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올포원 (9)
분명히 이름은 재원(在源)이었지만.
한사코.
나는 어디에도 있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 * *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엄마도 보셨다던데…… 거기 경찰이며 구급차에 사람들까지 엄청 모여서 시끄러웠다고 그러더라.”
손재원은 항상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듣더라도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릴 뿐.
그래서 반 친구들이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떠들어 댄다고 해도, 그것을 흘려들을 때가 많았다.
어떻게 듣는다고 해도, ‘별일도 다 있네’ 같은 가벼운 감흥만 보이고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만큼은 반 친구들의 대화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래도 좀 안됐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살이라니…….”
“부모 잘못 만난 탓이지, 뭐.”
자살.
그 말을 들은 순간.
손재원은 이때껏 소란스럽던 주변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기이한 현상을 맛봐야만 했다.
오로지, 저 멀리 있는 두 여학생의 말만 계속 들렸다.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아주 또렷하게.
“근데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솔직히 걔가 좀…… 그랬어. 말도 없고. 말을 걸어도 시선 피하기 일쑤고. 얼굴도 항상 음침해 있었잖아? 그렇게 그늘져 있는데 누가 그런 걸 좋아하겠냐구. 게다가 마지막에는 그렇게 해 버려서 동네도 시끄러워지고. 엄마도 집값이 떨어진다고…….”
그렇게나 잘 들렸던 대화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저 그 말 속에 담긴 가벼운 웃음소리나 어투만이 계속 밟힐 뿐이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말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뉘앙스가.
곳곳에 담긴 조소가.
혐오감이.
조롱이.
하대가.
그저 전부 거슬리기만 했다.
쾅!
손재원은 책상을 거세게 내려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모든 반 아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웬만해서는 이렇다 할 반응도 하지 않을 테지만, 워낙에 소리가 컸던 터라 모두 화들짝 놀라 반응했던 것이다.
더구나 민채영만큼이나 조용하던 손재원이 갑자기 미친놈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하지만 손재원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무시하고 그냥 교실을 나서 버렸다.
다른 학생들은 저놈이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바라봤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들끼리의 대화로 돌아가고 말았다.
거기 어디에도.
민채영과 관련된 화제는 없었다.
* * *
손재원은 자신이 어째서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슴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고, 정신을 차려 보니 책상을 내려치면서 일어나 교실을 나와 버렸다는 것만 뒤늦게 깨달았을 뿐.
언제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또 판단하고자 했던 손재원으로서는 전혀 낯설기만 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손재원은 그런 감정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거기에 가만히 자신이 휘둘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이 영 이상하기만 했지만, 어쩐지 지금은 이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손재원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1층, 교무실이었다.
“채영이의 집 주소? 그걸 네가 왜 알고 싶어 하는 거냐?”
담임 선생님은 영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손재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자신의 학생을, 단순히 호기심만 가지고서 접근하려는 못난 놈들로부터 보호하려는 교사로서의 의무감 내지 사명감 같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저 귀찮음이었다.
혹시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서, 손재원이 그것으로 소란스러운 일이라도 빚어낼까 싶어 경계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학생의 불우한 가정 환경에 대해서 사전에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못했다고 여기저기서 질타를 듣고 있는 판국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못 가르쳐 주니까 돌아가라.”
그렇기에 담임은 학생의 신상 정보는 누출되어서는 안 되는 비밀 사항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손재원을 내쫓으려 했다.
아니, 노골적으로 그를 의심하는 눈빛을 띠기도 했다. 혹시 네가 이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니냐는 듯한.
그 때문에 손재원은 더 크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원래 담임이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거나 떼를 써 봤자, 자신만 바보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손재원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일을 쉽게 해결해 줄 방법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 승제 어머니한테서 운동회 날에 촌지 받으셨었죠?”
무덤덤한 말투.
하지만 교무실에 있던 다른 교사들이 듣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당연히 담임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310만 원. 어떤 대화였는지 기억까지 나는데. 시험 문제…….”
“채, 채영이 집 주소 알려 달랬지? 잠시만 기다려라. 명부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허겁지겁 움직이는 담임을 보면서 손재원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디에서나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멍청한 아저씨들이 문제였다.
* * *
“여기구나.”
손재원은 그 길로 야자도 땡땡이친 채 곧장 담임이 가르쳐 준 주소지로 향했다.
위장 전입이라도 했던 건지, 학생 명부에 기록된 주소와 실제 주소에는 차이가 있었다. 버스로 한참이나 가서, 정류장에서도 한참 언덕을 올라간 뒤에야 나오는 곳.
주공 아파트였다. 그것도 최소한 몇십 년은 되었을 것 같은.
손재원으로서도 TV에서나 봤을 뿐, 실제로 이런 곳은 처음 봤기 때문에 속으로 적잖게 놀란 상태였지만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아니, 않으려 했다.
한쪽 구석에 쳐진 노란색의 폴리스 라인과 아스팔트 바닥에 그려진 흰 선이 아니었다면.
“…….”
손재원은 그 앞에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 * *
한 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손재원은 주공 단지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눈여겨보면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조금씩 훔쳐 들었다.
조사를 하는 듯한 티가 조금이라도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수상쩍은 기색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다행히 어젯밤에 있었던 자살 사건 때문에 동네 분위기는 아주 흉흉한 편이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을 알아채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난 후.
