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52화 (752/862)

2화. ‘낮’과 ‘밤’ (2)

그러던 그때.

짜아악!

“아악!”

정우는 등짝을 후려치는 매운(?) 손길에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레아가 도끼눈을 뜬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가 예쁜 말 쓰랬지!”

“아, 엄마! 그래도 이렇게 한껏 분위기 세우고 있는데……!”

“이게 대체 뭘 잘했다고 자꾸 말대꾸니?”

짝, 짝, 짜악!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그만 좀 때려요! 아아악!”

정우는 울상이 되어서 그만하라고 애원했지만, 레아의 매운 손은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신격은 여전히 위태로우신 게 분명한데, 어떻게 이런 힘이 나시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정우를 더 암담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일어났나?』

“혀, 형?”

어기전성으로 전달되는 익숙한 목소리.

정우는 허리를 쭈뼛 세우면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고.

이쪽을 보면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연우를 볼 수 있었다.

『마저 이야기할 거 있지, 우리?』

“……형, 사념체가 대신 한 대 맞았잖아. 그걸로 퉁 치면 안 될까?”

『어. 안 돼.』

“아니. 그것도 나잖아! 그러니까 그걸로 쌤쌤……!”

『어. 안 돼.』

“…….”

단호박이라도 먹었나, 왜 저렇게 단호하게 자르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끝나고 보자.』

연우는 그 말만 남기고서 다시 스퀴테를 세게 움켜쥐고 현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아!

정우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대체 몇 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이제 와서 저렇게 화풀이를 해대는 건지. 어째 나이를 저만큼 먹고, 칠흑왕의 자아로서 수많은 삶도 겪어 봤다면서 저렇게 속이 좁을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저쯤 되면 대인배는 못 되더라도 소인배는 벗어나야 하는 거 아냐?

“……하여간 쫌생이.”

『다 들린다.』

“다 들으라고 한 거거든!”

정우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뻔뻔하게 나가자는 생각으로 배에 잔뜩 힘을 주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결국 형한테 얻어맞는 건 확정이니, 손해 볼 거 없다는 식으로 나서는 게 훨씬 속 편했다.

원래 그렇게 하기도 했고.

『죽을래?』

“엄마! 형이 저한테 죽고 싶냐고 협박해요!”

정우는 내친김에 레아의 등 뒤로 쏙 숨었다.

레아의 도끼눈은 이제 연우에게로 향했다.

“연우, 너! 엄마가 말했지! 동생 그만 괴롭히라고! 엄마 없는 동안에도 그러고 다녔던 거니?”

『……그건.』

“하여간……! 엄마랑 아빠 없으면 이 세상에 서로 믿고 의지할 건 너희들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잘 지내라고 타일렀는데, 정말! 말을 안 들어요!”

『…….』

“너희들, 대체 언제 철들 거니? 나이도 이제 서른이 넘었다는 애들이……!”

『저놈이 먼저 저 팔아서 그런 겁니다.』

“형이 자꾸 때리려고 하잖아요!”

“둘 다 조용 안 할래!”

『…….』

“…….”

“하여간 이따 봐. 둘다. 아주 혼날 줄 알아!”

연우와 정우는 똑같이 합죽이가 되고 말았다.

“하여간 다들 누굴 닮았는지 이리 싸워 대기나 하고!”

『어, 어어? 마누라, 그거 설마 나한테 하는 말 아니지?』

가만히 아들들이 혼나는 꼴을 재미나게 보고 있던 크로노스가 기겁하며 불쑥 끼어들었다.

물론, 레아의 도끼눈은 철없는 남편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몰라서 물어?”

『…….』

“당신이 매번 이런 식이니까 애들도 똑같이 구는 거 아냐! 하여간 당신도 이따 봐.”

자식들 때문에 졸지에 된서리를 맞게 된 크로노스가 앓는 소리를 냈지만, 레아는 절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개판이로군.

연우 가족들을 보고 있던 현인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활자를 쏟아냈지만.

