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차연우 (3)
하늘 날개는 모든 효과를 최대로 증폭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연우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사왕이 휘두른 검은 벼락을 흘려 냈다.
두 날개가 안쪽으로 오므라지면서 거대한 방어막의 형태를 떴다.
하지만.
콰아앙!
“컥!”
연우는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크게 튕겨 났다가, 저만치 먼 곳에 위치한 벽면에 틀어박힌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역시 무리인가?’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신 곳곳이 악다구니를 내지르고 있었다. 근육이 모조리 파열되고, 뼈란 뼈는 전부 으스러진 것 같았다. 내장도 진탕이었다.
[‘마력회로’가 훼손되었습니다!]
[훼손의 정도가 아주 심각합니다. 빠른 조치와 대비를 필요로 합니다.]
[마력 생성이 불가능합니다.]
[마력 순환이 불가능합니다.]
……
“제법이군. 그래도 한 가닥은 한다, 이건가? 역시 단순한 쥐는 아니었나.”
사왕은 차갑게 웃으면서 연우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스스스-
땅바닥에 드리운 녀석의 그림자가 먹물처럼 퍼져 나가면서 연우의 그림자를 잠식했다.
“난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뭔가 빠진 부분도 너무 많아. 하지만 왜 그런 게 생겼는지, 그게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다.”
찰칵! 찰칵!
사왕의 그림자가 좌우로 쫙 갈라지면서 톱니 이빨이 훤히 드러났다.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먹이를 노리는 상어처럼, 연우의 발밑을 어슬렁거렸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뭔가 결여된 것도 많아. 나의 일부로 보이는 저것들이 바로 저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통 알 수도 없고. 여기서 대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왕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요요하게 빛났다.
“네가 뭔가 아는 것 같으니 차차 물어보면 되겠지.”
사왕에게는 여러 가지 권능들이 있다.
특히 연옥로는 연우도 적들을 가둬 놓고 심문하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기도 했었다.
그걸 자신에게 쓰겠다는 건데…… 연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한껏 차갑게 웃었다.
“한 가지 가르쳐 줄까?”
“뭐지?”
“미안하지만, 난 너처럼 혓바닥이 안 길어.”
“……!”
사왕은 그제야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쓰려 했지만.
콰아아앙!
이미 늦은 뒤였는지, 사왕이 있던 옆쪽 벽이 그대로 터져 나가면서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감히 내 뒤를 노려? 후회할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튀어 오르는 암석들 사이로, 신왕이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 튀어나와 사왕에게 달려들었다.
사왕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모양인지,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왼팔이 날아간 것은 물론, 전신이 온통 상처로 가득했다. 특히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는 것이, 죽음의 개념이 독처럼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 듯했다.
때문에 열풍에 섞인 의념은 온통 사왕을 죽이겠다는 살의로만 가득했으니.
크롸롸롸!
거기다 신왕의 뒤쪽으로, 피투성이인 거마신룡까지 나타나면서 사왕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대체 어떻게……!”
사왕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거마신룡을 한창 공격하다가, 그 모든 분노를 신왕에게로 뒤집어씌우는 데 성공했었다. 여기에 신왕이 손발이 어지러워질 때 옆구리에다 칼침까지 꽂으면서 모든 게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여길 찾아낸 거지……?
『잔머리는 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러다 사왕은 자신의 귓가를 파고드는 어기전성에 연우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그에게서는…… 그가 간직한 신화 중에서도 아주 익숙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대지…… 모신?”
『이 냄새를 맡고도 못 찾고 배길까?』
연우는 과거 페르세포네를 잡고, 대지모신을 죽이기 위해 강제로 그녀와 채널링을 형성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얻은 칭호가 바로 ‘대지모신의 사도’.
물론, 당시에 얻은 칭호는 신화가 죄다 떨어져 나가면서 사라지긴 했다지만, 그래도 그 특성과 메커니즘을 완전히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음검을 완성하기 위해 영혼을 재조립하면서 파악해 뒀던 게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이는군.’
그때 얻은 경험을 가지고 적당히 장난을 치니, 오로지 본능만 남은 거마신룡이 귀신같이 이곳을 알아채고 찾아온 것이다.
‘거마신룡의 인자 상당수는 대지모신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거기다 대지모신을 꺾은 신화는 신왕에게 있지 않던가!
“역시 넌 여기에 대해 알고 있……!”
사왕은 그럴수록 연우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문제는 당장 그가 연우 쪽으로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점이었다.
신왕이 죽일 듯이 달려들면서 붉은 불길이 그림자를 찢어 버리고, 거마신룡이 브레스를 잇달아 쏘아 대는 통에 몸을 보호하기에도 벅찰 지경이었다.
쿵, 쿵, 쿵!
퍼어어엉-
동굴의 여러 벽면이 잇달아 터져 나가면서 사왕과 신왕, 거마신룡이 한데 뒤엉키는 가운데.
[‘아트만 시스템’을 비상 운영 체제로 전환, 마력의 일부를 순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효율도: 6%]
지금 갖고 있는 마력도 그리 많지 않은데, 거기서 이만큼밖에 쓸 수 없다는 게 어이가 없을 뿐이었지만.
연우는 지체하지 않고 손바닥을 활짝 펼치면서 옆쪽 벽을 거세게 후려쳤다.
쾅!