손재원은 인근에 있던 놀이터로 들어가 그네에 털썩 주저앉았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회오리쳤다.
-아비란 작자가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들어와서는 행패란 행패를 그렇게 부려 대더니…….
-듣기로는 친부도 아니었다면서?
-친모가 데리고 덜컥 결혼했다가, 남편 술주정이 심하니까 딸내미만 두고 도망쳤었다잖어.
-얼굴도 예쁘장했었는데. 차라리 좀 더 버티다가 도망이라도 치지. 몹쓸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더만.
-죽은 애만 불쌍한 거지, 쯧!
“…….”
그 외에도 여러 말들이도 있었지만.
민채영을 가리키는 말은 대부분 하나였다.
불쌍하다.
혹은 박복하다.
그렇기에 손재원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앉아 있는 내내 여러 장면들이 계속 눈가를 스쳐 지났기 때문이었다.
일곱 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학교에 와서 엎드려 있던 모습. 자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모습. 인사를 건넬 때면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모습이 떠오르고, 배고프면 밥이나 같이 먹자고 햄버거를 건넸을 때 말없이 받아서 야금야금 먹던 모습도 떠올랐다.
책을 읽던 중에 자신을 몰래 힐끔힐끔 훔쳐보던 것도 알고 있었지만, 여태 모른 척하고 있었기에 그런 모습도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손재원을 미치게 하는 것은 하나하나가 전부 선명하게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그전에는 잘 떠오르지도 않던 것이, 지금은 왜 이리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만 한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만큼 그런 재능이 저주스러운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만약 그때 내가 채영이를 찾았더라면.’
한창 민채영이 등교를 하지 않았을 때. 이상한 직감을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직감에 따랐었더라면 그녀를 구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때가 가장 민채영이 힘들어했을 시기였었으니까.
그때, 민채영은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도망칠 곳이 없는 그녀에게 있어 학교는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식처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안식처로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암담한 심정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테지.
“하아.”
손재원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날씨가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손재원의 마음도 한없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전부 미쳤어.’
여러 복잡한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랬다.
이 세상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열일곱. 앳된 나이에 불과한 여고생이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거기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동정하기는커녕 조롱하거나 유희거리로 일삼고 있었다.
그녀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당시, 만약 동네 사람들이 그 집을 한번 들여다보기라도 했더라면.
가정 환경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었을 담임 선생님이 그녀가 계속해서 결석하던 때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두었었더라면.
짝꿍이며 반 친구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었더라면.
손재원,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와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했었더라면…….
결국.
모두가 피의자였다.
그것이 너무 추하고도 역겨워서 헛구역질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저 평상시처럼 무관심했을 뿐이고.
담임 선생님은 귀찮은 일에 말리기 싫었을 뿐이며.
친구들은 민채영은 친구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고.
재원, 자신은 일상을 지극히 너무 당연하다고만 여겼을 뿐이었으니까.
누구에게 콕 집어 책임을 묻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혀 용서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람이 엄청 차네.”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면서.
손재원은 등교할 때 어머니가 환절기라 춥다면서 억지로 입히셨던 폴라티의 옷깃을 끌어 올렸다.
입가부터 눈 밑까지, 얼굴이 깊숙하게 가려졌다.
* * *
깜깜한 새벽.
다 꺼져 가는 전등만이 겨우 앞길을 비추는 골목길 쪽으로, 한 중년인이 술에 잔뜩 취한 채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 씨. 그년이 죽은 게 왜 나 때문이냐고! 지가 혼자서 생지랄에 쇼를 다 하다가 알아서 꼴까닥한 건데, 왜 나한테 따지는 거냐고! 막말로 친딸도 아닌 거, 엄마도 없는 거, 내가 여태 잘 키웠으면 나라에서 포상이라도 못 줄 망정!”
대체 요 며칠간 경찰서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인지.
지금은 아예 거의 하루를 넘게 억류되어 있어야만 했다.
비록 조사에서 혐의나 증거가 발견된 게 없어서 무사히 풀려나긴 했지만, 그래도 은혜도 모르고 뒈져 버린 계집아이 때문에 자신만 누명을 홀랑 뒤집어쓴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기분이라도 조금 풀 겸 해서 간만에 거나하게 취했다. 경찰 쪽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니 치료가 필요하니 뭐라고 떠들어 댔지만, 그깟 우매한 놈들이 자신의 깊은 생각을 알 턱이 없었다.
세상이 전부 미쳤다. 나를 알아 주는 연놈 하나 없다. 그런 불만 섞인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도중에 무언가가 얼굴에 툭 하고 부딪쳤다.
“……응? 넌 뭐야, 인마? 왜 여기서 길을 가로막고 서 있어? 너도 지금 나 무시하……!”
“민채영 아버지, 고현. 맞지?”
중년인은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 있는 녀석을 잔뜩 노려보다가, 순간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분명 어둠이 짙게 깔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언뜻 사나운 눈매가 이쪽을 보며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죽은 아이가 어렸을 적, 친모의 성화를 못 이겨서 억지로 동물원에 갔을 때에 멀리서 봤던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눈매였다.
“너, 넌 뭐……!”
“맞네. 그놈.”
나지막하게 깔리는 목소리와 함께.
퍽!
순간, 강한 충격을 느낄 새도 없이 중년인의 의식이 아래로 움푹 꺼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칠흑왕이 이번 ‘꿈’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