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84화 (684/862)

9화. 올포원 (5)

“어떻게……?”

육합전성도 이제는 사라지면서 육성이 흘러나왔다.

불신으로 가득한 녀석의 눈을 보고 있노라니, 연우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몰랐나? 원래 운영자는 핵쟁이를 못 이기는 법인데 말이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시스템 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또 다른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중앙 정보 처리 장치가 해킹되어 명령어 해독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집니다!]

[시스템이 올 다운 됩니다!]

첫 번째는 양도를.

두 번째는 음검을 의미했다.

양도는 세계의 틀에 ‘나’를 맞추는 과정이니, 시스템이라는 세계에 스퀴테가 맞춰져 일종의 트로이목마 같은 바이러스가 된 셈이고.

음검은 ‘나’를 기준으로 세계의 틀을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니, 시스템을 강제로 해킹하는 해커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비집고 들어가 모든 것을 끊어 내는 것.

그리하여.

[9단계의 방화벽이 무력화되었습니다!]

[9단계의 백신이 취소됩니다!]

……

[모든 방어 체계가 사라졌습니다.]

[운영 체제가 정지되었습니다.]

[시스템에 주입되던 명령어 기능이 모두 상실되었습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나 다름없던 신위 ‘올포원’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이것은 어쩌면 탑에 들어온 이상, 강제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던 누군가-소호 금천의 안배인지도 몰랐다.

소호 금천이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탑을 처음으로 열었던 트리니티 원더 중 한 명인 그가 이런 기술을 남겨 놓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우는 그것을 터득하여 시스템을 모조리 끊어 내는 데 성공하였고.

[플레이어, 비바스바트가 신위 ‘올포원’을 상실하였습니다!]

드디어 올포원과 제대로 된 일전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77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신들이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77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악마들이 올포원의 신화가 붕괴되는 것에 비명을 지릅니다!]

……

[모든 죽음의 신들이 왕의 재래에 크게 축복합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들이 왕의 행차에 큰 환희를 느낍니다!]

……

[비마질다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케르눈노스가 고요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다, 그 배후에 있는 존재를 가만히 주시합니다.]

……

[‘말라흐’의 서기장, 메타트론이 동요하는 98층의 민심을 달래고자 선도합니다.]

[‘르 인페르날’의 수좌, 바알이 누군가를 잔뜩 경계합니다.]

[플레이어, 비바스바트에게로 향하던 신앙이 플레이어, 차연우에게로 전가됩니다!]

[신성이…….]

[신화가…….]

……

[‘난만(爛滿)’ 상태였던 영혼의 격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상태: 홍실(紅實).]

……

[영혼이 수용할 수 있는 신앙 수치를 훨씬 초과하였습니다!]

……

[탈각이 느리게 진행 중입니다. 31, 32…… 35%…….]

[탈각 속도가 계속 저하되고 있습니다. 막대한 고통이 뒤따릅니다.]

[정신을 잃을 경우, 탈각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탈각을 마무리할 것을 권고합니다!]

비바스바트에게로 향하던 모든 신앙이 꺾이기 시작했으니까.

덕분에 연우는 탈각의 속도가 이전보다 현저히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무적’이나 다름없었던 올포원의 신화가 깨지고, 절대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스템이 처음으로 무력화된 것을 본신과 악마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여태껏 탑에 속박된 존재들은 도전자건, 초월자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올포원을 항상 ‘벽’으로 생각해 왔다.

그가 탑 내에서 최강자이며 아무도 꺾지 못한 무패의 인물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믿음과 인식들은 가뜩이나 시스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올포원에게 신앙까지 더해 주면서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철옹성의 문은 처음으로 뚫리게 되었고, 어쩌면 무적과 무패도 아닐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렇게 믿음이 사라질수록, 올포원에게로 향하던 신앙은 급속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의 주변을 조금씩 맴돌려던 배광이 서서히 사그라졌고.

반대로 연우를 중심으로 배광이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신과 악마들이 새로운 절대자로서 연우를 점찍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용해야만 신앙이 자꾸만 늘어나 탈각이 늦어지고 말았다. 거기에 맞춰서 7차 각성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그것도 더 큰 고통을 주면 주었지 절대 작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칠흑왕이 분신의 선전에 크게 기뻐합니다.]

