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57화 (757/862)

7화. 집행자(執行者) (2)

연우 일행이 나타나기 직전.

올림포스와 말라흐의 신경전은 팽팽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말라흐의 일방적인 시비에 가까웠다.

“우스운데?”

“뭐?”

“사라졌던 주신이 돌아왔다고 해서 희희낙락하는 꼴이라니. 그 모습이 우습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알던 그 여장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군.”

아테나는 비웃음을 머금고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미카엘을 보면서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녀석을 유심히 잘 살펴보라던 연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무엇을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던 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아니. 그냥 그렇다고. 딱히 놀리려거나 하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아테나 님의 심기를 불편케 했나 보군. 미안해.”

미카엘은 아테나가 신력을 개방하자 어깨를 으쓱하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그럴수록 아테나의 낯은 더더욱 바짝 굳었다.

사실 ‘밤’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아테나는 미카엘과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니, 단순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몇 번은 사생결단을 낼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관계가 험악했다.

천계에서도 워낙에 유명한 사실이지만, 미카엘은 원래 싸움개였다.

강자를 만나면 무조건 싸움을 걸고 보는 존재. 그리고 자신보다 약자라고 판단이 되면 한없이 아래로 취급하는 안하무인으로도 유명했다.

만약 메타트론이 중간에서 목줄을 쥐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여러 사회들로부터 미움을 사 객사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하지만 탑이 붕괴되면서 메타트론이 소멸을 면치 못하고, 더 이상 그를 제지할 만한 수단이 없어지고 난 뒤부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메타트론의 유지가 있어 ‘밤’과의 전쟁에 집중하고는 있다지만, 같은 ‘낮’의 진영의 동료들과도 갈등을 계속 빚어 댔기 때문이었다.

아니, 메타트론의 유지를 빌미로 ‘밤’과 전쟁을 치르는 것도 사실은 그저 싸움개의 본능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이곳밖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하튼 그렇게 미카엘과 반목하는 인물 중 가장 적개심이 강한 존재가 바로 아테나였다.

언제나 엄격한 군율과 기강을 중요시하는 그녀로서는 자율을 빙자해 쓸데없는 분란만 일으키는 미카엘과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되도록 다른 사회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 최근에는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시비를 거니, 아테나로서도 짜증이 단단히 났던 것이다.

애당초 연우가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아테나는 미카엘에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였다.

“미카엘.”

“왜 그러시나?”

미카엘은 유들유들하게 웃었지만, 곧 아테나가 던진 말에 인상이 굳고 말았다.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표출하면 기분이 좋나?”

“……뭐?”

“추하다고. 그렇게 남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는 거. 나도 대단하다, 나도 너희와 같은 눈높이다, 그런 식으로 아등바등하면서 소리친다고 네 가치가 높아질 것 같아?”

“이년이 뚫린 입이라고……!”

“네가 아무리 잘났다고 소리쳐 봤자, 너를 루시엘과 동급으로 취급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

루시엘. 미카엘에게 있어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언급된 순간, 그를 둘러싼 신력의 성질이 확 바뀌었다.

투기에서 살기로.

그만큼 루시엘, 혹은 루시퍼라는 이름이 그에게 주는 무게는 아주 컸다.

그러나 아테나의 독설은 계속 쏟아졌다.

“네가 루시엘에게 열등감 가지고 있었던 거, 우리가 설마 모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지만, 메타트론의 선택을 받아 대천사로 거듭났던 그와는 다르게 평생 비루한 곳에서 등대지기로만 살아야 했던 루시엘.

하지만 그는 태초의 불을 삼키면서 ‘새벽을 가져오는 여명’이라는 루시퍼가 되었고, 천계를 송두리째 태울 만한 힘을 손에 넣었다.

비록 여러 신과 악마들이 달라붙으면서 날개가 꺾이긴 했다지만, 당시 천계가 받은 피해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었다.

그리고 당시 루시엘의 심장에다 직접 칼을 쑤셔 넣은 존재가 바로 미카엘이었다.

