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73화 (673/862)

23화. 신화 붕괴 (7)

『아아, 저곳이…….』

『푸르군.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주 아름다워.』

『본영에 있는 진주라도 보는 것 같군.』

지구가 뽐내는 아름다운 모습에 신과 악마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지구가 어느 정도 익숙한 듯, 크게 놀라거나 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저만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니, 칠흑왕이 잠들어 있을 만하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또한.

『저곳이……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

기어 다니는 혼돈은 껄껄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의 웃음소리 때문에 머릿속이 울릴 정도였다.

‘밤’이 숱한 세월 동안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찾아 헤매던 곳을, ‘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신 이상향을 드디어 찾은 것인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타계의 신 중에서도 신실함이 가장 적은 녀석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열의와 갈망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기어 다니는 혼돈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선잠에 드신 ‘아버지’의 의식이 지금 이 순간 저곳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육체를 잃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체를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감각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기어 다니는 혼돈은 연우를 재촉하고 싶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며.

어서 ‘아버지’를 깨우러 가자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는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연우의 정신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어서 지구로 달려들고 싶어하는 저들과 다르게, 연우는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하필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그리고 커도 너무 큰 세계에서, 어째서 지구인 걸까?

지구와 태양계는 처음에 크로노스도 그 존재 여부조차 잘 몰랐을 만큼 변방에 위치한 곳이었다. 마법과 신력에 대한 개념도 없고, 초월적인 존재들도 손을 뻗치지 않았던 곳.

그래서 여태 지구는 형이상학(形而上學)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곳으로만 여겼었는데.

‘칠흑왕이 잠들어 있다고?’

그 순간, 연우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올림포스의 신화가 왜 여기서 들리는 거지? 그럼 이곳은 올림포스의 영역인가……? 하지만 분명히 이전 생에서는 아스가르드의 신화가 들리지 않았었나? 천교의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크로노스가 왕좌를 빼앗기고 우주에다 내던졌던 ‘태엽’이 지구에 다다랐을 때.

그는 몇 번씩이나 전생을 거듭하면서 똑같은 의문을 여러 차례 던지곤 했었다.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천교 등, 수많은 신화들이 회자되던 행성. 어떻게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것은 크로노스가 까마득한 세월 동안 우주를 통치하면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당연히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서 신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야 그 후에 천마가 신들을 탑에다 가둬 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그 의문에 대해서는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애당초 필멸자들이 그렇게 정확하게 초월자들의 신화를 꿰뚫어 본다는 게 그로서는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런 기이한 현상이 빚어진 것이, 칠흑왕이 지구에 잠들어 있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고 했었지.’

계시록에 따르면, 깊은 잠에 든 칠흑왕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인과와 현상들은 꿈으로 비친다고 한다. 기약도 없을 아주 기나긴 꿈. 그리고 그러한 꿈에서 깼을 때가 바로 시의 바다에서 일컫는 ‘종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꿈은 몇 번이나 되풀이될 수 있고, 두서없이 여러 가지가 나열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신들이 빚어내는 신화도 결국 칠흑왕이 꾸는 꿈에 불과할 테니, 신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할 장소에서 여러 신화들이 혼재되고, 제멋대로 가공되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구가 만약 정말로 칠흑왕과 가장 가까운 장소라면, 그런 현상도 더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테고.’

연우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버지의 ‘태엽’이 지구에 닿았던 것도, 어머니가 여기서 아버지를 찾았던 것도…… 전부 우연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우주를 떠돌아다녔을 ‘태엽’이 지구에 떨어진 것은. 어쩌면 크로노스가 모시는 신이었던 칠흑왕에게로의 귀소 본능에 따른 결과였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칠흑왕이 자신의 후예가 내릴 선택이 어떨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런 연우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칠흑왕과 관련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연우는 저 시선이 절대로 후예에 대한 관심 같은 게 아닐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린아이들이 개미집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그런 호기심에 가까운 게 아닐까. 녀석에게 있어 연우는 한낱 벌레에 불과할 테니까. 잠에서 깨어나면 덧없이 사라질, 그런…….

『왕이시여. 저에게. 저에게 당신을 바로 곁에서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소서.』

그때, 아즈라엘이 날개를 한껏 접으면서 연우 옆으로 조용히 착지했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는 예의 바른 태도와 고상한 기품이 느껴졌지만, 그의 두 눈은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현 시간대에서도 단순히 연우가 칠흑왕의 후예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녀석답게, 지금도 열의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연우에게 고압적인 태도만 보였지만, 지금은 한없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애당초 아즈라엘은 칠흑왕의 열렬한 추종자인 만큼, 그와 관련된 위계는 제 목숨처럼 따르는 편이었다.