칠흑왕의 신심(信心)도 무척이나 두터워지면서, 분신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칠흑의 양도 자꾸만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연우는 한번 잡기 시작한 승기를 놓칠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천마가 슬픈 눈빛으로 77층을 살핍니다.]

콰르르릉!

연우는 비바스바트의 목을 낚아 챈 그대로 수직 하강을 시도했다. 녀석이 어떻게든 빠져나오고자 아등바등했지만, 이미 바짝 힘이 들어간 연우의 왼손을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

콰아앙!

커다란 크레이터가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빛의 세계를 따라 균열이 잔뜩 퍼졌다.

마치 유리창을 땅에 떨어뜨린 것처럼. 조각 난 공간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면서 땅에 처박힌 비바스바트와 그 위에 올라탄 연우를 여러 방향에서 비췄다. 수천수만 개의 상(像)이 동시에 맺혔다.

그리고 연우가 올포원을 짓누르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커질수록, 그를 중심으로 휘도는 그림자가 더 격렬하게 회오리치면서 빛의 세계를 갈가리 찢어 놓기 시작했다.

콰콰콰-

와장창창!

그러다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그 많은 상들이 동시에 아래로 우수수 쏟아졌다.

[강한 충격으로 인해 성역, ‘빛의 세계’가 강제 취소되었습니다!]

[77층, 빛의 관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역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스테이지는 밝은 햇빛 아래, 녹색 언덕이 아름답게 펼쳐진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여태껏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광경.

“난…… 난……!”

비바스바트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무언가를 외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원통해서, 억울해서, 절규라도 내뱉고 싶어 하는 얼굴.

처음에 연우가 동생이 실종되고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에 보였던 것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다.

“이대로 질 수 없다! 물어야만 한단 말이다!”

비바스바트는 억지로 연우를 떨쳐 내면서 달렸다. 신위는 사라졌을지언정, 아직까지 본신의 무력은 남아 있었으니까. 천마군림보에서부터 대수인에 이르기까지, 그는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동작들을 보이면서 광휘를 잔뜩 쏟아 냈다.

배광의 광도(光度)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눈부신 광휘가 번쩍이면서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광휘는 이전처럼 위협적이지 못했다. 연우를 둘러싼 그림자와 칠흑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먹혀들어 가고 말았으니까.

[그림자의 농도가 짙어져 칠흑의 속성을 띠게 됩니다.]

[칠흑이 광휘를 잠식합니다!]

마치 빨대를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칠흑은 단숨에 광휘를 쫓아 비바스바트를 옥죄어 갔다.

동시에 스테이지를 조금씩 물들이던 어둠도 단숨에 확장되면서 밝게 빛나던 스테이지의 하늘을 뒤덮어 갔다.

[77층이 칠흑으로 완전히 뒤덮였습니다.]

[심상 세계가 구현됩니다.]

[대성역이 구축됩니다.]

……

[명토(冥土)가 선포되었습니다!]

[죽음이 잠식합니다.]

[시간이 뒤틀립니다.]

……

[칠흑왕이 새롭게 형성된 분신의 영토를 보면서 실소를 흘립니다.]

[현재 1층부터 77층까지 모두 칠흑이 잠식한 상태입니다.]

[하계가 칠흑이 잠겼습니다!]

콰콰쾅!

쿠릉, 쿠릉, 쿠르르-

연우는 호시탐탐 날아드는 광휘를 옆으로 잇달아 쳐 내면서 비바스바트와의 간격을 바짝 좁히고, 잇달아 스퀴테를 휘둘러 댔다. 드래곤 하트와 현자의 돌에서 마력이 모두 소비되었다지만, 그건 시시각각 쏟아지는 수많은 신앙들로 인해 빠르게 채워진 상태. 그렇기에 움직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검뢰가 잇달아 떨어졌다. 광휘가 방어막 형태를 띠면서 불길을 옆으로 흘려보냈지만, 그럴 때마다 크로노스가 양도를 발동시켜 비바스바트의 움직임을 빠르게 봉쇄시켰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음검이 발동되어 날카롭게 녀석의 옆구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비바스바트는 마치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 있는 난파선처럼 보였다. 풍랑이 점차 거세게 몰아치면서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롭게만 보이는 난파선.

