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다른 꿈 (3)
띠링!
[사라진 ‘꿈113,223,188,489’의 대적자가 출현했습니다!]
[이번 ‘꿈’에 절대 나타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에 대한 판별을 재개합니다.]
[시스템 오류.]
[시스템 오류.]
……
[시스템이 해당 대상을 새롭게 판별합니다.]
……
[여러 조건들을 추가 확인, 해당 대상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갱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업데이트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재출력합니다.]
[시나리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 대적항쟁 (對敵抗爭)]
설명: 수도 없이 많은 ‘꿈’의 망망대해를 유영하던 당신은 한참을 헤매던 끝에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원래의 ‘꿈’에 돌아오는 데 성공하고, 또한 ‘잠’을 유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꿈’에서 당신이 바라는 소망을 성취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꿈’에서 그동안 당신의 다른 자아를 괴롭히던 대적자(對敵者)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대적자는 보통 신이나 악마보다도 높은 깨달음을 얻어 자체적인 고유성(固有性)을 획득했고, 이를 통해 ‘꿈’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불 안정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 자신만의 ‘피안(彼岸)’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피안을 만들 재료는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과 관계상 퀴리날레의 유산이 당신에게로 전해질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꿈’의 대적자는 이번 ‘꿈’에서도 또다시 칠흑왕의 자아와 대적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대적자로부터 퀴리날 레의 유산을 보호하세요.
제한 시간: -
제한 조건: 칠흑왕의 자아
보상:
1. 퀴리날레 유산의 완전한 소유권 획득
2. 퀴리날레와 관련된 비사(秘史) 획득
연우가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대적자.
그것은 익히 연우도 알고 있는 개념이었다.
‘꿈’이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즈음 칠흑왕의 자아는 항상 종말을 갖고 오기 마련이고, 이것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존재에게 흔히 ‘대적자’라는 호칭이 수여된다.
대적자는 보통 하나의 ‘꿈’에서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여러 명에 걸쳐서 나타나며, 보통 천마의 선택을 받아 활동을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천마의 가호가 뒤 따르는 경우가 많았으니, 칠흑왕의 자아와 완전한 대치를 이루는 셈이었다.
‘칠흑왕이 깨어나면서 시켰던 대리 전쟁은 매번 새로운 종말을 맞을 때마다 있었던 거겠지.’
물론, 그중 누구도 결국 종말을 막아 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이따금 드물게도 대적자가 없이 종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번 ‘꿈’, 연우가 있는 이 우주가 그랬다.
‘이건 좀 이상했어. 천마의 혈육인 비바스바트가 그 포지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으니까. 어째서일까?’
물론, 천마의 생각을 뜯어볼 수가 없으니 그 속내를 알 방도는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여러 차례 있었던 대적자들은 종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도 모두 ‘꿈’에 종속된 이상, ‘꿈’이 끝난다면 존재도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우도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 내용이 맞다면, 그중에서 극소수의 몇몇은 살아남는 모양이었다.
오롯이 ‘황’의 자리에 올라 고유성과 독립성(獨立性)을 확보하고, ‘꿈’에서부터 떨어져 나간 존재들. 아니, 아주 작은 조각들.
“이렇게 부딪치고는 있지만, 사실 저는 당신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쿠쿠쿠쿠……!
스퀴테와 묠니르. 각 ‘꿈’에서 최강자 반열에 오른 신병(神兵)이 한 치도 밀려나지 않을 것처럼 거칠게 떨리는 와중에.
토르는 담담한 얼굴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칠흑왕에 대한 원한은 크지만, 어차피 이곳은 저희들의 ‘꿈’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그냥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거래를 하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글쎄. 일을 이딴 식으로 꾸며 놓고서 믿어 달라니. 헛소리도 제법이군.”
연우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애당초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일을 꾸민 놈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토르는 안타까운 얼굴로 중얼거렸지만,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신력을 더 크게 끌어 올렸다.
[신력이 확장됩니다!]
[해당 대상의 흐릿했던 존재감이 확정되었습니다.]
[세계가 해당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파지지직!
쿠쿠쿠쿠-
뇌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검붉은 뇌기는 심상 세계를 강제로 찢어 놓았고, 황금색 뇌기는 그것을 더 크게 벌렸다. 이미 심상 세계는 몇 차례나 붕괴되었다가 수복되길 반복하고 있었다.
『화력은…… 비슷한 건가?』
크로노스는 충돌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더 크게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토르의 실력은 여태 그가 칠흑왕의 내면에서 보았던 수많은 자아들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힐 만큼 강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아무리 ‘황’ 급에 올랐다고 해도, 결국 붕괴된 ‘꿈’을 막지 못한 낙오자에 불과하지 않나?』
종말을 자행한 칠흑왕의 자아를 막지 못했다면, 결국 그것을 꺾은 연우와 이렇게 대등한 싸움을 하지 못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더 스스로를 단련한 것일 테죠.’
연우는 어쩐지 그 이유를 잘 알 것만 같았다.
