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18화 (618/862)

18화. 무왕(武王) (12)

검뢰의 육극이 머리로 떨어질 때까지만 해도, 검무신은 흠칫 놀라기는 했었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심상 세계.

그것도 자신의 심상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여기서는 아무리 많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의식만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

마해의 ‘토끼’로부터 배운 심상 개변은 그만큼 대단한 이적(異蹟)이었고.

타계의 신이 남겼다는 힘은 그야말로 별천지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토르가 보호해 주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있어 막내 사제가 되는 아이가 이렇게나 강해졌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신격들과도 대등할 만한 힘이라니.

이 정도라면 저 사람 같지도 않은 스승님과도 견줄 수 있을 만한 실력이었으니까.

‘이제 곧,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스승님을 쓰러뜨리고, 저분의 업을 내 것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을 독차지하는 것도 절대 무리는 아니리라! 그리고 더해서 저놈까지 더해진다면……!’

검무신은 무왕이 어떻게든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파리지옥이나 다름없었으니.

몇 번이고 되살아나는 아스가르드.

새로운 올포원으로 각성한 녹턴.

그리고 시시각각 무왕의 숨통을 옥죄어 갈 가이아의 저주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내공을 조금씩 앗아 가는 대성역의 공기…….

그 모든 것들이 무왕의 죽음을 유도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스러진다는 건, 페이스리스의 새로운 ‘식구’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

그런다면 격도 저절로 상승할 테니, 역량도 커지는 만큼 궁그닐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은 물론, ‘토끼’가 건네준 것들도 전부 체화할 수 있겠지.

검무신은 이번 〈카니발〉을 통해 자신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찌릿하게 울릴 정도였다.

더구나 연우는 아스가르드도 경계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와 권속들도 이곳으로 발을 들인 이상,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터. 저들도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검무신은 자신이 하계의 왕이 되고, 나아가 올포원을 꺾어 78층에 처음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천계도 자신의 발아래에 두리라.

탑의 세계에 군림하여, 지난날 이루지 못했던 모든 소망을 이뤄 내는 것이다.

‘최초로 무(武)를 쌓은 것만으로도 신의 업적을 이루는……!’

그런데.

『크아아악!』

‘토르가…… 비명을?’

검무신은 생각을 잇다 말고, 갑자기 토르가 악을 쓰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토르는 여태껏 무왕에게 여러 차례 죽임을 당해도, 이를 바득바득 갈지언정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오딘을 대신해 아스가르드를 진두지휘하는 수좌로서 품격이 떨어지는 행위라나?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아주 강한 작자였다.

그런데 이런 소리라니.

마치 신격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이라도 입은 것 같지 않은가?

‘설마?’

그 순간, 검무신은 토르와 자신 사이에 연결된 페어링이 강제로 끊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토르가…… 천계로 역소환되고 있었다.

검뢰가 그들의 화신체는 물론, 천계에 있는 토르의 본체와 이어지는 모든 선과 망을 송두리째 잘라 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토르는 영혼에 심대한 손상을 입은 채로 튕겨 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강림이 강제로 종료되고 말았으니, 거기에 대한 패널티도 따로 존재할 터.

자칫 신격이 흔들리거나, 크게는 균열이 가는 치명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검무신으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인지라,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페어링을 볼 수 있었던 거지? 무왕도 볼 수 없었던 결계의 핵을 어떻게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이냐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검무신은 도저히 그럴 겨를이 없었다.

토르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소멸의 위기를 맞았다면, 그의 그릇이 되어 주었던 검무신은 어찌 될 것인가?

검무신은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여름여왕에게 당했을 때에도 겪지 못했던 고통.

그는 알지 못했다.

연우가 천통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초능을 깨우친 것은 물론.

이미 그보다 먼저 마해에 다다라 심상 개변을 몸소 겪으면서 대비책을 어느 정도 강구해 뒀던 상태란 것을.

의식이 낱낱이 해체되고 있었다.

‘아, 안 돼……!’

하지만.

그것이 검무신이 마지막으로 내지른 비명이었다.