그의 사념은 여전히 연우 가족에게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집행자이자, 사왕이며 칠흑왕의 자아, 그리고 ‘밤’의 주인이기도 한 연우.

대적자이자, ‘낮’의 태양으로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정우.

올림포스의 신왕이었으며 프네 우마의 후손으로서 ‘황’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던 크로노스.

역시나 부부왕이었고, 퀴리날레의 권능을 고대신 이후로 가장 잘 해석했던 레아.

하나하나가 전부 과거에 우주를 떨쳐 울렸고, 현시대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현인이 가장 갖고 싶어 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저들이 한데 뭉치는 것만큼은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골치가 아파질 게 분명했으니까.

가족이라는 것…… 혈육이라는 것……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너희들은 이만큼이나, 없던 기적마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현인은 도저히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모든 계획은 완벽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과율의 섭리를 벗어나 모든 것을 관측하고 조율하는 것이 가능한 그로서는 절대 저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만들어 놓았다.

피안(彼岸)을 만들기 위한 계획.

하지만 어째서 그 모든 계획들이 이렇게 깨지고 있는 거지……?

그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모르겠으면.”

[시간의 태엽이 맹렬하게 빨리감기됩니다!]

“알 때까지 두들겨 맞든가.”

파앗!

연우의 공세는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쿠릉, 쿠릉, 쿠르릉-

* * *

『……진짜 이따 보자.』

“엄마. 형이 저한테 이따 뒷골목으로 나오라는데요?”

『이 새끼가?』

“욕까지 하는데요?”

『야!』

“소리까지 지르는데요!”

정우는 연우가 협박하는 족족 그대로 레아에게 일러바쳤고, 그럴수록 연우의 가슴 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여전히 레아의 도끼눈은 더 높이 올라갈 뿐이었고.

결국 연우는 더 이상 말을 길게 해 봤자 자신만 휘말릴 뿐이라고 여겼는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가라앉히면서 스퀴테를 휘둘렀다.

쿠르르릉! 어쩐지 방금 전보다 훨씬 강렬한 검뢰가 내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력도 더 강해진 것 같고.

아니, 공세의 분위기 자체가 조금 전과는 많이 달랐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였으니.

그전에는 공세의 여파로 ‘낮’이나 ‘밤’의 군세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정우와 레아 등이 휘말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역력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 이상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여간. 난 이럴 때나 부려먹지. 멋있는 건지 혼자서 다 해요.”

정우는 투덜거리면서도 하늘 날개를 더 크게 활짝 펼쳤다.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연우가 자신에게 뭘 맡겼는지.

〈하늘 날개 - 최대 출력〉

〈절대권능공간(絶對權能空間)〉

화아아!

하늘 날개가 휘영청 시린 빛을 발하면서 만통의 특성을 활짝 만개시켰다.

이 세계에 있는 섭리와 법칙이, 마치 손끝에 걸린 것처럼 하나둘씩 느껴졌다.

칠흑이…… 매만져졌다.

퀴리날레의 권능은 공간을 감지하고 조율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이것이 만통 특성과 뒤섞이면서 권능에는 새로운 속성이 추가되었다.

지배(支配).

정확하게는 조작(操作)이었다.

시전자가 가진 의념을 강제로 불어넣고, 공간을 구성하는 섭리와 법칙을 강제로 조작하는 것이다.

흔히 신과 악마가 자신의 성역에서 가지는 위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할 수 있을 테지만, 범위적으로나 권한적으로나 정우 쪽의 힘이 한결 우위에 있었다.

그가 지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공간에는 주인이 있는 타인의 영역도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우르르르!

정우는 이를 바탕으로 칠흑이라는 공간을 ‘지배’하고 강제로 ‘조작’하고자 했다.

공간이 떨렸다.

칠흑이 울렸다.

마성들이 일제히 비웃음과 조롱을 던져 댔다.

키키키키킥.

잘도 미친 짓을 저지르려는구나!

이제야 겨우 갓 퀴리날레의 격을 각성하고, 권능을 깨우쳤을 것이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를 건드리려고 해?

