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30화 (730/862)

5화. 다른 꿈 (2)

화아악!

“소주, 다친 곳은? 없으시오?”

율이 다시 본부로 돌아왔을 때.

그의 집무실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던 군자란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리곤 곧장 혹시 상한 곳이 없는지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다행히 이렇다 할 다친 흔적은 없었다. 먼지 위를 구른 것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거요?”

군자란의 안색도 저절로 어두워졌다.

그러다 다시 활짝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에잉! 아무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왕은 거품이 잔뜩 껴 있었나 보오. 뭐, 잘 안 되면 어떻소? 우리는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될……!”

“군자란.”

군자란은 말을 하다 말고 무뚝뚝한 율의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왜 그러오?”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몇이나 됩니까?”

“……그게 무슨?”

“최대한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군자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진지하게 가라앉은 율의 두 눈을 보고 있노라니 그럴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있었다.

“삼백.”

“그것밖에 되지 않습니까?”

“억지로 동원한다면야 더 동원할 수도 있겠소만, 저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 아니오?”

곳곳에 ‘그들’의 눈이 닿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율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빡빡하겠군요. 하지만 그래도 해 볼 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쿠데타라도 일으킬 생각이오?”

“저들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습니까? 다행히 끄나풀인 아티초크와 라플레시아는 죽었으니 일은 쉬울 겁니다.”

“……!”

“다른 이들은 신병 확보를, 그리고 주요 기관 장악에 집중해 주십시오.”

“알겠소. 내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블랙리스트들은 죄다 정리해 뒀었지.”

군자란은 드디어 그동안 당했던 것을 되갚아 줄 수 있단 생각에 콧김을 뜨겁게 내뿜었다.

프레지아에 대한 건 굳이 묻지 않았다. 율이 저렇게 나선다는 건, 확실히 승기를 잡았단 뜻일 테니까.

“그럼 거사는? 언제로 할 거요.”

율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지금, 시작해 주십시오.”

* * *

쾅!

“전원 손 들어!”

“이, 이게 무슨……!”

“대체 무슨 짓이오, 소주! 이러고도 무사할…… 크악!”

“제 신변은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여러분들은 본인 걱정부터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군자란과 율의 지시에 따라 휘하 병력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티초크와 라플레시아가 주로 사용하던 집무실을 점거하고, 그의 수하들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도록 들이쳤다.

그리고 바이 더 테이블을 운영하는 각 주요 기구들을 장악하여 통제권을 손에 넣었으니.

여태 알게 모르게 아티초크와 라플레시아에게 줄을 댔던 인사들은 줄줄이 끌려 나와야만 했다.

저항은 있었지만, 율은 일체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리고 율은 압수된 자료들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바이 더 테이블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었는지, 흑막에 의해 얼마나 좌지우지되고 있었는지를 똑똑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하실…….”

“조직의 2급 이상의 기밀을 넘긴 흔적이 있는 이들은 전부 사형, 나머지는 죄의 경중에 따라 구류 기간을 결정하시되, 피해액은 철저하게 이자까지 매겨서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다 배상케 하십시오.”

율은 죄가 확인된 이들에 대한 처분을 군자란에게 전부 넘긴 뒤, 홀로 집무실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처음 스승인 프레지아를 따라 이곳에 왔을 때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경계심에 가득 찬 눈으로 쭈뼛대는 자신에게, 두 번째로 손을 내밀어 주었던 분.

‘부디 무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다 율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집무실 한편으로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한쪽 구석에 높게 서 있는 서고.

그중 정중앙에 놓인 서책을 잡아당기자, 책장이 돌아가면서 뒤에 숨겨져 있던 금고가 드러났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스승님, 갑자기 불안하게 무슨 말씀을……!

-아니, 들어야 한다. 이제 너는 내 후계이며 이곳의 금고지기니까. 기억하려무나. 바이 더 테이블의 총수가 된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란다.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분을 위해, 레아 님의 혈육을 위해, 이곳을 지키는 것.

