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18화 (718/862)

18화. 아수라장 (4)

[‘데바’의 신, 인드라가 당신이 부리는 뇌전에 깊은 탄식을 흘립니다.]

[‘멤피스’의 신, 누트가 이제는 당신에게 근접할 수 없음에 한숨을 내쉽니다.]

……

[‘오시리스’가 자신의 주인에게 깊게 감탄합니다.]

[‘아이쉬바-다르바’가 탄복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태산부군’이 죽음이 지니는 지고한 가치에 장광설을 내뱉습니다.]

……

[케르눈노스가 당신의 발전한 검뢰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연우가 우주 각지에 흩어진 칠흑의 파편을 빠르게 거둬들이기 시작하면서, 이미 모든 신과 악마들은 다시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두려움에 찬 시선이었지만, 아무도 거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시 눈을 뜬 연우의 새로운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탑에 있었을 때야 올포원을 쓰러뜨리고, 최고 층계까지 오른다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다지만.

밖으로 나와 버린 지금은 그게 전혀 아니었으니까.

[대부분의 신이 당신의 새로운 목적에 대해 의문을 표시합니다. 크로노스의 재림을 주의합니다.]

[대부분의 악마가 당신이 과거 루시퍼처럼 천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내지 않을지 경계합니다.]

그들이 우려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크로노스와 루시퍼.

크로노스는 신왕으로서 올림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바. 가장 크게 세를 떨쳤을 때는 전 우주의 절반 이상을 석권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다른 주신이나 최고신들도, 그리고 마왕들도 크로노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던가?

기실 크로노스가 권좌에서 끄집어 내려지는 데에는 제우스의 활약도 활약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사회들의 지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시퍼도 경우는 비슷했다.

결국 날개가 모조리 꺾이면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16개의 영혼석으로 잘게 쪼개졌다지만.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대부분의 신과 악마들이 손을 잡아야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녔던 것이다.

이렇듯 신과 악마들은 계급과 신분 차를 인정하면서도, 어느 누군가가 독보적인 힘을 지니는 낌새가 보인다면, 다 같이 힘을 합쳐 끄집어 내리는 선택지를 내리곤 했다.

그러니 전례를 따지자면, 원래 연우도 그런 경우에 해당해야 했지만.

그동안 천계가 워낙에 소란스러웠던 데다가, 연우는 그들과 직접적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이간질을 통해 천계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끔 유도하곤 했었다. 거기다 매번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면서 천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사이 사룡과 망자 거인, 그리고 올림포스까지 영역에 두면서 절대 자신에게 저항할 수 없는 성벽을 굳건하게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다 연우가 칠흑왕의 자아가 되어 돌아왔다.

단순한 분신도 아닌,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이것은 신과 악마들로 하여금 단단히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

특히 타계의 신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물리쳤을 때에는 다들 넋이 나가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연우는 그들이 힘을 합쳐도 대항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걸까?

그렇다면 그가 뭔가를 획책한다면, 그들로서는 그것을 막을 만한 방도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월자들의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천계를 손에 넣고자 한다면.

그것을 막아 설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신과 악마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연우가 하려는 일을 가만히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신과 악마들의 시선을 잘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움직였다.

이럴 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저들을 통제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내 생각이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생만큼은 그의 계획을 절대 몰라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

검뢰가 번쩍였다.

* * *

[케르눈노스가 검뢰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케르눈노스가 마경의 주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합니다.]

평상시 반응이 거의 없는 편이던 케르눈노스가 이례적으로 메 시지를 여러 개 표시하는 동안.

콰르르르!

검뢰는 옛 스킬, ‘불의 파도’에다 ‘불벼락’이나 ‘72선술’ 따위를 복합적으로 섞어서 나온 것이니.

그 특징은 폭발이 이뤄지더라도 사방으로 번져 나간 불똥에서 다시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뇌기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 더 넓은 범위로 확산된다는 특징이 있었고, 또한 그럴수록 범위 안의 힘도 더더욱 급상승하게 된다.

