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스퀴테 (16)
“아무튼.”
천마는 차갑게 웃으면서 여의봉을 고쳐 쥐었다.
“나도 애 돌보다가 갑자기 나온 거라서 말이지. 금방 안 돌아가면 마누라한테 들들 볶이거든? 그러니까 서로서로 좋게 끝내자?”
천마의 말뜻을 눈치챈 경계의 거주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들 흩어져!”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거든?”
천마가 여의봉을 거칠게 휘두르는 순간, 황금색으로 물든 빛줄기가 수십 갈래로 쪼개지면서 각각 혼세팔신들에게로 쏟아졌다.
그들은 경계의 거주자가 말한 대로 피할 새도 없이 각자 권능을 끝까지 끌어 올리면서 결계를 두껍게 세웠고.
그것을 노렸던 천마는 단숨에 축지를 발휘, 공간을 열어젖히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검은 풍요의 요신 앞에 도착했다.
차차착!
마치 얼음을 조각한 것처럼 차가운 인상의 인간 형태를 띠고 있는 검은 풍요의 요신은 손날을 바짝 세우면서 허공에다 내그었다.
찌걱, 쩌거걱, 쩌걱!
끼아아아-
우우우우!
손날이 스친 자리로, 공간이 수십 갈래로 쪼개지면서 기괴한 모양의 촉수 다발이 잔뜩 쏟아졌다.
개중에는 기괴한 비명을 질러 대는 괴물들도 잔뜩 섞여 있었다. ‘낮’이 있는 질서의 우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을 형태를 가진 것들. 할 수 있는 사고도 아주 단편적인지, 똑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 머. 니.
어. 머. 니.
검은 풍요의 요신은 ‘풍요’라는 칭호에 걸맞게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하니. 타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그녀의 자궁에서 잉태되었을 만큼, 그녀의 위치는 타계 내에서도 아주 독보적이었다.
경계의 거주자가 부왕이라면, 그녀는 여군주(女君主)라고 할 수 있었다.
혼세팔신 중에서도 가장 많은 권속들이 그녀를 충심으로 따랐고, 방금 전 ‘문’을 강제로 열어 젖히면서 뽑아낸 것들도 그녀의 자식들이었다.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사고로만 움직이는 것들.
검은 풍요의 요신은 이것들로 하여금 천마의 발을 묶고, 자신은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반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이 얼마나 죽을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녀에게 있어 녀석들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그만한 자격을 지니려면 뛰어난 격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카카카-
그렇게 사방에서 달려드는 권속들이 천마를 갈가리 찢어 놓을 것처럼 굴려는데.
별안간 천마가 손에서 여의봉을 그냥 놓아 버렸다.
그러고는 진각을 가볍게 구르면서 몸을 비틀었다. 너무나 가볍게 움직이는 것으로 비쳤지만,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연우는 그것이 절대 단순한 동작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제천류!’
연우도 언젠가 미후왕의 허물로부터 배운 적이 있던 무류(武類)!
콰콰콰!
천마가 내디딘 땅에서부터 황금색 광채가 불줄기처럼 튀어 올라 그의 주먹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천류(齊天類)
화염륜(火焰輪) 비기(秘技)
화폭천왕퇴(火輻天王槌)
퍼어엉-
단 일격(一擊)에 불과했다.
검은 풍요의 요신이 소환한 괴물과 권속들은 물론, 녀석까지 한꺼번에 튕겨 나게 하는 데는.
그저 번쩍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권속들이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화염 줄기에 모조리 갈가리 찢기면서 탄내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검은 풍요의 요신은 다른 권속들이 죽을힘을 다해 방벽을 쌓으면서 가까스로 화신체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녀도 화신체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괴력. 실제로 천마의 주먹이 작렬한 자리에는 공간이 으깨져 균열이 크게 나 있을 정도였다.
‘저런 게…… 제천류였나?’
