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62화 (662/862)

12화. 스퀴테 (12)

[획득한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출력하기 위해 내용을 검토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해당 권능과 비슷한 속성과 성질을 지닌 스킬을 다수 소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스킬 통합이 이뤄질 시, 효과 및 위력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통합을 진행하시겠습니까?]

[통합 진행을 선택하셨습니다.]

[스킬 조합이 시작됩니다.]

……

[스킬, ‘시차 괴리’가 통합됩니다.]

[스킬, ‘시간 예지’가 통합됩니다.]

……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보창을 확인하십시오.]

[정보창을 출력합니다.]

[프네우마의 하늘]

등급: 권능

설명: “프네우마는 태초에 빛과 함께 잉태된 존재들이 내뱉은 숨결이며, 세상의 섭리와 법칙이 묻어 있는 열쇠일지니…….”

“……이것을 획득하는 자, 이것을 소지하고 있는 자. 그리고 이것을 물려받는 자. 세상의 근원으로 다가갈 유일한 방법을 얻게 될 것이다.”

위 설명은 태초로 명명되는 고대 때부터 내려오는 예언 중 일부다. 올림포스나 아스가르드 같은 사회가 탄생하기도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집단, 신과 악마와 용종과 거인족의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던 태곳적부터 내려온 세력, ‘프네우마 파(派)’가 추구하는 근본 기조이기도 했다.

그들은 ‘시간’만이 여러 우주와 차원을 관통하는 중심 뼈대이며, 이것을 다룰 줄 알아야만 태곳적의 비밀에 닿을 수 있노라고 번씩이나 외쳐 왔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 집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점차 몰락하고 말았고, 아득한 우주의 세월에 그 바람마저 같이 묻혀 사라지고 말았으니.

지금 여기.

그들의 피를 잇고, 의지를 계승하려는 자가 있다.

예언은 과연 사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질료 검출

질료(質料)란 원래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자 근본 원리로서, 그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나, 뭉쳐서 형식(形式)과 형상(形狀)을 갖춰야만 비로소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질료를 찾아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질료의 양은 의념(프네우마)의 성취도에 따라 비례해서 달라지 게 된다.

* 시차 변동

스킬 ‘시차 괴리’가 통합된 상태. 시전자를 둘러싼 세계와 시전 자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의 두 시간 사이에 인위적으로 괴리(正離)를 둔다. 이때 발생하게 된 시차는 인과율이 어긋나지 않는 한계선에서 빨라질 수도, 느려질 수도 있다.

단, 시차가 너무 클 시엔 인과율에 저촉되어 작동이 강제로 정지되거나, 자칫 어긋나 버린 시간선에 영영 갇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시간 검토

스킬 ‘시간 예지’가 통합된 상태. 찰나의 시간 동안, 시전자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게 된다.

이때, 검토된 가능성은 시일이 가까울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며, 멀어질수록 떨어지게 된다.

연우가 가장 즐겨 사용하던 스킬을 두 개나 통합한 프네우마의 하늘은 이미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여러 옵션 중 가장 크게 연우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시간 검토.

기존에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만을 제시하던 시간 예지와 다르게, 시간 검토는 그런 구애를 받지 않았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전방위에 걸쳐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제시해 주었으니.

비록 시간대가 멀어질수록 정확도도 그만큼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도 아주 큰 무기를 지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크로노스로 하여금 전지(全知)를 얻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가장 큰 비밀이었으니까.

아니, 다른 것을 다 떠나서라도.

연우는 이미 이 시간 검토가 가진 잠재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크로노스의 사체에 들어갔을 당시. 크로노스의 신화 속에서, 과거 크로노스가 올포원을 물리치면서 보았던 미래에 자신과 동생의 모습도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여러 안배까지 마련할 수도 있었으니.

사실상 오늘날 연우를 탄생시킨 가장 큰 무기를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기서 당장 쓸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위험을 감수하고 우라노스를 만난 보람은 있는 거였다.

화아악!

연우는 모든 것이 아주 느릿하게 굴러가는 세계 속에서, 신진철로 만든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극권의 군주도, 기어 다니는 혼돈도, 그리고 다른 혼세팔신도 모두 굼벵이처럼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탈출할 때지.’