녀석에게서 풍기는 신력에서.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신화에서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종말을 막기 위해 대적자로서 뛰어다닐 때에도, 종말 후 낙오를 하고 나서도, 절치부심 단련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이 ‘꿈’에 떨어지고 나서 더 이를 악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곳은 그가 있던 고향이 아닐지니. 오갈 곳이 없어진 채로, 정처 없는 유랑민이 되어 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달리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녀석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마 끝도 없는 투쟁을 거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우는 수상쩍게 속내를 감추고만 있는 녀석들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자신 역시 투쟁의 역사에 있어서는 절대 밀리지 않노라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7차 용체 각성]
[권능 전면 개방]
[하늘 날개]
왼쪽 날개에는 투쟁을 담고.
오른쪽 날개에는 죽음을 열면서.
하늘 날개와 함께 용인으로 변모를 마치면서 스퀴테를 빠르게 휘몰아쳤다.
‘화력이 비슷하다면 그걸 더 높게 끌어 올리면 되잖습니까.’
위이이잉!
연우는 그 자리에서 검뢰를 더 세게 끌어 올렸다. 칼날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막대한 마찰열이 더해지면서 위력이 배로 증폭되었다.
콰르르릉-
[검뢰팔극]
그리고.
콰콰콰콰!
[팔극검 신로(新路)]
[극의순행(極意順行)]
스퀴테의 방향은 변화무쌍했다. 좌측으로 돌아간다 싶으면 어느새 오른쪽으로 겹쳐지고, 원호를 그린다 싶으면 대각선으로 방향을 기괴하게 꺾어 올랐다.
그 안에는 회전의 묘리가 가득 담겨 있었으니.
거기서 일어나는 검뢰는 회전력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기가 몇 번이나 찢겨 나가면서 토르도 계속 뒤로 튕겨 나야만 했다.
그것은 언젠가 연우가 무왕에게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되, 달랐다.
-너에게 있어 무(武)는 무엇이냐?
-나는 무극(無極)이다. 끝이 없단 뜻이지. 왜냐고? 보면 모르겠냐. 그만큼 강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끝도 없이 강해질 테니 무극인 거다. 마찬가지로 대장로는 혈뢰(血雷)야. 얼굴 봐라, 봐. 피 좋아하게 생겼잖아. 벼락처럼 빠르기도 빠르고.
-아, 거참! 귀는 더럽게 밝아서는……!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하여간. 네놈도 언젠가…… 한 백 년? 천 년쯤 지나면 이 존경스러운 스승님과 비슷한 눈높이를 볼 수 있을 거란 말이지. 그때 알게 될 거다. 무(武)라는 것은 길이라고.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다 고만고만한데, 그 뒤부터는 전혀 다르거든.
-오로지 너만이 밟아야 하고, 너만이 개척해야 한다. 끝은 없기에 오로지 보이지 않는 길을 하나하나씩 묵묵히 두들겨야 하는데…… 그게 참 지랄맞단 말이지.
팔극검은 총 여덟 개의 초식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들을 각각 대성했을 경우 숨겨진 여덟 개의 비기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이것들을 완성하게 되면 하나로 합쳐져 오의가 열리게 되니.
연우에게 있어 그 길이란, 음검이었다.
그리고 검뢰였다.
하지만 검뢰는 그가 그동안 잡다하게 익힌 수많은 기술들을 하나로 엮은 것. 거기에 미후왕의 허물이 손을 대면서 변화한 것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자신의 것이되 아직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우는 수도 없이 반복되는 여러 ‘꿈’ 속에서 검뢰팔극을 부단히도 펼쳐 댔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싸움만 벌이고 있으니, 정신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던 나머지 뭐라도 집중하기 위해서 갈고 닦았던 것도 있었지만.
무왕이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에 보였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봤냐?
그때 보았던 걸 똑같이 따라 하고 싶었다.
아니, 그것을 더 능가하고 싶었다.
그래서 ‘꿈’에서 몇 번이고 반복했고, 검뢰를 계속 가다듬었다. 그러다 점차 검뢰는 음검과 뒤섞이고, 음검은 팔극검과 다시 합쳐졌다. ‘팔극검 신로’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었다.
채채채챙!
물론, 거기서 그칠 연우가 아니었다. 팔극검 신로는 다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갔으니. 여태껏 체질적으로 합칠 수 없었던 양도도 수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게 가능했다면 무왕은 일찍이 태극혜 반고검을 손에 쥐었을 테니까.
하지만 연우에게는 무왕에게 없던 것이 있었다.
‘꿈’.
지금 그가 있는 우주와는 전혀 다른 가능성과 선택지들이 담겨 있던 곳들. 거기서 얻은 새로운 지식들과 식견들은 또다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고, 연우는 그것들을 미친 듯이 탐독해 나갔다. 적용해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변 곳곳에 싸울 것들 천지였으니.
그렇기에.
연우는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
[태극혜 반고검]
이전에는 인위적으로 크로노스에게 강제로 양도를 할당해야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을, 드디어 그의 손으로 완벽하게 빚어냈던 것이다.
촤촤촤촤!
