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올포원 (8)
있을 재(在), 물이 흐를 원(源).
흐르는 곳에 있는 사람.
손재원.
그것이 나의 이름이었다.
* * *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여러 답변을 내놓을 터였다.
가장 멋있는 사람, 등이 넓은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부끄러움이 많지만 티를 내지 않는 사람…….
하지만 손재원은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영웅.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를 볼 때마다 항상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등을 가지고, 무엇이든 척척해 내는 슈퍼맨이었으니까.
……뭐,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참 멋있었다.
그 때문일까? 손재원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유독 아빠의 뒤를 따라다니곤 했다.
“에휴! 그래. 남자만 득실대는 이 집에서 이 엄마는 아주 왕따지, 왕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무렵부터는 늘 어머니의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아야 했지
“어, 어, 엄마. 그게 아니고…….”
“됐거든?”
“진짜 그게 아닌데. 힝.”
사실 그건 아들의 순진한 반응이 귀여운 나머지 부러 얄궂게 드러내는 어머니의 작은 질투에 가까웠지만.
여하튼.
손재원은 외동아들로서, 부모님의 사랑을 한가득 받으면서 자랐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크게 없는,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상 어디에서나 쉽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정이었다.
* * *
손재원이 일반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여섯 살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재원은 자신이 또래 아이들과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다.
몸이 허약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기를 좋아하고, 좁은 방에서 공부하기보다는 밖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저녁밥을 얻어먹거나, 그 전에 어머니에게 뒷덜미를 붙잡혀 돌아오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손재원은 그런 것들이 지겨워졌다.
아니, 유치하게 느껴졌다는 표현이 옳았다. 아이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것처럼.
그냥 갑자기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놀이터에서는 더 이상 정글짐을 오르거나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으며, 밖에서 놀던 것도 멈추고 방에 틀어박혀 책만 골똘히 볼 뿐이었다.
한글을 전부 다 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본 건 백과사전에서부터 부모님의 전공 서적까지 다양했다. 친구들이 놀자면서 집까지 찾아와도 바쁘다면서 내쫓게 되었다.
만사에 시큰둥해지고,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당연히 손재원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손재원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홀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부턴가 얼굴에서 웃음기도 사라져 인형처럼 딱딱해지고 말았다.
“지능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웩슬러 평가로도 이 정도면 상위 0.1%에 들어갈 테고…… 반면에 감성 지수는 아주 낮은 편에 속해 있군요.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정신 연령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감각이 많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애타는 마음에 손재원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다른 이상점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대로 계속 두시는 게 좋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를 많이 개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면 항상 방긋 웃는다는 점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손재원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했다.
맞벌이라 둘 다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아이가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보통 부모라면 아이가 ‘영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많은 공부를 시키려 했을 테지만, 두 사람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 투였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손재원은 어느 정도 ‘평범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 * *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손재원은 여느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창 사춘기로 부모님과 갈등이 심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화목한 집안 환경 덕분인지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웃음이 많고.
비록 친구를 많이 사귀지도, 영재였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더 이상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도, 그만큼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아이였다.
그렇기에 그날도 평상시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신 어머니가 차려 준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차를 빌려 타 등교하는 일상.
다른 반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어차피 늘 있던 일이라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도 없는 아침 교실에서 한적하게 독서하기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원래는 많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다니는 공간이지만, 홀로 있을 때면 그 넓은 공간을 자신이 혼자서 차지한 듯한 묘한 쾌감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하지만 그날은 그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반 친구가 있었다.
키도 작고 왜소한 아이.
덩치도 작고, 언제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친구들도 잘 사귀지 않던 아이. 손재원도 반에서 겉도는 위치에 가까웠지만, 그보다 훨씬 심한 친구였다. 듣기로는 가정 환경이 불우하다던가.
하지만 애당초 손재원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었고, 그 친구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가정환경이 불우하건 말건,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소중한 시간을 오늘은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
“안녕?”
그때,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아무도 없던 교실에서 홀로 있다 말고 이른 시간에 인기척이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았는데…… 평상시보다 더 그늘이 진 얼굴은 손재원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손재원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다 말고 도중에 거둬들여야만 했다.
‘와. 저렇게 노골적으로 피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상처 입는데.’
손재원은 가장 뒤편 구석진 곳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투덜거렸다. 먼저 와 있던 친구는 저만치 앞에 있어서 등만 보였다.
‘그런데 저 정도면…… 예쁜 편인 거지? 몰래 훔쳐보는 놈들도 있던 것 같던데. 뭐, 그래도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손재원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어폰을 귀에다 걸었다. 어차피 상처를 입은 척한 것도 자신 만의 가벼운 여흥일 뿐. 책을 펼친 그에겐 어느새 먼저 온 친구에 대한 생각이 잊힌 지 오래였다.
