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35화 (735/862)

10화. 다른 꿈 (7)

“으하하하! 오랜만이구나, 애송아! 못 본 사이에 꽤나 많이 유명해졌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거 정말 대단해졌잖아? 길 지나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는데?”

사타왕은 연우를 보면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신력을 대체 얼마나 실은 건지 너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우르르!

하지만 격동하는 세상을 보면서도 올림포스 신들이며 천교의 신들까지 모두 인상만 찡그릴 뿐, 거기에 대해서 크게 따지진 않고 있었다.

아니, 따질 수가 없었다.

비록 저들이 활약한 건 한창 전쟁이 무르익고 있을 때 즈음 등장한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저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평천대성 우마왕.

복해대성 교마왕.

혼천대성 붕마왕.

이산대성 사타왕.

통풍대성 미후왕(彌侯王, 손오공의 미후왕과는 한자가 다름).

구신대성 우융왕.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는 제천대성 미후왕 손오공까지.

흔히 묶어서 칠대성(七大聖)이라고도 불리는 존재들은 천계에서도 모르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사실 그들은 모든 천계의 사회들을 통틀어 가장 적은 숫자이면서도, 손에 꼽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알려져 있었다.

그들이 전면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경’이라 불리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은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따금 한 번씩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전혀 달랐다.

평지풍파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주 많은 것들이 쓸려 나갔으니. 여러 사회들은 그들과 엮이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특히 동주칠마왕의 우두머리, 우마왕이 밖으로 나서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그 때문일까?

올림포스 신과 천교 신들 모두가 동주칠마왕을, 특히, 가장 뒤에서 여유롭게 서 있는 우마왕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별다른 기세를 흘리지 않고,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허리 굽은 노인으로만 보일 뿐이었지만.

천안통과 천이통을 동시에 열고 있는 연우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쿵.

심장이 조금 내려앉는 기분. 스승 무왕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와 힘의 격차가 나서가 아니었다.

정말 저런 존재가 실재하는 게 가능할까 싶어서였다.

최초의 짐승이자, 황이었다던가?

‘밤’의 무질서한 신력이 뒤엉켜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낮’의 존재처럼 체계가 잡혀 있었다. 연우로서도 도저히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좀처럼 파악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군림보의 초기 버전인 우보(牛步)를 천마에게 가르쳐 주었던 게 우마왕이었다고 했으니.’

[헤르메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우마왕입니다. 그가…… 모든 전투를 무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헤르메스의 설명에 따르면, 한창 전쟁이 무르익던 중에 동주칠마 왕이 개입했다고 한다. 그들이 개입하면서 천교 쪽으로 기울던 균형추가 완전히 평형을 이루었고, 마지막으로 우마왕이 나서면서 확 꺾였다고 한다.

[헤르메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딱 한 걸음이었습니다.]

[헤르메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저희에게…… 완패를 안기는 데 필요한 건 그게 고작 이었습니다.]

‘저 흔적들이 전부 우마왕이 남긴 거였나?’

한 걸음. 아무래도 우보라도 밟았던 모양이었다. 올포원이 발휘했던 군림보만 해도 천계를 통째로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는데, 원주인인 그가 나섰다면 이리 전부 망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잡을 수 있을까?’

한순간, 연우는 우마왕의 기량을 가늠해 보고자 했다.

통천교주는 분명히 이블케 일당이 동주칠마왕의 손님이라고 했다.

대체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이블케 일당을 잡으려면 우선 우마왕부터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천안통으로 지정 대상을 면밀하게 스캔합니다.]

[천이통으로 지정 대상의 성질을 파악합니다.]

[분석 실패.]

[재차 분석을 시도합니다.]

[분석 실패.]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

[지정 대상은 감지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원인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보이질 않아.’

아무리 우마왕의 영혼을 구석구석 살펴도, 그 역량을 도저히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자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약점이 어디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튕겨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데이터가 없는 것처럼 나왔다. 분명히 이 ‘꿈’에서 연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파악하지 못할 대상은 거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던 그때.

씩!

우마왕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마치 자신의 생각 따윈 모두 짐작하고 있다는 것처럼.

소처럼 맑은 눈을 보고 있노라니, 연우는 오히려 자신이 도로 역으로 그에게 읽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한 발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뭐야? 지금 나 무시 당한겨, 시방?”

사타왕은 연우가 우마왕만 살피고 있을 뿐,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거칠게 콧김을 뿜었다.

