던졌다.
저런 거야, 여태껏 많이 보던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 고작 생각해 낸 것이 비그리드를 사용하는 것이냐? 키키킥! 참으로 우습……!』
“우습지는 않을 거야. 아니. 아주 재미있을 거다. 너도 익숙한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이전처럼 단순히 듀렌달이나 하르페 같은 영웅들의 무기를 꺼낸다면 녀석을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신이 되지 못한 영웅이라는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연우가 이번에 개방하려는 건, 단순히 그런 전승이 아니었다.
신화였다.
그것도 신들의 왕이라고까지 불렸던 존재의.
[‘비그리드-???’가 숨겨진 진명, ‘크로노스’를 개방합니다.]
[전승: 신왕 강림(神王降臨)]
화아아악-
의식 세계를 따라,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엄청난 격이 회오리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자 소환’이 발동되었습니다.]
[누구를 소환하시겠습니까?]
“크로노스.”
주문을 외듯 내뱉은 혼잣말과 함께.
여태 비그리드의 안쪽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작은 태엽이, 죽음의 신위가 드디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만 년 만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