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수라장 (2)
‘이 ‘꿈’이 계속 오래 이어지게 하려면…… 일단 우주에 남은 칠흑의 잔상부터 전부 거둬들여야겠지.’
연우가 현인을 두고서 이 세상에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단 하나.
사라진 동생의 영혼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그와 가족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일환은 아주 간단했다.
언제 끊어오를지 모르는 칠흑을 전부 거둬들이는 것.
물론, 그래서야 시작의 날처럼 또 한 번 커다란 사회적 충격이 있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지구인들을 비롯한 여러 지성체들에게 있어 게이트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남다를 테니까.
게이트 브레이크와 몬스터 웨이브를 버티지 못하고 멸망한 곳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극복해 내고 상생을 시도하거나,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새롭게 번영을 시도하는 곳도 있었다. 지구는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러니 게이트를 갑자기 거둬들인다고 해서야, 일반 시민들이나 좋아할 뿐, 게이트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산업군이나 정치 세력들은 좌절을 맛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연우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저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칠흑의 파편은 일반 지성체들이 이용하려야 이용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에 잡아먹히기만 할 뿐이었다.
세계의 틀을 망가뜨리고, 법칙과 섭리를 흐리게 만들어 겨우 완성되어 가는 우주 창생을 무(無)로 귀화시키는 것일 뿐이니.
그래서야 ‘낮’과 ‘밤’의 구분이 무색하게, 타계와의 경계선이 흐릿해져 ‘꿈’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모든 게 저들이 원하는 대로 흐를 뿐이었다.
그렇기에 연우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거둬들이고자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건 ‘인간 차연우’가 아닌 ‘자아 차연우’였다.
츠츠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라고 명령하였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 * *
“이, 이게 뭐야?”
“플레이어 시스템이 끝났다고……?”
헬 하운드의 플레이어들은 멍한 시선으로 연우를 바라보다 말고, 갑자기 망막의 정중앙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내용의 메시지 창이었으니까.
[시스템 최고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모든 플레이어 지원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시스템이 종료됩니다.]
[적용된 모든 가호와 축복이 회수됩니다.]
그리고.
츠츠츠-
“으, 으아아!”
“안 돼……!”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그림자가 멋대로 일렁이는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시작의 날이 시작된 이래, 수많은 기적과 이상 현상들을 겪었다지만, 그림자가 이렇게 멋대로 춤을 추는 건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림자와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데이터’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태껏 게이트에서 시련을 수행하고 나면 보상으로 주어지던 것들이나, 아티팩트와 스킬에 담겨 있던 모든 마법적 효과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화아아아!
가장 먼저 헬 하운드의 플레이어들이 딛고 있던 그림자들이 뜯겨 연우 쪽으로 송두리째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츠츠, 츠츠츠-
지구 각지에서.
각 행성과 문명에서.
여러 우주에서 그림자들이 쉴 새 없이 모여들었다.
연우가 잠들어 있는 동안 곳곳에 뿌려 두었던 칠흑의 파편들이, 시스템이 닿아 있는 모든 것들이 회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이트는 닫히고, 시련은 중단되었다. 던전 속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강제로 외부로 방출되었으며, 그들에게 적용되던 모든 효과들이 연우에게로 귀속되었다.
각 신과 악마들이 사도들에게 나눠 주었던 권능이나, 그동안 플레이어들이 단련하면서 개인적으로 터득한 역량까지 회수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단련하거나,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모조리 닫혀 버린 것이다.
“와……!”
세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 우주의 그림자들이 연우에게로 몰려 들어오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으니까.
특히 그녀는 용마안을 통해 연우의 본체를 보고 있지 않던가.
끝도 없이 높게 서 있는 거룡(巨龍)이 천천히 그림자를 삼키는 모습은 가슴을 저절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수많은 그림자들이 한꺼번에 모여드는 광경은 마치 해일처럼 닥쳐오는 어둠을 그가 고스란히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 어느 존재도 저러한 기적을 행사하지는 못할 테지.
이런 분이 내 삼촌이라니. 세샤는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올림포스 신들이며 플레이어들은 전부 넋이 나가 버린 상태였다.
그러다 맹렬한 속도로 들어오던 그림자의 행진이 전부 끝났을 때.
“…….”
“…….”
『…….』
『…….』
그곳에는 깊은 적막만이 흘렀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순간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넋을 잃은 채로 멍하니 있었지만.
세샤는 그것이 사실 현실 시간으로 단 몇 초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손목에 착용한 시계의 초바늘이 단 몇 칸밖에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연우가 보인 광경이 대단했단 뜻이겠지.
그러다 그녀는 연우가 시스템을 전부 회수하고서도 여전히 뭔가 탐탁지 않아 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삼촌, 무슨 일 있으세요?”
“회수가 전부 다 안 끝나서.”
“예……?”
세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전능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회수가 안 되는 구역이 있다고?
“장난을 치는 놈들이 있는 것 같거든.”
세샤는 어쩐지 연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적이라도 만난 것 같은 모습.
시니컬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연우는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감히 주인인 내 허락도 없이, 칠흑을 제멋대로 갖고 놀려 한다 이거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맹랑하다고 해야 할지.
탑이 무너지던 때에 그렇게 타계의 위험과 공포를 겪었을 것이면서도.