그러자 여태껏 죽음의 신과 악마들을 대표하던 헬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래서야 그녀의 권위를 무시하는 꼴이지 않은가. 당연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위대한 왕께서 직접 보고 계시는 곳에서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 헬은 애써 언짢은 심기를 누르며 비틀린 입술처럼 말투를 배배 꼬았다.

『흐응. 무슨 말을 하는 것이죠, 아즈라엘? 왕께서 직접 임하신 장소는 니플헤임이고, 그런 만큼 길을 안내하는 것도 제가 맡기로 이야기되었던 것 아니었던가요?』

하지만 아즈라엘은 헬이 항의하건 말건 그쪽으로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연우에게 자기 어필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저는 죽음을 기리는 천사이며, 영혼을 수확하고 관장하여 왕께서 언젠가 아버지이신 칠흑을 설파하실 때에 그네들과 함께 나팔을 불 악사이나이다.』

『괜히 순번을 어지럽혀서야 다른 죽음의 신과 악마 분들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꼴일 텐데.』

『응당 악사가 짊어질 의무는 왕께서 가시는 길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 길로 모여 경배를 드리게 하는 것. 그 의무를 이룰 수 있게끔, 예행(豫行)을 하게끔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 쉽게 설명해도 전혀 알아듣질 못하니, 역시…… 사마엘도 되지 못한 얼치기는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같은 신위를 둔 동료로서, 이 헬은 참으로 서글픈 것이에요.』

헬은 계속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아즈라엘을 보다가 살짝 분이 쌓였는지, 혼잣말인 척 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쳐 댔고.

아즈라엘도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고 고개가 뒤쪽으로 확 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그에게는 치부라 할 수 있는 이름을 부러 거론하는 것은 대놓고 싸우자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그 역시 왕이 보는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그의 요사스러운 혀는 말라흐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우둔한 서리 거인의 피가 섞여서 그런가, 참으로 어리석은 말만 잘도 골라 해 대는군.』

『뭐라구요?』

헬의 목소리에 살짝 가시가 돋쳤다.

『아직도 모르겠나?』

『뭘 말이죠?』

『이 몸은 이미 저분과 한 몸이노라.』

『뭔……!』

아즈라엘은 헬의 따가운 눈총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아도취에 잠긴 채로 떠벌렸다.

『내게 어떤 은총이 닿아 저분과 영혼이 교통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못난 영혼이 저분의 체취에서 묻어나는 것을 어찌 맡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

『참으로 애석하구나. 하니, 너는 물러나라. 저분과 이 몸이 함께 하고 있는 영역은 그대가 함부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노라.』

‘제3천의 영을 빼앗았던 것을 두고 말하는 거로군.’

연우는 자신을 누가 모시느냐를 두고 설전을 해 대는 아즈라엘과 헬을 보면서 혀를 가볍게 찼다. 자신이야 누가 앞장선들 관심도 없는 않는 것을, 저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니 조금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굳이 만류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충성 경쟁은 상황에 따라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헬이 그런 걸 알 리는 없을 테니, 여기서 봤던 성격상 반발이 심해질…….’

『하악.』

‘……?’

헬이 아즈라엘과 드잡이질이라도 할 거라고 예상했던 연우는 거친 숨소리에 저도 모르게 움찔 물러서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헬의 얼굴은 붉은색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거친 단내가 풀풀 날렸다. 정수리 위로 김이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아가레스도, 아버님도 왕께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계신데…… 그래서 이 소녀의 마음이 활활 불타고 있는 중이었는데……. 한 몸, 한 몸이라니!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 이러다 이 헬은…… 죽어욧!』

‘…….’

빌어먹을 색욕의 돌. 연우는 잔뜩 폭주하기 시작한 헬을 보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째 그동안 봤던 헬답지 않게 너무 조용하다 싶었지. 아무래도 내숭을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로키의 막냇자식답달까.

연우는 이대로 있다간 정말 니플헤임에 휘말리겠단 생각에, 자신이 타고 있던 펜리르의 목을 세게 두들겼다.

“저곳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을까?”

왕!

펜리르는 걱정 말라는 듯이 크게 뜀박질을 했다. 절벽에서부터 포탈에 다다르기까지, 단번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장엄하 기까지 했다.

『가, 같이 가요!』

헬도 그제야 연우와 펜리르를 쫓아 날개를 한껏 휘저었다. 아즈라엘도 다급하게 뒤쫓았다. 666명에 달하는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모두 포탈을 건넜다.

* * *

포탈을 건너자마자, 연우가 느낀 감정은 딱 한 가지였다.

‘휑…… 하군.’

분명히 같은 지구인데도 불구하고.

