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80화 (780/862)

5화. 차연우 (5)

연우가 여태껏 봤던 다른 신화들은 하나같이 어딘가가 확실하게 ‘결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결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신화들을 어떻게든 잡아 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고.

신왕과 사왕이 결국 서로 붙은 게 전부 그런 이유였고, 독식자와 영왕이 손을 잡으면서도 마나의 맹약으로 안전장치를 해 두려는 게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봤을 때, 거인의 신은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는 신의 긍지를 누구보다 크게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러면서도 행동 하나하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 기품과 위엄이 잔뜩 묻어났다.

마치 결여가 없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처럼 보였다.

연우는 그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자격이란 게, 뭐지?”

원래대로라면 난전이 벌어지는 중에 일을 벌일 생각이었지만.

도중에 그가 보인 자세가 연우의 생각을 바꿔 버렸다.

묻고 싶었다.

거인의 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거인의 신도 연우의 질문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얼굴을 가진 놈들이라면 하나같이 자기 목적을 위해 타인의 말 따윈, 특히 적으로 간주한 상대의 말 따윈 귓등으로 흘려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묻고 있으니.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신으로서의 자세지.”

그렇기에 거인의 신은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연우의 눈이 살짝 좁혀졌다.

“신?”

“그래. 신. 그대 역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란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존재를 이루던 신화의 일부일 테지. 그렇다면 신으로서의 자세를 더 당당하게 갖추는 게 어떻겠나? 비겁하게 가면 속에 자신을 감춘 채 남을 속여야 하는 놈이나.”

거인의 신은 독식자를 보다가, 그다음에는 영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포악한 성정을 드러낼 줄만 아는 저런 야수 같은 놈은 신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로군.”

거인의 신은 마지막으로 연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대는 아무것도 없이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신으로서의 자세를 보이지도 않으니. 잘 모르겠군.”

연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신으로서의…… 자세.’

애당초 신(神)이란 무엇인가?

홀로 모든 속박과 구속에서 탈피하여 자립할 수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개척자를 말한다.

거인의 신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군. 너는 인간이 아니야.”

연우는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이봐. 플레이어. 뭘 쓸데없는 걸 계속 묻는 거지?”

영왕이 짜증 섞인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그의 입장에서는 전투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잡담이나 나누고 있으니 거치적댔던 것이다.

물론, 연우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짜증 나는군.”

하지만 영왕은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연우에게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당장 거인의 신을 잡아야 하는데 내분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데다가, 마나의 맹약이 그들 사이를 옥죄고 있었으니.

‘거인의 신을 처치하고 나면…… 바로 그 뒤는 너희들이다.’

영왕은 이미 여러 단계에 걸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정립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이 뒤에 바로 이어질 단계는 거인의 신이 쓰러질 때 즈음에 ‘일’을 치르는 것.

마나의 맹약이 주는 구속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었으니까.

‘편법이야 만들면 그만이지.’

영왕은 슬쩍 자신의 ‘그림자’를 발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림자가 반응하듯이 크게 출렁였다.

이 속에 담긴 것들이라면…… 거인의 신이 쓰러질 무렵 꺼냈을 때 단박에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쓸어 버릴 수 있으리라.

자신이 자랑하는 그림자 군단은 마나의 맹약과는 별개로 오로지 죽은 망자들의 복종과 충성심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니.

맹약을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후유증은 거인의 신과 독식자를 죽여서 얻는 신화로 충분히 보충이 가능할 거라 여겼다.

‘가면을 쓴 놈도 무언가 숨겨 둔 패가 있겠지만, 그야 수를 꺼낼 틈도 없이 처치해 버리면 그만일 테지.’

영왕이 여기서 가장 경계하는 자를 꼽으라 한다면, 가장 강한 거인의 신도, 쓸데없는 잡소리나 늘어놓는 연우도 아닌 독식자였다.

검은 가면을 쓴 채로 서슬 퍼런 눈빛을 흘려 대는 모습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깟 기만과 술책 따위도 결국에는 압도적인 힘 앞에선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왕은 그렇게 판단했고.

화아악!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비그리드를 든 채로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재차 거인의 신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떤 패를 꺼내 든다고 해도, 결국 선결 조건은 거인의 신을 처치하는 것이었으니까.

* * *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너에게 다른 조력자가 있을 줄 모를 것 같나? 멍청한.’

독식자는 재차 공격을 시도하는 영왕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동생이 남겨 준 회중시계 속 일기장만 가지고 탑을 오르는 기억을 갖고 있는 그에게 이 세상은 온통 불신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책략을 써야만 했고, 그들의 노림수를 파악해서 자신의 계획에 포함 시키거나 변수로 놔둬야 했다.

