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올포원 (6)
하 하 하
어디선가 그런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분명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울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연우는 그 메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재미나게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런 웃음소리를 내었을 것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77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신들이 충격적인 결과에 아무 말을 잇지 못합니다!]
[77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악마들이 곧 사라질 비바스바트의 영혼에 강한 흥미를 갖습니다!]
……
[비마질다라가 새로운 절대자의 탄생에 강한 호승심을 느낍니다.]
[케르눈노스가 여전히 당신의 배후를 노려봅니다.]
……
[모든 죽음의 신들이 왕이 세운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들이 왕이 닦은 위대한 신화에 찬탄합니다.]
수많은 반응들이 시시각각 쏟아졌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걸 도저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탑의 모든 신앙이 당신에게로 귀의합니다!]
가뜩이나 감당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신앙이 비바스바트를 완전히 꺾으면서 몇 배로 불어나 영혼 안쪽으로 꾸역꾸역 쏟아진 데다가.
비바스바트가 죽어 가면서 내뱉는 신화의 양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방대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비바스바트의 신화가 권능, ‘하데스의 식령검’이 온전히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합니다!]
[현자의 돌(오만·식탐·색욕)의 성질 중 ‘식탐’이 포기하지 않고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억지로 먹어치우고자 합니다.]
[신화의 양이 방대합니다.]
[신화의 양이 방대합니다.]
……
[현자의 돌(오만·식탐·색욕)이 ‘오만’의 성질을 드러내며 반발하는 비바스바트의 신화를 억누르고자 합니다.]
[‘오만’이 기승을 부립니다.]
[‘오만’이 기승을 부립니다.]
……
[현자의 돌(오만·식탐·색욕)이 ‘색욕’을 통해 비바스바트의 신화를 어떻게든 회유하고자 합니다.]
[비바스바트의 신화가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세상의 모든 용종을 죽이고, 수많은 신과 악마들을 홀로 감당하였던 철옹성이 쌓은 신화가 절대 적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자의 돌은 어떻게든 반발하는 비바스바트의 신화를 꺾고자 기승을 부렸다.
쿠쿠쿠쿠!
스테이지가 위아래로 떨렸다.
이것은 연우와 비바스바트가 벌이는 또 다른 싸움이었다.
그러다.
흐릿하던 비바스바트의 눈가에 살짝 초점이 잡혔다. 연우와 잠시간 눈이 마주쳤다.
한순간,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슬프면서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롭고 처연하기만 한 눈빛. 그것은 어쩐지 연우를 동정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너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결국 버림을 받고 말…….
장기판의 말에 불과한…….
제멋대로 튀어 오른 활자들이 그런 문장들을 만들어 내면서 연우의 눈앞으로 뱅글뱅글 맴돌았다.
비바스바트. 녀석은 대체 뭘 말 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녀석의 그런 눈빛은 오래 가지 못했다.
콰직!
파아아아-
전신으로 퍼져 나간 균열이 커지면서 몸이 가루가 되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현자의 돌(오만·식탐·색욕)이 반발하던 비바스바트의 신화를 억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오만’이 거드름을 피웁니다.]
[‘식욕’이 더 포악하게 날됩니다.]
[‘색욕’이 군침을 흘립니다.]
……
[식령이 가속화합니다!]
[소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시스템 오류.]
[시스템 오류.]
[더 이상 명령권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정지합니다.]
……
[명령권자의 상실로 인해 기존 운영 체제가 모두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대안점을 모색합니다.]
[신앙의 절대다수가 한 지점으로 향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새로운 운영 체제가 설치되었습니다.]
[당신은 바로 새로운 운영 체제의 주체이자, 명령권자, 그리고 화신입니다.]
……
[축하합니다! 새로운 올포원이 탄생하였습니다!]
시스템은 아무리 기능이 마비되거나 정지한다고 해도, 탑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화신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존재를 찾기 마련이었다.
시의 바다와 중앙 관리국이 올포원을 대체하려던 자리에 연우가 완전히 앉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탑에 있는 한, 비바스바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절대 지지 않는 막강한 권능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이제.
정말 모든 복수가 끝난 것이다.
그동안 그와 가족들을 계속 괴롭혀 오던 모든 굴레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동생을 다치게 한 적들도.
아버지를 떨어지게 만든 존재도.
더 이상 그들을 억제할 누구도 없었다.
여전히 탈각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시시각각 변해 가는 육체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해냈고, 끝냈다는 심정.
『고생 많았다.』
아버지 크로노스의 그런 한마디가 연우의 가슴에 더욱 무겁게 와 닿았다.
『올포원, 저 작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영 찝찝하긴 하다만. 이제는 그래도 마음 편하게 정우도, 며늘아기도, 세샤와도 함께 돌아갈……!』
하지만.
한시름 놓은 듯한 크로노스의 말은 도중에 끊어졌다.
촤르르륵!
연우는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잇달아 날아들면서 그의 몸뚱어리, 아니, 영혼에 강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찰칵.
찰칵.
육체가 무거워졌다.
영혼이 단단히 잠겼다.
실제 몸이 무거워지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어깨 위에 강제로 얹힌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시야를 포함한 인지 영역이, 그의 세계관이 수백 수천 배…… 아니, 어떻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한하게 확장되었다.
무언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종속되면서 탑의 모든 정보가 그에게로 쏟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까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들아, 이건.』
크로노스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예. 아직 전부 끝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연우는 마치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포원을 잡는 것이 이번 레이드의 목표이긴 했다지만, 사실 여기서 모든 게 이리 쉽게 끝나지 않으리란 짐작 정도는 하고 있었다.
천마의 아들이 죽었고, 칠흑왕이 깨어날 준비를 한다.
