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수라장 (3)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왜 헬 하운드에서는 여태 아무 보고도 없냔 말이야!’
조슈아는 점차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수하들의 소식이 늦어진다고 해도 별달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헬 하운드는 아무리 피해가 커도, 설사 전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한 번 하달받은 임무를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방금 전에 그가 겪었던 일이 그의 가슴을 바짝 조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단 몇 초에 불과했지만, 그를 비롯해 이 자리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을 스치고 지나갔던 거대 존재의 흔적.
예보에도 없던 개기일식이 찾아오고, 초월자보다도…… 그가 모시는 아테나보다도 더 크게 다가왔던 존재감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만 만들었다.
그러다 그 뒤에 플레이어 시스템까지 모두 중단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을 때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여유만 보였던 그, 냉혹하고 잔인한 인상만을 보였던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무언가가.
일이 자신이 상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단 사실을 전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아테나 님과의 채널링이 완전히 단절되었어!’
심지어 아테나가 내려줬던 권능이며 다른 부가적인 능력들도 전부 사라진 상태.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게 있었기에 여태껏 ‘사냥개’로서의 명성을 지킬 수가 있었으니까…….
그런 축복이 없는 조슈아는 절대 ‘조슈아 T. 브라이언’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협회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지훈 준장이 있어 최대한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지금 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빠르게 확인하고 있었다.
몸 상태가 달라진 건 아닌지, 아티팩트에 이상은 없는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속으로 적잖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태껏 그들을 보호하듯이 따라 다니던 플레이어 시스템이 더 이상 소환되질 않고 있었으니까.
스테이터스 확인이 불가능한 건 물론, 아티팩트나 여태껏 올림포스에게서 받고 있던 가호와 축복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행히 스킬과 권능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흔한 메시지 창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충격적이기만 했다.
시작의 날이 열린 이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시스템은 ‘당연히’ 따라붙어 다녀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모든 이상 현상의 원인이, 그들의 목표물이었던 ‘카인’에게 있는 것 같다고…….
“안색이 많이 좋지 않아 보이오.”
우지훈 준장은 그런 분위기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가볍게 헛웃음을 흘렸다.
조슈아는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그를 홱 하고 노려봤다.
“내가 비록 플레이어들에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하오만, 그래도 눈치는 제법 있다오. 아무래도 카인이…… 아니, 연우가 무슨 일이라도 벌인 모양인데. 하하!”
그에 조슈아의 얼굴도 두 눈동자만큼이나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띠리릭.
갑자기 뒷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조슈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발신인이 그의 유일한 상관이었으니까. 협회장이었다.
“……예. 조슈아입니다.”
[자네……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겐가?]
“예? 무슨……!”
[자네, 지금 아테나와의 채널링이 단절되었지?]
조슈아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잡아떼려고 해도, 협회장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목소리에는 깊은 근심이 묻어나 있었다.
[방금 전, 올림포스에서 신탁이 내려왔다네. 이번에 자네가 ‘독단적으로’ 내린 선택에 대해 아주…… 아주 크게 노한 상태더군.]
순간, 조슈아는 뒤통수를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서 협회장으로서, 자네가 저지른 비도덕적인 월권행위에 대해 큰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바. 자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네.]
동시에 분명히 조슈아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절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던 센터의 문이 벌컥 열렸다.
“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서세요!”
“비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다치실 테니.”
우지훈 준장을 여기까지 데려왔던 요원들과는 전혀 다른 복장을 한 이들이,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강제로 물리치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조슈아에게 다가왔다.
저들은 협회 내 감사반이었다.
협회장 직할로서 유일하게 조슈아의 명령도 듣지 않는 이들. 당연한 말이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조슈아로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협회장님! 이번 결정은 협회장님도 승인을……!”
[무슨 소린가? 전부 자네가 알아서 언터처블을 모셔 오겠다며 나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레이드라니……. 같은 지구인에게, 그것도 한때 아프리카 전선의 영웅이었던 친구에게 어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품었던 겐가.]
“……!”
조슈아는 어떻게든 휴대폰을 붙잡고 늘어지려 했지만, 차갑게 돌아오는 협회장의 말투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단 한 가지 단어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토사구팽.
[당분간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머리라도 식히고 있게.]
어차피 조슈아가 처리하는 일은 음지의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흔한 서류 하나 남지 않는다.
결국 조슈아는 감사반에 붙들려 질질 끌려나가야만 했다. 어떻게든 버티고자 발버둥 쳤지만, 아테나와의 채널링도 끊어져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 그가 그들의 힘을 당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내 목도 위태위태한 상태라서 말이지.]
그리고.
조슈아가 떨어뜨린 휴대폰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
“…….”
“…….”
협회의 이인자가 단칼에 숙청되는 것을 지켜본 직원들은 혹여 자신들에게 불똥이라도 튈까 봐 숨을 바짝 죽여야만 했다.
덕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우지훈 준장은 이제 이대로 석방이 되나 기대를 하는데.
“미스터 우?”
“……오늘 하루 쉬긴 글렀나 보군.”
감사반 요원 중 한 명이 다가오자, 그는 저절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렇소만.”
“다른 곳으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흐! 여기저기서 나를 참 많이도 찾아 대는군. 그래. 이번에는 또 어느 권력 기관에서 나를 데려가는 거요?”
“협회 본부입니다.”
“음……?”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런 얼굴로 바라보는데.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
* * *
스위스 제네바.
UN 산하 ‘자유를 위한 각성자 협회’의 본부
“……이렇게 하면 되는 겐가?”