알려지기로 미카엘은 천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쌍둥이 형제의 가슴에다 칼을 꽂았다고 하지만.

루시엘의 날개가 꺾이던 장소에 있었던 신과 악마들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었다.

미카엘이 당시에 차갑게 웃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까지 무시하기만 하던 루시엘이 크게 명성을 떨치자, 여기에 열등감을 느낀 미카엘이 중재를 하겠다는 핑계로 다가가 루시엘을 찔렀던 것이었다.

그러니 올림포스를 대표해 그 자리에 있었던 아테나는 미카엘의 본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지금 저 비뚤어진 면모나 행동 등이 전부 얄팍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어린애 같은 짓임이 훤히 보였다.

그래도 여태 거기에 대해서 굳이 거론하지 않았던 건, 자존심 강한 미카엘의 체면을 건드려 봤자 시끄러워지기만 할 뿐이라고 여겨서였다.

하지만 저렇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다.

“뚫린 입이라고…… 다 똑같은 입인 줄 아느냐?”

미카엘이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자,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대천사들도 일제히 날개를 높이 세워 올렸다.

올림포스 신들도 마찬가지.

똑같이 신력을 개방하면서 팽팽한 대치를 이뤘다.

[‘말라흐’가 가호,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개방합니다!]

[‘올림포스’가 가호, ‘칠흑과 뇌신의 군세’를 개방합니다!]

[두 신의 사회가 서로에게 창칼을 겨눕니다!]

[‘낮(에로스)’의 진영이 분열될 조짐을 보입니다!]

“우습구나! 칠흑왕의 사도였고, 이제는 자아가 되어 버린 작자를 주신으로 삼는 곳이 아직도 ‘낮’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따지고 보면 언제 ‘밤’으로 전향해서 우리에게 창칼을 겨누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일 텐데 말이야.”

미카엘이 조소를 터뜨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소멸한 우라노스가 알게 된다면 좌절하고 말겠어. 원래 ‘낮’의 주축이 되었던 자신의 사회가 이렇게 비루한 ‘밤’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지.”

올림포스뿐만 아니라, 연우까지 곧 ‘밤’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힐난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거 아나, 미카엘?”

아테나는 여전히 냉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주둥이 좀 닥쳐. 입 냄새 나니까. 찐따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고.”

“이년이 기어코……!”

아테나의 말마따나 자존심이 강한 미카엘에게 그런 조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미카엘은 얼굴이 대추처럼 붉게 달아오른 채로 뭐라 노호성을 터뜨리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

‘음?’

미카엘이 갑자기 인상을 굳히더니 고개를 번쩍 위로 들었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연락이라도 받은 듯한 모습.

‘뭘 하는 거지?’

아테나가 미심쩍은 눈치로 그를 바라보는데, 미카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와 긴밀하게 통신을 나눴다.

한참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곧 환하게 웃으면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

오싹!

아테나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고 말았다.

미카엘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마치 맛있는 먹이를 눈앞에 둔 포식자라도 된 듯한 모습.

연우의 수석 사도인 아테나에게 절대 보일 수 없는 여유가 지금 그에게서 잔뜩 묻어나 있었다.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할까 말까 타이밍만 재고 있던 차였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잘 알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숨길 게 없다, 이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아테나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아이기스를 뽑아 허공에다 둘러쳤다.

“그럼 이참에 시작하죠.”

미카엘이 통신을 마치면서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가 한 줄 떠올랐다.

[‘밤(녹스)’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

아테나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의 영역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검은 휘장을 아래로 잡아당긴 것처럼, 칠흑이 빠른 속도로 한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속에 맺혀 있던 타계의 신들까지 몽땅 끌려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우-

우우- 우-

그리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바로 연우였으니. 아테나는 연우가 원했던 대로 ‘밤’을 전부 접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어쩐지 마냥 기뻐할 수만 없었다.

