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10화 (610/862)

10화. 무왕(武王) (4)

『……그렇게 큰소리를 쳐 대더니. 페이스리스와 흑태자가 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봄의 여왕, 왈츠는 트로이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가만히 저 멀리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았다.

외뿔부족의 마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천벌이 내려지길 그토록 바라던 외뿔부족의 마을이…… 부서지고 있었다.

인외(人外)의 존재가 가져다준 것으로 인해.

『명을 내려 주십시오.』

왈츠에게는 그저 비현실적으로만 다가오는 모습.

-그래서. 무왕이 죽는 꼴, 보고 싶지 않나? 할 거야, 말 거야? 하지 않겠다면…… 그냥 그렇게 살든가. 키키킥!

페이스리스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왱왱 울리는 것 같았다.

녀석은 말했다.

부족원이 보는 앞에서 무왕을 죽일 것이라고.

그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게, 함정인 걸 알면서도 무왕이 직접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곳은 개미지옥이니, 절대 살아서는 나갈 수 없을 거라는 말도 함께.

물론, 왈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무왕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위인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럴 사람이었더라면 자신이 직접 무왕을 처치했겠지.

-그래. 정 못 믿겠으면, 그럼 지켜봐. 그리고 눈치껏 뛰어들든가, 말든가. 그렇게 해.

-어차피 네년에게는 남아 있는 것도 없잖아? 자존심? 그런데 그런 게 네년에게 필요하던가? 어미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결국 페이스리스는 한발 물러나, 그녀에게 화이트 드래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다가 개입 여부를 선택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의 호언장담이 절대 틀리지 않을 거란 걸 보여 주겠다나?

어차피 왈츠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그 부탁은 승낙했다.

76층에 묶인 채 하루가 멀다 하고 환상연대와 전쟁을 치르고, 시시각각 층계를 점령하면서 목을 바짝 조여 오는 아르티야 때문에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인 화이트 드래곤이 아닌가.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어떤 도박적인 ‘한 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페이스리스는 호언장담이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였고.

왈츠는 ‘한 수’를 벌일 타이밍이 마침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여왕이시여.』

트로이를 비롯한 여러 권속들의 애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결국.

왈츠는 투명화 마법을 천천히 해제하면서 자신을 따라온 결사대에게 명령했다.

“시작한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화이트 드래곤이 움직였다.

* * *

“응? 뭐지?”

세샤는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말고, 갑자기 느껴지는 여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마을 쪽이 이상한 걸 깨닫고, 창가로 쪼르르 달려갔다.

폭죽놀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하늘이 여러 불꽃으로 울긋불긋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세샤도 오늘 왕좌 결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축제도 있을 거라기에 자신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외지인은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집에서 혼자 놀고 있던 중이었다. 뒤풀이에는 와도 괜찮다고 했으니, 이따가 에도라 언니와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지금 저기 보이는 이펙트들이 아무리 봐도 무공으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세샤 역시 쿼터라지만 용종의 피를 타고났고, 친모는 마나의 축복을 받았던 마녀가 아니던가. 그렇다 보니 마력에 대한 감각이나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리고 저건…… 분명히 마법이었다.

아니, 그 정도도 넘어선 권능이었다.

신력이 풍기고 있었다.

순간, 세샤의 낯빛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눈빛이 크게 떨렸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피부를 따라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거의 잊다시피 했던 옛 기억들이 아주 조금씩 고개를 치켜드는 것 같았다.

몸이 이상하게 추워졌다.

“브…… 라함.”

세샤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외조부를 애타게 찾았다.

그만 있다면.

브라함만 있다면 무섭지 않을 텐데.

세샤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지내면서도 이따금 트라우마가 발동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브라함은 말없이 안아 주곤 했다. 그럼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었는데.

문제는 하필 지금 그가 부재중이라는 점이었다.

“무서…… 워.”

세샤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언제나 아늑하고 화목하던 집이, 지금은 차갑고 음울하게 느껴졌다. 꼭 자신을 집어삼킬 괴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외곽에서부터 시작된 여진은 시시각각 강렬해졌다. 땅바닥이 크게 울리고, 어느샌가 열풍이 숲을 타고 전해졌다. 살의로 가득한 마력장이 곳곳에 있었다.

세샤는 자기도 모르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눈을 꼭 감았다. 이렇게 하면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저 두려운 것이 부디 자신을 피해 가길 간절히 바랐다.

겨우 찾아낸 보금자리였고, 수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 평화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힘없고 가녀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와들와들 떠는 채로, 숨소리마저 억누르며 있는 것밖에는.

하지만 그렇게 간절한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괴물은 바로 문 앞까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연우 삼촌이 말해 주었던 동화가 떠올랐다. 아기 돼지 3형제 이야기. 아기 돼지들을 잡아먹기 위해 늑대가 엄마 돼지로 분장한 채 집에 찾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자신이 바로 그 아기 돼지였다. 저 밖에 있는 건 늑대였고.