연우가 살던 현 시대의 지구와, 크로노스 신화 속 지구의 모습은 전혀 다른 행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늘에서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빽빽하게 쏟아지고, 지층에서는 열이 펄펄 끓는 바다가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대기는 온통 유황 가스로 가득해서 과연 원시적인 생명체는커녕 제대로 된 유기 화합물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원시 지구.

정확한 연대는 측정하기도 힘들 만큼, 아주 오래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시간대의 지구를 기준으로 둔다면 이제야 겨우 갓난아기 신세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 아닐까.

이런 곳, 과연 어디에 칠흑왕이 잠들어 있는 건가 싶었지만.

“……이건?”

대기를 놓고 깊숙한 곳에 다다른 순간, 연우는 갑자기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사념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하. 그렇군. 왔구나. 저것이 바로 나의 아이인가. 나의 잠을 깨울. 자명종. 알. 그런 것.

수두룩하게 되풀이되는 이 많은 꿈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건.

래그서 이 화는신 날 수 볼 있는 가건.

너는 대체 몇 번째의 나인 거지.

연우는느꼈다.어느곳하나특정할수없는사방에서쏟아지는 무수히많은감시의시선을.

가나다라마바사아차카타파하

칠흑왕의 생각인 걸까 싶은 사념에서부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뒤죽박죽 섞인 생각들, 무의 미하게 나열된 말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연우의 시점에서 연우를 보고 있는 해괴한 사고도 있었다.

시끄러웠다.

마치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많은 존재들이 사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문제는 그런 소리들이 하나같이 신격들조차도 재단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격을 지니고 있어서, 영혼이 흔들릴 정도라는 점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영혼이 흔들립니다. 자아가 혼란해 집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

연우는 특성이 없었더라면 과연 자아나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은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자신과 함께 포탈을 건넜을 펜리르나 다른 죽음의 신과 악마들에 대한 걱정은 할 겨를도 없었다.

[‘냉혈’ 특성으로 이성을 유지합니다.]

[스턴 상태가 해지되었습니다. 혼란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신통(神通)이 발동합니다.]

[분산된 감각이 아주 조금씩 집중됩니다. 혼란된 감각이 아주 천천히 교정됩니다.]

[집중과 교정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칠흑왕이 수많은 꿈이 소용돌이 치는 터전에 찾아온 자신의 후예를 기껍게 바라봅니다.]

‘이런 걸 아버지가 느끼지 못하셨었다고?’

연우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억지로 참으면서, 크로노스가 어떻게 지구에서 만 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칠흑왕을 감지하지 못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칠흑왕을 공허에 처박았다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던 천마에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천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아무리 먼 미래라고 해도, 어떻게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에다 칠흑왕을 재울 생각을 한 거야?’

천마는 비록 피조물인 지구인으로 태어났으나, ‘황’이 되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태초로 환원하였고, 그곳에서 칠흑왕을 거꾸러뜨리면서 표류 중이던 우주 창생(宇宙創生)을 마무리 지었던 존재.

그런 그가 칠흑왕이 묻힐 장소로 지구를 점찍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단 뜻이었을 터.

하지만 그 뜻이 대체 무엇인지 연우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토록 거대한 사념의 격류가 있는 곳에 제대로 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을까?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연우가 살던 미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건지, 그 점이 의심스러웠다.

[천안통이 상대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천안통이 상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다 혼란스럽던 인지와 감각이 정리되었다.

연우는 사념의 격류, 그 너머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곳과 자신의 영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슬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사슬이 한껏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마치 이곳으로 오라는 듯.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강제로 끌어내겠다는 듯이.

촤르르륵!

이어 도르래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사슬이 한층 더 강하게 연우를 잡아당겼다. 연우는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단번에 바닷속으로 풍덩 빠졌다.

얼마나 침잠했을까. 지구의 내핵에 다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싶을 무렵.

연우는 어느 순간 자신이 지구가 아닌, 새카맣게 칠해진 공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

도저히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존재가 있었다.

공허로 칠해져 있어 분명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크기는 연우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해 있었다.

아니, 그에 비하면 연우라는 존재는 극히 아주 작은 한 점(點)에 불과했다. 격을 가늠하는 것조차도 ‘불경’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칠흑왕이 자신의 후예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보는군……

새로운…… 나의 꿈……

알……

알이구나……

너는 내가 점지한 후예들 중에서도 가장 낫구나……

역시 그 피가 피를 이어 여기까지 다다랐겠지……

좋아……

너로 선택하마……

[칠흑왕의 점지에 따라, 칭호가 ‘칠흑왕의 후예’에서 ‘칠흑왕의 분신’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아직은 일어날 때가 아니지만……

그래도 가볍게 기지개를 펼 정도는 되겠지……

으레……

잠꼬대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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