그가 자랑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시스템의 비호도, 항상 충만하던 신앙도. 그의 성역도 이제 연우에게 빼앗기면서 모든 법칙까지 송두리째 이쪽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첫 번째 ‘천마군림보’가 펼쳐지려 합니다!]

[시간의 태엽으로 인해 발동이 강제 취소되었습니다!]

……

[신위를 상실하면서 권능, ‘불사’가 모든 효과를 잃었습니다!]

……

[권능, ‘대수인’이 불발되었습니다!]

……

그가 자랑하던 권능들까지도.

“아버지에게 물어야만 해! 왜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인지! 왜 지옥 같은 굴레를 만들어 낸 것인지!”

고립무원(孤立無援).

그만큼 그를 제대로 가리킬 수 있는 단어가 어디에 있을까.

모든 것을 상실한 그에겐.

오로지 처연한 절망과 처절한 절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77층이 플레이어, 차연우의 신위로 가득 찹니다!]

콰직!

그러다 스퀴테가 광휘를 가르고 지나면서, 비바스바트의 오른쪽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죽음’이 플레이어, 비바스바트를 강제로 침투합니다!]

[죽음과 관련된 온갖 저주가 쏟아집니다.]

[‘병사(病死)’가 구현됩니다.]

[‘독사(毒死)’가 구현됩니다.]

[‘아사(餓死)’가 구현됩니다.]

[‘갈사(喝死)’가 구현됩니다.]

[‘형사(刑死)’가 구현됩니다.]

……

[플레이어, 비바스바트의 신화가 부서져 흘러내립니다!]

푸화악!

갈라진 가슴팍 위로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활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그동안 비바스바트를 구축하고 있던 신화였다. 절대자로서 살아오며 탄탄하게 쌓아 올렸던 업적들.

격을 복구한 스퀴테의 날은 아주 날카로워서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벤다. 당연히 신령을 구성하는 요소인 신화까지 ‘뜯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싯적 크로노스가 가이아의 저주를 겨우겨우 이겨 내면서 터득했던 권능, 〈참령(斬靈)의 인(刃)〉.

이것이 비바스바트의 영혼을 난도질하고, 거기다 온갖 죽음의 저주까지 더하면서 병을 주고, 독을 먹이며, 목을 타게 하고, 더위를 주입하여 몸이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었다.

[천마가 차마 싸움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립니다.]

“난……!”

촤촤촤-

연우는 스퀴테를 빠르게 휘몰아치면서 비바스바트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왼팔이 잘리며 위로 튀어 오르고, 오른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잘려 나갔다. 옆구리에 깊은 상처가 났으며, 어깨 살이 크게 도려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콸콸 쏟아지는 핏속에는 신화가 가득 섞여 있었다.

비바스바트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천마가 두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그러다 스퀴테가 우측 어깨에서부터 좌측 옆구리까지, 긴 선을 그리면서 미끄러졌다.

부서진 심장 위로 핏물과 활자가 더 어느 때보다 크게 튀어 떨어졌다. 그의 몸뚱이가 뒤로 무너졌다. 초점을 잃은 눈이 황망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 어야……!”

[천마가 양손으로 두 귀를 닫습니다.]

비바스바트가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그렇게까지 불러 대는 대도 천마는 여태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연우의 망막에는 떠오르던 천마와 관련된 메시지도 녀석의 눈에는 띄지 않는 듯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천마가 방해하지 않을 것은 확실한 듯했다.

연우는 왼손을 활짝 펼쳤다. 멍울이 맺히면서 드러난 톱니 이빨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탐욕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삼켜라.”

콰직!

톱니 이빨이 그대로 비바스바트의 부서진 심장에 틀어박혔다.

[권능, ‘하데스의 식령검’이 플레이어, 비바스바트에 대한 식령을 시도합니다!]

[천마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립니다.]

[칠흑왕이 대리전의 승리에 크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