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62화 (762/862)

12화. 손오공 (1)

“거기가 어디지?”

연우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이랑진군은 얼떨한 모습으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

연우의 두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 * *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정우는 끓어오르는 욕지거리를 겨우 삭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머릿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 연우를 막으려 들면 정말 이 세계는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까짓 종말, 알 게 뭐야?’

연우는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세계를 보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연우라는 존재가 ‘세계에서 잊힌다’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우는 어떻게든 그것을 찾아 헤맬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우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런저런 고민과 가설을 세웠을 것이고, 그중에서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판단 내린 것이 저 계획일 것이다.

가족들에게 말해 봤자 어차피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뻔히 아니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거겠지.

그리고 연우의 예상대로, 정우는 곧장 반발했다.

정우의 입장에서, 가족들이 이런 위기를 겪고 만 원인은 전부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탑으로 넘어간 것 때문에 아버지가 올포원에 억류되고, 어머니가 희생되었으며, 형도 결국 칠흑왕의 자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니까.

물론, 그 모든 배경에는 현인-이블케가 놓은 포석이 있다지만…… 그리고 당시에는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의 멍청한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모진 고생을 한 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던 것이 형이었다.

그런데 형이 사라진다고?

정우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연우는 분명히 이 세계를, ‘꿈’을, ‘굴레’를 존속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연우란 존재는 없다.

정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설사 그로 인해 이 ‘꿈’이 정말 종말을 맞게 될지라도, 집행자의 수레바퀴가 거세게 굴러간다고 해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형이 없는 ‘꿈’ 따위 어떻게 되든 간에 알 게 뭔가!

애당초 형이 집행자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아 사라졌을 것이 아닌가. 그것을 연우가 어떻게든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연우가 무조건 희생되어야 하는 결말이라면, 그는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천마가 종말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대적자를 아무 말 없이 굽어살핍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연우를 막을 생각이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바꾸게 하고 싶었다. 방법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형과 자신이라면 남들은 절대 넘을 수 없을 난관도 어떻게든 뛰어넘고야 말 테니까.

‘그러니까 이블케를 막고 자시고 하는 건 이후로 미룬다.’

연우가 이블케를 쫓아 잡아먹어서야 곧장 칠흑왕의 주 자아로 각성을 해 버리고 말 테니까.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이 돌이킬 수가 없게 되어 버리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연우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당장 형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될 수밖에 없어.’

당연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이블케가 있을려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거기는 아닐 거야. 아무리 이블케가 쫓기고 있는 입장이라고 해도, 형은 절대 무작정 쫓을 사람이 아니니까.’

상대가 아무리 궁지에 몰려 있다고 해도, 무작정 몰아붙여서는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저쪽에 우마왕과 다른 ‘꿈’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통천교주가 있는 걸 봐서는 함부로 달려들기가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들이 두렵다기보다는 그만한 격전이 벌어져서야 ‘꿈’이 저물어 버릴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

지금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형이 전력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의 차이는 아주 클 테니까. 아슬아슬한 정도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다른 방법을 마련할 게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동주칠마왕의 전력을 약화시키거나, 저들로부터 강제로 떼어 놓으려 할 게 분명하다.’

현재 연우가 동주칠마왕과 관련해서 가지고 있는 패는 아주 간단하다.

미후왕의 허물.

‘제천대성…… 손오공의 본체를 찾을 게 분명해.’

려는 천마의 ‘첫 번째’ 얼굴. 손오공도 천마의 얼굴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분명히 그쪽을 찾으리란 건 확실했다.

정우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그럼 손오공은 어딜 가야 찾을 수 있는 거지?’

문제는 바로 이 점이었다.

그로서는 손오공의 위치를 알아낼 수 없다는 점.

‘낮’의 전력을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는 있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그렇다면 이 방향은 기각해야 한다.

그럼 남은 방법은?

‘정면 돌파뿐인가?’

정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전히 그는 이예와 한창 다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녀석은 현재 이블케와 손을 잡고 있는 상황.

천마의 한쪽 팔이었고, 탑을 개척했던 트리니티 원더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승부를 내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닐 테지만.

‘어떻게든 찍어 눌러야 해!’

정우는 이예를 꺾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이블케의 목적을 토설하게 하고, 연우의 동선을 추측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

그만큼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보여야 했으니까.

‘이럴 때는 형의 스킬들이 너무 부럽다……!’

죽인 대상의 영혼을 강제로 소울 컬렉션에 종속시키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연우의 권능이라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어쩌겠나.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리고.

정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 손을 뻗자, 크로노스가 스퀴테의 형태로 변하며 그대로 빨려 들어왔다.

[특성 ‘만통’이 화려하게 빛납니다!]

[보유한 모든 채널링의 주파수를 조율하여 스퀴테와의 연결을 모색합니다.]

크로노스가 연우와 합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연우가 그의 본체를 흡수하며 신의 인자를 깨우쳤고, 크로노스가 한때 칠흑왕의 사도였기 때문에 영혼의 파장이 잘 맞아서였다.

반면에 정우는 크로노스의 아들이기는 해도, 품고 있는 속성은 전혀 달랐으니 합일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정우는 그런 제약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특정 공간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능을 보유하는 것이 가능했고, 신이 품고 있는 데이터를 단숨에 해독하고 분석하는 압도적인 재능을 품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레아 때처럼, 크로노스가 자신의 신격을 둘러싸고 있던 방화벽을 해제하니 곧장 데이터가 통째로 읽혔다.