물론, 혼세팔신쯤 되는 존재들이라면, 그만한 격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이러한 ‘작은 굴레’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리라 자신했다.

‘애당초 저놈들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처음 보는 낯선 개념을 만나게 된다면?

당연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바로 그 점을 노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작은 굴레’를 이용해 저들에 맞서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건 만용에 불과했다.

분명히 시간의 개념은 저들의 허를 찌르는 무기일지 모르지만, 저들쯤 되는 존재들이라면 시간이라는 낯선 개념을 금방 ‘이해’하고 반격을 꾀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야 겨우 마련한 무기도 쓸모가 없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할아버님이 유도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것이었을 테고.’

우라노스라면 타계의 신들이 시간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처럼 손자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서 알아서 빠져나오라고 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무책임한 것인지, 영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여하튼.

연우는 그렇게 놈들의 인지에서 벗어나 조용히 내빼려 했다.

‘좌표를 알 수 없지만, 우선 ‘밤’의 바깥으로 가야 해.’

연우는 우라노스의 도움 따윈 바라지 않았다. 분명히 위기 시에 도와줄 거란 믿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가는 게 훨씬 속 편했다.

문제는 ‘밤’이 과연 원래 세계의 좌표와 쉽게 닿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공허를 만질 수 있다면 빠져나오기 손쉬울 테지만, 지금은 그러질 못했다.

‘확실히 칠흑왕의 형틀이 사기템이긴 했었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화르륵!

연우의 등을 따라 검고 붉은 불길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서서히 날개의 형상을 갖췄다.

[투쟁의 신위가 온전히 제 모습을 갖추고자 합니다!]

[주의! 투쟁의 신위는 본 신화에 어울리는 신위가 아닙니다. 계속된 외부 신화의 유입은 본 신화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주의! 투쟁의 신위가 너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본 신화를 재생하는 데 있어 강한 영향을 끼칩니다. 신위 작동을 멈출 것을 권고합니다.]

……

[외부의 신화가 동시 재생되었습니다.]

[투쟁의 신위가 구현됩니다!]

[권능, ‘하늘 날개(오른쪽)’가 생성되었습니다.]

한껏 느려진 세계에서.

검붉은 불길이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활대를 형성하고, 사방으로 뿌려진 불꽃들은 한순간 깃털이 되었으니.

아버지에게는 죄송할 따름이지만.

연우로서도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늘 날개를 통해 외부로 향하는 좌표를 강제로 열어젖힌다는 것이었다.

하늘 날개를 만드는 건 아주 손쉬웠다.

애당초 하늘 날개를 직접 만들었기에 그 구성 요소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연우였으며.

키워드가 되는 투쟁의 신위는 온전히 연우만의 것. 칠흑왕으로부터 받았던 죽음과는 달랐으니, 그러니 이렇게 ‘느려진’ 세계에서 빠르게 재생성할 수 있었다.

화르륵!

비록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연우는 힘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서 충만해진 신력으로 더욱더 예민해진 감각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외부로 향하는 길목을 찾고자 했고.

‘여기다!’

연우는 ‘밤’의 바깥에서부터 이곳으로 통과했던 쇠사슬의 길목을 읽어 내고, 그 틈을 벌리고자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검뢰가 터지면서 틈에 틀어박히고, 강제로 찢어졌다.

‘밤’과는 전혀 다른 색을 가진 검은 입구가 아가리를 벌렸다. 그 곳으로 재빨리 몸을 밀어 넣으려는데.

[‘경계의 거주자’가 당신을 가만히 관찰합니다!]

‘뭐?’

연우는 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떠오른 메시지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맛보고 말았다.

그리고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린 곳에.

‘밤’의 천구(天球)를 전부 뒤덮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문’이자 ‘눈’이 이곳을 보고 있었다.

기광을 잔뜩 번뜩이면서.

탐. 구. 할.

가. 치. 가. 있. 군.

“……!”

그. 것. 이.