-그러니 부디 이곳을 잘 지키고 있다가, 연우…… 그분이 돌아오시면 지체 말고 이곳을 보여 주려무나.

십여 년 전. 프레지아는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붕괴하는 탑의 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어린 율을 따로 불러 신신당부를 했다.

당시에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프레지아가 너무 걱정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유언처럼 되고 말 줄이야.

그 뒤로 그는 여태껏 프레지아의 말을 한시도 잊지 않은 채로 연우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흑막이 찾고자 하는 것이 이 금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어도, 짐짓 모른 척 잡아떼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연우가 돌아와 구원을 시작한 지금.

율은 비로소 이곳을 열 때라고 생각했다.

문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찰칵!

그동안 단단히 닫혀 있던 금고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 *

“그런 것 같습니다.”

『허!』

연우의 담담한 대답에 크로노스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가정법이긴 했지만, 그것이 사실 확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꿈’에서 건너온 존재라니?

그런 게 가능한 일이었나?

“몇 번째 꿈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거기서 봤던 토르가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배려심이 넘치면서도 유머 센스도 괜찮아서 사회 구분 없이 두루두루 친구들을 뒀던 사람이었죠.”

『그쪽 토르는 이쪽과 많이 달랐나 보군?』

“그냥 이름만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요.”

연우와 크로노스가 말하는 ‘꿈’이란 일종의 ‘굴레’였다.

천마가 창세라는 이름으로 굴리기 시작하면, 칠흑왕이 종말이라는 이름으로 멈추는 굴레.

그것은 이미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그 안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피어났고,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들이 빚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끝내 전부 없던 게 되고 말았다.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아주 극소수였고, 그마저도 반복되는 굴레 속에 너무 많이 마모되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법칙이 되고 만 고대신. 한때 전 우주를 넘나드는 막강한 권능을 지닌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찌꺼기만이 남았던 우라노스와 메타트론, 바알 등이 그러했다.

연우는 칠흑왕의 내면에서 그러한 굴레들을 수도 없이 보고 겪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군웅상들.

하지만 끝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진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봐야만 했다.

칠흑왕이 ‘꿈’에서 깨어난다는 건, 우주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을 수가 없었으니까.

예외가 있다면 ‘밖’에 존재하는 ‘밤’의 존재들 뿐.

그들은 애당초 천마가 빚어낸 창세 우주에 몸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종말을 맞이한 우주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고?

“종말이 다가올 때에 그걸 막으려고 가장 열심히 뛰어다니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막진 못했지만.”

종말을 집행하는 건, 언제나 그 ‘꿈’에서 가장 많은 한을 품어 칠흑왕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자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럴 때마다 항상 ‘꿈’에서는 꼭 한두 명씩 대적자(對敵者)가 나타나곤 했다.

이쪽을 구슬프게 바라보는 토르가 바로 그런 대적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종말과 함께 사라졌을 놈이 어찌어찌 살아남아 여기에 있다는 거지?』

“예.”

『그럼 사라진 ‘꿈’의 파편이라는 거군.』

크로노스는 그제야 어째서 녀석이 있던 자리에 마치 기워 넣은 것 같은 옛 우주의 흔적이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저 존재 자체가 절대 이 ‘굴레’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케아노스가 그랬었지. 자기 네들의 목표는 바로 ‘꿈’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놈들의 정체가 저런 파편들의 조직이라면…… 얼추 이해가 돼. 자기네들의 것은 이미 사라졌으니, 다른 거라도 가져가겠단 거잖아? 유랑민다운 발상이긴 한데, 조금 짜증 나는데?』

파직, 파지지직!

그때, 녀석의 몸에서 샛노란 뇌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검뢰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위력.

