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지구 (9)
토마스 리.
그는 수하들, ‘헬 하운드’의 공격대와 함께 망원경을 통해 방금 전에 공략지로 분류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강남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돈이 썩을 정도로 많은 어느 부호의 마당 딸린 단독주택으로만 보였지만.
사실 저곳은 여느 S급 언클로징 게이트에 못지않은 위험성을 내포한 장소였다.
어쩌면 오늘, 남미에서 발발한 초유의 사태, ‘아수라장(阿修羅場)’에 버금가는 재해가 한국에 벌어질지도 몰랐다.
때문에 현재 주변 일대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소개(疏開)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이나 항의 같은 것들은 전부 묵살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들을 탱크와 같은 기갑 부대들이 도로를 따라 올라와 채우면서 촘촘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었고.
‘작전’이 개시되었다는 말이 들리면, 대기 중인 항공 부대도 곧장 움직일 터였다.
이 모든 게 한 명의 언터처블을 잡으려는 헬 하운드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된 것들이었다.
‘한국을 도망치듯이 나왔던 내가 이런 위치에까지 오르다니. 후후. 이걸 두고 금의환향이라고 해야 할지, 매국이라고 해야 할지.’
토마스 리는 젊은 시절, 실수로 사업에 실패하고 빚을 잔뜩 진 채로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때가 떠올라 저절로 감개무량해졌다.
그때는 혹시 채무자들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야반도주를 해야 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숨어 다녀야만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건, 바로 10년 전의 ‘시작의 날’ 덕분이었다.
‘모든 게 달라졌지. 당시의 일 때문에.’
게이트 때문에 가족과 재산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들이 많은 반면.
반대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한몫을 단단히 거머쥐어 인생역전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토마스 리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 까닭에 행방불명자도 많았고, 덕분에 그들의 신분을 몰래 사들이는 것도 쉬웠다.
그 덕분에 그는 ‘이선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토마스 리’라는 그럴듯한 재미 교포 3세로 신분 세탁을 마칠 수 있었으니.
거기다 뛰어난 각성 자질까지 보유하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내면서,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달라지게 되었다.
조슈아의 눈에 띄었고, 그는 토마스 리가 불법 체류자인 것을 알면서도 합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올림포스의 대신격, 아레스의 사도가 될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기도 했으니……!
조슈아가 모시는 아테나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아레스 역시 손꼽히는 전쟁의 신.
그의 기상과 전력을 고스란히 전수하는 것만으로도, 토마스 리는 이미 SSS급으로 분류되기에 충분했다.
시작의 날이 열린 이후, 모든 계급 체계가 뒤바뀌어 버린 세계에서 단숨에 최상위 귀족으로까지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토마스 리가 조슈아의 충실한 ‘개’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개의 개라. 그것도 참 우스운 단어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생활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무엇을 못 할까?’
충견의 충견은 지금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언터처블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공략을 해야 한다지만.
사실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그로, 딜, 힐러, 버퍼…… 전부 부족할 게 없으니까.’
헬 하운드는 협회 산하의 전문 ‘사냥꾼’ 집단이었다.
한번 설정한 목표를 절대 물고 놓치지 않는 사냥개들.
그리고 그런 목표는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실제로 몇 번씩 비밀리에 임무를 완수해서 협회와 적대적이던 S급 플레이어들을 사고사로 위장해 보기도 했었고, 얼마 전에는 최초로 탈각을 이뤘다고 알려졌던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고한 척 굴다가 붙잡혔을 때에 짓던 굴욕적인 모습은…… 후후!’
원래대로라면 반신(半神)을 잡는 것은 헬 하운드 전원의 목숨을 걸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수준이었지만, 얼마 전에 그들이 벼려 낸 새로운 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토마스 리는 이번 공략도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올림포스도 있고.’
태생이 반골인 토마스 리가 협회에 계속 붙어 있고, 조슈아에게 10여 년 동안 충성을 지속하는 또 다른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느 세력을 가져다 놓아도 그들의 힘을 절대 거스를 수 없으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이 배후로 있다는데, 그것도 사회가 통째로 지켜 준다는데 어느 집단이 협회를 거스를 수 있을 것인가!
