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60화 (760/862)

10화. 집행자(執行者) (5)

[사라진 ‘꿈98,564,875,443,134’의 대적자가 올림포스의 대성역 ‘에우루노메’에 강림하였습니다!]

[사라진 ‘꿈342,342,368’의 대적자가 강림하였습니다!]

[올림포스의 대성역이 크나큰 혼란에 잠깁니다!]

“저게 전부 대체 무슨……!”

포세이돈은 갑자기 허공을 가득 물들이는 메시지 창과 함께 대성역을 뒤흔드는 엄청난 격동에 허겁지겁 바깥으로 나섰다.

얼마 전부터 구금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1세대 신들처럼 원로원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던 그였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원로원의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가 놀란 기색이 되어 허겁지겁 현신(現身)을 마치고 하늘 위를 보았다.

대성역을 몇 겹이나 가득 둘러싸고 있던 결계 위로…… 어마어마한 몸집을 자랑하는 ‘짐승’들이 나타난 것이 보였다.

콰쾅, 콰콰콰!

쿠르릉, 크르르-

하나같이 해괴한 모습을 한 짐승들은 어떻게든 결계를 부수기 위해 쉴 새 없이 두들겨 댔다.

발톱이 결계 위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만들어 내고, 권능이 몇 번씩이나 폭사하면서 시커먼 그을음이 남았다.

아테나가 칠흑의 속성을 불어넣으면서 몇 단계씩이나 강화했던 결계였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게 굴었다.

[대형 결계, ‘찬란한 봄’이 부서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형 결계, ‘화창한 여름’이 깨지기 일보직전입니다!]

……

[대형 결계, ‘차가운 겨울’이 파괴되었습니다!]

[충격파가 다른 대형 결계로도 연쇄적으로 번집니다!]

그리고 하나가 박살 나자, 연쇄적으로 다른 결계들에도 커다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다급해지게 된 것은 올림포스의 신들이었다.

가뜩이나 주요 전력들이 일제히 연우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회들에 정벌군으로 빠져나간 지금, 대성역은 현재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어떻게 감시망을 피하고 포탈을 연 거지?’

올림포스도 바보가 아니기에 타사회에서 죽기 살기로 이렇게 기습을 가해 올 수 있을 거라 여겨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저 정체불명의 짐승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대형 공간 전이를 이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잠시.

『뭣들 하느냐! 결계를 어서 보수하지 않고! 이대로 있다가 전부 다 죽을 셈인가!』

포세이돈은 신력을 가득 담아 노호성을 터뜨렸다.

격이 예전 같지 않기에 이렇게 신력을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되었지만, 그는 전혀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포스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비록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 연우가 이제 주신으로 있다지만, 이곳은 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장소인 셈이었다.

설사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근본도 모르는 놈들에게 이곳을 더럽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리고 그건 다른 원로 신들도 마찬가지라, 허겁지겁 하늘에다 대고 신력을 일제히 개방했다.

『‘천능의 권(權)’!』

『‘개석(開析)의 변조(變調)’!』

『채워지고, 채워져라-!』

비록 그들 대부분이 현역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어, 우라노스 시절 전 우주를 좁다 하며 종횡무진 누빌 때에 비하면 약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노익장의 면모는 어디 가질 않는지, 하나 같이 풍기는 격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쿠쿵, 쿠쿠쿵!

콰아아앙!

[대형 결계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쿠르르-

하지만 짐승들은 그런 그들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묵은 존재들. 아무리 저항해 본다고 한들, 결계로 막아 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용인지 도마뱀인지 모를 끔찍한 몰골의 머리통이 부서진 결계 틈새 사이로 밀고 들어왔다. 웬만한 태양보다도 더 큰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는 듯 데구루루 굴러가면서 아가리가 쩍 벌어졌다.

시커먼 목구멍 사이로 불길이 맺히자, 포세이돈이 다시 고함을 외쳤다.

『각자 위치……!』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짐승의 숨결이 올림포스의 한가운데에 작렬하고 말았으니.

콰콰콰콰-

단 한 번.

그렇게 내뱉고 만 숨결은 대성역의 상당수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 노출된 신들도 대거 쓸려 나가고.