연우는 기어 다니는 혼돈과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면서도, 천안통과 천이통을 대부분 천마에게로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전장은 천마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비교적 마음을 놓은 것이지만, 연우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제천류에 대해 이해도가 낮고 안일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분명 천마가 발휘하는 제천류는 미후왕의 허물이 선보이던 것에 비해 숙련도는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완성도는 달랐다. 제천는 단순한 무공이나 체술이 아닌,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영역. 권능을 끌어오고, 법칙에 간섭하며 힘을 증폭시키는 방식은 미후왕의 허물보다도 더 완벽했던 것이다.
덕분에 연우는 눈이 뜨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음검을 단련하고 검뢰를 갈고닦는 데만 집중했던 자신이 얼마나 큰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에도 미쳤다.
‘음검을 제천류와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음검은 인과율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 만든 힘. 거기다 제천류를 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만족할 만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자신이 크로노스의 신화에 와서 가장 크게 얻어가는 건, 프네우마의 하늘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이 제시된 것만 하더라도, 그에게는 커다란 기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연우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 천마는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허겁지겁 물러서는 검은 풍요의 요신에게 끝까지 따라붙어 연타(連打)를 퍼부었고.
퍼버버벙! 콰아앙-
검은 풍요의 요신은 남은 화신체마저 대부분 박살이 난 채로, 힘없이 튕겨 나고 말았다. 화신체가 떨어진 장소는 ‘밤’이 일렁이고 있는 저 너머의 영역이었다.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혼세팔신과 타계의 신들은 안색이 더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제아무리 의념 중 일부만 끌어 내어 만든 불완전한 화신체라고 하지만, 검은 풍요의 요신은 분명히 그렇게 쉽게 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것을 보란 듯이 너무 쉽게 꺾고 말았으니. 녀석이 본체가 아닌, 정신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충격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츠츠츠!
검은 풍요의 요신을 처리한 뒤, 갑자기 제자리에서 천마의 몸뚱이가 여러 갈래로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분신술(分身術). 제천대성 손오공이 소싯적에 즐겨 사용했다던 선술이 발휘되면서, 여러 명으로 분화한 천마가 다른 혼세팔신과 타계의 신들에게로 쏟아졌다.
제천류(齊天類)
유수행(流水行) 오의(奧義)
분화원영신(分化元靈身)
쉬쉬쉬쉭-
한 명만 하더라도 혼세팔신에게는 아주 큰 충격이었는데, 여러 명이나 된다고? 그것은 차라리 ‘밤’에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저 괴물이 셋, 넷…… 열은 넘는 거 같은데.”
“미쳤……! 저건 좀 너무한 거 아냐……?”
“궁금한 게 있는데. 저렇게 되면 저들의 인성은 배가 될까, 아니면 제곱이 될까? 열 제곱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세상이 무너지는 게 낫다고 보는데.”
‘낮’이라고 해서 생각이 전혀 다를 건 없었지만.
우라노스와 메타트론, 바알은 마치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봤다는 듯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천마의 그런 분신들은 착실하게 혼세팔신들을 ‘밤’의 영역으로 튕겨 내고, 힘겹게 밖으로 나오려던 타계의 신들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밤’의 존재들이 천마를 대상으로 하는 저항은 완전히 무의미했다.
한편으로, 그 와중에도 분신들이 각기 저마다 펼치는 제천류의 비기와 오의들이 속속들이 연우의 감각에 속속들이 각인되었다.
그때.
팟!
분신 중 하나가 연우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정확하게는 연우와 대치하고 있던 기어 다니는 혼돈이 있는 방향이었다.
허. 락. 된. 유. 열. 여. 기.
피. 해. 복. 구. 힘. 들.
한. 세. 월.
그. 렇. 다. 면.
기어 다니는 혼돈은 동생의 모습을 한 상태로, 끝을 체감하면서도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연우는 모든 감각을 다시 녀석에게로 재빨리 돌려야만 했다. 본능적으로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어 다니는 혼돈은 갑자기 왼손으로 오른팔을 통째로 뽑아 허공에다 던졌다.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신화가 일부 분리되었습니다!]
[분리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신화가 당신이 삼킨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잔재 신화와 강하게 호응합니다!]
[두 신화가 부족분을 채우기 위 해 합쳐지고자 서로를 거세게 잡아당깁니다!]
“무슨……!”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돌발 행동.