토마스 리는 앞으로도 협회를 뒷배로 두고서 ‘교정’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보다도 못한 약자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그들의 일그러진 낯을 보는 맛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이건 중독되어서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마약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여기 있는 언터처블은 또 얼마나 오만하고, 붙잡혔을 때의 표정은 얼마나 일그러질지 벌써부터 궁금하군. 후후후!’
치직, 치지직!
그때, 토마스 리의 옆구리에 꽂아 두었던 교신기가 노이즈를 내면서 목소리를 뱉어 냈다.
[작전, 시작합니다.]
[승인한다.]
[1진, 투입됩니다.]
토마스 리의 허락이 떨어지자, 공략지의 근방에 있던 버퍼 군단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대로라면 힐러와 함께 가장 후방으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지원 집단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손발을 묶어 놔야만 했으니까.
“〈침묵의 늪〉!”
“〈침묵의 늪〉!”
“〈침묵의 늪〉!”
버퍼들이 일제히 외치는 주문과 함께 공략지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저주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
침묵의 늪은 올림포스의 대신격 중 한 명인 디오니소스가 협회에 특별히 내려 준 주문으로, 다수의 시전자가 함께 발동하게 되면 권능 급의 위력을 발휘한다.
주변에 피해가 최대한 미치지 않도록 목표 대상이 있는 공간을 따로 분리하고, 임시로 구축된 심상 결계 속에 가둔다. 그리고 강제로 디버프를 잔뜩 걸어 목표 대상의 힘을 최대한으로 빼 버리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의 사회에서도 수위권에 꼽히는 올림포스의 대신격이 내어 준 것인 만큼, 웬만한 신격들도 이 속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전에 붙잡힌 반신도 바로 여기에 당하고 만 것이고.
파아아!
그렇게 헬 하운드를 비롯해 공략지가 따로 구축된 세상으로 떨어지고.
[2진, 투입.]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번째 열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보스 레이드에서 주로 어그로를 담당하는 탱커들이었으나, 일반적인 공략 부대와는 궤를 달리했다.
그들은 저마다 양손에 기다란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의 몸뚱이보다도 훨씬 크고 굵직한 쇠사슬. 탱커들 모두 일반 범인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완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겨우 들고 움직이는 게 고작일 정도로 무겁기도 했다.
신진철. 듣기로는 신과 악마들도 이곳에 결박되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던가?
역시나 올림포스에서 내려 준 신물이었다.
여기에 그들이 여러 실험을 통해 개발한 효과들을 부여함으로써 무기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으니. 침묵의 늪과 함께 반신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신이 바로 이것이었다.
촤르르륵!
탱커들이 투입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공략지 주변으로 쇠사슬이 아주 촘촘하게 엮였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실뜨기 같기도 했다.
마치 재빠르게 움직이는 쥐를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처럼. 이것은 토마스 리가 명령을 내린 순간, 언터처블을 잡을 덫이 될 터였다.
[다음. 3진, 앞으로.]
2개의 열로 나뉘어 있던 딜러 중 선열이 움직였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이는 역시나 올림포스의 대신격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였으니. 각각 태양과 달을 관장한다는 이들이었다.
“〈태양의 단죄〉!”
“〈태양의 단죄〉!”
한쪽의 영창이 떨어지면서 하늘에서는 거대한 태양이 떠올라 뜨거운 불길을 이글거렸고.
“〈달의 혹궁(酷弓)〉!”
“〈달의 혹궁〉!”
다른 한쪽에서는 냉기가 잔뜩 집약된 얼음 화살이 무더기로 맺히면서 공략지 주변을 삥 에워쌌다.
지시가 떨어지면, 태양은 당장 아래로 떨어져 공략지 일대를 단숨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거기서 살아서 튀어나온 이들은 얼음 화살이 일일이 꿰뚫어 사냥하게 될 터였다.
[4진은 목표가 나타날 때까지 대기한다.]
정석대로라면, 보스 레이드에서 가장 크게 날뛰어야 할 딜러 본진은 이제야 나섰으니.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번 공략도 절대적으로 성공할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 언터처블을 사냥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얻게 될 명망과 보너스를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모두 올림포스 소속의 크고 작은 신격들의 사도들이었으며.