그로서는 안면이 있는 연우가 이곳에 찾아와 반갑기도, 호승심이 들기도 해서 말을 건 것인데 대놓고 무시를 당한 셈이니.

그래서 잔뜩 열 받은 얼굴로 연우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어딜 가려는 거야, 멍청아? 여기가 네가 나설 군번은 될 것 같아?”

그때, 동주칠마왕 중 셋째이자 홍일점인 붕마왕이 사타왕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내가 뭘!”

“보면 모르겠니? 네가 가면 그냥 처발리기밖에 더 하겠어?”

“그걸 해보지도 않고 알아?”

“응. 잘 알아.”

“그래도……!”

“그러니까 좀 짜져 있으라고. 큰 오빠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나대?”

“…….”

사타왕은 그제야 우뚝 멈춘 채로 우마왕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안하무인인 그였지만, 유일하게 우마왕에게만큼은 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마왕은 여전히 웃고만 있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가 뭐라고 말을 붙여 보려는데.

휘휘휘!

그 순간, 연우의 그림자가 꿀렁이면서 미후왕의 허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동주칠마왕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저건?”

“막내가 남긴 껍질 같은데?”

붕마왕이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혀로 입술을 다시는 동안.

미후왕의 허물이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양반들아! 마경에나 있을 것이지, 여기는 대체 무슨 콩고물을 얻겠다고 와 있는 거야?』

미후왕의 허물로서는 동주칠마왕이, 그것도 우마왕을 포함한 그들 전체가 절교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동주칠마왕은 한때 천교와도, 그리고 절교와도 척을 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대립을 한 곳을 말하라 한다면 절교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니. 그건 본체인 미후왕이 한창 활약하고 다니던 시절-흔히 천축행이라고 불리는, 삼장법사 등과 함께 하던 시절-에 주로 싸웠던 대상이 절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천마와 절교 간의 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동주칠마왕은 통째로 천마의 편을 들어 주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손을 잡고 있으니. 그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혹시 본체와도 관련되었나 싶기도 했지만, 어디서도 본체의 향이 느껴지질 않으니 본체와는 전혀 무관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질문을 들은 동주칠마왕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몇몇은 움찔한 표정이 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우마왕의 눈치만을 살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미후왕의 허물이 답답한 심정을 참지 못하고 뭐라고 소리를 치려는데.

“이 늙은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우마왕이 드디어 입을 뗐다. 나지막하면서도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모든 이들의 귓가에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미후왕 허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영감이? 뭐 때문에?』

“구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허허. 그냥 맨입에 말해 주려니 입이 심심하구나.”

『아 쫌!』

“그런 게 있단다.”

『아, 씨……!』

미후왕의 허물은 우마왕이 저리 허허롭게 말해도, 절대 말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마왕의 고집이 얼마나 심한지를 그가 모를 리 없었으니까. 괜히 ‘쇠고집’이라는 말이 생겼겠나.

우마왕은 혼자서 약이 바짝 올라 발을 동동 구르는 막내의 허물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여전히 자신을 잔뜩 노려보고 있는 연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심이 어떠신가?”

아주 잠깐, 연우는 우마왕을 더 면밀하게 살피다가 한 발 더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그를 탐색해 봐도 승부를 완전히 점칠 수 없는 데다가, 일단은 이쪽의 피해가 크니 숨을 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미후왕의 허물도 따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고.

“……알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내 나중에 이 일은 잊지 않고 배로 쳐줌세.”

순간, 연우의 눈가로 이채가 스쳤다.

빚을 갚겠다는 말.

그냥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우마왕쯤 되는 인물이 하는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의사를 은연중에 흘리는 것이기도 하니. 연우는 그 말을 ‘이블케 일당의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일단 놈들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알았으니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지. 다만, 접근 방법은 달리 바꿀 필요가 있겠어. 절교와 동주칠마왕, 이블케 일당…… 이들 세 곳이 함께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도 알아봐야 할 거고.’

이미 연우의 머릿속에는 이후에 해야 할 일들과 계산이 차곡차곡 맞춰지고 있었다.

“그럼 멀리 배웅하지는 않겠네. 다음에 보세나.”

우마왕은 싱긋 웃으면서 가볍게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탁!

가벼운 동작에 불과했지만, 결과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두우웅-

올포원-비바스바트가 군림보를 발현했을 때처럼.

범종이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와 함께 지면을 따라 파문이 길게 그려졌다.

그리고.

[‘우보’가 전개됩니다!]