협회장 알베르트는 방금 전까지 조슈아와 통화했던 휴대폰을 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세샤는 팔짱을 끼면서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한참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선에서 끝내도록 하죠.”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정말 미안하게 되었군.”
알베르트 뎀첸코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남들이 봤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으리라. 조슈아와 함께 지구에서 ‘제국’을 세웠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권위적인 성격을 자랑하던 게 바로 그였으니까.
하물며 상대가 그의 손녀뻘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 그것도 평상시 권력 유지를 위해서 얼굴 마담 격으로 내세웠던 존재라면 자괴감까지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 이 자리에는 없어도, 세샤의 뒤에 어떤 눈들이 줄줄이 달려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그는 절대 평상시처럼 행동할 수가 없었다.
‘시스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구인이라니…… 이런 뭐, 말도 안 되는…….’
알베르트로서는 전혀 짐작도 안 가는 상황이었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숨겨진 사실이라고 하는데.
처음 알베르트는 세샤가 다짜고짜 협회를 찾아오자, 강경하게 대응하려고 했다. 어떻게 지금쯤 한국에 있어야 할 그녀가 스위스까지 단번에 날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건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만약 위협이라도 한다면 곧장 반란죄까지 물어 구금해 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협회가 저런 꼴이 되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알베르트는 슬쩍 창밖을 내다보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언제나 이곳에 서면 곧장 보이던 넓은 마당이며 웅장하던 협회의 건물이, 전부 포탄이라도 수없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초토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샤에게 죄를 물어야겠다는 다짐을 접어야만 했던 건, 그런 생각을 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늘 위에서 세샤가 마력을 개방하는 것과 동시에 마법이 잇달아 난사되면서 삽시간에 협회 건물을 이 꼴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신기한 점은 그렇게 하고도 사상자가 한 명도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었으니.
거기다 세샤에게로 전향한 게 틀림없는 헬 하운드가 즉각 본부를 장악해 버리면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안 따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세샤는 알베르트와 대면한 자리에서 아주 짤막하게 몇 가지를 설명했다.
여태껏 협회를 도와주던 올림포스가 이제 누구를 지원하고 있는지, 알베르트가 멍청하게 대체 누구를 건드렸는지.
그것을 전부 알았을 때, 그는 넋이 나가는 줄로만 알았다.
거기다 이제 플레이어 시스템도 작동하질 않으니, 알베르트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 그는 하루아침에 팔다리가 단번에 잘려 나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슈아를 내치게 된 경위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뭔가……?”
물론, 저 ‘부탁’이라는 게 이제는 명령이라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조만간 마경이 잇달아 닫힐 예정이에요.”
“마경이?”
알베르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협회를 구축하면서 여러 잡음이 많았다지만, 그래도 혼란했던 지구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했던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힘을 비축하고 나서 가장 먼저 정리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마경이었고, 번번이 공략에 실패할 때마다 그는 좌절을 겪어 야만 했다.
그런데 그걸 너무 쉽게 없앤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니, 시스템을 만진다고 하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만하면 신적인 존재도 뛰어넘는 게 아닌가.’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닫히고 난 뒤에 생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는 것이로군. 카인…… 자네의 숙부에 대한 신분도 비밀에 붙여야 하니, 본 협회에서 처리했다고 발표하면 되나?”
“역시 회장님은 말씀이 잘 통하셔서 좋아요.”
앞으로 이들 가족이 벌이는 일들의 뒷감당을 대신 해 달란 뜻이로군.
알베르트는 그런 말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지구의 질서는 더 단단히 잡힐 게 분명했으니까.
게이트의 미출현으로 인한 여러 산업군의 붕괴와 신소재 연구 따위의 국가적 프로젝트들, 그리고 수많은 실직자들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플 테지만…… 그래도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 낼 터였다.
그렇게 세샤가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난 뒤.
“……뒷수습이 전부 끝나고 나면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야겠어.”
알베르트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한 나머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프리카, 사하라.
모래 섞인 열풍이 휘몰아치고, 간간이 용권풍도 일어나는 거대한 사막.
시작의 날이 있기 전에는 이따금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소수 민족이나, 오아시스를 따라 환경에 적응한 동물들의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었다지만.
지금은 피부로 열기를 풀풀 휘날리고, 입으로 불길을 내뿜는 괴상한 몬스터들만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사하라 지대는 가뜩이나 더운 기후에 몬스터들이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져 한낮에도 수십 도가 넘는 극악한 환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처럼 애초에 공략대가 투입되는 것이 힘든 여건인 데다가.
몬스터들의 번식력까지 강해 좀처럼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머지, 협회에서는 사실상 이곳을 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런 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여기로군.”
공허를 열어젖히면서 모습을 드러낸 연우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사하라 일대를 쓱 훑어보았다.
인지 영역을 확장해서 파악했을 때처럼 온통 화 속성의 몬스터들이 널려 있는 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저절로 날 정도였다.
하지만 연우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잘 보였다.
[용신안]
[화안금정]
[검은 구비타라 - 현자의 눈]
[천안통]
이곳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에게는 저마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하나둘씩 담겨 있다는 것을.
‘세샤는 단순히 게이트 브레이크가 벌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이야기했지만, 달라. 이건 누군가가 고의로 조성한 생태계야.’
이를테면, 이 몬스터들은 전부 키메라였다.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실험의 결과물들.
연우는 이것들부터 처치할 예정이었다.
뭔가 크게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저 허공에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젖힐 뿐.
콰르르르릉-!
하늘에서부터 빗발친 검뢰가 지구를 부술 듯이 지면을 내리치면서 사막 위에 있던 모든 몬스터 들을 줄줄이 찢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