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50화 (750/862)

25화. 혼세팔신 (8)

『엄마!』

정우의 사념체가 가장 먼저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영혼과, 그와 함께 있는 어머니를 찾았으니까!

〈하늘 날개〉

정우의 사념체는 하늘 날개를 한껏 펼치면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크로노스도 마찬가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인상을 팍 굳히면서 곧장 뛰어오르는 모습에서는 간절함이 잔뜩 묻어났다.

아가레스도 잔뜩 들뜨긴 마찬가지였다.

『가자! 어서! 내 걸 찾아야 하지 않겠나!』

멍!

『뭐? 쓸데없이 방해할 생각하지 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 것을 내가 찾으러 가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

멍멍!

『가족 상봉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니! 이 말도 더럽게 안 듣는 개가!』

방해하지 말라는 펜리르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 정우의 사념체와 크로노스는 단숨에 공간을 격해 영혼과 레아가 있는 결계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손만 뻗치면 닿을 수 있을 그때.

휘이이이!

별안간 아래쪽에서부터 강렬한 기파가 응집되나 싶더니.

쿠르릉!

검뢰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매서운 기세.

『형! 대체 무슨 짓을……!』

정우의 사념체는 뒤를 돌아보다 말고, 연우가 갑자기 이쪽으로 공세를 취하자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황급히 크로노스와 동시에 좌우로 거리를 벌리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다 말을 그쳐야만 했다.

연우의 시선이 자신들이 아닌, 영혼과 레아의 뒤쪽에 향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검뢰가 저 너머의 허공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었다.

쿠르르르-

쩌저적!

그렇게 갈라진 공간의 틈새 너머로, 짙은 공허가 활짝 열리면서 단숨에 새카만 무언가가 왈칵 아래로 쏟아졌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어마어마하고도 아득한 격의 향연과 수 많은 시선에, 정우의 사념체는 등골을 쭈뼛 세워야만 했다.

『이건……!』

『설마, 칠흑이?』

크로노스도 두 눈을 부릅떴다.

새카만 어둠.

칠흑이었다.

[칠흑이 내려옵니다!]

[수많은 마성이 열렸습니다.]

[종말이 시작됩니다.]

아. 버. 지!

아. 버. 지!

연우의 그림자도 크게 출렁였다. 연우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성질을 지닌 마성들의 시선을 보게 되자 잔뜩 흥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우의 그림자를 벗어나거나 하는 존재들은 없었다.

저곳에 칠흑이 있다고 해도 이곳에도 칠흑은 있으며, 그들이 인정한 진짜 칠흑의 주인은 바로 그였으니까.

그사이.

세상이 단숨에 새카만 칠흑으로 물들면서 마성들이 대거 이쪽으로 쏟아졌다. ‘꿈’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나면서 칠흑으로 완전히 흡수되고, 원래 경계 밖이었던 공간은 이제 칠흑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세상 모든 것이 칠흑이었고, 곳곳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이 전부 마성이었다.

연우는 일행들이 칠흑에게 상해를 입지 않도록 단숨에 격을 발 산해서 그들을 그림자 안쪽으로 밀어 넣는 한편, 심상 결계를 형성해서 모든 저주 등도 튕겨 냈다.

정우의 사념체는 연우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를 하면서 하늘 날개를 더더욱 크게 키워 영혼과 레아가 있는 결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쾅!

『젠장!』

하지만 결계는 정우의 사념체를 다른 존재로 인식했는지 해제되지 않고 도리어 그를 강하게 튕겨 냈다.

손만 닿으면 바로 영혼과 하나로 합쳐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정우의 사념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어떻게든 결계를 해제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 날개를 응용한 코드로 결계가 구성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도저히 방법이 쉽게 보이질 않았다.

퀴리날레…… 퀴리날레의 권능이었다.

영혼이 어머니의 데이터를 읽어 내면서 결계를 구성한 까닭에, 퀴리날레를 접하지 못한 사념체는 당연히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영혼이, 어머니가 있건만……!