[‘낮(에로스)’의 태양이 화려하게 빛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우는 크로노스와 합일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었고 끝내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었으니.

화아악!

정우는 한순간 자신의 인지 영역이 몇 배로 불어나면서 전 우주 곳곳으로 미치는 듯한 황홀을 맛봤다.

『정신 차려!』

까닥했다간 정신을 잃고 법칙이 되어 스러졌을 수도 있을 위험 속에서, 크로노스의 경고를 듣고 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파앗!

정우는 오른손에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왼손에는 스퀴테를 꽉 쥔 채로 이예에게로 쇄도했다.

콰아아앙!

이예는 이번에도 군림보에 묶인 채, 뒤로 내빼지 못하고 소증을 위로 끌어 올리면서 가까스로 공세를 겨우 막아야만 했다.

“흐읍! 천마의 군림보와 칠흑왕의 공격성이라…… 이건 좀 난감한데.”

이예는 입가를 타고 흘러나온 핏물을 토해 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발목만 붙잡으려 했던 건데, 이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러면서 그는 천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위쪽을 슬쩍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개판이 되고 있는데도, 그의 모진 주인은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민은 잠시.

이예는 왼쪽 어깨에 걸고 있던 신물, 동궁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자꾸만 이쪽의 장기를 붙잡혀 반격이 힘들다면, 압도적인 화력을 선보이는 수밖에.

콰콰콰-

정우와 이예의 결투는 더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 * *

‘지구라.’

연우는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쓰게 웃고 말았다.

이전에 미후왕의 허물이 손오공이 자주 출몰한다며 예견해 준 후보지 중 지구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탑이 세워지기도 전의 이야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인데.

‘대체 거긴 왜 갔을까?’

그걸 지금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지구에는 세샤와 아난타가 머물고 있다. 자칫 잘못 모습을 드러냈다간 들통나기 쉬우니 최대한 존재를 감춰야 했다.

[권능, ‘꿈의 이식’을 전개합니다!]

[신력이 잠깁니다.]

[신격이 잠깁니다.]

[신성이 잠깁니다.]

……

[존재가 잠겼습니다!]

그래서 연우는 보유하고 있는 ‘자아’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얼굴에다 뒤집어썼다.

그러자 모든 신력이 갈무리되면서 그림자 속으로 잠겨 들고, 겉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나타났다.

빠아앙!

두 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 한가운데.

줄지어 선 차들이 연우를 뒤늦게 발견하고 클랙슨을 울려 댔다.

“야! 미쳤어? 어서 나와!”

“쌍! 길 한가운데에서 대체 뭘 하는 거야!”

연우는 그들을 슬쩍 보다가 발 끝을 튕겨 자취를 감췄다.

“어, 어어? 내가 헛것이라도 봤나……?”

운전자들은 대낮부터 허깨비라도 봤나 싶어 눈을 끔뻑거려야만 했지만.

그사이.

연우는 인적이 드문 가로수 길을 활보하고 있었다.

“얼굴이 많이 낯설군.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이랑진군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손오공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야 하니 직접 따라온 것이다.

이랑진군은 묘한 눈빛으로 연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얼굴 생김새야 원래 신적인 존재가 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지만, 존재감까지 이렇게 감쪽같이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옛날 ‘꿈’에 있던 존재 중 하나를 끄집어낸 거니까.”

“흠! 원래는 사라지고 없을 존재라는 건가? 말로만 듣던 칠흑의 자아…… 파편 중 하나라 봐도 되나?”

“비슷해. 근데 너는 뭐지? 어디서 의체(依體)라도 구했나?”

이랑진군은 본체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신적인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어디 피조물 하나를 구해서 거기다 의념이라도 투영한 건가 싶었지만.

“사도 후보 중 하나다.”

“사도를 아직 뽑지 못했었나 보군.”

“눈에 차는 자가 없어서. 그동안 바쁘기도 했었고.”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눈을 떴을 때 즈음에 수많은 사회들이 지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랑진군도 사도나 그에 준하는 신도를 몇 개쯤 확보해 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기도 했다.

이랑진군의 본체가 따라오게 되면 영압 때문에 지구가 많은 사회들의 이목을 사게 될 테니까.

지금은 최대한 조용하게 손오공에게 접촉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제천대성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연우는 주변을 쓱 훑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숲을 이루며 서 있는 곳.

간판들이 한글인 걸 봐서는 한국의 어느 도시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말투로 봐서는 경상도 어디쯤인 것 같았고.

푸른 바다 페스티벌!

초청 가수: 윌(Will), 너와나 밴드, 신미영…….

곳곳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어디선가 바다 냄새도 조금씩 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제천대성이 뭘 하고 있다는 거지?”

“모른다. 일단 발견했던 수하의 말로는 서핑? 뭐, 하여간 그런 걸 즐기고 있다는 것 같더군.”

놀고 있나 보군.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물으려는데.

‘……!’

연우는 한순간 걸음을 뚝 멈추고 말았다.

“이쪽 해운대라는 지역으로 가면 되는…… 왜 그러지?”

이랑진군은 손오공이 있는 곳으로 길을 안내하다 말고 도중에 멈춰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우의 시선이 이쪽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에 고정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서로 지나치는 것이 보였다.

저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그래서 물어보려는데, 이랑진군은 곧 연우가 중얼거린 혼잣말에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천마?”

연우의 시선이 닿은 곳.

창공 도서관에서 봤던 천마와 똑같은 생김새를 한 사내가 한쪽 어깨에 기타를 멘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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