[특정 공간이 설정되었습니다.]

[‘파초선’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정 공간이 이동됩니다.]

화아아-

어디선가 바람이 확 불어오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휙!

한순간, 연우와 올림포스, 천교를 포함한 공간이 살짝 흔들린다 싶더니, 통째로 전이되었다.

[‘천교’의 본영, ‘곤륜산’에 입장하였습니다!]

“허……!”

“……단박에 우리를 통째로 이곳으로 보내다니.”

“역시 우마왕은 우마왕인가.”

천교의 신들은 눈 깜짝할 새에 자신들의 본영으로 되돌아와 있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특히 이랑진군을 포함한 삼신장의 표정이 좋질 않았다.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우마왕이 본영의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때에 따라서는 그도 얼마든지 아무 방해 없이 이곳으로 입장할 수 있단 뜻이었으니까.

굳이 그들을 단번에 이곳으로 보낸 것은, 그가 절교에 있는 동안에는 절대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단은 향후 대책에 대해서 논의토록 하지.”

연우가 삼신장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알겠노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혹시 오래전에 우리가 거래했던 내용, 기억나는가? 동맹을 맺으면서 했던 거래 말이다.”

이랑진군은 휘하의 신들에겐 우선 쉬도록 명령하고, 중심지인 현도로 연우 등을 안내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연우는 아주 오래전의 기억 속에 묻힌 사실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탐욕의 돌을 찾는 걸 도와 달란 거였지, 아마?”

망자 거인들을 각성시키고, 기어 다니는 혼돈을 토벌하러 움직일 당시.

연우와 이랑진군 간에는 조건부의 동맹 계약이 이뤄졌다. 천교는 연우의 세력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반대로 연우는 천교의 탐색을 돕기로. 그리고 마지막엔 서로에게 계륵이나 다름없는 순결의 돌과 탐욕의 돌을 교환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 연우가 올포원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약속은 계속 뒤로 밀렸고, 옥황상제가 제우스에게 잡아먹히면서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다 연우가 칠흑왕 속에 저물면서 잊히기까지 했고.

이랑진군은 그것을 거론한 것이다.

“맞아. 본 교, 절교, 동주칠마왕…… 셋 다 뒤엉켜서는 그것을 찾고자 엄청 싸워 댔었지. 한데, 문제가 생겼다. 탑이 붕괴되면서 그 장소도 완전히 무너졌던 거였지.”

“……그런가?”

“물론, 그대를 원망할 생각은 없어. 당시에 우리도 자네를 거들기도 했으니. 여하튼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탐욕의 돌이 묻힌 장소가 나타난 것이지.”

순간, 연우의 눈이 반짝였다.

“절교와 동주칠마왕이 손을 잡은 건가?”

이랑진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다. 비록 절교와 싸우면서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들이 언제부터 손을 잡았을지는 우리도 모르고 있고.”

‘이블케의 솜씨로군.’

한숨을 내쉬는 이랑진군과 다르게, 연우는 두 곳이 손을 잡은 것이 그리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어 봤자 십 년쯤. 탑이 무너지고, 이블케 일당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증거는 없지만, 여태껏 그가 봤던 이블케는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꾸미는 걸 좋아했다.

‘피안…… 인지 뭔지 하는 걸 만든다고 했었지. 그게 탐욕의 돌을 찾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그와 다른 게 있는 걸까?’

여하튼 연우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정보인 셈이었다.

‘다만, 문제는 우마왕 등을 어떻게 상대하느냐인 건데.’

통천교주가 돌아온 절교.

우마왕이 있는 동주칠마왕.

그리고 짐승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이블케.

세 곳을 함께 상대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현재로서는 탐욕의 돌을 내가 가로채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

연우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대체 탐욕의 돌이 있다는 곳이 어디지?”

“려의 무덤일세.”

“려? 효마(曉魔) 치우(蚩尤)?”

“그렇다네.”

“……!”

려. 효마 치우는 천마의 얼굴 중에서도 시초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연우로 하여금 창공 도서관으로 가게 해 주었던 조각의 원주인이기도 했으니.

“그게 무덤이 있었나?”

연우가 놀란 눈이 되어 되물었고, 이랑진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뭐라고 답변하려 했다.

그때, 별안간 그림자에서부터 미후왕의 허물도 놀란 얼굴을 한 채로 불쑥 나타나 반문했다.

『잠깐만. 분명히 거기에 본체가 있을 텐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