문. 인. 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잔재 신화가 원주인과의 만남에 강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이번에는 기어 다니는 혼돈 쪽이 반응하려 하고 있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꿈틀거립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낯선 개념 앞에서 강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당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한층 더 강해집니다!]

흥. 미. 로.

인. 간. 재. 밌.

[외부에서부터 강한 신력이 침입을 시도합니다.]

[‘작은 굴레’에 닿아 있던 프네우마가 흩어집니다.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이 강제 정지됩니다.]

[인과율이 작동하였습니다.]

[세계의 시간이 원상태로 복구되었습니다.]

와장창창!

마치 유리창이 크게 깨지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났다.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연우의 얼굴이 딱딱해지는 동안.

크아아!

시간의 속박에서부터 해소된 극권의 군주가 와락 달려들었다. 잿빛 불길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단순히 태우는 게 아니라 닿는 것만으로도 영혼까지 얼리는 기괴한 불길.

연우는 결국 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검의 방향을 뒤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반쪽짜리 하늘 날개가 마치 봉화처럼 허공으로 크게 타오르더니,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검뢰를 쏟아 냈다.

콰르릉, 콰릉, 콰르르!

콰콰콰콰-

하늘 날개의 힘이 더해진 검뢰는 아주 강했다. 검뢰는 잿빛 불꽃을 강제로 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방팔방으로 마구 뻗쳐 나가면서 남은 잿빛 불꽃마저도 송두리째 찢어 버렸던 것이다.

아. 아. 아아.

꾸우우우!

극권의 군주가 내지르는 구슬픈 절규가 ‘밤’의 세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밤’을 타고 흐르던 기류의 순환이 헝클어질 정도였고, 조각조각 난 놈의 파편들이 후두둑 아래로 쏟아졌다. 거기서부터 녀석을 구성하던 신력이 마치 피처럼 튀어 오르면서 커다란 은하수를 형성했다.

그사이. 여태껏 연우를 관찰하기만 하던 기어 다니는 혼돈이 움직였다. 녀석에게서부터 신력이 똘똘 뭉친 촉수가 다발로 날아들었다.

궁. 금. 해.

너.

궁. 금. 하. 다.

탐. 구. 실. 험. 체.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이 ‘작은 굴레’에 간섭하고자 합니다!]

[인과율이 작동합니다.]

퍼퍼퍼펑!

연우는 프네우마의 하늘을 계속 이래저래 움직이면서 촉수를 쳐 내고, 틈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이 따로 지시라도 내린 것인지, 여태껏 관망만 하고 있던 타계의 신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력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판국에 연우는 감각과 인지가 흐트러지고, 신력이 금세 동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신살(神殺)의 업적을 이뤘습니다! 해당 대상은 기록되지 않은 존재입니다. 대상의 신화 중 일부를 갈취할 수 있습니다.]

[신살의 업적을 이뤘습니다!]

[신살의 업적을 이뤘습니다!]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경계의 거주자였다.

놈의 눈알이 아주 천천히 위쪽으로 구른다 싶더니-하지만 워낙에 크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절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연우가 방금 전에 열어젖혔던 틈에 시선을 고정한 것이다.

그. 너. 머.

어. 쩌. 면. 아. 버지. 가.

콰직, 콰직, 콰지직!

단순히 눈길이 쏠리는 것만으로도, ‘밤’의 모든 법칙이 그곳으로 쏠렸다. 도로 닫히려던 틈이 강제로 벌어졌다.

마치 조그마한 구멍에다 쇠기둥을 박아 넣고 강제로 열어 젖히듯, 틈이 찢기면서 공간을 따라 균열이 잔뜩 퍼졌다. 바깥으로 향하는 웜홀(Wormhole)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몇몇 타계의 신들이 웜홀로 향했다. 바깥으로 향하려는 것이다. ‘밤’이 영역을 그쪽으로 자연스레 확장하면서 물질세계와 허수 세계가 뒤섞이려 했다.

저것을 이대로 두면 모든 게 망가진다.

연우는 그런 위기감에 재빨리 웜홀의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검뢰팔극을 잇달아 뿌려 댔다. 투쟁의 신위가 더해진 만큼 위력은 대단했지만, 그래도 연우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정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까닭에 그 많은 놈들을 전부 막기란 요원했다.