손을 쓰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악물게 만들었다.

아주 재미난 것들이 많이 보이는구나.

‘나’에게서 뿌려진 것들도 많이 보이고.

호오! 저기 있는 ‘나’는 이제 저기 있는 ‘나’와 비견할 만할 것 같은데?

활자들은 그런 정우의 사념체를 놀리듯이 정신없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다가, 연우가 있는 곳으로 툭 떨어졌다.

연우는 그런 활자들 너머 서 있는 한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다른 마성들에 비해 크기는 훨씬 작은 녀석.

이렇다 할 위세도 풍기지 않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모든 마성들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가진 모순(矛盾)으로 가득한 존재.

현인은 가부좌를 튼 채로, 여전히 이목구비 따윈 없지만 웃는 듯한 느낌을 풍기면서 연우를 보고 있었다.

칠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건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

“여기 좌표는 어떻게 찾은 거지?”

연우는 레아가 남긴 사념이 있었기에 그것을 되짚으면서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반면에 현인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레아와 정우의 영혼을 놓쳐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못 찾은 걸 봐서는 계속 좌표를 물 색했던 것 같았는데…… 어떻게 연우가 도착하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올 수 있었던 걸까?

운이 좋았다.

아주…… 좋았지.

그대 역시 이제 ‘나’가 되지 않았나? 그 기질을 바탕으로 비슷한 신성이 느껴지는 곳을 쉴 틈 없이 뒤지고 또 뒤졌지. 그러다 퀴리날레의 향이 느껴졌고…… 또, 그대가 이곳으로 오려는 게 감지되었고.

그렇게 찾아냈지. 운도 좋았고.

마침 정우의 영혼과 레아가 있는 곳으로 범위를 좁혀 가고 있던 중에 연우가 움직이는 경로를 파악하고 정확한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연우는 인상을 구기면서 혀를 찼다.

그 역시 칠흑에 얽매여 있는 이상, 저들과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최대한 정보를 차단한다고 차단한 것인데, 현인의 감시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대도 이걸 바라지 않았나?

현인이 툭 하고 던진 말에 연우는 피식 실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웃음을 완전히 참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었지. 진짜로 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연우는 차갑게 한쪽 입술 끝을 비틀면서 축지를 밟아 정우의 사념체 옆으로 나타났다.

『형……!』

정우의 사념체가 흔들리는 눈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결계는 이따 풀어도 돼. 일단은 어머니 모시고 여길 나가.”

『……알, 겠어.』

정우의 사념체는 자신이 돕겠다는 고집 따윈 피우지 않았다. 현인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연우가 유독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참는 중일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우의 사념체는 다른 말 없이 영혼과 레아를 끌어안은 채로 재빨리 뒤로 멀찍이 물러섰다.

그 와중에 현인이 부리는 칠흑이 촉수처럼 낭창거리면서 정우의 사념체 쪽으로 달려들었지만.

채채채챙!

어느새 날아든 스퀴테의 칼날이 그것을 죄다 쳐 내고, 동시에 잘라 버렸다. 지이이잉!

『누가, 감히 내 가족을 건드리는 것이냐!』

스퀴테가 거칠게 울리면서 공간을 열고 연우의 손에 잡혔다. 크로노스가 내뱉는 짙은 원념이 연우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연우가 쏟아내는 분노가 크로노스에게 닿고 있었다.

원념과 분노, 두 가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면서 합일이 이뤄졌다.

가족들을 흩어지게 만든 녀석을, 그들 부자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고오오오-

휘휘휘!

연우에게서 풍겨 나는 짙은 격의 향연이 그들을 옥죄려던 칠흑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키키키킥! 재밌군, 재밌어! 역시!

그래도 저기 있는 ‘나’에게는 여태 아무도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이제 좀 괜찮은 ‘나’가 생겼단 말이지?

일단.

우리는 물러나야겠지.