그때, 아기 돼지들이 늑대가 온 걸 알고 두려움에 젖은 채로 누구를 찾았더라?

우르르, 콰쾅!

‘엄…… 마!’

결국 폭발 소리가 근방까지 들리면서, 세샤의 트라우마와 공포가 극에 달하던 그때.

세샤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따스하게 폭 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우의 품보다 더 탄탄하고, 브라함의 품보다 더 따스한 품. 부드럽고 향긋한 품이었다.

아주 익숙하지만.

아주 그립지만,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체온.

그리고 항상 괜찮다며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던 손길.

“엄…… 마?”

세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괜찮다며 자신을 안아 주던 따스한 손길도 체향도 같이 사라졌다.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세샤는 아난타가 있을 침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 전의 그 느낌은 분명히 아난타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아난타는 여전히 평상시 그 모습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역시 단순한 자신의 착각이었던 걸까? 하지만 세샤는 어쩐지 따스한 바람이 아난타를 중심으로 감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아난타의 머리맡에 놔둔 회중시계가 격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은……!

하지만 세샤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벌컥!

“세샤야!”

“판트 아저씨!”

순간, 세샤를 보호하기 위해 다급하게 뛰어오던 판트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몇 번씩이나 줄곧 ‘오빠’ 내지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는데 여전히 호칭은 바뀌질 않고 있었다. 에도라에게는 ‘언니’라고 잘만 부르면서.

물론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기에, 머리 뒤편으로 미루면서 인상을 굳힌 채로 말했다.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무슨 일이에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줄 테니, 어서 어머니를 모시……! 젠장!”

판트는 세샤를 설득하려다 말고, 갑자기 손을 와락 잡아당기면서 품 안쪽으로 끌어안았다.

콰아앙!

그 순간, 그들이 있던 모옥이 그대로 터졌다.

판트는 무너진 집 밖으로 튕겨나, 세샤를 안은 채로 한참 동안이나 바닥을 뒹굴어야만 했다. 마지막에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지만, 워낙에 급작스러웠고 충격이 큰 탓에 전신이 고통으로 악다구니를 질러 댔다.

“아저씨, 괜찮아요? 어, 엄마!”

다행히 세샤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할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뒤늦게 아난타를 떠올리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다행히 아난타와 침상은 그런 혼란 중에도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브라함이 딸과 손녀를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설치해 둔 방호 마법 덕분이었다.

그러나 브라함의 그런 방호 체계는 방금 전 폭발로 다 증발해 버린 상태였고.

아난타의 근처에는 괴한들이 서 있었다.

“이 사람인가?”

“밀정 ‘하이에나’가 보낸 좌표는 이곳이 확실합니다.”

봄의 여왕, 왈츠는 트로이의 대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드명 하이에나.

외뿔부족 내에서 마을의 구조도와 인력 배치, 각 가문과 씨족들의 정치 상황 등을 상세히 가르쳐 준 첩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부족 내에서 제법 앉은 위치가 높은 것인지, 정보의 양과 질이 상당해서 화이트 드래곤은 아주 순조로운 침투를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이트 드래곤의 병력들은 ‘하이에나’가 가르쳐 준 길목을 따라 전진을 계속하며 마을의 빠른 붕괴를 끌어내고 있을 테니.

왈츠는 이번 전투가 전부 끝나고 나면, 아무리 외뿔부족이라 해도 큰 타격을 면치 못하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탑이 탄생한 이래, 외뿔부족이 성립한 이래, 최악의 피해가 아닐는지.

다만, 왈츠는 개인적으로 ‘하이에나’를 경멸하고 있었다. 자신의 원한과 욕심 때문에 일족을 팔아치운 매국노가 아닌가.

‘아니. 외뿔부족 외에도 이렇게 영왕과 관련된 인사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으니, 오히려 예뻐해야 하나? 나중에 일이 순조롭게 풀려 외뿔부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면, 놈을 왕으로 지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왈츠가 차갑게 눈을 번들거리면서 아난타에게로 손을 뻗었다. 듣자 하니 ‘하이에나’는 연우에 대한 원한이 아주 크다고 했다. 이번 작전을 실행하는 데 있어 연우와 관련된 것들을 가장 먼저 처리해 달라는 것이 조건이기도 했으니, 그녀로서는 호재인 셈이었다.

콰르르릉!

하지만 왈츠의 손길은 미처 아난타에 닿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핏빛 벼락이 그녀에게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흡!”

왈츠는 재빨리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는 한편, 매직 실드를 몇 겹이나 쌓아 둘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핏빛 벼락은 실드는 물론 호신강기까지 모조리 분쇄하면서 지상에 내리꽂혔다. 왈츠의 몸뚱이는 충격파에 한참이나 뒤로 떠밀려야 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로 깊은 고랑이 남았다.