* * *

[심상 결계의 핵이 강제 소거되었습니다!]

[주의! 핵이 제자리를 이탈한 것이라면 서둘러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세요. 핵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심상 세계의 구성 요소도 저절로 약화됩니다.]

[주의! 대체할 만한 새로운 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세요.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심상 세계에 부여된 모든 기능들이 작동을 정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서둘러 핵을…….]

『이, 이게 무슨!』

『토르! 토르가 어디로 간 거지?』

검무신의 죽음을 계기로, 심상 개변이 전부 중단되었다.

그것은 아스가르드에 있어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부활이 있었으니, 여태껏 신변을 돌보지 않고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런 배경이 되던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더구나 심상 세계에 균열까지 퍼지면서, 여태껏 아스가르드의 신격들을 보조해 주고 있던 모든 가호와 축복도 중단되고 말았다.

[대성역의 기능이 약화됩니다!]

[대성역의 기능이 약화됩니다!]

……

[가호가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축복이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천계의 환경 조성을 위해 인과율이 투입됩니다!]

……

[대성역의 규모가 축소되어 성역급으로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성역의 기능이 약화됩니다!]

……

[토르의 페어링이 단절되었습니다.]

[역소환이 이뤄집니다!]

『……!』

『……!』

『……!』

애당초 이런 것을 막기 위해 핵이 되는 검무신을 토르에게 맡겼던 것인데.

정작 그는 이미 천계로 튕겨 났다는 사실이 더더욱 아스가르드를 충격으로 내몰았다. 아주 잠깐, 공황 상태가 벌어졌다.

「놈들을 전부 쓸어버려!」

「우리의 신께, 투쟁과 죽음을!」

망자 거인은 바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애당초 연우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그들로서는 아스가르드의 이런 비열한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무엇보다 그들의 모태가 되는 거인족은 애당초 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이 아닌가? 그러니 더더욱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이참에 완전히 짓밟아 버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채채채챙!

퍼퍼퍼펑-

망자 거인들은 손에 들고 있던 도끼나 검 따위를 거세게 내리치면서 신격들을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화아악!

사룡 칼라투스가 혼탁한 브레스를 지상에다 마구 뿌려 대면서 신격들을 차례로 소거하고자 했다.

『다들, 다들 정신 차려라! 진형을 갖추고, 단단히 방비해! 놈들은 과거에 이미 한번 절멸한 적이 있던 버러지들이다! 저딴 것들에 짓밟힌 멍청이로 남을 셈이냐!』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신격 헤임달은 어떻게든 동료들을 격려하고자 했다.

사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갑자기 대성역이 흔들려서 그런 것일 뿐, 결단코 전력적으로 그들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궁그닐 덕분에 성역은 남아 있어 축복과 가호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아스가르드의 신격들은 빠르게 한 자리로 모여들면서 방진(方陣)을 갖추며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갖추고자 했고.

[죽음의 태엽이 더 빠른 속도로 빨리 감기됩니다!]

연우는 저대로 내버려 두어서 좋을 게 전혀 없다는 생각에 놈들의 머리 위로 검뢰를 연거푸 날렸다.

콰르릉, 콰릉, 콰르르릉!

콰콰콰콰-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엄청난 고열과 빛을 품은 검붉은 벼락이 아스가르드의 방진 위로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퍼퍼퍼펑!

『크윽! 빌어먹을!』

『으아아악!』

『티르! 이대로 천계로 역소환되면 위험해! 정신 차리게, 티르!』

녀석들은 이미 토르가 당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호락호락하게 페어링을 내어 주지는 않았다. 검뢰가 그쪽으로 날아들 때마다 어떻게든 몸을 뒤틀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망자 거인 집단에 에워싸인 채로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처 검뢰를 피하지 못한 이들은 페어링이 단절되면서 강제 역소환이 속속 이루어지는 가운데.

퓨퓨퓨퓻!

이예가 쏘아 댄 빛살들이 연우를 사방에서 옥죄어 왔다.