그래서 독식자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이 바로 영왕과 관련된 거였다.

그의 행동, 어휘, 말투…… 그런 것들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기억을 갖고, 어떤 성향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맞닥뜨린 존재는 거인의 신이었지만, 애당초 신격은 그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 전력적인 측면만 파악해 뒀을 뿐.

하지만 영왕은 반드시 손을 잡아야만 하는 대상이면서도, 가장 크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신격들이 득실대는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내어 준 스테이지에서. 비신격으로서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결국 어느 정도 선까지만 공동 전선을 유지했다가, 나중에는 갈라서야만 했으니까.

물론, 그런다고 해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유추하는 것만으로도 상대하는 데 있어 꽤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

무언가 절대적으로 믿는 패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게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분신을 뽑아낼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신화와 손을 잡아 그가 어딘 가에서 은신술로 몸을 숨겨 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독식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조력자가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그냥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독식자는 손끝에 걸린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이것은 사실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크라슈나의 단검이나 마장 대검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색을 띠는 검은 단검.

츠츠츠-

‘사왕, 그놈이 제대로 찾아와야 할 텐데.’

사실 독식자는 영왕을 만나기 전, 려의 조각을 습득하던 과정 중에 사왕과 먼저 조우했었다.

-그건 네가 가져라. 단, 같이 손을 잡자.

당시, 사왕은 독식자에게 려의 조각을 선뜻 양보했다.

당연히 의심이 많은 독식자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지만, 사왕은 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존재이지 않나? 그렇다면 둘 다 공동의 이익만 취하자는 거다. 네가 다른 비신격들과 지지고 볶든 뭘 하든 상관없다. 나는 다른 신격의 ‘기억’을 필요로 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관심 없어.

-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너를 가장 먼저 만났으니까. 그리고 이용해 볼 만하다고 여겨서. 그럼 됐나?

그러면서 사왕이 준 단검은 자신의 위치를 말해 준다고 했다. 여차하면 바로 자신이 개입할 수 있을 거라고.

물론, 독식자는 사왕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힘은 믿었다.

적당한 타이밍에 이 단검을 써서 사왕을 이리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 영왕이 어떤 조력자를 불러온다고 해도 이곳은 결국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독식자는 혼란을 틈타 비신격들을 차례로 제거할 속셈이었다. 가능하다면 사왕과 거인의 신까지도, 자신이 직접.

‘려의 조각을 다른 신격들이 가져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했나?’

독식자는 거인의 신이 했던 말을 상기하면서 두 눈을 차갑게 빛냈다.

‘멍청한 소리. 그깟 기물에 휘둘 릴 것 같았으면 애당초 이런 곳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었다. 도구를 도구처럼 쓰지 못하고, 처음부터 겁을 먹어서야 아무것도 못 하지.’

독식자에게는 려의 조각도, 손을 잡은 사왕도,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거인의 신이며 다른 신화들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모두 자신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쓰일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저놈인데.’

독식자는 슬쩍 연우 쪽을 봤다.

연우는 독식자가 사용하고 땅에 떨어진 대검 중 하나를 집어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칼날에 아주 흐릿한 굵기의 검기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오러만 겨우 뽑아낼 수 있는 놈을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독식자는 연우가 학생일 때의 자신이거나, 아니면 군인 시절의 자신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니면 탑에 입장해서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난 뒤까지거나.

마력을 꽤 생각보다 자유롭게 다루고 있지만, 그거야 2개나 되는 조각을 흡수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영왕도 그 정도는 알아챘겠지. 용마안이 있다면. 눈치는 빠르니 다른 신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 모방도 했을 거고.’

물론, 평범해 보이는 연우 역시 자신과 같은 존재에서 비롯되었으니, 어떤 패를 숨겨 뒀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고, 언제든 뒤통수를 때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갓 마력을 배우기 시작한 작자가 마나의 맹약을 거스를 수 있을까?

있다고 해도 타격이 클 것이고, 여차하면 바로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다…… 독식자는 그렇게 판단했다.

다만, 완전히 무시는 할 수 없으니만큼 다른 안전장치도 만들어 두긴 할 참이었다.

‘레이드가 어느 정도 끝나면 바로 손을 써야겠어. 어차피 맹약의 조건은 동맹만 유지하면 되는 거니까. 맹약 밖에 있는 사왕이 손발을 잘라 버리는 건 해당하지 않겠지.’