하나하나가 법칙을 가르고, 부수고, 재단하는 칼질. 소호 금천이 자신의 후손, 외뿔부족에게 남겼지만 애당초 그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던 무공이 드디어 제대로 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소호 금천이 남긴 태극혜 반고검과는 또 형태가 많이 달랐다. 팔극검 신로에서 펼쳐진 것이다 보니, 전혀 다른 이질적인 모습을 뗬던 것이다. 위력도 초식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따다다당!
토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있던 세계에서 군신(軍神)으로 유명했던 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신의 무위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았다.
묠니르를 다루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할 만했다. 분명 증폭되는 검뢰를 완전히 쳐 낼 힘은 부족했지만, 부족분은 전부 그만의 역량으로 채우고 있었다.
올려 치고, 비껴 치고, 후려친다. 스퀴테가 허리춤을 갈라 온다 싶으면 옆으로 밀쳐 내고, 거기서 와류를 그리며 위로 쳐올리면 뇌기를 터뜨려서 방향을 도중에 꺾어 버렸다.
그러다 빈틈이 보인 순간, 그쪽으로 묠니르를 거세게 밀어 넣었다.
콰아앙!
묠니르는 단번에 연우의 우측 어깨에 작렬했다. 눈이 멀 것처럼 샛노란 뇌전 기둥이 그대로 내리꽂히면서 오른쪽 팔이, 아니, 우측 몸뚱이가 통째로 터졌다.
[‘만능 복원’이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 전혀 아랑곳할 연우가 아니었다. 머리를 포함한 신체가 날아가는 것쯤이야 이미 마성과의 싸움에서 숱하게 겪어 봤던 게 아니던가.
그의 데이터는 이데아에 백업이 되어 있는 상태. 본체만 무사하다면 폴리모프야 얼마든지 다시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몸이 부서진 지금과 같은 때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상대는 자신이 크게 다쳤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방심하는 순간을 노리는 게 유효타로 제격이었다.
팟!
그래서 축지를 활용해 재빨리 토르의 뒤쪽을 점했고.
녀석이 흠칫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기 직전에 스퀴테를 그대로 얼굴 쪽으로 찔러 넣었다.
퍽!
스퀴테의 칼끝이 토르의 미간을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검신에서 삐져나온 검고 붉은 뇌기가 남은 녀석의 전신을 송두리째 태웠다.
퍼어어엉!
토르의 신체가 풍선처럼 터졌다. 열 폭풍이 팽창하면서 벼락이 잇달아 쏟아졌다. 검은 재도 자욱하게 흩날렸다.
누가 봐도 죽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지만.
『위!』
연우는 크로노스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저와 겨뤘던 칠흑왕의 자아도 이렇게까지 저를 밀어붙이지는 못하였었는데…… 대단하십니다.』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 타계의 신들과 비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덩치였다. 포악성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코끼리로 보이기도, 소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대한 꼬리도 지니고 있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으니.
베헤모스. 종말과 함께 찾아온다는 세 마리의 짐승 중 한 마리가 모습을 비친 것이다.
연우는 천안통을 열고 있었기에 그것이 토르의 본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종말을 막는다는 대적자가 종말의 짐승의 형태를 뗘? 저게 말이나 되는 짓이야?』
크로노스는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이런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는 건, 저로서도 인과율을 너무 많이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짓이지만…… 어쩔 수 없겠지요.』
토르는 이쪽으로 떨어지면서 아가리라 생각되는 부분을 크게 젖혔다. 공허처럼 시커먼 무저갱이 활짝 열리더니, 거기서부터 거친 숨결이 쏟아졌다.
화르르륵!
샛노란 숨결은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렸다.
그나마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심상 세계까지.
와장창창, 와르르르-
[인스턴스 던전, ‘칠흑과 황금의 뇌방’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습니다!]
[현실에 강림합니다.]
『없어…… 졌나? 그래서는 곤란한데.』
우주 한복판. 토르는 수많은 별들을 녹여 버린 뒤에야 숨결을 멈추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기감을 확대해 연우의 기척을 찾아 보았지만,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 아차 싶었다. 여태껏 보았던 연우의 힘을 생각했을 때 승부가 도저히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전력을 다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죽어 버릴 줄이야.
물론, 칠흑왕의 자아이니만큼 소멸은 하지 않겠지만, 아마 자아를 원상태로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백치가 되어 버렸거나.
퀴리날레의 유산을 회수해야 하는 그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라, 다른 동료들에게 뭐라고 변명을 하나 싶던 그때.
『가뜩이나 인과율도 부족한데, 귀찮게 만들어?』
갑자기 뒤편으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토르는 한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보다 먼저 목소리의 주인이 토르의 목덜미를 거세게 물어뜯고 있었다. 웬만한 은하보다도 더 큰 자신보다도 최소 몇십 배는 더 클 것 같은 용…… 아니, 새로운 짐승이었다.
언젠가 토르가 조직의 수장으로부터 들었던…… 여러 종말들 중에서도 마지막 종말에나 찾아온다는 짐승이 그곳에 있었다.
‘묵시룡(默示龍)!’
콰직!
콰드드득-
가죽이 뜯기고, 목뼈가 돌아갔다. 영혼이 짜부라졌다. 신화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토르는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