녀석의 오른팔이 잘게 부서지면서 안개로 변해 자신에게로 쏟아졌던 것이다.
연우는 녀석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태껏 하는 짓들을 봐서는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었기에 음검을 전개해야만 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분리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신화를 거부하고자 합니다!]
[투쟁의 신위가 꿈틀거립니다.]
[권능, ‘하데스의 식령검’이 식탐(Gula)의 성질을 드러냅니다. 분리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신화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하지만 음검으로 베기도 전에 안개는 마치 진공청소기를 켠 듯 연우에게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고.
이. 것. 이. 면.
더. 재. 밌. 는. 걸. 볼. 수. 있.
기어 다니는 혼돈은 기괴하게 웃어 댔다. 입가에 어린 만족에 찬 미소. 그리고 곧 정면으로 닥 친 천마에게 일격을 얻어맞으며 ‘밤’의 영역으로 튕겨 나고 말았다. 화신체가 크게 부서지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밤’ 너머로 사라지기 전까지도 전혀 지워지질 않았다.
두근!
[합쳐진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잔재 신화가 강하게 꿈틀거립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연우는 흡수된 녀석의 신화가 크로노스의 육체가 아닌, 자신의 영혼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이전처럼 의식 세계를 침범하려 드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한순간 혈류가 급하게 돌다가 금세 잦아들었으니까. 하데스의 식령검도 어느 새 흡수된 신화를 전부 소화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연우는 그것이 못내 불쾌하고, 의심스러웠다. 적선하듯이 그냥 신화만 던져 주고 사라진다고? 기어 다니는 혼돈은 결코 그럴 녀석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걸 더 깊게 고민할 새가 없었다.
뭔가 이상이 있을 줄 알았던 기어 다니는 혼돈의 신화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천마도 어느새 ‘밤’에 대한 정리를 끝마쳐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냐?”
천마는 자신을 잔뜩 노려보는 경계의 거주자 앞으로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섰다.
“지금은 이렇게 떠나나,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까지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삼류 악당들이나 할 대사 같은 거 떠들어 대면 낯간지럽진 않냐?”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결국 아버지께서 깨어나시는 것까지 막진 못할……!”
“그래. 알았으니까, 이만 가라.”
천마는 경계의 거주자를 발로 뻥 하고 걷어찼다. 녀석의 화신체가 그대로 부서지면서 ‘밤’으로 돌아가면서 웜홀만 한 크기로 한 순간 작아져 저만치 뒤로 물러났다. 그 자리를 ‘낮’의 푸른 하늘이 단숨에 채웠다.
방금 전까지 사위를 강하게 짓누르던 전장의 압박이 거짓말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볼일을 끝낸 천마의 분신들도 하나둘씩 조용히 사라졌다.
연우는 아주 잠깐이지만, 살짝 넋이 나간 채로 그런 천마를 바라봤다.
‘낮’이 그토록 힘겹게 겨우겨우 막아 내던 ‘밤’의 존재들을 저토록 쉽게 내쫓아 버리는 힘이라니.
이 정도면 시기나 질투가 들기보다는 경외에 가까운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스승인 무왕을 따라 언젠가 ‘황’에 다다르고자 하는 욕심도 갖고 있는 연우로서는 더더욱.
『천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나 보구나. 이 정도면 창세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숨겨진 것 외에는 거의 다 안다고 봐도 무방하겠어. 허허! 그리고 이제 우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거의 다 알게 된 셈인가.』
우라노스는 그런 연우를 보면서 가볍게 껄껄 웃었다. 메타트론과 바알은 저마다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밤’이…… 아니, 천마가 휩쓸고 지나간 전장을 뒷수습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많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 그렇다마다. 각기의 사회들이 그려 내는 창세 신화가 다 다른 건 그만큼 많은 비밀을 품고 있어서란다. 어쩌면 우주 창생이란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인지도 모르지. 그 중심에는 바로 저자가 있는 것이고.』
연우는 우라노스의 말 속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천마.
신들에게 있어 마(魔)라고 불릴 정도로 지고한 존재.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모든 신화에서 존재가 지워지고 있었다.
