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90화 (690/862)

15화. 올포원 (11)

천마(天魔).

혹은 명왕(明王).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상반된 이름을 지닌 존재.

그것이 아버지라 하였다.

* * *

“너지?”

존경하던 아버지가 손재원에게 다짜고짜 이상한 질문을 던졌던 건, ‘그 일’을 결심하고 난 뒤 석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손재원은 평상시처럼 학교가 끝나고 난 뒤에 곧장 귀가를 한 것‘처럼’ 행동했고, 텔레비전 앞에 부모님과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떨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헤드라인은 온통 최근 들어 전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히어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 판정을 받은 아동 성폭행범, 폐수를 방류해 한 마을을 통째로 암 발병 장소로 만들었지만 보석을 신청하여 가석방된 공장장, 살인교사 의심을 받고 있지만 면책 특권을 내세운 국회의원 등, 사회에 커다란 분란을 일으켰지만 정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은 채로 있다가 피살당한 죄인의 수는 벌써 스무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나흘에 하루꼴로 사람이 한 명씩 죽어 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손재원으로서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는 습관을 들여 놨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뉴스에 집중하지 않고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불쑥 손재원을 보면서 그렇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무뚝뚝한 아들을 골탕 먹이기 좋아하는 철없는 여느 아버지의 모습처럼. 대수롭지 않은 듯, 아주 장난스럽게.

하지만 손재원은 등골이 오싹하게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 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손재원은 놀란 속내와는 다르게 전혀 내색하지 않고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그런 장난을 치는 것이냐는 투로.

“정말 아니냐?”

그러나 되돌아오는 아버지의 웃음 위로 드러난 눈은 아주 깊기만 했다.

“…….”

“…….”

결국 손재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돌연 조용하게 가라앉자, 어머니는 과일을 깎다 말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등짝을 휘갈겼다.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공부해야 하는 애한테!”

짜악!

“아아악! 아프다고, 마누라!”

방금 전까지 눈빛만으로 손재원을 압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호들갑 떠는 아버지만이 남았다.

“아프라고 한 거거든? 이 화상아!”

짜아악!

“아, 진짜 아파! 진짜 옛날에 그 순하고 착하기만 하던 서은영은 어디로 갔……!”

“그 서은영,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거거든?”

어머니는 그것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쉬지 않고 아버지의 등을 휘갈겼다. 아버지는 제자리에서 몇 번이고 펄쩍펄쩍 뛰어야만 했다.

하지만.

“…….”

그런 아버지를 보는 손재원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아버지는 대체 무얼 하시는 걸까?’

이튿날 아침. 손재원은 등교도 하지 않고, 후드를 푹 눌러쓴 채로 아파트 골목길에 숨어 아버지가 출근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섬뜩한 아버지의 말이 있고 난 후, 손재원은 밤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그동안 철두철미하게 움직이고,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해 왔다.

실제로 수만 명이나 되는 경찰이 움직이고, 검찰이며 프로파일러라는 전문가들이 수도 없이 떠들어 댔지만, 소위 ‘히어로’의 그림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언론은 그것을 두고 숨바꼭질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손재원은 그 말이 꽤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사회와 대중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신상을 철저하게 가면 속에 숨기면서 움직이는 것은, 이렇게 해야만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스스로가 사회의 영웅이라고 착각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손재원은 그런 것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언제나 히어로가 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과거 피살자들에 의해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던 이들이 기뻐하는 인터뷰를 봤을 때는 또 다른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더군다나 다수의 여론은 법이 제대로 판단 내리지 못한 악인들을 해결해 주는 정의의 사도라고 그를 추앙하고 있는 상태.

손재원은 냉정하게 스스로를 두고, ‘인기’에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 휩쓸려 판단이 흐려진다거나 하는 우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렇게 철저하게 현실과 이상을 구분 지으면서 살고 있다고 자신만만해하고 있던 중에 아버지에게서 그런 의심을 받았으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체 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손재원은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쾌활하고 자상하시면서, 아주 바쁜 와중에도 가정적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외근을 나갈 때에는 어디에 계시는지, 때때로 던지시는 날카로운 통찰력 등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무관심한 사춘기 아들의 전형이었던 셈이었지만.

손재원은 이참에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낼 심산으로 뒤를 밟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체 아버지께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아셨는지, 그 경로까지 알아낼 생각이기도 했다.

‘나가신다.’

그러다 손재원은 아버지가 마침 아파트 공동 현관에서 나오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행여 아버지에게 들킬까 싶어 후드를 다시 깊게 눌러쓰면서 골목 안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다.

그런데.

‘……웃으시잖아?’

무언가 재미난 일이라도 있는 건지, 아버지가 실실 웃으시더니 손재원이 있는 곳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자가용이 없으니 어딘가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셔야 할 텐데. 문제는 저 방향에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혹시 택시라도 타시려는 걸까? 손재원은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로 아버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아버지를 따라 꺾은 골목에서 막다른 길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어디로 가신 거지……?”

손재원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 * *

손재원은 틈만 나면 아버지의 뒤를 쫓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웃는 낯으로 공동 현관을 나섰고, 똑같이 막다른 골목에서 사라지셨다. 아버지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손재원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거, 아버지가 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거야.’