쿠쿠쿠-

쿵!

가장 먼저 머리통을 밀어 넣었던 짐승이 그대로 대성역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크롸롸롸!

녀석이 날개를 한껏 펼치면서 괴성을 질러 대니, 가뜩이나 거칠게 울리던 지면은 그대로 땅거죽이 일어나 뒤집히고 그나마 골조라도 유지하고 있던 결계들도 유리창처럼 일제히 다 깨져 나갔다.

올림포스 신들도 큰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면서 경악했다.

“말도 안 되는……!”

쓰러진 신들 중에는 포세이돈도 섞여 있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그의 시야에는 짐승이 대성역의 정중앙에 위치한 신전으로 향하는 것이 비쳤다.

그나마 충격을 덜 입은 올림포스 신들이 녀석을 막기 위해 권능을 개방하려 했지만, 뒤따라 들어온 짐승이 도중에 권능들을 모두 막아 내고 말았다.

크르르-

크륵?

녀석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거대한 발톱으로 신전을 이리저리 크게 휘젓더니 곧 안쪽으로 깊숙하게 주둥이를 박았다.

그리고 놈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던 누군가가 훌쩍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설마?”

너무 멀어서 얼굴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체격이나 느껴지는 신력으로 보건대, 포세이돈은 어쩐지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큰일이었다.

저자가 어떻게 나설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포세이돈은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계속 속이 울렁였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격이 더 크게 흔들려 붕괴되기 일보 직전까지 다다라 있었다.

그리고.

“우리 형님, 그렇게 잘난 척하시더니 꼴이 말이 아닌 듯하오?”

짐승에 가까워졌을 무렵, 포세이돈은 우려했던 상황에 마주하고 말았다.

두 눈을 잃고도 여전히 목소리만큼은 기세가 등등한 아우가 누군가의 부축을 받은 채로 대신전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제우스였다.

그리고…… 그를 구해 준 존재는 둔한 얼굴에 거인과 같은 생김새와 기질을 가진 이였다.

포세이돈도 잘 알고 있는 존재.

아틀라스.

아버지 크로노스를 어렸을 때부터 호종하였으며, 신왕 시절에는 최고 신장(神將)으로 명성을 떨쳤고, 그가 몰락하던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옆을 지켰던 충신.

하지만 언제부턴가 실종되어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소멸한 게 아닌가 하는 평가를 받던 존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제우스를 구하기 위해서.

“…….”

아틀라스는 어린 시절 포세이돈 형제들이 두려워하던 그대로, 엄숙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포세이돈을 보고 있었다.

“너……!”

“후후. 나도 이렇게 구명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오. 아니. 이게 아니지.”

제우스는 억지로 신력을 쥐어짜 진언(眞言)을 내뱉었다.

『전혀 생각도 못 하였지.』

제우스는 몸이 망가져도 신으로서의 위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는지, 다시 음절 하나하나에 신력을 가득 담았다.

『그런 뜻에서 형제간에 서로 응원이라도 해 주는 건 어떻겠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 몸이 좋지 않은 동생을 위해 양분을 제공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 거요. 식령(食靈)이라는 아주 좋은 수단이 있는데 말이지. 아니, 이런 건 식신(食神)이라고 해야 하나?』

“……!”

포세이돈은 대놓고 친형제를 잡아먹겠다고 의사를 밝히는 제우스의 모습에 급히 몸을 뒤로 빼려 했고.

척!

제우스는 그런 포세이돈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다 도중에 아틀라스가 내뻗은 손길에 멈칫했다.

제우스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자신의 유희 거리를 막아선 아틀라스를 노려봤지만.

아틀라스는 안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만약 여기서 네 멋대로 한다면 두고 가 버리겠다는 의지도 느껴졌다.

『쳇!』

제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비릿하게 비웃음을 던지는 건 잊지 않았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여기서 날 쫓아올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것도 아니고.』

제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섰다.

아틀라스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포세이돈을 보다가, 커다란 덩치로 제우스를 가리면서 다시 짐승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크롸롸롸!

