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57화 (657/862)

7화. 스퀴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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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45_65]

……

‘여긴 어디지?’

연우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있는 정확한 위치와 시간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미 크로노스의 신화를 재생해 본 적이 있으니, 대략적인 시간대만 알 수 있어도 원활한 플레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막사?’

그런데 어쩐지 연우는 자신이 있는 곳이 크로노스의 기억 중 대부분을 차지하던 올림포스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림포스는 원래 예술을 추구하는 신들이 많은 터라, 대리석을 깎아 만든 궁정을 기반으로 온갖 조각상과 명화들이 즐비하게 장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연우가 있는 곳은 그런 곳과는 달랐다.

막사였다.

마치 옛 전쟁터에서 세워질 법한 고대형 막사.

물론, 이곳도 단순한 막사라 하기엔 천의 재질이 고급스럽고, 거기에 그려진 무늬 따위가 아주 아름다웠지만.

연우는 일단 우라노스를 찾아볼 생각으로 신력을 넓게 퍼뜨렸다.

그 순간, 화악 하고 다가오는 수많은 열기와 투기, 그리고 곳곳에 남아 있는 살기.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투쟁의 신위가 격동합니다!]

[현재 크로노스의 신화를 재생 중입니다. 해당 신위는 본 신화와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활동이 강 제 취소됩니다.]

[투쟁의 신위가 놓으라며 발버둥 칩니다.]

[투쟁의 신위가 잘게 떨립니다.]

‘이게 무슨……?’

연우로서도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투쟁의 신위는 온전히 자신이 쌓은 신화. 그래서 웬만한 자극으로는 꿈쩍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통제도 아주 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거칠게 반응을 한다고?

연우는 자신이 눈을 뜬 시간대가 언젠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어 재빨리 막사를 열고 나섰다.

그 순간.

화아악!

‘흡!’

아주 지독한 탄내가 코끝을 찔렀다.

수많은 전장을 전전했던 연우조차도 헛바람을 들이켤 만큼 지독한 탄내.

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갑갑해질 지경이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피부가 따끔거렸다.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방망이질을 쳤다.

[투쟁의 신위가 격하게 요동칩니다!]

[투쟁의 신위가 이곳은 위험하노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본 신화와 관련이 없으므로 활동이 강제 취소됩니다.]

불길한 검붉은 불빛과 매캐한 연기로 물든 하늘 너머……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어둠’이 있었다.

그건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어둠이었다.

빛과 존재를 그대로 묻어 버리는 어둠.

마치 암전한 무대처럼 칠흑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아주 느릿한 속도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면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천천히 뒤덮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으니.

‘공허? 심연? 아니, 그런 것보다 더 어두워. 그런 건 차라리 인식이라도 가능하지만 저건…… 대체 저게 뭐지?’

연우는 체험했던 크로노스의 신화를 재빨리 되짚어 보고, 크로노스에게서 들었던 여러 사건들도 복기해 봤지만, 저런 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혹시 크로노스에게 누락된 신화 같은 게 있었나?

아니면 알 수 없는 오류로 전혀 엉뚱한 곳으로 접속한 걸까?

엇비슷한 것이 떠오르는 건 있었다.

‘늪…….’

크로노스가 마성과 처음 만났던 칠흑의 늪.

생김새는 전혀 다를지 몰라도, 겉으로 느껴지는 성질은 그것과 사뭇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처음 늪을 발견했던 늪지대가 아닐 텐데?

절대 저런 형상을 띠지도 않았다.

“뭐 하러 나왔니? 따로 사람을 보내기 전까지 나오지 말라고 했었잖아.”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어둠’을 지켜보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뒤쪽에서 그를 야단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 딴에는 호통이라고 쳤지만, 걱정과 염려하는 기색이 다분히 묻어나는 자상한 목소리.

고개를 돌렸다.

크로노스의 신화에서 숱하게 봤던 얼굴이 있었다.

오케아노스였다.

크로노스의 형제들 중에서 맏이였던 이.

우라노스가 힘을 잃은 이후, 테이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올림포스의 내전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원래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따스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크로노스가 사고를 치고 다닐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두둔해 주고, 그의 불행한 처지를 이해해 줬으며, 크로노스가 칠흑왕의 사도가 되며 두각을 드러낸 뒤에는 아무런 미련 없이 자리를 훌훌 털어 버리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다른 형제들을 이야기할 때는 심드렁했지만, 오케아노스만큼은 존경할 분이라고 강조하였었지.’

연우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은퇴한 뒤에 행방은 전혀 알 수 없다지만.’

크로노스의 통치 시절은 물론, 제우스의 시대까지도.

모든 우주의 신들이 탑에 갇힌 것을 감안한다면, 오케아노스도 분명히 같이 갇혔을 게 분명하건만. 추후에 아테나에게 듣기로 오케아노스는 올림포스에서도 출현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었다.

은퇴한 후에 어디서 횡액을 당해 소멸하고 만 건지, 아니면 영락해서 필멸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많은 게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사람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의 일이었고.

연우는 지금 자신이 크로노스의 신화에 들어와 있으며, 젊은 시절의 크로노스를 연기하고 있단 사실을 잊지 않았다.

[11:45:23_31]

[11:45:23_30]

……

지금 이 순간에도 한계 시간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안에만 있기 갑갑해서.”