신들은 절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허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의도적으로 그에게로 향할 신앙을 도중에 가로채려는 속셈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천마는 존재가 지워지기는커녕, 여전히 우주를 환하게 비추는 빛으로 남아 있으니.
우라노스는 그런 그를 경계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천마를 선망하거나 경외는 하되, 추구하려고 들지는 말거라. 애당초 그와 너는 걷는 길이 다르다. 그것을 무리해서 좇으려 하면 네가 쌓은 것까지 전부 망가질 우려가 크다. 애당초…… 그와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단다.』
그렇기에 우라노스는 연우가 혹여 천마에게 빠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제아무리 신들 사이에 천마를 배척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도, 개중에는 반대로 천마를 숭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특히 어린 존재들이라면 더더욱 그러기가 쉬웠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우는 그런 그의 염려를 알고 딱 잘라 말했지만, 우라노스는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투가 역력했다.
연우는 그런 조부님에게 구태여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자신이 천마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어디까지나 압도적인 위용과 여유, 그리고 제천류에 대한 완성도 때문일 뿐. 사실 그 외의 부분에서는 경계심이 없잖아 있었다.
‘나는 올포원을 끄집어 내리려 한다. 그렇다는 건, 때에 따라서 천마와 대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아, 참. 나중에 아들 녀석 다시 만나거든, 미안하다는 말 좀 대신 전해 주라.
연우는 창공 도서관을 떠날 당시에 천마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천마와 올포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올포원은 천마를 원망하나, 천마는 여전히 올포원을 사랑하는 것 같았으니,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연우는 그 사실을 알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다. 그의 적은 올포원이었고, 그로 인해 천마와 척을 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만한 각오는 진즉에 하고 있었다. 그를 경외할지언정, 선망도 추구도 하지 않는 이유였다.
애당초 그가 갖고 있는 힘의 근원은 천마와 정반대되는 칠흑왕의 것이기도 하고.
우라노스의 말마따나, 걷는 길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우라노스는 걱정을 한시름 놓으면서도, 연우의 자세한 생각을 알지 못했기에 조금 미심쩍어하는 투였다.
『한데, 말이다.』
『예.』
『지금 말고, 혹시 다른 시간대에서도 천마를 본 적이 있더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뚱맞은 질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할애비의 착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천마는 너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치여서 말이다.』
『……?』
우라노스의 말이 무슨 뜻인가 싶던 그때.
연우는 이쪽을 쳐다보는 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천마의 눈동자가 화안금정으로 빛났다.
그리고.
파아앗!
별안간 천마의 신형이 꺼지나 싶더니 연우 앞에 공간을 열고 나타났다. 혼세팔신들을 내쫓을 때보다도 더 빠르고 강렬한 신속함. 심지어 그 속에는 짙은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살의(殺意)!
“……!”
차아앙!
연우가 머리로 내려쳐지는 여의봉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우라노스가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로 둘 사이에 나타나 그의 공격을 튕겨 내었다.
“천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요!”
분노에 찬 그의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세상을 울렸다. 메타트론도, 바알도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이쪽을 돌아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는 여태껏 보였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지독하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연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단순히 지칭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연우는 등골을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본능이 울어 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죽고 말 것이라고!
[경고! 본 신화로 해석을 감당하기 힘든 거대 존재가 당신에게 강한 적의를 드러냅니다! 신화의 기반이 흔들립니다! 당장 재생을 멈추십시오!]
[경고! 본 신화로 연출할 수 없는 거대 존재가 당신에게 지독한 살의를 드러냅니다! 신화가 붕괴될 우려가 있습니다! 당장 빙의에서 탈출하십시오!]
[경고! 본 신화로…….]
……
[재생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빙의가 정지되지 않습니다!]
[본 신화가 거대 존재에 의해 강제 조정됩니다! 신화의 질서가 통째로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
[신화가 붕괴됩니다!]
[신화가 붕괴됩니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천마가 으르렁거렸다.
마치 절대 봐서는 안 될 존재를 마주한 것처럼.
“내 아들을 죽일 운명을 타고났구나. 어째서 미래의 나는 너를 ‘읽었으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 거지?”
“……!”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