‘밤’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절실히 실감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칠흑의 파편을 탐낼 줄이야.
꽤나 많은 초월자의 사회들이 칠흑의 파편을 사유화하여 칠흑왕의 힘을 탐내려 하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신과 악마들은 칠흑왕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가진 권능과 격을 시기하며 탐내고 있었으니까.
타계의 신들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이 칠흑왕의 힘 중 일부라도 손에 넣기를 바라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탑이 사라지고 나서도 왜 이렇게 많은 눈들이 지구를 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전부 이 때문이었나 보군.’
연우가 슬쩍 고개를 올리자, 메시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당신을 관찰하고 있던 신의 사회, ‘멤피스’의 소속 신들이 모두 시선을 회피합니다.]
[당신을 주시하고 있던 신의 사회, ‘딜문’이 일제히 고개를 아래로 내리깝니다.]
……
[당신을 측정하고 있던 악마의 사회, ‘절교’가 모두 딴청을 피우기 바쁩니다.]
……
아마 저들로서도 죽을 맛이지 않을까.
연우가 눈을 뜬 이상, 그가 어떻게 나설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을 테니.
이미 저들 중 상당수가 연우에게 시달림을 겪어 보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프리카 사하라, 남미 얀데스, 중동 스텝, 남극, 남태평양…… 여기서 회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혹시 무슨 공통점이라도 있나?”
연우는 애타는 초월자들의 시선을 코웃음 치며 모두 무시하고, 세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각 우주에도 회수가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지만, 칠흑왕의 본체가 잠든 바가 있던 지구는 그런 곳들이 훨씬 더 많았다.
모두 다섯 곳.
세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각 장소를 되짚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경(魔境)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마경?”
“예.”
세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직까지 바뀐 지구의 상식을 잘 모르는 연우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 * *
5대 마경.
그것은 시작의 날 이후로 재앙을 맞닥뜨리면서 멸종의 위기에 처해야만 했던 인류가,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구원의 빛을 찾아가기 시작했음에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다섯 곳의 금지(禁地)를 의미했다.
게이트 관리가 전혀 되질 않아 브레이크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제는 자체적인 던전화가 이뤄지고 있는 사하라 사막.
비마질다라가 터를 잡으면서 눈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쓸어 내며 ‘아수라장’을 만들어 내는 얀데스 산맥.
좀처럼 잡히지 않아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고 말았던 마풍(魔風)의 터전, 스텝 지역.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온통 빙산과 설원만 가득한 나머지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제대로 확인조차 불가능한 남극.
역시나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고도 여전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남태평양 군도(群島) 지대.
“이들 중 사하라와 얀데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파악되었어요. 사하라는 순전히 자체적인 게이트 관리가 되질 않으면서 악화 일로를 걷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얀데스는 비마질다라라는 존재 때문에 접근 불가인 거구요.”
세샤의 설명은 차분했다.
“하지만 남은 세 곳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이유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어요. 그 지역으로 조사대가 파견되기만 하면 무조건 실종되거나 전원 사망해 버려서…….”
그러면서 세샤는 말꼬리를 살짝 흐렸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야 역사가 짧으니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지만.
연우에게는 그런 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마경에 대해서 물은 것도 뭔가 짚인 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럴 만도 하지.”
아니나 다를까.
“보이는 족족 전부 삼키거나 죽였을 테니까.”
연우는 혀를 가볍게 차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좁혔다.
‘쓸데없는 곳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면, 바로잡아 주면 그만이지.’
아무래도 타계로 넘어가기 전에 이쪽 우주부터 먼저 교통정리를 해 둬야 할 모양이었다.
“하긴. 그동안 내가 가만히 있어도 너무 가만히 있었지?”
연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다른 누군가가 들었다면 기겁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면서 재차 세샤를 돌아봤다.
“세샤.”
“예, 삼촌.”
“내가 당장 처리할 일이 있어서. 뒷일은 따로 내가 처리할 필요 없이 네게 맡겨도 되겠지?”
세샤는 아주 잠깐 말없이 연우의 눈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 속에 담긴 굳은 믿음.
그걸 확인한 세샤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열여섯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너를 단순한 어린아이로만 봤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어.”
세샤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삼촌한테 배워야 해요. 두 분은 매번 절 어린애로만 취급하는데. 저 믿어 주는 건 삼촌뿐이네요.”
“두 사람은 나보다 더 크게 널 믿고 있단다. 다만, 걱정이 심할 뿐이지.”
세샤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해 볼게요.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삼촌이 늘 하던 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잖아요?”
연우는 ‘하던 대로’라는 말에서 아주 잠깐 움찔거렸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그런 거면 쉽죠.”
“그럼 뒷일은 너에게 맡기고 가마. 우선 이 일부터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
쉭!
연우는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표홀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곳에서.
세샤는 헬 하운드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플레이어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말았다.
분명히 연우를 보고 있을 때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평상시 언론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왜 이리도 불길하게만 보이는 건지.
“여러분.”
“……?”
“……?”
“……?”
“등신이 아니고서야, 줄 어디로 서야 하는지는 확실히 아시겠죠?”
“……!”
“……!”
“……!”
“어디로 서시겠어요?”
당연하지만.
헬 하운드가 당장 여기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