그런 상황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테지.
시의 바다와 하르모니아가 꾸미던 계획이 이대로 끝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칠흑왕의 야욕’이라는 첫 번째 시나리오 퀘스트가 무사히 완수되었다는 메시지가 여태 떠오르질 않고 있었다.
대신에.
띠링, 띠링!
[시나리오 퀘스트(칠흑왕의 야욕 I)에 이어 새로운 연계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 칠흑왕의 야욕 II]
설명: 천마에게 큰 상처를 입고, 배반자인 ‘낮’에 의해 공허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칠흑왕은 두 명의 후계자가 자신을 대신하여 천마의 혈육을 꺾은 것에 대해 아주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칠흑왕의 욕심은 절대 이걸로 그치지 않습니다. 천마의 혈육을 처치하고 절망에 빠진 그의 모습을 직접 보았으나,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은 반드시 천마가 가진 모든 것을 갈취하고 찬탈해야만 끝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더 많은 것을 빼앗고,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으십시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려는 위대한 칠흑왕에게 많은 유흥 거리를 제공하십시오.
달성 조건:
1. 탑은 천마가 만든 장소입니다. 더 많은 층계를 잠식하여 칠흑왕을 기리는 성전(聖殿)을 구축하십시오.
2. 천마의 혈육이 남긴 것들을 모두 쟁취하고, 칠흑왕의 공포를 다시금 98층의 존재들에게 단단히 각인시키십시오.
3. 더 많은 칠흑의 힘을 깨우십시오.
주의점: 파티 퀘스트입니다.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게 되니 유의해 주세요.
제한 조건: 칠흑왕의 분신, 칠흑왕의 후계자
제한 시간: -
보상:
1. ???
2. ???
참고 사항: 이미 칠흑왕의 후계자, ‘하르모니아’가 왕성하게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칠흑왕을 깨우기 위한 공양(供養)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칠흑왕을 깨우기 위한 번제(燔祭)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
[하르모니아와의 공헌도 차이가 벌어집니다!]
[하계를 잠식한 칠흑의 성질이 더 강화됩니다!]
[칠흑이 활성화됩니다.]
[천계로의 침식이 시작됩니다.]
[78층을 모두 잠식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역시.’
연우는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탑에 있는 모든 이들을 밖으로 내쫓길 잘했어.’
올포원 레이드를 시작하고 칠흑이 77층을 떠나 탑을 장악하려 할 때부터 왠지 느낌이 싸한 나머지 곧장 모두를 내쫓긴 했다지만.
이렇게나 빨리 칠흑왕이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르모니아가 바쁘게 움직였다는 것으로 봐야겠지.
칠흑이 활성화되면서 하계를 전부 잠식할 뿐만 아니라, 78층으로의 침투가 시작된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연우는 어렴풋이 하르모니아의 노림수를 알 것 같았다.
‘탑은 칠흑왕을 짓누르는 무게추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전부 이 때문이고……. 자신이 이것을 부수거나 뽑질 못하니, 아예 칠흑왕의 소유물로 바꿔 버릴 생각인 건가?’
하르모니아는 외부에서 공양과 번제를 통해 더 많은 칠흑을 위로 뽑아 올리고, 연우는 내부에서 시스템을 장악하여 점차 칠흑을 각인시키며 위로 올라간다면.
그리하여 98층에 갇혀 있는 신과 악마들을 모조리 집어삼킨다면?
[98층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신들이 잠식을 시작하는 칠흑을 보며 공포에 휩싸입니다!]
[98층에 거주하는 소수의 신들이 칠흑을 경계하기 위해 대책을 세우고자 합니다!]
[98층에 거주하는 모든 악마들이 칠흑에게 강한 적개심을 세웁니다!]
……
[‘말라흐’의 서기장, 메타트론이 ‘밤(닉스)’의 활개에 대해 강한 우려심을 표합니다.]
[‘르 인페르날’의 수좌, 바알이 ‘낮(에로스)’과 ‘밤(닉스)’의 새로운 대립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합니다.]
그것은 ‘밤’과 관련된 타계의 존재들을 불러, 겨우 완성되려는 우주 창생을 꺾어 버리는 크나큰 재앙이 될지도 몰랐다.
이것이 바로 언젠가 계시록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는 종말(終末)을 의미할 테지.
[칠흑왕은 두 후계자 중에서도 분신으로 점찍은 당신의 존재에 대해 아주 만족해합니다.]
[또 다른 ‘꿈’에서 보았던 당신의 활약에 대해 많은 관심과 흥미를 보입니다.]
[이번 ‘꿈’에서 당신이 더 많은 활약상을 보여 줄 것을 기대합니다.]
[더 많은 세례를 내립니다.]
[더 많은 은총을 내립니다.]
……
[수용할 수 있는 칠흑의 한계량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그 순간.
연우는 자신과 연결된, 아니, 그를 강제로 속박한 무형의 물질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찰그락, 찰그락-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그의 팔을 감싸고 있는 쇠사슬과 아주 많이 닮아 보였다. 양팔은 물론 다리며 몸뚱이, 목까지 전부 휘감은 채, 마구 엉킨 거미줄처럼 아무렇게나 허공 곳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칠흑왕은 분신이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우는 그런 메시지를 보면서.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플레이어, 차연우가 자신을 총애하는 본신(本身)을 우러러 올려다봅니다.]
[칠흑왕이 자신의 분신이 몸소 하려는 말에 관심을 보입니다.]
[또 다른 후계자, 하르모니아가 처음 보게 된 칠흑왕의 모습에 크게 놀라워합니다.]
……
[플레이어 차연우가 본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 좆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