연우가 뿌린 검뢰가 그랬다. 검붉은 벼락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번져 나가면서 지면을, 대기를, 상공을 수도 없이 갈가리 찢어 놓았다.

수도 없이 명멸하는 섬광 때문에 지구 밖에서 아프리카를 비추고 있던 인공위성들은 한순간 아프리카가 환하게 젖어 드는 장면을 촬영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에서 풍겨 나온 마력장의 폭풍에 그대로 휩쓸려 먹통이 되거나, 지구 쪽으로 줄줄이 추락하는 대참사가 빚어지고 말았지만.

사하라 사막의 크기만 따져도 유럽 대륙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넓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마경이 영향을 미치는 주변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아프리카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범위가 검뢰로 뒤덮인 셈이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힘 조절도 힘들군.’

이 정도도 연우에게는 힘을 최대한 줄일 대로 줄인 것에 불과했다.

검뢰를 잘못 터뜨렸다간 사하라 사막이 아니라, 지구의 지표면이 몽땅 날아갈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던 검뢰가 끝났을 때 즈음에는.

파스스-

마경을 구성하고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며 그들을 포용하던 군락지, 그리고 칠흑에 적응한 여러 변종 식물 따위도 모두 잘게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항 따윈 없었다. 그저 갑작스러운 재앙에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뿐.

그리고.

휘휘휘휘……!

“여긴가?”

연우는 사하라 사막의 정중앙에 서서 아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마치 유사(流砂)처럼 소용돌이를 그리며 깊숙한 안쪽까지 들어가는 칠흑의 물결이 있었다.

오늘날, 아프리카 일대를 온통 마경으로 만들어 버렸다던 S급 게이트, ‘초원의 어느 비빌 언덕’이 있던 자리.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변종 식물로 구성된 숲에 온통 뒤덮여 있어 위치조차 특정하기 힘들었던 그곳은, 검뢰로 싹 치우고 나니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안통을 활짝 연 연우의 눈에는 그것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물결의 중심, 소용돌이가 쓸려 들어가는 모래사막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이 마경을 만들어 낸 원흉이.

[케르눈노스가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마경의 주인을 살핍니다.]

마치 산모의 배 속에 든 태아처럼, 잔뜩 웅크린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

연우는 그놈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서 안 들릴 게 분명했지만.

연우는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아니, 눈을 뜨고 지구에 모습을 비쳤을 때부터 녀석은 그에게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단 사실을.

그만큼 단단히 경계하고 있단 거겠지.

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연우로서는 우습기만 할 뿐이었지만.

‘적’이라는 것도 수준이 맞아야 그렇게 불릴 게 아닌가.

“안 나온다면.”

파지지직!

연우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검지에서부터 검고 붉은 뇌기가 폭발할 듯이 터져 나오면서 팔을 크게 감싸 안았다.

비록 방금 전에 사하라 사막을 쓸어버렸던 검뢰에 비하면 크기는 아주 작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강한 뇌력을 잔뜩 응축시킨 힘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내핵까지도 단번에 뚫어 버릴 수 있는 힘이었기에.

“끄집어내 주지.”

연우는 가차 없이 그것을 아래로 내리쳤다.

[케르눈노스가 마경의 주인이 보이는 태도에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합니다.]

콰르르릉!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지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기둥이 내리꽂혔다.

소용돌이가 부서지고, 칠흑의 물결이 단숨에 증발했다. 엄청난 열기에 녹아 버린 모래 액체가 수십 미터도 넘게 튀어 오르는 가운데, 연우가 등장하고도 여태껏 모른 척 굴던 녀석이 단번에 위로 튀어나왔다.

키아아악!

반쯤 무너진 얼굴과 몸뚱이를 가진 존재.

난폭한 신력과 다듬어지지 않는 칠흑의 기운이 잔뜩 풍기고 있었

진언을 내뱉지도 못하는 것이, 이성은 거의 없고 짐승처럼 본능만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케르눈노스가 마경의 주인이 가진 볼품없는 모습에 인상을 강하게 찡그립니다.]