대기가 요동치면서 붉은 바다가 이리저리 출렁이다가 단숨에 증발되었고, 하늘에서부터 수도 없이 많은 뇌전이 소나기처럼 빗발치기 시작했다.

막대한 신력이 퍼지고 있었다.

[전장을 살피던 케르눈노스가 눈을 가늘게 좁힙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대한 신력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갑니다!]

[구성을 알 수 없는 신력의 등장에 많은 신들이 경악합니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많은 악마들이 경계심을 표합니다!]

……

[신의 사회, ‘데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력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신의 사회, ‘멤피스’가 ‘올림포스’를 막으며 새로운 동맹군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보입니다.]

……

[악마의 사회, ‘절교’ 내에서 신력의 주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신과 악마들이 저마다 반응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크로노스는 여전히 짜증 섞인 투로 녀석을 보고 있었다.

『너나 내가 이렇게 뭐 빠지도록 고생하면서 겨우 ‘굴레’를 막아 뒀더니, 그걸 날름 가로채겠다는 게 아니냐?』

순간, 연우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 말씀은 똑바로 하셔야죠. 아버지가 한 게 아니라 제가 한 거 아닙니까? 숟가락 얹으려 들지 마십시오.”

『야! 나도 지분 있지!』

“없습니다.”

『이놈이! 너 애먼 데 정신 팔리지 말라고 내가 말벗이라도 안 되어 줬으면 진즉에……!』

“시작하죠.”

『야!』

연우는 크로노스의 말허리를 도중에 자르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크로노스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다시 검의 형태로 돌아가 연우의 손에 잡혔

합일(合一)!

화아아아!

이미 ‘황’ 급에 다다른 존재와 신왕의 위를 복구한 존재가 하나로 합쳐지자, 사방으로 발산되는 신력의 폭풍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대한 압력을 버티지 못한 행성이 그대로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그림자가 내려오면서 연우와 토르를 심상 세계에 가두었다.

[인스턴스 던전, ‘칠흑과 황금의 뇌방(雷房)’에 입장했습니다!]

“원래는 되도록 당신이 깨어나기 전에 전부 처리하고 조용히 이 ‘꿈’을 떠나고 싶었습니다만.”

토르는 신력이 충만하게 실린 양손을 좌우로 크게 뻗었다.

오른손에는 양. 왼손에는 음.

양극의 기운이 극단적으로 압축되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 정도였다.

“그게 여의치 않게 되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저희도 강제 집행을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쾅!

토르는 쓰게 웃던 그대로 양손을 앞으로 끌어모아 크게 박수를 쳤다.

마치 불가에서 갖추는 합장과도 비슷한 자세.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쌍극파벽(雙極破降)〉

콰아아앙-

양극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폭발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심상 세계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크게 휘청거리고, 뇌전 폭풍이 연우를 잇달아 내리쳤다.

창조신들을 여럿 먹어 치웠던 제우스보다도 훨씬 대단한 폭발력. 아니, 비교조차도 불가능했다.

『이거 어쩌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크로노스의 혼잣말과 함께.

[용신안]

[화안금정]

[검붉은 구비타라 - 현자의 눈]

[천안통]

연우는 눈을 활짝 뜨면서 뇌전 폭풍 사이로 빚어지는 결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검붉은 구비타라]

[브레스]

비마질다라가 남겨 준 권능을 발동하면서 브레스의 형태로 풀어내자, 뇌전 폭풍이 그대로 갈려 나가면서 토르가 있는 곳을 후려쳤다.

공간이 그대로 갈가리 찢겨 나갔다. 심상 세계가 온통 새하얀 빛으로만 가득했다. 토르는 죽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에서도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머뭇거림 없이 위쪽으로 스퀴테를 쳐올렸다. 공간이 갈라지면서 토르가 나타나 있었다. 한 손에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금색 망치를 든 채로.

〈묠니르〉

쩌어어엉-!

웅장한 소리와 함께, 신력(神力)과 신력(身力)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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