경(勁)의 묘리가 일부 뒤섞이면서 가뜩이나 여러 신격들의 충돌로 내구도가 간당간당하던 천장의 몇 군데 지점을 자극했다.
그러자 돌들이 그대로 우르르 쏟아지면서 녀석들이 있는 공간과 이쪽이 분리됐다.
물론 이건 임시방편일 뿐, 녀석들이 움직인다면 금세 부서져 나갈 차단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우는 용마안을 여전히 부리부리하게 뜬 채, 방금 전에 체크해 뒀던 지점을 다시 세게 후려쳤다.
[마력의 비정상적인 운용으로 인해 효율이 다시 급격하게 저하되었습니다!]
[현재 효율도: 3%]
쾅!
쾅!
[마력의 효율이 다시 저하되었습니다!]
[현재 효율도: 1%]
콰아앙!
서너 번을 후려치자, 벽이 터지면서 안쪽에 마련되어 있던 빈 공간이 나타났다.
화아아!
그곳에는 붉은 구슬 조각이 둥둥 떠 있었다.
영혼석들을 회수하면서 만진 적이 있었던 려의 조각.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화아악!
조각이 부서지면서 황금색 불길이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조각’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든 퀘스트(숨겨진 조각)가 생성되었습니다.]
[서든 퀘스트 / 숨겨진 조각]
설명: 현재 당신이 입장한 곳은 ‘려의 무덤’입니다. 이 무덤 곳곳에는 려를 의미하던 조각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려의 조각은 시원의 불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조각을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시원의 불에 더더욱 근접할 수 있을 것이며 무덤의 주인인 려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스테이지 곳곳에 숨겨진 조각들을 모두 찾아 하나로 만드십시오.
이것은 신화를 잃어버린 당신이 다른 당신‘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일과 과정들은 스스로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제한 시간: -
제한 조건: ‘려의 무덤’ 입장자. ‘려의 조각’ 소지자.
달성 조건: 려의 조각을 찾으십시오. 현재 발견한 조각 수(1/5)
보상: ???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회수한 려의 조각은 그에게 당장 큰 힘을 전달해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신격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다만, 영혼 안쪽에서 무언가가 부쩍 차오르는 듯한 느낌은 받을 수 있었으니.
연우는 남은 조각들도 전부 회수했을 때야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것만 해도 큰 성과야. 예상했던 대로 들어맞은 셈이니까.’
연우는 다시 한번 더 머리를 재빨리 돌렸다.
[스킬, ‘시차 괴리’가 생성되었습니다!]
시간이 한껏 느려지면서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쿠쿠쿠……!
세 신격들의 싸움은 계속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고 있었다. 차단벽에서 넘어오는 열기가 금방이라도 그의 영혼을 태워 버릴 것처럼 이글거렸다.
‘다음 히든 피스가 있을 장소는……!’
연우는 용마안으로 결의 흐름을 좇으면서, 머릿속으로 대략적으로 나마 동굴의 구조도를 그려 보았다.
이미 군인 연우와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곳곳을 세 세하게 살펴 둔 상태.
그러니 미로처럼 복잡했던 구조도 금세 여러 연산으로 금세 쉽게 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은.
‘여긴가?’
연우는 다시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우측으로 나 있는 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 * *
[‘두 번째 조각’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3개. 하지만 여기까진 운이 좋았어. 이제 슬슬 다른 놈들도 냄새를 맡기 시작했겠지.’
연우는 남은 3개 조각도 이처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자신들이 이미 나머지를 전부 찾았을지도 몰랐다.
‘아마 비신격들이겠지.’
사왕을 상대했을 때도 느꼈지만, 녀석들은 분명 자신과 비슷한 얼굴과 성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차연우’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그건 아마도 본바탕이 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단절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신에 가까이 두기 때문이겠지.
사왕이 연우를 이용해 먹었으면서도, 결국 허를 찔리게 된 건 전부 그런 차이 때문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컸다.
‘인간인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차연우로서의 정체성도 멀어진다…….’
그만큼 판단력이나 냉철함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독식자나 영왕과 같은 비신격들은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신격들이 징글징글하게 뒤엉키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기민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우선 비신격들끼리 연합을 하든 담판을 내든, 어떻게든 해야겠지?’
그러지 않으면 신격들의 위협으로부터 승기를 거머쥘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연우는 이런 판단을 독식자와 영왕도 똑같이 내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비신격들이 사왕 등을 피해 몰래 만날 만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신격들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으면서 크기가 작지 않은 공동.
‘그러면서 여러 굴이 교차하고 있어서 여차하면 바로 내뺄 수 있는 곳.’
연우는 자신‘들’이 장소를 정할 때 가장 우선시할 조건이 바로 유사시에 대피로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대의 퇴로는 바로 막아 버릴 수 있을 만한 곳. 이 복잡한 개미굴에서도 우리가 모두 공통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곳……!’
연우의 두 눈이 빛났다.
‘있다.’
첫 번째 조각이 발견되었던 곳.
사왕 등이 뒤엉켰던 장소라면…… 다른 비신격들도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세 신격들도 싸움을 끝냈거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더라도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게 분명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이용할 참이었다.
그래서 연우가 다시 돌아간 장소에는.
“……드디어 왔군.”
“많이 느려 터진 놈이로군. 대체 무슨 신화를 갖고 있기에 이리 늦은 거지?”
가면을 깊게 눌러쓴 독식자와 차갑게 눈을 빛내고 있는 영왕이 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