“미친년이, 감히 어디다 손을 대려고 하는 거냐?”

원래 왈츠 등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판트가 서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의 피부를 따라 핏빛 뇌기가 연신 튀어 오르면서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그야말로 사위를 압도하는 패기. 심장이 갑갑해질 정도로 숨 막히는 기세 앞에서, 왈츠는 잔뜩 굳은 얼굴로 판트를 노려보았다.

방금 전에 호신강기와 매직 실드를 부순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저 무공이 원래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혈뢰(血電).

달리 혈뢰파벽(血雷破降)이라고도 불리는 대장로의 무공이었으니까!

“너…… 대장로와 무슨 관계지?”

“우리 상꼰대는 왜?”

아버지인 무왕은 꼰대. 대장로는 상꼰대.

판트가 평상시 어른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묻지 않느냐!”

“유일 전인. 됐냐?”

“…….”

왈츠의 낯이 단단히 일그러지고.

“너, 화이트 드래곤의 수장이지? 몇 번씩 본 적 있어서 기억해. 그런데 말이야.”

판트는 혈뢰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 올리면서 양 주먹을 맞부딪쳤다.

“감히 네까짓 반편이 따위가 우리 마을에 더러운 발을 들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내가 보호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대려 했단 말이지? 여기서 찢어 죽여 주마.”

콰아아앙!

판트가 으스러져라 지면을 박차면서 왈츠에게로 와락 달려들었다.

“여왕님!”

“이놈, 감히!”

그때, 왈츠를 따라왔던 플레이어 두 명이 뛰어들었지만.

“찌끄레기 새끼들은 짜져!”

촤아악-

둘은 판트가 휘두른 손날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그만큼 혈뢰는 강렬했고 파괴적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갈아 버리는 흉악한 톱니 이빨을 달고 있었다.

콰쾅!

그렇게 판트의 파산권(破山拳)과 왈츠의 반룡장(攀龍掌)이 맞부딪쳤다.

꽃잎으로 된 강기가 위로 튀어오르고, 핏빛 뇌기가 지면을 두들기면서 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날…… 반편이라고 했겠다?”

왈츠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판트의 발언에 거친 안광을 뿜어냈고.

판트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한껏 비웃음을 던졌다.

“그래. 반편이. 뿔도 제대로 달지 못하고 있는데, 그게 반편이가 아니고 뭐지? 아니면 뭐, 병신이라고 불러 주랴?”

“……!”

왈츠는 내공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손 그림자가 단숨에 허공을 가득 물들이면서 판트를 단숨에 잡아채고자 했다.

퍼퍼퍼펑!

* * *

『세샤야. 이곳은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 테니, 너는 어서 어머니와 함께 도망쳐!』

판트의 전음이 세샤의 귓가로 박혔다.

그가 왈츠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건 단순히 말싸움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녀석들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알람 마법으로 즉각 찾아왔을 브라함은 여전히 오질 않고 있었고, 연우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연락이 닿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가 없는 세샤와 아난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시켜야만 했다.

다행히 세샤는 이런 비상시를 대비해 미니 텔레포트 스크롤을 상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달아나기만 하면 되었지만.

문제는 세샤의 다리가 잔뜩 얼어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네가 바로 영왕의 조카인지 딸인지 하는 그 아이인가 보구나. 이 할아비와 같이 좀 가 줘야겠다.”

호크 아이, 트로이가 세샤 앞에 서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겉보기엔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세샤에게는 두렵게만 보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심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만 확보할 수 있다면, 지난날 연우와 아르티야로부터 당했던 수모를 전부 앙갚음할 수 있을 테니까.

“오, 오지 마!”

퍼퍼펑!

세샤는 여태껏 익힌 마법 따위를 이리저리 전개해서 퍼부었지만, 전부 트로이에게 닿기도 전에 간단히 바스러지고 말았다.

“허허. 앙탈이 꽤나 심하구나. 귀엽군, 귀여워. 재능도 상당한 듯하니 제자로 길러도 좋을 듯하고. 물론, 머릿속에 든 건 전부 지워야겠지만.”

트로이가 흉악하게 웃으면서 세샤에게 마수를 뻗쳐 왔다.

‘엄마……!’

세샤는 자기도 모르게 질끈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기적이. 새로운 기적이 필요했다. 지난날, 아가레스로부터 연우가 자신을 구 해주었을 때처럼.

바로 그때.

푹!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샤에게 닿으려던 트로이의 손길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트로이의 흔들리는 시선이 아래 쪽으로 향했다. 우측 가슴에서부터 화끈한 고통과 함께 칼 한 자루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곳엔.

“내 딸한테서…… 꺼져!”

아난타가 어느새 눈을 뜬 채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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