보통 퀴리날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 아니었나? 이런 무모한 짓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흠!

이런 쪽은 보통 프네우마 놈들 담당인데…… 피가 섞이더니 성향도 바뀐 건가?

이건 또 이것대로 재미있군.

하지만 마성들은 재미있다는 듯 정우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아니면 이것도 현인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면 알아서 극복해 낼 것이라는 듯.

“괜찮…… 겠니?”

레아는 방금 전까지 철없는 아들들을 꾸짖던 엄한 어머니에서 걱정 가득한 어머니로 변해 있었다.

그녀로서는 정우가 무리를 하는 게 아닐까, 한계 이상으로 신력을 끌어 올리다 이전처럼 위험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엄마야말로, 괜찮은 거 맞죠?”

정우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레아를 돌아보았다.

그와 레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 심령이 연결되어 있었다.

자신을 구하느라 신력을 전부 소모하고 말았던 레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정우가 직접 영혼을 연결하여 힘을 나눠 주고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장 시행했던 일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정우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살짝 엷은 미소를 폈다.

“그래도 걱정되신다면 강론 좀 해 주실래요?”

“강…… 론?”

“네.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 다룰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형보단 그래도 제가 공부를 더 잘했잖아요?”

레아는 침음을 삼켰다.

그것이 아들의 배려임을 어찌 모를까.

이만큼 권능을 잘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퀴리날레의 권능에 이미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 그러니 크게 그녀에게 배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르쳐 달라는 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씨였다.

그렇기에 레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퀴리날레의 뒤를 잇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가 알고 있는 게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부모로서 자식의 본보기가 되진 못할 망정, 벌써 뒤처지고 싶지는 않았다.

“잘 들으려무나.”

그래서 레아는 자신이 그동안 머릿속에 저장하고, 정리하고, 해석하며, 발전시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천천히 읊조렸다.

퀴리날레가 가진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정우의 눈은 더욱 깊어지고.

화아아아!

그럴수록 그가 내뿜는 배광은 더 화려하게 빛났다.

[‘낮(에로스)’의 태양이 환하게 세상을 비춥니다!]

[퀴리날레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습니다.]

[퀴리날레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습니다.]

…….

[공(空)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격이 상승합니다.]

[업이 쌓입니다.]

[신성을 추가 획득하여 완전한 초월을 이뤘습니다!]

……

[칭호가 ‘낮(에로스)’의 후계자에서 ‘낮(에로스)’의 주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우는 칠흑 곳곳으로 의념을 투사하면서 일대 공간을 장악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조작하고자 했다.

왼손을 활짝 펼쳐 수평으로 놓았다.

[퀴리날레의 권능이 작동합니다!]

[특정 공간을 장악하였습니다.]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철컥, 철컥, 철컥-

한순간.

끼이이이?

키에엑!

여태껏 연우 일행과 뒤엉켜서 치열하게 혼전을 벌이던 망신의 군세가 일제히 허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뭐지?』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아가레스가 고개를 높이 들어 정우 쪽을 돌아보았고.

정우는 펼친 왼 손바닥을 그대로 아래로 내렸다.

마치 무언가를 누르듯이.

[장악한 공간에 ‘억압(抑壓)’의 성질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러자 망신의 군세가 일제히 덜덜 떨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에게만 막강한 중력이 부여된 것처럼!

움직임이 굼떠지고, 내뿜던 신력이 흐트러졌다.

망신의 군세가 모두 정우의 손끝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정우는 그것을 더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장악한 공간에 ‘억압’의 성질이 부여되었습니다!]

[장악한 공간에 ‘억압’의 성질이 부여되었습니다!]

……

두 번, 세 번, 네 번…….

권능이 계속 이어질수록 망신의 군세가 받는 압박은 더욱더 거세지며 끝끝내 행동이 전부 정지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언젠가 정우가 탑에서 보았던 누군가의 스킬과도 아주 비슷한 성질과 모양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둥.

둥…….

어디선가 범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천마군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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