“저물라.”

화아악!

연우의 용언에 따라, 사막을 뱅글뱅글 돌고 있던 그림자들이 단숨에 위로 뻗쳐오르면서 그와 마경의 주인이 있던 공간을 뒤덮었다.

[인스턴스 던전, ‘사하라’에 입장하였습니다.]

[칠흑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그림자가 뒤덮은 뒤에 나타난 세계는 외부에서 보던 사하라 사막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꿈.

연우가 분석한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바를 칠흑으로 녹여 낸 형태였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여태껏 지구상에 수도 없이 출몰했던 게이트나 던전과 똑같은 특징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콰릉, 콰릉, 콰르릉!

쿠쿠쿠쿠-

연우가 무의식중에 만들어 냈던 다른 던전들과 달리, 이곳은 그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곳답게 절대적인 내구도를 자랑한다는 것.

즉, 이곳에 갇힌 존재들에게는 ‘감옥’이나 다를 게 없었다.

[케르눈노스가 마경의 주인에게서 시선을 거둡니다.]

[케르눈노스가 당신이 구축한 새로운 심상 세계(던전)에 깊은 관심을 표시합니다.]

검뢰가 다시 한번 더 터져 나왔다.

이극에서 사극, 오극까지…… 지구에서 펼쳐졌다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을 검뢰의 위력에 마경의 주인이 그대로 갈가리 찢겨 나갔다.

키아아악!

하지만 마경의 주인은 그런 와중에도 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 찢긴 몸을 재빠르게 수복하면서 손톱을 바짝 세워 허공에다 크게 내그었다.

촤아아악!

공격 하나하나에 칠흑의 속성이 잔뜩 묻어 있었으니. 검뢰가 날아오던 그대로 허리가 잘리거나, 옆으로 튕겨 나는 등 제법 거세게 저항했다.

『간만에 치고받고 싸울 만한 상대가 생겼나 싶었더니. 저 양반이었나?』

그때, 여태껏 잠잠히 있던 스퀴테가 저절로 딸려와 연우의 손에 잡혔다. 크로노스가 흥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누군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크로노스가 히죽거렸다.

『그래도 소싯적에는 제법 유명했던 양반인데. 좀 이름이 어렵다만, 풀어내자면 티와나쿠…… 그런 이름으로 기억한다. 아주 거칠고, 흉폭하지.』

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로노스가 이름을 기억하고 거칠다고 표현할 정도라면 제법 명성을 알렸던 존재란 뜻일 텐데.

그렇다면 위격도 높고 신앙도 많이 끌어모았을 존재가 왜 저런 꼴이 된 걸까? 가진 힘이야 검뢰를 쳐 낼 정도이니 강할지 모르지만, 저런 꼴이어서야 신이라고 부르기도 뭣하지 않은가.

크로노스는 연우의 생각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뭐, 그래 봤자 나한테 개기다가 줘 터지고 영락해 버렸지만. 그 뒤로 안 보인다 싶더니, 지구로 와 있었나?』

연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가볍게 찼다.

말이 좋아 ‘줘 터졌다’고 말할 뿐이지, 크로노스의 소싯적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소멸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그러다 회복을 위해 본능적으로 지구로 온 건가? 그러다 칠흑의 파편을 받아들이고, 격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이고.’

티와나쿠는 칠흑의 파편만을 흡수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마경을 조성하고, 여기서 파생되는 영향력을 이용해 지구 전체에 자신의 신명(神名)을 ‘각인’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지구의 신앙을 끌어모으고자 했던 것이겠지. 공포로 군림하는 것 또한, 신명을 널리 알리는 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피조물들에게 아득한 공포란 곧 경외를 의미하니,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점차 마경의 영역을 넓혀 지구를 자신의 성역으로 삼고, 남은 칠흑까지 온전히 삼켜 부활을 꿈꿨던 것 같지만.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는 법이지.』

쩌어어엉!

스퀴테가 맑은 검명을 울렸다.

『줘 터지기 전까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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