모든 맹약이 마찬가지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있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저 평범한 연우는 신격들도 이용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테니 따로 조력자도 붙지 않았을 것이다.

거인의 신이 거의 처치될 때 즈음에 움직이자.

독식자도 영왕과 똑같이 생각하면서 거인의 신을 잡기 위해 불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땅을 박차려는데.

[‘유성검결-검뢰’가 작렬합니다!]

[스킬 생성이 실패하였습니다.]

[마력 제어에 실패해 페널티로 오러가 폭발합니다.]

별안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대로 있다가 사람이 통째로 녹아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곧 이어지는 섬광과 함께.

“……!”

독식자의 시야가 빨갛게 물들면서 그대로 의식이 뚝 끊겼다.

* * *

콰르르릉-

쿠쿠쿠, 쿠쿠쿠!

콰콰콰콰!

연우가 ‘실패’한 검뢰는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가면서 모든 것을 그대로 휩쓸어 버렸다.

애당초 검뢰의 원형이었던 유성검결은 오러를 토대로 연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공격성 스킬을 통째로 박아 넣었던 것이었으니.

당연히 지금 연우가 가진 몸으로 그런 스킬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연우의 마력회로가 폭주하면서 생긴 폭발은 주변에 있던 것들을 ‘의도치 않게’ 휩쓸리게 만들었다.

[사고로 간주되어 마나의 맹약이 무효화되었습니다.]

[‘영왕’의 신화를 회수했습니다!]

[존재 복구가 이뤄집니다.]

츠츠츠-

가장 먼저 폭발에 휩쓸렸던 연우는 영왕을 그가 처치했다고 판단한 시스템의 가호 아래, 재수복이 이뤄지면서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물론, 군인 연우에 이어 영왕의 신화까지 습득한 채로.

“개 같은……!”

반면에 운이 좋아 목숨이나마 겨우 건질 수 있었던 독식자는 숨을 헐떡이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연우를 바라봐야만 했다.

숨은 붙어 있어도, 이미 사지 대부분이 망가지고, 부서진 복부에서는 내장이 줄줄 흘러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면도 절반 이상이 날아갔을 정도였으니.

독식자는 연우가 자신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편법’으로,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 시스템의 맹점을 역이용해서 이런 판을 만들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우도 어떤 패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지만, 설마 거인의 신을 다 잡았을 때도 아니고 이렇게 다짜고짜 일을 저지를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스걱!

연우는 그런 독식자의 생각 따윈 궁금하지 않다는 듯, 주변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단검을 주워 녀석의 목을 베어 버렸다.

[‘독식자’의 신화를 회수했습니다!]

연우는 차곡차곡 육체에 힘이 쌓이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 무너진 낙석 더미에 반쯤 파묻히다시피 한 거인의 신에게로 다가갔다.

쿨럭, 쿨럭……!

거인의 신은 큰 부상을 입어 각혈을 하면서도, 어쩐지 후련한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대가…… 진짜 나였군.”

연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크! 내가 언젠가 쓰러지리라고 생각은 했었다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는걸. 그래. 내가 잃어버린 이름. 물어봐도 되나?”

“차연우.”

“차연우, 차연우라……! 흐흐! 조금, 특이한 이름이로군.”

거인의 신은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연우의 두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다시 묻고 싶은 게 있다.”

“너무 고통스러운데…… 빨리 보내 주기나 할 것이지, 그것참 너무하는군.”

연우는 거인 신의 농담에도 웃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나는 여전히 자격이 부족한가?”

거인의 신은 전혀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원래 신은 고독한 법이지. 하지만 넌 달라. 안 그런가?”

“…….”

“뭔가를 갈구하고 있군. 결여된 걸 찾으려는 우리와는 달라. 분명히 그대에게도 결여는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대는.”

거인 신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인간이로구나.”

나에게서 결여된 것.

내가 갈구하는 것.

그 말을 들은 순간, 연우의 머릿속으로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차정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난타, 세샤.

판트, 무왕, 샤논, 한령, 레베카, 부-파우스트, 라플라스, 람과 죽음의 군단들, 발데비히와 망자 거인, 여름여왕과 사룡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얼굴.

못난 자신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러면서도 원망 한번 쏟아내지 않고 항상 항상 미소로 맞아 주던 얼굴.

‘……에도라.’

연우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거인의 신이 내뱉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크크크! 말하지 않았나. 신은 고독한 법이라고. 친구와 가족을 찾는 그대는 그래서 인간이다.”

그러다 한참 뒤, 다시 손을 쓸어내렸을 때.

거인의 신은 웃는 얼굴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거인의 신’의 신화를 회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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