칠흑왕의 자아들은 키득거리면서 일제히 물러났다. 그들은 딱히 정우의 사념체와 ‘낮’의 존재들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들로서는 사사건건 자신들을 방해하던 대적자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집행자이며 주 자아가 될지도 모르는 연우에게 딱히 밉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승부가 나는 대로 ‘나’의 입장도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렇게 거대함을 이루던 칠흑은 크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색(色)으로 물들었으니.

그 각각의 중심에서.

연우와 현인은 서로에게 흉악한 이빨을 들이댔다.

마치 노인이 몸을 일으키듯.

현인은 꾸부정한 자세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었던 허리가 똑바로 서고, 좁았던 어깨가 펴지며, 숙이고 있던 머리가 당당하게 들린 순간 그의 색은 한껏 폭발할 것처럼 들끓었다.

그것은 익히 연우가 보았던 것 이기도 했던 것이니.

‘미후왕.’

오래전에 현인에게서 느꼈던 기질이 똑같이 풍기고 있었다. 제천류 오행공의 기세가 칠흑과 뒤섞이며 더욱더 위력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쿠르릉, 쿠르르-

여기서 결판을 내는 건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이런 것도 괜찮은 것 같구나.

팟!

현인은 익살맞게 웃으면서 연우가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고.

[‘밤(녹스)’이 퍼집니다!]

연우는 그런 녀석을 향해 스퀴테를 사선으로 그었다. 검은 구비타라가 뒤섞인 검뢰가 일직선으로 쭉 뻗치면서 녀석에게로 떨어졌다.

[두 개의 자아가 거세게 충돌합니다!]

[칠흑이 뒤섞입니다!]

* * *

『젠장!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는 거지……?』

정우의 사념체는 계속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연우와 현인의 충돌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에겐 어떻게든 영혼과 어머니가 묶여 있는 결계를 해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좀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크로노스가 프네우마의 권능을 바탕으로 신왕에 올랐던 것처럼, 그와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받던 퀴리날레가 그렇게 쉽게 해독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대상에 대한 접근이 불가합니다!]

[해당 대상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우의 사념체는 영혼과 자신을 똑같은 개체로 인식하게끔 하려 시도했다. 그런다면 결계에 대한 접속 권한을 획득해 어떻게든 우회로를 확보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조차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계가 사념체와 영혼을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독립된 개체로 판별한 것이었다.

영혼은 이미 퀴리날레의 권능을 해석하면서 자체적으로 신격을 획득한 상태.

마찬가지로 사념체도 지난 업적을 바탕으로 절반이나마 신격을 획득했으니, 전혀 다른 개체로 판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격이란 곧 오롯이 서는 자. 피조물과는 전혀 딛고 있는 위치가 달랐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나야. 이것도 나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정우의 사념체는 그동안 ‘낮’의 후계자로 활동하면서 쌓았던 신력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하늘 날개를 최대한으로 키웠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만통의 특성이 예민해졌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과열되었다.

그는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를 억지로 버티면서 영혼을 읽고, 또 읽었다.

영혼이 용마안으로 레아를 읽었듯이, 그는 용마안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영혼을 읽고자 했다. 결계가 계속 접근을 막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약 접근 권한이 없다면 강제로 뚫고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부족하다면 신력을 태우고.

또 부족하다면 신화를 태우고.

또 부족하다면 신좌를.

그리고 신성을, 신앙을, 마지막에는 신격까지 송두리째 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결계 너머에 있는 영혼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저 영혼이 자극을 받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그는 스스로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사념까지 몽땅 용마안에다 쏟아부었고.

그럴수록 점차 그를 따라 감도는 배광도 점차 짙어졌다.

[불발! 해당 대상을 읽을 수 없습니다!]

[불발! 해당 대상을 읽을 수 없습니다!]

……

[불발! 해당 대상을 읽을……!]

……

[스킬, ‘하늘 날개’가 과열됩니다!]