연우는 크로노스가 할 법한 대답을 적당히 꾸며서 둘러댔고, 오케아노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쓴웃음을 지었다.

“하아! 제발 그러지 말려무나. 여기서도 사고 치고 다니면 아버지에게 혼나는 건 네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니 말이다.”

오케아노스는 나이 차가 아주 많이 나는 사고뭉치 막냇동생을 타이르는 자상한 형의 말투를 하고 있었다.

연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버지?”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고 다니는 너라도 아버지는 무서운 모양이구나. 하긴 이번에는 정말 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시던……!”

“아버지, 어디 계시지? 뵙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너…….”

“나 지금 급해.”

연우는 오케아노스의 말허리를 도중에 단칼에 잘랐다.

그제야 오케아노스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버지께서 지금 널…… 아니, 우리를 상대할 여유 따윈 없으신 건 잘 알지? ‘밤’이 날뛰고 있는 바람에 아버지는 물론이고 장로님들까지 전부 신경이 많이 날카로우셔.”

밤?

아무래도 저 ‘어둠’을 가리켜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근데 날카롭다는 것은 우라노스가 저것과 싸우고 있단 뜻일까.

“그래도 봬야 해.”

“……하아! 알았다.”

오케아노스는 더 이상 연우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듯,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막냇동생이 언제는 자신의 말이라고 해서 들었던가. 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였으니,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하고 넘겨 버렸다.

다만, 지금 성격이 잔뜩 날카로울 우라노스를 괜히 자극해서는 자신도 덩달아 얻어터질 것(?) 같아, 도중에 뒤로 슬쩍 빠질 생각이었다.

* * *

[11:29:42_91]

[11:29:42_90]

……

연우가 오케아노스의 도움으로 대군영(大軍營)의 중심지에 다다라서 본 것은.

“다들 여기서 뒈져도 할 말은 없으렷다?”

“우라노스! 제발! 제발 우리 말 좀 들어 주십시오!”

“대체 왜 우리들만 나서서 ‘밤’을 상대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사회들도, 악마도, 용종도 전부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을……!”

“귀가 울리는군. 그래. 유언은 끝났지?”

“우라노스!”

“제발!”

촤아아악!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우라노스는 포박된 채로 제발 살려 달라며 애원해 대는 이들의 목을 단칼에 쳤다.

피가 뿌려지고, 공포로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한 머리통들이 줄줄이 바닥을 굴렀다.

“쯧! 피가 신발에 묻었군. 갈아 신는다는 것을 깜빡했어. 아끼던 것이었는데, 다시 주문해야 하나?”

그런 끔찍한 일들을 해내고도, 정작 우라노스는 눈썹 하나 꿈틀대지 않고 자신의 가죽 신발을 더 걱정할 정도였다.

‘역시 걸걸하시군.’

저런 분이 내 조부님이라. 연우는 이전에도 다짜고짜 크로노스에게 주먹부터 날리던 우라노스를 떠올리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성격은 할아버지에게서 내려온 게 틀림없었다.

‘이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나만 정상이니, 원. 내가 똑바로 정신 차려야겠어.’

연우는 샤논이 들었다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을 말을 스스럼 없이 속으로 내뱉으면서 우라노스에게 다가갔다. 오케아노스는 그를 데려다만 주고 바쁘다며 도중에 내뺀 뒤였다.

“무슨 일이더냐? 분명히 일이 끝날 때까지 막사에서 나오지 말라고 일렀을 텐데?”

우라노스는 연우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팍하고 찡그렸다.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밖에 나온 것이라면,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칼로 회를 쳐 버릴 기세였다.

‘여기서는…….’

다행히 크로노스가 이럴 때 꼭 우라노스에게 하라던 말이 있었다.

-프네우마의 하늘을…….

“프네우마의 하늘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뭐?”

우라노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듯,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며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프네우마의 하늘? 그게 뭡니까?

-나도 몰라.

-무슨……?

-나도 모른다고.

-…….

머릿속으로 크로노스와 나눴던 대화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심드렁한 표정을 한 크로노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네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시고 난 뒤에, 내가 한창 신력과 신위에 대해서 배울 무렵에 가르쳐 주셨던 말이다. 만약 나나 내 후손에게 일이 있어 당신의 그림자를 만나게 될 일이 있거든, 그 말이 주문(呪文)이 될 거라고. 무엇이든지 들어줄 거라고 하셨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질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네 할아버지는 아주 먼 미래에 있을 지금과 같은 일을 어느 정도 예견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너, 그걸, 어디서 대체…….”

우라노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신들 올림포스의 장로들이 다급한 기색이 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왕이시여?”

“또 막내 아드님이 사고라도 쳤습니까?”

“크로노스! 너 또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우라노스 님이 또 저러시는 것이더냐?”

“이번에는 좀 조용히 지내나 싶더니……!”

몇몇은 아예 대놓고 연우에게 으르렁대기도 했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1:27:56_76]

[11:27:56_75]

……

지금도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도와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프네우마의 하늘이 대체 무엇인 지는 알 수 없어도, 시간의 태엽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것이니만큼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라노스도 진지한 연우의 눈을 읽고 그제야 침중한 낯빛을 띠더니, 주변 장로들에게 말했다.

“다들 잠시만 물러나 주게.”

“하지만……!”

“부탁일세.”

그제야 장로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우라노스는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을 하면서 연우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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