그리고 뒤늦게 손재원은 이것이 아버지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길에 오르기 전에 항상 짓는 웃음은 장난의 시작을 의미하는 일종의 신호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숨바꼭질이었다.

그래서 손재원은 더 악착같이 아버지의 뒤를 캐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쫓고 있단 사실이 들키긴 했다지만, 오기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손재원이 맞닥뜨린 건, 예의 똑같은 그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만큼 답답한 심정도 계속 쌓이던 중. 그는 뒤늦게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이쪽 벽에는 항상 이상한 재 같은 게 남아 있잖아? 이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마치 낙엽이라도 모아 태운 것처럼 수북하게 쌓인 재. 그동안은 별것 아니라 여겨 그냥 무시해 왔지만, 이게 다른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서 손재원은 허리를 숙여 재를 손으로 매만져 보았고.

‘……어?’

시야가 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 * *

“@$&^%$&*……?”

시끄럽다.

어지럽다.

손재원은 심한 멀미라도 한 것처럼 메슥거리는 속을 겨우 누르면서 억지로 눈을 떴다.

그리고 보인 것은.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외국인들이었다.

대가족이라도 되는 건지, 늙은 부부와 그들을 닮은 여섯 명의 아이들은 자꾸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대체 뭐라는 거야……?”

손재원은 그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지만, 한창 언어에 관심이 많을 적 공부를 해 둔 게 있어 대충이나마 구사할 줄 아는 언어가 아홉 개 나 되었다.

그 외에도 이래저래 들어 둔 게 많은 편이었는데. 이들, 외국인 가족들이 하는 말은 이해는커녕 어디 쪽 언어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염색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천연 적록색의 머리칼과 녹옥 빛 눈동자는 도통 지구인의 것처럼 보이질 않아 섬뜩한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서는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않은 건지, 얼굴에 땟국물이 가득하고 주름이며 검버섯도 울긋불긋했다.

손재원은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자신이 있는 곳이 대체 어딘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여행객들이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우연히 구한 것인지, 아니면 납치라도 당한 건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대체 어떻게 된 건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손재원은 곧 살아온 이래 가장 크게 당황해야만 했다.

“이게, 뭐야……?”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마치 마구간이나 돼지우리처럼 결코 집이라 생각하기 힘든 장소였고. 유리도 없이 뻥 뚫려 있는 창 너머로 보이는 곳은 온통 핏빛으로 가득한 하늘이었다.

* * *

‘난…… 지구가 아닌 곳에 왔다.’

손재원이 이상한 외국인(?) 가족들에게 구해진 지 꼬박 한 달이 흐른 날.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젠장! 무슨 양판소도 아니고, 갑자기 이세계가 뭐냐고!’

그로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쫓고자 했을 뿐인데, 갑자기 말도 통하지 않는 별 이상한 장소에 떨어진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겔’이라고 이름을 밝힌 아저씨와 그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쪽의 언어와 풍습을 배우면서 여기가 지구와 전혀 다른 장소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모든 게 현대 지구와 달랐다.

귀족이 존재하고, 왕이 땅을 다스렸다. 마치 과거의 중세 시대라도 보는 듯한 신분제 사회. 단순히 이런 점만 본다면 과거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와 큰 차이가 있었다.

신이 존재했다.

단순한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실존했던 것이다.

신이라니!

신. 神. God.

모든 신비를 관장하고 이적을 실현한다는 존재는 정해진 시기마다 모습을 드러내어 위엄을 보이고, 공물을 받아 간다고 했다.

그동안 인간들이 머무는 대지를 수호하고, 경작한 농작물이 재해를 입지 않도록 축복을 내리며, 문명이 번성할 수 있도록 가호를 내어 준 대가라던가?

신이란 존재들이 어떻게 대가를 바라고 그런 일들을 꾸밀 수 있는지 손재원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지만.

곧 그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겠거니 하고 생각하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신이란, 비정상적인 힘을 가진 돌연변이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손재원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아버지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는 건지,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 하시는 건지였다.

‘확실해.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야. 무언가를 내게 보여 주려고 이런 게 틀림없어. 하지만 대체 뭘 생각하고 계시는 거지?’

이미 손재원은 아버지를 상식 외의 존재로 상정해 두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아버지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와 관련된 무언가일 수도 있었고.

그래서 손재원은 겔과 그의 가족들을 통해 신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지만.

“안 된다. 그건 불경(不敬). 신의 존재는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신성한 것. 그랬다간 신앙이 제대로 모이지 않는다며, 신께서 천벌을 내리신다.”

겔은 혹여 하늘에서부터 벼락이라도 떨어질까 봐 덜덜 떨면서 손재원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대체 이곳의 신들은 얼마나 인성이 빻았길래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신에 대해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듯하니, 결국 손재원으로서는 신이 직접 공물을 수거해 간다고 하는 제사일(祭祀日)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손재원은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만 했다.

“뭐? 이번 공물이 ‘씰’이라고?”

갑자기 겔의 가족들이 비통에 젖자, 무슨 일인가 싶어 이유를 물었다가 그런 대답을 듣고 말았던 것이다.

순간 손재원은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사 중에서도, 아주 미개했던 오랜 옛날에 벌어진 제사 방식을 떠올려만 했다.

인신 공양(人身供養).

아무래도. 이 세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쳐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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