[‘하늘 날개’의 효과로 만통의 특성이 강화됩니다. 신력 감지 및 파악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스킬, ‘하늘 날개’가 한계 이상으로 신력이 주입되었습니다!]

[주의! 스킬, ‘하늘 날개’가 한계를 초과하였습니다! 억지로 주입이 계속 이뤄질 경우, 스킬이 파훼될 수 있습니다!]

[경고! 스킬, ‘하늘 날개’와 특성, ‘만통’의 연결이 허용 범위를 훨씬 초과하였습니다! 자칫 신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경고! 신격이 위험합니다!]

[경고! 신좌가 위험합니다!]

……

[신력이 한계를 초월하였습니다! 격이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배광이 더 또렷해집니다!]

[‘낮(에로스)’의 빛이 칠흑 속 세상을 화려하게 비춥니다!]

『일어…… 나!』

정우의 사념체는 이를 악문 채로 악다구니를 썼다. 신력을 너무 쏟아부은 나머지 육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탈각을 이루면서 단단해졌던 한계마저도 이제 위태롭다는 증거였다.

『일어나라고, 새끼야!』

그렇기에 정우의 사념체는 영혼에게 소리쳤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그래서 눈을 뜨라고.

하지만.

쩌걱.

사념체의 가슴팍에서부터 그런 소리가 났다.

자그마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씨발, 잠자는 숲 속의 왕자도 아니고 언제까지 잠만 쳐 잘 거냐고, 개새끼야! 언제까지 나한테 네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할 건데!』

쩌거거걱-

빛은 여전히 쉬지 않고 과열되었고, 균열은 단숨에 빠른 속도로 육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거미줄 같은 실금은 어느새 상체를 뒤덮고, 눈 밑까지 다다랐다.

『너 때문에 억울하게 형한테 얻어맞기나 하고! 내가 억울해서! 억울해서 잠도 못 잤다고, 젠장!』

퍼어어엉!

다리 아래가 터져 나갔다. 오른팔이 부서지고, 왼쪽 얼굴이 가루가 되어 우수수 쏟아졌다.

승화(昇華).

과거 무왕이 그러했듯, 그 역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불사르며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건 팔꿈치 아래가 사라진 왼팔 하나와 오른쪽 눈뿐.

이미 시뻘겋게 충혈된 용마안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영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일어나라고!』

그리고.

『일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겨우 남아 있던 오른쪽 얼굴도 부서졌다. 가루가 힘없이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빛을 잃고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려 했다.

그 순간.

태태태태태탱!

어디선가, 단단히 묶여 있던 구속구가 일제히 부서져 열리는 소리가 났고.

쩌거거걱-

퍼어엉!

얼음처럼 단단히 맺혀 있던 결계가 폭죽처럼 터졌다.

그 속에서 정우의 영혼이 눈을 부릅뜬 채로 상체를 일으키면서 방금 전까지 사념체가 승화되던 장소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오른쪽 눈의 가루에 닿았고, 한순간 그 속에 담겨 있던 모든 데이터가 영혼 쪽으로 송두리째 빨려 들어갔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우의 영혼이 자신이 잠든 동안 사념체가 겪었던 모든 기억들을 수용하고, 복원하며, 그와 하나로 합쳐지기까지는.

뇌리 한편 속.

온통 백색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혼(魂)과 백(魄)이 뒤섞이면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설마 내가 엄마한테 형 판 거 걸렸냐?』

『패드립?』

『……들켰구나?』

『응. 또 뒈지게 맞을걸?』

『젠장!』

『나 모르겠다. 알아서 잘해라.』

백-사념체는 피식 웃으면서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고.

번쩍!

흐리멍덩했던 정우의 영혼-아니, 이제는 차정우,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존재의 두 눈에 이지가 돌아왔다.

하지만 오랜만에 깨어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우는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일어나지 말걸.”

그렇게 투덜대는 것을 끝으로.

화아아악!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온통 어둡기만 한 세상이 환해졌다. 한순간에 밝은 낮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낮(에로스)’의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낮(에로스)’이 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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