그 때문일까.
손재원은 친구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 * *
민채영.
그런 이름인 것 같았다.
사실 굳이 알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 뒤로, 등교를 할 때마다 그 아이를 똑같이 만나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외워지게 되었다.
가슴팍에 매달린 명찰을 그렇게 보고도 외우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가 아니라 그냥 어디 지능이 모자란 거겠지.
손재원은 당장 전교에서 중위권밖에 되지 않는 성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어렸을 때 영재 판정을 받았던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그걸 자랑할 만한 친구 같은 건 없었지만.
여하튼.
손재원은 매일 아침 민채영과 만날 때마다 가볍게 ‘안녕?’이라고 하거나 눈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럴 때면 항상 민채영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아래로 내리까는 등 인사를 제대로 받아 주지 않았지만.
‘안 받아 주면, 받아 줄 때까지 하면 되지.’
손재원으로서는 언제부턴가 내심 오기가 들었다. 어떻게든 민채영의 인사를 받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계속해서 인사를 건넸다.
민채영도 처음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런 인사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석 달쯤 되니 더 이상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던지 눈짓으로나마 인사를 받아 주는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에게서 ‘안녕?’이라는 인사말까지는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으니, 손재원도 언젠가는 그녀가 인사말을 꺼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처음 ‘텅 빈 아침 교실’을 빼앗긴 것 같다는 생각도, 언제부턴가 ‘민채영이 있지만 비어 있는 교실’로 점차 인식되면서 그냥저냥 익숙해질 수 있었다.
“…….”
“…….”
아무도 등교하지 않는 아침 7시.
한기만이 감도는 학교에서 1-7반만 유일하게 두 학생의 온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민채영은 이제 처음보다 더 높이 고개를 들어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손재원을 훔쳐보았다.
* * *
‘오늘은 보이지 않네? 어디 갔나?’
손재원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민채영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혹시 화장실이라도 간 걸까 싶어 책상을 살폈지만, 온 흔적이 전혀 없었다.
처음 민채영이 아침 교실을 빼앗았을(?) 때, 어떻게든 그녀보다 먼저 등교를 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실패했던 손재원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 오늘은 늦잠을 잔 거겠지.’
사실 따지고 보면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등교하는 손재원이 나 민채영이 아주 이상했던 거였다.
그러니 하루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손재원도 사실 늦잠을 자서 평소보다 늦었던 때가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꼭 있었으니까.
손재원은 민채영에 있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만에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으려니까 좀 심심한데.’
손재원은 책을 펼치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민채영이 있던 자리와 교실 입구 쪽을 번갈아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독서에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의 아침 일상에는 어느새 민채영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 * *
하지만 민채영은 그날 등교를 아예 하지 않았다. 무단결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날이 이어졌다.
아침마다 보이지 않았고, 등교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손재원으로서도 내심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진들이 등교를 하지 않아도, 왕따가 경찰서에다 학교 폭력을 신고해도. 학교에 아무리 큼직한 사건이 일어나도 별반 관심이 없던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민채영은 그냥 관심을 끄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민채영의 짝꿍이나 주변에 앉은 친구들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어보았고.
“채영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뭐, 집에 일이라도 있나 보지.”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전부 ‘모른다’가 전부였다.
다들 민채영의 연락처나 주소를 몰랐고,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제법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 어두워서 가까이 가기 어려운 아이. 그게 반 내에서 민채영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즈음.
“오늘 채영이는 완전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도록.”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그게 전부였다.
애당초 학생들에게 별다른 정을 붙이질 않아, 그다지 인기가 없는 선생님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손재원으로서도 도무지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 개인 사정이라는 것밖에는.”
담임 선생님은 아주 짤막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분명히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절대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거기서 손재원은 싸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직감적으로 오한이 등골을 타고 흘렀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뭐……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것일 뿐이니까.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
손재원은 솟아오른 불안감을 억지로 삭였다. 여태껏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자신이 갑자기 나서는 것도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아침마다 얼굴을 마주했다지만, 그래도 여태껏 나눈 대화는 다 합쳐도 열 마디를 넘지 않을 아이. 굳이 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사이였다.
단순한 클래스 메이트. 그게 전부였다. 아니, 그게 전부라고 딱 잘라 생각했다. 굳이 캐내서 얻을 것도 없었다.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전학 간 그녀가 다시 학교를 다닐 리도 없는 데다가, 설사 그런다고 해도 어차피 아침에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전부일 테니까.
그래서 손재원은 그냥 머릿속에서 민채영에 대한 생각을 모두 꺼 두었다.
웬 이상한 소문을 듣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