연우는 마침 아스가르드의 방진으로 쏟아 내려던 검뢰의 방향을 꺾어 그대로 지면에다 내리쳤다.

쾅!

순간, 지면이 움푹 파이면서 땅거죽이 크게 일어나 연우를 감췄다. 빛살들은 단숨에 토벽에다 무수히 많은 바람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 보면 벌집으로 보일 만한 광경.

하지만 그 속에 연우는 없었다.

팟!

“장웨이.”

이예는 뒤쪽에서 들린 연우의 목소리에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뒤를 밟을 줄이야. 꽤나 긴 시간 동안 이렇게 뒤를 잡힌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타고난 전사이면서도 호승심이 강한 투사이기도 한 그로서는 간만에 손속을 겨룰 만한 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이예의 생각과는 반대로, 연우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이예의 생각 따윈 모른다. 시의 바다가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무왕에게로 가야만 했다.

“너와는 나눌 이야기가 많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렇기에 이예가 자리 잡은 장웨이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을 내버리고, 연인을 죽게 만들었던. 그래서 다섯 살 난 아이를 하루아침에 고아로 만들어 버렸던 녀석과 결자해지해야 할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전부 뒤로 미뤄 둬야만 했다.

장웨이와의 원한은 과거였지만.

무왕과의 인연은 현재였으니까.

쉭-

차아앙!

“아쉽게도 내 사도는 자네를 그냥 보내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네만? 누이의 복수를 운운하는데.”

이예는 몸을 뒤로 빠르게 비틀면서 소증으로 비그리드를 가로 막았다.

엷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두 눈이 묻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에게서 벗어날 것이냐고.

사도인 장웨이는 지금도 정신 한쪽 구석에서 연우를 죽여야 한다고, 누이의 복수를 해야만 한다고, 모시는 신인 그에게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은총을 내려 주길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예는 연우를 억지로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그로서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데다가, 자칫 반대로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연우는 그로서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다.

물론, 사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애당초 그가 장웨이를 선택한 것은 어디까지나 당시에 보았던 천기 때문이었지, 장웨이가 유독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연우의 발목만 묶어 둘 참이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타고난 사냥꾼이었고, 전 우주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전사였으며, 옥황상제와 천교가 자랑하는 최고의 장수이기도 했다. 현재 천교를 이끄는 삼신장(三神將)인 나타태자 등도 소싯적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었으니.

그러니.

적절하게 치고 빠지면서 발을 묶고, 그와 시의 바다가 바라는 계획이 전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잡을 테면 잡아 보든가.”

연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갑자기 손에서 비그리드를 놓았다. 이예의 소증이 한순간 관성으로 앞으로 쭉 밀려 나가고, 연우는 몸을 비틀면서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비그리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합일이 해제되었습니다.]

[죽음의 태엽이 정지하였습니다.]

이예는 그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알 수 없어, 불길한 마음에 고개를 뒤쪽으로 홱 하고 돌렸다.

연우의 시선은 이예가 아닌, 녹턴과 아슬아슬하게 대치 중인 무왕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때, 비그리드에서 분리된 쇠사슬이 위로 튕겨 오르고.

연우는 쇠사슬 끝을 빠르게 낚아채면서 마침 품에서 꺼낸 회중시계와 연결시켰다.

찰칵!

[시간의 태엽과 연결되었습니다.]

[태엽이 많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기능 중 상당수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신력이 부여되어 기능 중 일부를 복구합니다.]

끼릭, 끼리릭-

그리고 망가진 톱니바퀴가 억지로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면서.

[시간의 태엽이 작동합니다!]

[2배속으로 빨리 감기 됩니다. 광속화(光速化)가 이뤄집니다.]

팟!

쐐애액-

연우를 둘러싼 세계의 시간만 현실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그의 신형이 한순간 검붉은 빛줄기가 되어 무왕과 녹턴에게로 쏟아졌다.

이예는 미처 그것을 잡을 겨를이 없었다.

눈치를 챘을 땐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허!”

그저 허탈함에 찬 한숨만 내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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