미카엘에게서는 전혀 반대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녹스)’이 새롭게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럼 이제 연기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미카엘의 주변으로 성스러운 서광이 사그라지고, 대신에 칠흑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순간, 아테나는 허리를 쭈뼛 세웠다.

미카엘이 삼키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지 않아도 곧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영혼석!’

어째서 녀석에게 그런 것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미카엘이 영혼석을 삼켰을 경우, 아주 위험해진다는 것!

미카엘은 영혼석의 원주인이었던 루시엘의 쌍둥이였다. 그렇다면 영혼의 파장이 누구보다 잘 맞을 게 분명했다.

쾅!

쐐애액-

그래서 아테나는 곧장 지면을 거세게 박찼다. 아홉 겹의 아이기스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뱅그르르 춤을 추고, 한 손에 쥔 검에서 검뢰가 튀어 올랐다.

파지지직!

콰르르릉-

검고 붉은 검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리다 단숨에 사위를 갈랐다.

[‘올림포스’와 ‘말라흐’가 전쟁을 개시하였습니다!]

“좋군!”

미카엘은 웬만한 신격도 부딪치는 순간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권능 앞에서도 여유롭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의 체구보 다도 훨씬 큰 언월도를 고쳐 쥐면서 거칠게 위로 쳐올렸다.

언월도의 표면에 적힌 ‘Quis ut Deus(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문구가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휘광을 토해 냈다.

그가 언제나 신의 이름을 외치며 징벌을 가할 때 들고 다니는 애병, ‘몽생미셸’이 주선석-절제(Temperantia)의 성질과 융합을 이뤘다.

폭발적으로 솟구친 화염이 검뢰와 부딪치면서 하늘을 따라 번개가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마치 말세라도 찾아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숨 막히는 광경과 함께.

츠츠츠-

미카엘의 머리 위에서는 분명히 연우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밤’이 재생성되고 있었다.

[‘밤(녹스)’이 만연하게 피어납니다!]

비록 기존의 ‘밤’에 비하면 색도 옅고, 크기도 작았지만.

그래도 미카엘이 ‘밤’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모든 이들을 충격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동안 말썽을 많이 일으켜도, 같은 진영의 동료라고 생각했던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그가 나서서 처치했던 타계의 신들도 꽤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거짓이었음이 밝혀지고, 영혼석까지 완전히 삼킨 지금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니.

어둑하게 깔린 칠흑 아래.

우-

우우우-

어느새 칠흑에 완전히 감염되어 눈에 초점을 잃은 대천사들이 우울한 귀곡성을 내면서 올림포스에게로 달려들었다.

[‘밤(녹스)’의 축복과 가호가 ‘말라흐’에게 내립니다!]

* * *

저. 것. 우. 리. 아. 냐.

다. 른. 녹. 스.

다. 른. 냄. 새.

아. 버. 지.

오. 해. 마. 시. 길.

연우는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소리치는 타계의 신들을 보면서 미카엘이 일으킨 ‘밤’이 현인…… 이 ‘꿈’에서는 이블케라 부르는 존재가 내린 것이란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자아들 때문에 한동안은 정신이 없을 거라 여겼더니, 그새 숨겨 뒀던 다른 패를 꺼낸 건가?’

그래도 설마하니 메타트론의 충복이자, 말라흐의 이인자였던 미카엘을 포섭해 뒀을 줄이야.

둘이서 결탁한 게 탑에서부터였는지, 아니면 연우가 잠에 드는 동안이었는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두 가지.

하나는 현인-이블케와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칠흑을 상당수 내게 뺏긴 만큼 이전처럼 어렵지 않을 거란 것. 이 ‘꿈’의 주인이 누군지 보여 주지.’

때마침 써먹기에 괜찮은 존재들도 있지 않은가.

“누가 진짜 ‘밤’인지 보여 주어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끼아아아-

우우우-

그림자가 지면을 따라 확 번지면서 ‘밤’의 존재들이 잇달아 튀어나와 말라흐를 뒤덮었다.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완전한 ‘밤’을 거스를 수는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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