[신살의 업적을 이뤘습니다!]

……

그사이에도 타계의 신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다가.

비. 켜. 라.

지이잉!

이명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의념과 함께 갑자기 ‘밤’의 천구를 덮고 있던 눈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덧 연우 앞으로 무언가가 등장했다. 연우를, 아니, 정확하게는 크로노스와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 연우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경계의 거주자가 편히 활동하기 위해 변한 모습이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연우는 마침 자신을 집어삼키려던 불새 모양의 타계 신을 빠르게 갈라 버린 다음, 검의 방향을 꺾어 경계의 거주자에게로 쏟아 부었다.

육극(六極). 이미 연우로서는 한계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극한까지 힘을 쥐어짜 전개한 공세였다.

콰아앙!

“……감히.”

경계 거주자의 왼팔이 찢긴 채로 허공에 튀었다. 녀석이 짜증 섞인 얼굴로 욕지거리를 짓씹으면서 남은 오른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 손바닥이 연우의 가슴팍에 작렬한 순간, 여태껏 신체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던 신력의 흐름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말았다. 일부는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장기를 망가뜨렸다. 역혈(逆血). 외뿔부족에서는 주화입마라고 부르는 현상의 초기 증세였다.

퍼어엉!

경계의 거주자는 다시 한번 더 연우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결국 연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웜홀에 처박히고 말았고, 마치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듯이 바깥세상으로 튕겨나야만 했다.

“이곳인가, 그분께서…… 아버지께서 계신다는 세상이?”

연우와 함께 ‘밤’의 바깥으로 빠져나온 경계의 거주자는 완전히 이질적인 감촉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전히 크로노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 검은 땅. 모든 게 헝클어진 세상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너무나 낯설기만 한 세계였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 따윈 들진 않았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려야만 했으니까.

어느새 신진철로 된 검이, 그의 우측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한 놈에게 칼빵을 놓으니…… 기분이 뭐 같지만. 어쩔 수 없지.”

멀리 떨어진 곳.

연우가 피를 바닥에다 ‘퉤!’하고 내뱉으면서 손으로 입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눈가가 분노로 불길처럼 잔뜩 일렁였다.

비어 있던 왼쪽 등에서는 새로운 날개가 피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죽음의 개념을 강제로 깨우치고자 합니다!]

[신위를 강제로 재생성합니다.]

[‘하늘 날개(왼쪽)’이 구현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연우로서는 하늘 날개를 온전히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뜩이나 지금도 크로노스의 신화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을 텐데, 신위를 온전히 다 되찾아 버린다면 정말 위험할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놈들이 제멋대로 날뛰도록 놔뒀다간 신화가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았다. 실제로 웜홀에서부터는 ‘밤’이 줄줄 흘러나오면서 타계의 신이 하나둘씩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휘휘휘!

온전히 재각성한 힘이 폭풍처럼 퍼져나가며 경계의 거주자가 흩뿌렸던 신력을 지우려 할 때.

“……아버지? 넌, 대체 누구냐!”

경계의 거주자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연우를 노려보았다. 그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칠흑왕의 흔적을 발견한 셈일 테니.

하지만 둘의 그런 대치는 충돌로 이어지지 못했다.

[우라노스가 강림합니다!]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벼락이 떨어지면서, 우라노스가 나타나 남아 있던 경계 거주자의 신력을 찢는 것은 물론, ‘밤’의 영향력까지 지워 버린 것이다.

“이런! 나는 그냥 프네우마의 본질을 깨달으라고 했던 건데,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울 줄이야……. 이제 보니 손자라는 놈이 제 아비보다 더한 놈이었구나. 허!”

우라노스는 연우를 보면서 못 말리겠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단숨에 성장한 손자가 기특한 듯 입가에 미소를 물고 있었다.

그러다 우라노스가 천천히 경계의 거주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놈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아랫것으로 여겼던 연우에게 당했을 때처럼 분노가 아닌, 뜻밖의 장소에서 생사 대적을 만난 충격에 젖은 표정이었다.

“야드-타타그?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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