짐승은 다시 길게 포효를 내지르곤 날갯짓을 하면서 상공 위로 거대한 몸집을 일으켰다. 강풍이 사방팔방으로 불어닥치면서 녀석이 날아오르고, 다른 녀석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다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제우스를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 포세이돈은 본능적으로 그런 직감을 받았다. 제우스가 여기서 빠져나가면 두고두고 올림포스에 좋지 않은 형태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연우 쪽으로 소식을 넣을까 했지만, 그쪽도 지금쯤 현재 여기서 빚어진 일에 대해서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는 것은 저쪽에도 어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게 틀림없겠지.

포세이돈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츠츠츠츠!

[신격이 휘발되기 시작합니다.]

[대가로 신력이 개방됩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배광을 토해 내면서.

쐐애애액-

제우스와 아틀라스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아버지, 빨리 오십시오.’

한평생 원망하기만 하던 아버지를 처음으로 찾았다.

* * *

[사라진 ‘꿈232,115,675’의 대적자가 강림합니다!]

「또인가……!」

망자 거인의 수장, 발데비히는 또다시 출현한 짐승을 보면서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토해 내고 말았다.

연우의 그림자를 근거지로 두고 있는 그로서는 여기서 싸우다 죽어도 언제든 부활이 가능하다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피로의 한계선은 있기 마련이었다.

이대로 끝도 없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해서야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발데비히를 걱정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정우야.’

심적으로 흔들리는 친구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발데비히는 정우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따금 아르티야를 대동하고서 격전지를 찾아온 레온하르트도 같이 낀 채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동안 각자가 갖고 있던 오해나 편견을 해소하기도 했다. 사과를 나누고, 우정을 다시 다졌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발데비히에게 정우는 아주 무거운 빚으로 남아 있었다.

정우가 위험했을 때에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전히 그의 심장 속에 족쇄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완전히 부활한 정우가 기뻐하기는커녕 슬픔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도와주고 싶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그때.

『발데비히.』

페어링을 통해 연우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신이시여?」

『부탁할 게 있다.』

「……?」

『정우와 관련된 거야. 네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무엇입니까?」

발데비히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 연우는 명령을 하면 하였지 절대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을 시키려고 그러는 걸까?

발데비히는 마른침을 삼켰고.

『조금 뒤에…….』

곧 들린 연우의 명령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 * *

연우는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정우와 이예를 보면서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이대로 계속 발이 붙잡혔다간 정말 이블케를 놓칠 것 같았으니까.

[권능, ‘축지’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이블케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콰르르릉!

“어딜 가려고!”

[외부의 강제적인 개입으로 인해 공간 전이가 단절되었습니다!]

[‘축지’가 실패하였습니다.]

정우가 귀신같이 개입해서는 연우의 연우의 축지를 곧장 끊어 버렸다.

공간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그가 연우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에, 공간 전이 계통의 스킬쯤은 언제든지 강제로 취소가 가능했다.

원수인 이예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형. 정우는 두 사람을 동시에 붙잡아 두고자 했다.

혼자서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이나 같았지만, 만통 특성을 한껏 전개하고 있는 동안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상대하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공간을 다룬다는 건, 그만큼이나 무서운 거였다.

막상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정작 다급해지게 된 것은 연우였다.

‘이대로는 안 돼.’

정우를 설득하려 해 봤자 안 될 건 불에 보듯 뻔한 일.

거기다 크로노스마저 연우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지에 몰린 이블케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연우는 칠흑왕의 주 자아가 되어야만 했다. 이블케의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녀석을 이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이번 ‘꿈’도 머지않아 종말을 맞을 게 분명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이것만큼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남은 방법은 마지막까지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그러지 않고도 강제로 밀어붙인다면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야 동생과 아버지가 다칠 수 있으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치더라도 내가 다치는 게 낫다. 그게 연우가 가진 생각이었다.

결국 연우는 그렇게 모질게 마음을 먹었고.

[칠흑왕의 대체 자아가 자신에게 오래전부터 주어졌던 숨겨진 새로운 가능성 혹은 숙명(宿命)을 발견했습니다!]

정우와 크로노스 등은 연우가 또 뭔가를 하려나 싶어 황급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집행자(執行者)로서의 숙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종말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정우와 크로노스뿐만 아니라, 이예까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전부 경악한 얼굴로 연우를 바라봐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