치장하고 있는 무구들도 하나같이 협회에서도 전 세계 각지에서 어렵사리 수입한 신물 급 아티팩트들이었으니.
그들의 머릿속엔 ‘진다’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둘러서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고.”
“그래. 그리고 오늘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남미 쪽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생긴단 뜻이겠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는데, 언터처블이라면서 어째 나타나질 않아?”
“신진철 보고 벌써 겁먹은 거 아냐?”
심지어 저들끼리 낄낄거리기 바쁘던 그때.
공략지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딜러들의 수다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상대는 그들도 익히 잘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세샤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딜러들을 지나, 저 먼 곳에 위치해 있던 토마스 리를 정확하게 노려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토마스?”
“오랜만입니다, 차 양.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홀로 탈출해 귀가 하셨다는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토마스 리의 말에는 뼈가 잔뜩 들어 있었다.
얼핏 게이트 브레이크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다른 이들을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혼자 도망치기에 급급했다는 식으로 들렸다.
자연스레 세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올림포스가 당신들에게 힘을 빌려준 건, 어디까지나 지구상에서 빚어질 수 있는 혼란을 대신해서 잠재우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라는 훈시에요. 그런데 이렇게 사사로이 힘을 남용하는 건가요?”
“남용한 적 없습니다.”
“그럼 지금 이건 대체 뭐죠?”
“위협이 될지 모르는 위험 분자에 대한 대비일 뿐이지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지구인으로서 탈각을 이뤘다는 존재가 있다기에, 평화를 논의하기 위해 찾아왔을 뿐입니다.”
“칼을 들고 겁박하는 게, 평화를 위한 것이라구요?”
“말씀드렸잖습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저희들의 방비책일 뿐입니다. 만약 언터처블이 비협조적으로 나섰을 때, 저희로서는 어떻게 곧장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말입니다.”
세샤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일 뿐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태연한 투로 지껄이는 토마스 리의 태도가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차 양은 대체 언터처블, 아니, ‘카인’과 대체 무슨 사이이십니까? 정말 그동안 차 양께서 말씀 하신 실종 가족이 ‘카인’이었던 것입니까?”
세샤는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입술 끝만 비틀어 올릴 뿐.
“그거 알아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당신들이 멍청하다는 거요. 지금 당신들이 칼을 겨누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도 전혀 모르고 있잖아요?”
“무슨……!”
“아테나 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겁을 할 텐데. 아니, 토마스, 당신은 아레스 오빠의 사도였으니 그쪽이 더 식겁하려나?”
토마스 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언니? 오빠?’
마치 친척, 그것도 친한 사촌이라도 부르는 투가 아닌가.
‘아이돌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이고 주변이고 죄다 떠받들어 주다 보니, 정말 자신이 특별한 뭐라도 되는 줄로만 아는군. 리플리 증후군도 아니고, 미치기라도 했나?’
토마스 리는 더 이상 세샤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세샤는 협회가 그 동안 필요해서 언론에 내놓은 얼굴마담일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세샤가 제대로 된 플레이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필요가 없어진다면 얼마든지 옆으로 치울 수 있을 인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 4진은 전원 앞으로. 언터처블이 공략지에서 나오게끔 숨통을 조인다.”
치이익!
[아이돌이 방해를 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방해가 있을 시, 해당 대상을 협회 공적으로 지정하여 사살하도록 한다.”
그렇게 딜러들이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압박을 하는 와중에도, 세샤는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능력은 쓸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제야 토마스 리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뭐라고 추가 명령을 내리려는데.
찰칵!
공략지, 주택의 대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노골적으로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얼굴.
“삼촌! 저 사람들이……!”
세샤는 황급히 몸을 돌려서는 마치 부모에게 고자질을 하러 가는 아이처럼 쪼르르 달려가 뭐라고 쪼잘쪼잘 떠들어 댔다.
반면에 토마스 리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의 얼굴이 명령을 하달받을 때에 받았던 몽타주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지휘부의 추측이 맞았어!’
언터처블의 정체는 정말 ‘카인’이 맞았던 것이다.
“카인! 우리는 WPCFF에서 나온……!”
토마스 리는 곧장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연우가 아주 차갑게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아레스, 3초 준다. 당장 튀어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